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이 꺼멓게 타오르며 열에 들떠 수족마저 덜덜 가누지 못하였다.정신이 오락가락.깨었다 잠들었다,열에들떠 헛소리를
하시고 헛것을 보시는 듯 신음이 장하시다.
똥줄이 탄 전의감들이 별별 처방을 다 햐여도 용체의 열은 가라?지 않고,밝은 정신이 돌아오지 않으니 이를 어찌하란
말인가?
"비를......비를 불러라."
오직 그 한마디를 되풀이하시었다.헛소리인 양 내내 신음소리 사이로 중전만 찾았다.
창희궁의 왕대비마마,주상전하께서 쓰러지셨다 하는 급한 기별에 급히 성덕궁으로 달려오시었다.
왕을 우원전 침전에 모시고 그 머리맡에 지켜 앉으셨다,
듭시자마자 분부하시기를 당장에 대궐문 단단히 닫아라 하시었다.병조판서 남준과 금부도사를 불러 궐을 철통같이 에워싸되
번을 발동하게 하며 아무도 도성을 들며 나지 못하게 하라 엄히 하명하셨다.
"허고 당장에 중전을 모셔오너라!진성은 군사들을 방비하여 궐안팎을 철통같이 에워싸서 잡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들고나지
않도록하라."
그리고 왕대비마마,제일 중요한 옥새함을 당장에 도승지로부터 거둬 받으시었다.당신 치맛자락 안에 품고 ?아버리었다.
주상께서 위급한 상태이니옥새함은 궐의 제일 웃어른이신 왕대비전하께서 챙기시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나중에 달려들어 온
좌의정,속으로 아차,한발 늦었다.침만 삼켰지만 무어라 더 이상 치받아 할말이란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가에서 곤히 잠들었던 중전마마,새벽에 바람같이 달려온 윤재관에게서 전갈 듣잡고 대경하여다.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이 캄캄하였다.비녀를 찌르는데 후들후들 손이 떨리었다.몇번이고 땀에 젖은 손가락에 힘이 빠져
옥비녀가 쟁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의대도 제대로 챙겨 입는둥 마는둥,급히 날랜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궐로 달려가시었다.광희문 안으로 듭시는데 이미 군사들
수천 명이 궐 안팎을 철통같이 에워 싸고 있었다.심상치 않음이라,아무도 들고나지 못하게 단단히 방비하는 중이다.
급히 수레에서 내려 우원전 침전으로 달려들어 갔다. 지아비 상감마마의 궂고 끔직한 모습앞에서 너무 충격을 받은터로 중전
마마, 그만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고,천지신명님!"
사정은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더 기막히었다.주상전하,이미 그환후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심하여져 있었다.
앞에 와 앉은 사람의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애타게 중전이 울음 섞인 목청으로 전하를 부르자 안떠지는 눈으로 손만
더듬으신다.간신히 정신을 추스르는 듯 한마디 그대가 왔소?속삭이셨다.그러다가 다시 정신을 잃으셨다.이마에 손을 대어보
니 열이 펄펄 ?어오르는 터로 보통이 아니었다.
"으으,더워....덥소이다!더워서 미칠것 같구려.짐이 무더워서....죽을것 같소이다...."
헛소리인 양 신음 사이로 상감마마,계속하여 중얼 거리는 말씀이 그러하였다.신열이 끓어오르고 는을 뜨지 못하시니 정신이
들다 말다 거의 혼수 상태인데 그러면서도 조금 깬다 싶으면 더워 미칠 것같다고 울화통이 짜증이었다.계속 중얼거리시기
덥다 하는 것은 용체에 끓어오르는 신열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중전이 궐에 달려들어 온 이래 단 한 번도 전하 곁을 떠나지 않고 얼음물 수건으로 용체 닦아드려도,부채질 팔 아프게 하였다
허나 왕의 열은 떨어지지 않는다.모조건 덥다 소리치시니 어찌할것이더냐?붉은 반점 처럼 피어로른 열꽃이 온 옥체와 용안에
모두 돋아난 터이며 눈에는 진물이 흐르고 입술이 꺼멓게 탄 터이니 그잘나고 훤칠하신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실로 흉측한
괴물이 하나 누워 있는 형국이었다.
'한번도 앓으신 적이 없는 분이었거늘......그동안 쌓인 곤고함이 일거에 터져 이리 힘드신 게야.대체 내가어찌하면
좋을까?'
