"하지만 여기가 집인데,어이하여 집으로 간다하오?중전 집은 여기인걸."
먹물보다 더 진한 어둠이 깔린 허공을 노려보는 왕의 눈빛은 그 어둠만큼 그대의 집은 지아비인 짐이거늘.그대가 진정 집이
라 여기는 곳은 대체 어디인가?
다음날 아침이다.
우원전에 불려온 윤 상궁이 왕앞에 부복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왕은 한동안 바닥만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더없이 침중하고 울적한 용안이었다.나지막이 캐물었다.
"아지는 바른대로 말하여라.짐이 해괴한 소문이 궐 안에서 도는구나."
"마,망극하옵니다.소인도 들었나이다."
"짐이 모르는 바가 아니다.어젯밤 같이 침수하실 적에 하신 행동이며 말씀이 참으로 이상타 싶었거든.상심이 극에 달하고
애통함이 골수에 사무쳐 그런 게지.그이도 그러하고 싶어 그러하였겠니?휴우,윤 상궁 너가 보기도 중전이 많이 고달파 보이
더냐?"
"지존의깊은 속내야 한갓 어리석은 저희가 다 헤아리겠습니까.허나 중전마마 마음병이 깊으신 것은 사실일 줄 아뢰옵니다."
"중전이 옥체 미령하시어 병중이신 것은 다 아는 사실이되 갑자기 그이가 실성하였단 소문은 왜 난 것이니?"
윤 상궁이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숙인 고개를 들었을 때 늙은 상궁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중전마마의 옥체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는 소인을 죽여주십시오.마마.망극하옵니다.이 며칠 계속하여 밤만 되면 침수를 못
이루시며 후원을 헤매이셨는데...갑자기 바람 소리를 듣잡고는 아기씨 울음소리가 난다 이러하시면서 내달리시니니.배행한
저희가 참말 혼절할 정도로 놀랐나이다.허고 사흘 전인데,파루를 치는 야심한 시각에 장옷을 꺼내라 하시었나이다.어찌
그러하십니까 여쭈었나이다.하니 대답하시기를....."
"집에 간다 하더냐?"
듣지 않아도 그 대답이 어떨지 알고 있다.윤 상궁이 고개를 조아렸다.
"예,전하.쇤네가 아무리 만류하여도 집으로 가야 한다 하시며 기어코 자리옷 차림에 장옷만 두르시고 숙장문으로 나가셨나이
다.저하고 김 상궁이 대경하여 억지로 뫼시고 들어온 터로 아마 망극한 소문이 그렇게 퍼진 줄 아옵니다."
"중전께서 많이 ,많이 ....우시더냐?"
늙은 상궁의 주름진 볼로 마침내 눈물 방울이 뚝뚝 굴러 내렸다.
참혹하고 가엾은 마음에 마냥 흐느끼며 윤 상궁이 더듬더듬 아뢰었다.
"우,울지 못하셨나이다."
으응흠.신음 같은,절망같은,오열 같은 한마디 침음성이 왕의 입술 사이로 물렸다.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는 눈이 설핏 붉었다.
팔걸이 위에 놓인 주먹이 꾹 움켜줘어졌다.손등에 퍼런 심줄이 아프게 돋아났다.
"차라리 우시면은 무엇을 걱정하리오,말씀없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지존의 위엄을 간직하시고 의젓하게 처신하시기에 쇤네
는 차차 회복되어 가시는가 보다 이리만 생각하고 안심하였사옵니다.허나 무섭고도 처절하니,드러내지 못하고 말 못하는 속
병이 깊으셨냐이다.밤 내내 가슴만 주먹으로 동동 치시면서 안절부절.방안을 빙빙 돌다가 주저앉으시더이다.소인을 바라보시
면서 힘없이 웃으시는데,그 미소가 바로 혈루였나이다."
왕이 허탈하게 웃음 지었다.나지막이 속삭였다.
사모하는 그사람이 겪는 고통에 더 아리고 문드러진 심장을 피처럼 내뱉었다.
"짐이,짐이 울지 말라 하였기에....제발 짐 앞에서 우지마라 마냥 고함질렀기에 가엾은 그 사람이...그만 우지 못하는 병에
걸렸구나.어이할거나.아아,가엾고 애잔하여 어이하면 좋을거나."
===4장 심연(心緣)====
장옷에 깊이 고개를 묻고 행여 눈에 뜨일세라 그늘만 밟고 간다.둘레둘레 주변을살피던 신형이 족제비처럼 재빠르게
높은 담벼락 작은 쪽문을 넘어 갔다.
월성궁 요운당.
장옷을 벗어 살그머니 접어 든 사람은 중궁 나인 선이 년이였다.
연못가 정자에 앉아 가야금을 둥당 거리던 희란마마가 반색하며 맞이 하였다.
유유자적. 궐 안의 참담 하고 해괴한 중전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참이니 어이 아니 좋을시고! 눈 깜빡할 사이 잘하면 다시
내 세상이 되려니. 이근래 희란마마 사정이라 밥맛은 절로 나고 콧노래가 흐른다.
" 여기 들어 오는것을 누가 눈치채지 않았겠지?"
"암만요.저기 이래뵈도 눈치가 있습니다. 월성궁 근처가 의국이 아닙니까? 소인의 어미가 아프다 핑계 대고 나온답니다.
모다 저가 의원을 찾아 가는줄 아옵니다."
"신통방통이라.잘하였구나.너가 나의 심복이라는 것이 눈치 채이면 절대로 아니된다."
"큰마마 은덕을 입고 사는처지. 눈치껏 보탬이 되면 이년 여한이 없습니다요."
선이 년. 떡 벌어진 소반과 받으며 생긋생긋 아첨을 떨었다. 희란마마 한 무릎 다가앉아 캐물었다.
" 중전 고년 아기씨 잃고 상심하여 실성 하였다고 소문이 자자하단다 궐 내 풍문이 어떠하냐?"
희란마마 성질대로라면 다시 한번 중신들 떼로 일으켜 실성한 중전 년 당장 폐하고 새중전 맞으소서 하고 싶다. 또한
그런말이 선이 입에서 나와주기를 기대하였다. 허나 선이 년.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그런 소문이 흉흉하옵니다만은.아무도 입을 벌리지는 못하는듯 하옵니다.상감마마께서 중전마마에 대한 해괴한 소문을
발설 하는자 가만두지 않으리라 대노 일갈 하시었다 합니다."
"흥,첨으로 민망하고 망신이로다.그분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시는 분이냐? 명색이 국모이고 상감마마 어처라
그야말로 고귀한 지존이 아니더냐? 그런 자리에 제정신이 아닌 계집이 앉아 있는데 내치지는 못할 망정 마냥 비호 하시어?
쯧쯧쯧.기가 막히구나."
제 기대가 어그러진 터라. 희란마마 콧방귀를 뀌었다. 못난 상감이구나 쫑알쫑알 비난 하였다. 심기 불편하고
서슬 푸른 상감마마. 모든일의 원흉이라. 중전을 해친 진정한 배후로 자신을 염두에 두고 괘씸타 이를 갈고
있음을 안즉 모르는 희란마마.모만불손 눈꼬리가 빳빳이 섰다.
"그러나저러나 내가 너더러 나오라 기별한 이유는 딴 데 있음이다. 어제 아버님께 들었거니 중전을 온천이 있는
송양행궁으로 피접 내보낸다 하였는데 참이더냐?"
"참입니다 .큰마마. 오늘 정식으로 중궁에 하명이 내렸나이다. 달포남짓후에 중전마마께서 출궁하실 것입니다.
옥체 여간하니 회복하시는 대로 바로 나가신 답니다"
"하! 기가 막혀서, 실성을 한 데다 태중 아기까정 잃어버리고 중궁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계집이 무엇 그리
고와서 온천에다 피접까정 보내신다더냐?"
"어떤 사람은 그렇게 말하더군입쇼. 그렇게 중전마마를 멀리떼놓고 있으시다 난중에 잠잠해지면 폐하하시려고
그리하신다고요. 그럴뜻이 없으면 내전의 여인을 그리 멀리 보내겠어요?"
희란마마 눈빛에 반짝 빛이 돋았다. 반색하여 부르짖었다.