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혼수에 빠진 왕을 바라보며 중전의 눈이 깊은 슬픔으로 젖어든다.
'제발 신첩을 홀로두고 가지 마옵시오,전하'
어린 왕비는 가슴속으로 오열을 꾹꾹 눌러 삼키었다.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신첩이옵니다.오직 전하만을 믿고 살아가옵니다.
아시지요?간청컨대 제발 신첩을 홀로두고 가지 마옵소서.강잉히 이겨내어 주시옵소서.
돌도 돌아 간신히 잡은손.하나임을 약조한 두마음.천지간 외롭고 고적한 우리가 서로에 의지하여 평생 살아가자 맹세
하였습니다.그 약조,그 맹세 달포도 지나지 않았는데 마마께서는 신첩만 홀로 두고 떠나시려 합니까.진정되지 않는 눈물이
뚝뚝 떨어져 비단치마 자락에 자꾸만 짙은 얼룩을 만들었다.옷고름 눈 아래 눈물 방울을 훔치는데,사이문 뒤로 윗방에서
쨍하니 고함소리가 터졌다.
"무어라?어찌하여?다시 말하여라!"
왕대비전하께서 역정 내시는 소리였다.중전은 깜작 놀라 귀를 기울였다.주상께서 환후 위급하여 쓰러지신 지 닷새째 되는날
이었다.
전하의 환후가 몹시 나빠지시어 회복이 도통 아니되신다.
이도 큰 근심이지만은 만약 일어나서는 아니되는 망극한 이이 일어난다면 어쩌지?당장에 후사의 문제가 심각하구나.
처음서는 중신들,다들 입 봉하고 마음속으로만 견주어보았다.헌데 전하의 환후가 시간이 갈수록 더 위급하여지고 깊어진다
하는 전갈이 속속 들어오니 하나둘,한두 마디 후사를 어찌 할것인가 그 방비를 하여야 할 것이 아니오?하는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막중한 보위였다. 한시도 비워질 수가 없다.헌데 금상께서 아직 혈손 하나 두지 못한 터에 이렇게 갑자기 혼서 하시기라도
하면은 보의 대통 잇는 일을 어찌하란 말이더냐?
누가 주상의 뒤를 이을 것이냐.종실서 양자라도 들인다 하지만은 진성대군의 유일한 소생은 이제 겨우 한돌바기 늦둥이요,
효성군 댁에 장성한 아드님이 두분 있기는 하지만은 그 두 아드님 다 측실 소생이었다.남은 방법은 유일한 적통이라.
진성대군께서 조카의 보위를 이으시는 거이 되겠지만 이미 대가 넘어간 터로 그는 법도에 어긋난다 예조에서 반대였다.
하늘에서 떨어진 천복이로다!아 근래 살길 찾자,목줄 숙여 전전긍긍하던 정안로 이하 벽파 일당의 생로가 뚫린 셈이었다.
천우신조라!얼씨구나 좋다 하며 떼거리로 몰려들어 목에 힘을 주었다.탕탕 큰소리를 쳤다.
"아,무에를 걱정하십니까?월성궁 마마 소생으로왕자마마 분명할 사,혁이 도령이 있지않습니까?왕대비전께서 전교내려 지금
이라도 왕자로 인정하고 모셔오면 이 말 저 말 필요없습지요."
갈수록 심각해지는 주상의 환후가 이 밤 하여 고비를 못 넘기시면은 거의 절망적이다 하는 전의감의 고변이 있던 날 아침
이었다.대전에서 턱 하니 그런 무엄한 말이 마침내 공론화되었다.
왕대비전하,전하여 듣잡고 참으로 기가 막히었다.억장이 뒤집혀 서안을 손으로 내려치며 일갈하시었다.죄인인 양 진성
대군과 효성군,부원군인 김익현 세어른이 고개 숙여 한숨만 몰아쉬었다.
"하,실로 기가 막히고어이가 없도다.감히 지금 뉘가 그 어린놈을 보위 대통 올리라 주장하느냐?무에가 부족하여 그 근본도
모를 것을 주상 소생이라 하느냐?주상께서 환후 위급한 차이니 회복을 기원하며 근신하여야 함이거늘!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공론 서둘기 나서서 그놈을 왕자로 인정하라 벌떼처럼 일어나?진성 너는 대체 그런 공론을 어찌 막지 않고 무엄하기 극에
달한 말을 여기까정 가져온 것이냐?"