"하이고,반가운 소리로고. 그리되면 얼마나 좋으니?얌전한 양가 계집 다시 천거하여 중궁전 올리고 우리
혁이 일 좀 펴보았으면. 교태전에 저 못난 계집이 앉은 이후로 내 일이 제대로 된 것이 없단다?
흥.천적이라 하지만은, 참말 중전 고년이 나를 망치고 멸하려 드는 악한 천적인 게다"
간악한 빛이 담긴 눈으로 희란마마, 곁에 자개함에서 턱하니 비단 주머니를 집어 내어 선이 년 앞에 내던졌다.
묵직한 소리가 황금 냥깨나 든 듯하였다.
"물론중전이 출궁할 시 너도 따라가겠다?"
"그러믄요, 신임도 깊거니와 중전마마 침수 시중에다 이부자리 담당이라 반드시 따라갑니다요."
"병약한 그 계집, 골골거리며 먼 데 나갔다가 어찌 잘못 먹고 불편하여 피 토하고 죽어 뒈질 수도 있는 게지.
몸 상하고 낙태하고 정신도 온전치 않음이라. 죽어 나자빠져야 그게 옳은 일. 훗호호, 선이 너 지난번에 내가
준 그 약주머니 가지고 있으렷다?"
선이 년 대답 대신 싱긋이 미소 지었다. 살기마저 감도는 은밀하고 간악한 웃음이 두 여인 입가에 맴돌다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기회를 보아 그년 국그릇에다라도 그것을 털어 넣어버리려무나. 행국으로 피접 나간 터로 경비도 허술할
것이며 매사가 다 불편하고 곤란할터, 병들고 죽어 자빠져도 아무도 의심치 않을게다."
"그 다음은 다시 단국의 하늘이 흠빡 큰마마 세상이 되는 겝지요?훗호호."
천인공노할 음모가 아주 쉽게 성사되었다.
희란마마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설사 상감의 성총을 회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삐뚤어진 질투와 원독의 칼날은 그녀를 버린 왕에게가 아니라 중전에게로 향하여진 지 오래였다.
자신이 그동안 한 방자하고 악독한 일은 하나도 생각지 않는다.
자신이 이날 이렇게 몰락한 모든 원인을 중전에게 두고 원망이 극심하였다.
상감에게로 가야 할 원한 까지도 전부 다 싸그리 중전에게로 돌려 앙살스럽게 독한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제 정인의 마음을 홀라당 빼앗아가고 당당하던 저의 권세 훔쳐간 도둑 년이었다.
반드시 중전만은 음해하고 해치고야 말리라.
설사 그 일을 자신의 명줄을 끊는 일이라 해도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 다시 한 번 희란마마는 이를 악물었다.
버선발로 정자 기둥 옆에 섰다.
멀리 바라보이는 성덕궁의 검은 지붕을 노려보았다.
뚝뚝 떨어지는 저주와 원독의 미소가 붉은 꽃잎처럼 나풀나풀 내려앉았다.
'주신대로 갚아드립니다, 주상 이몸을 건드리며 짐의 마음 변함없다맹세, 또 맹세 하시었지요"장부일언중천금이라구요?
그래놓고 이러십니까? 십여 년도 못 가 못난 중전 고년에게홀려 나를 버리시고 핏줄까정 외면하시며 우리 모자의 운명을
나락으로 빠뜨리셔요?네에,두고 보셔요.갚아드릴 것입니다.여인의 원독은 여름에도 서리를 내린다 하였습니다.
저에게주신 수모, 이몸의 사무친 원한 다 그대로 받으실겝니다.
좋습니다. 어디한번 애틋한 정인을 잃어보셔요.그슬픔 그 원한 그 수모가 어떠한지 고대로 당해보셔요!'
희기양양, 복수심에 불타는 희란마마 눈에 비상을 먹은 중전이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장면이 선연하였다.
당장에 꺼꾸러져 죽어 버린다면 얼마나 좋아! 하늘님은 대체 무엇하시나.그 고약하고 미운 게집이나 잡아가시지 않고!
선이 년을 시켜 중전마마를 기어코 살해할 야심이랴.희란마마 그 약독한 흉중은 대체 얼마나 첩첩하고 까마득한가?
그러나 반드시 사필귀정.
하늘은 악인을 내내 돕지 않는 법.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는 그 손을 함부로 휘두르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 법이다.
"큰마마. 지금 대감마님께서 사랑채에서 좀 보잔다 하십니다,"
마당쇠 놈이 정자 아래에서 읍하고 아뢰었다.
무슨일이나,중전이 실성하였다 소문이 장한 터로 고년 폐하라 중론 일으키려 하시나?
김칫국부터 날름 마시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희란마마 치마자락 부여잡고 호작호작 씨암탉 걸음으로 사랑채에 나갔다.
정안로 앞에서 정경부인도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이까?어찌 저를 보잔다 하시었어요?"
"큰마마, 이아비가 너덧새 후에 새벽 송양 행궁으로 내려갑니다.가솔들 단속이며 집을 비우는 터라 뵙고 떠나야 할 것
같아서요."
뜻밖이다.아비의 말에 희란마마 숨이 넘어갔다.
"아니, 정승이신 아버님이 어이하여 송양 행군으로 내려가십니까? 설마 실성한 중전 고년 시중들랴
하는것은 아닐 터이고요."
"그 일이랍니다,휴우, 상감마마께서 이 아비를 지목하여 중전이 내려가시기 전 미리 가서 송양행군을 말끔히 치우고
거처하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수리하고 차비하랍십니다. 오직 짐이 외숙을 믿소이다 이러는데 저가 무엇
더 할 말이 있으리오."
선이 년더러 중전 밥그릇에 비상 털어 죽여 버려라 밀명을 해놓았다.
이것이 설마 발각되어 아비를 송양 행궁으로 내려 보내는 것은 아닌가 가슴이 선뜻하여 희란마마 눈을 치뜨며 캐물었다,
"허면은 중전이 행궁르오 피접 내려간 후에는 아버님이 상경하십니까?"
"그리는 아니 될 듯합니다. 중전마마께서 그곳에 계시는 내내 이아비더러 송양 행궁 바깥 부중에 거처하랍니다.
내전의 지존께서 거처하심이라,경비가 걱정되시는 고로 누군가 한 명이 머물러야 함이 아닌가 하시는군요."
선이 년에게 거금을 주고 시킨 일이 시작하기도 전에 허사로 돌아간 셈이다.
울컥 갑갑하고 짜증스러웠다.
희란마마 혀를 쯧쯧찼다.
"아무리 그러하여도 그렇지요. 상감께서 젊은 나이에 노망이 나신 건 아닙니까? 실성하였다 소문장하며
잘못하면 폐하여진다
하는 중전 고년 시중들랴 정승을 배행시키다니요. 내참! 기가 막혀서."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이 아비가 그저 눈앞이 첩첩합니다."
정안로가 장죽을 탁탁 털며 방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터무니없는 억지를 벅벅부리는 상감 앞에서 말도 못하고 나온 분함이 지금에서야 새록새록 복받치는 모양이었다.
허나 신하된 도리로 순명하여 받들어야지 어찌해.
"상감마마께서 이 아비를 따로 불러 단언 하시었습니다.만약 중전마마 옥체에 털끝만한 위해가 있거나 병환이 더 깊어질사,
아비 목숨을 내놓으라고 말힙니다.오직 그대를 믿고 중전을 배행하여 보내노니, 만에 하나 중전마마의 옥체에
변고가 생길시.."
희란마마는 아비의 입만 바라보았다 .
정안로가 말을 잇지 못였다. 더 처연하고 근심 어린 한숨을 털어냈다.
담배만 뻐끔뻐끔 빨았다.
"말씀을 하십시오.상감께서 무어라 하셨기에 이토록 근심 어린 얼굴을 하고 그러셔요.아버님?"
"....정씨 일가의 삼족을 멸해 버리겠답니다."
"헉!"
정경부인도, 희란마마도 아연 놀라 신음을 삼켰다.
아무리 그러하여도 그렇지 상감께서 그토록 독한 확언을 하실 줄이야. 멸해버린다는 정씨 일가에는 정경 부인의 목숨도.
희란마마와 아들 혁이의 목숨도 다 포함되어 있는거것이 아니냐. 중전의 머리털 하나에 그들 일가의 명중이 달려 있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어찌 정안로의 심기가 편안하랴.
중전마마께서 끝내 옥체 회복하지 못하시고 이대로 돌아가시었다면.그들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짐과 비 사이를 음해하고 터무니 없는 구설을 내뱉은 자들 전부 다 죽여 버릴 테다!"
중전마마 자리 ?에 지키고 앉아 내내 그 말만 중얼 거리셨단다.
그 말이 누구를 향한것인가? 결국은 정안로 저에게요, 그뒤에 선 희란마마를 겨냥한 것이 아니던가.
정안로가 결연한 얼굴로 앞에 앉은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
"달리 돌이켜 생각하여 보니 이것이 기회입니다.상감마마께서 이아비의 충심을 보여 드릴 수있는 기회가 다시 온 것이에요.
멸사봉공,성심을 다하여 중전마마를 보필할 작정입니다.허니 도성서도 그리 알고 근신하사 도와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대감?그래도 상감께서 믿으시사 중전마마 안위를 대감께 맡긴 것이지요,"
정경부인이 대답하는 말을 들으며 희란마마 아이고,골치야!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중전을 해칠 절호의 기회를 이대로 허무하게 놓쳐야 한단 말인가.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희란마마, 정안로의 말이 제대로 드릴 리가 만무하다.
"이 아비가 내일 내려가거니와 집 안에서도 각별히 주의하여 중전마마 옥체에 좋은 약재며 진상할 먹거리들을 알아보시오,
부인. 오늘날 중전마마 숨날 하나에 이 아비뿐아니라 우리 정가의 운명이 걸려 있게 된셈이오.
이몸은 신명을 다하여 상감마마 하명에 따를 생각입니다. 큰마마께서도 명심하시어 중전마마 옥체 회복을 비는 불공이라도
들여주시구려."
생살을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연적이자 원수를 위하여 불공을 들이란다.
이희란의 팔자가 이렇게 첩첩해졌단 말이더냐?
별당으로 돌아가는 얼굴에 독기가 철철 넘쳐흘렸다.
'불공? 흥, 들어주지!중전 고년 피 토하고 콱 저절로 뒈져 버리는 푸닥거리 한판 하여주면 될 것 아니던고?'
희란마마 북쪽을 향하여 가래침을 캬악 캬악 내뱉었다.
중전 그년 면상에 이렇게 가래침을 뱉어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아이고,배야!배 아파 나 죽겠네! 그날밤 희란마마 밤새도록 아랫배 잡고 방바닥에서 대굴대굴 구른다.
금원의 서경당.
작은 연못의 기둥을 담근 효람정.
중전은 멍하니 두터운 얼음으로 덮인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태전에서는 답답하여 내내 있지 못하리라 속 아픈 절규를 하고 난 다음날이다.
대궐 안에서라지만 그녀가 가장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곳에서 거처하시오,하고 배려를 해준 것이다.
노을이 내리는 그 무렵.
함께 밤수라를 하고지고 하면서 왕이 중전을 찾아 들어왔다.
안방에 아니계시니 굳이 찾아 게까지아오셨다.
연못에 빠져 옥체를 상한 터라 혹여나 싶어 겹겹이 옹위하였다.
윤 상궁, 박 상궁, 김 상궁까지 주변에 시립하고 있는 가운데 중전은 인형인 양 미동없이 앉아 있기만 하다.
"수라합시오. 안즉 바깥에 나가시면 아니된다 하였는데, 이러 한 데서 계시오? 찬바람 오래 쏘이면은 옥체 또 나바지리라.
들어 갑시다."
"방 안에만 있으니 영 답답하여서..."
귀 기울려 듣지 않으면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도 중전이 모처럼 대답을 하여주었다는 것에 왕은 행복하였다.
"답답하여도 참으셔야지요.인제 새해 되시면은 송양 행궁으로 피접 나가시지 않소?바깥바람
실컷 쏘이실 터이오. 자자 들어갑시다 어서요,짐은 중전이 고뿔 들까 저어하오.어서."
부드러이 재촉하였다.
안아들다시피하여 서경당 안방으로 모시었다.
밤수라를 마치고 사랑채에서 석강을 하고 난 후, 몽 상궁이 문 바깥에서 아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