"소자 입장이 참으로난처합니다,어마마마.관례가 그러하니 이미 대를 넘긴 보위가 후사없다고 숙부인 저가 이을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허니 저가 게서 대놓고 반대를 할 수 없었나이다.하면 소자가 보위가 욕심이 난 터이니 왕자일사 분명한
아이를 젖히려 한다 얽어매기 딱 좋을 참이지요.소자가 딴죽을 걸면 마치 역심을 가진 것처럼 몰아붙일 기색인데 어찌하겠
습니까?"
입장이 난처한 진성대군의 말에 왕대비마마 이를 으드득 갈았다.시퍼런 신광 돋은 눈빛으로노여워하시었다.
"실로 무엄하고 불측하다.간특한 제 딸년 호가호위하여 한 시절 권세를 잘 부린 뒤끝이니 조하대세가 저들이다 이 말이렷다?
주상 환후 위급하니 당장에 제 살길 궁리하여 그 권세 천만대 누릴 계교를 어찌 하니 짤 것이니?번동 대감 간교함은 이미
알려진바인데..허나,그리는 아니되지!내가 그는 절대로 허락지 못한다.중전을 보아서라도 그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아니
되는 일인게야!중전께서 월성궁 요녀때문에 피눈물을 흘린것이 얼마인데,주상께서 만에 하나 흥하신 이후에 다시 그 소생
으로 보위 대통이어 그 계집에 의해 수모를 당하게 하라고?그리는 안된다!그리는 못해!중전은 밤낮으로 잠 한숨도 못 자고
저리 주상 간호한다 정성이건만 고 고약한 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그런 무엄한 공론이나 조종하고 있다니,천벌을 받아
죽을 것 같으니라고!"
왕대비전의 고함 소리에 중전은 비로소 바깥에서 일이 되어가는 추이를 짐작하였다 저도 모르게 왕비는 두 손으로 덜덜 떨
리는 가슴을 끌어안았다.하도 기가 막히고 참담하여 울컥 솟느니 서러운 눈물이었다.아아,하늘님,맙소사!
'간악한 그 계집이 다시 권세를 쥘 터이니 이 나라가 흠뻑 그 계집의 것이 되는 것이라.아,안돼!그리는 못한다.이 사직이
뉘의 것인데 어찌 이어진 종통인데 천하고 간악한 계집의 태 빌어 태어난 어린놈으로보위를 잇는단 말이냐?'
눈앞이 아뜩하였다 그리되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눈앞에 불 보듯이 뻔하였다.내팔자는 대체 왜 이리 구구절절한가?
중전은 다시 무력한 눈물만 뚝뚝 흘렸다.
별의별 우여곡절 다 겪고 환란을 돌고 돌아왔다.천행으로 주상전하 성총 회복하여 잠시 행복하였다 싶으니 이렇게 환후
위급하신일을 당하여 이대로 내 팔자의 행복이 끝이 나야만 하는 것일까
'주상전하 흥하시고 고놈이 보위 오르면 나는 그저 창희궁에 내동댕이쳐져서 죽은 듯이 살아야 하는 허울뿐인 대비전이
되는게야.간악한 그 계집이 오동방정 떨며 정사를 농단하는 것을 보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인데
그 수모,그수치를 어떻게 견디란 말이더냐?나는 죽었으면 죽었지그렇게는 못산다!'
중전마마,달달 떨리는 손으로주상전하 어수를 잡아 가슴 사이에 꼭 안았다,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애원하였다.
"전하,제발 강잉히 이겨내시어 신첩을 지켜주십시오.신첩이 천한 그 계집에게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게 힘이 되어주십시오.
신첩을 위하여 일어나 주십시오,마마."
이분이 만에 하나 천붕의 변을 당하다면 나도 따라가리라.중전은 입술을 깨물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 약속하였다.살아생전 내내 홀홀단신 외로운 이분은 홀로 보내지는 않을것이다.
'살아 그 계집에 의하여 수모당하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절대로 상감마마를 외로이 보내지는 않을 것이야!'
문이 열렸다.전의감 홍준이 허리 굽히고 들어왔다.새로 다린 약물을 입에 넣어드리나 왕은 짜증만 내며 울컥 다 뱉어
버리었다.귀찮다.고함이나 이미 기력이 많이 떨어진 터라 목소리가 미약하고 힘이 스러져 있었다.
"더워,뉘가 나를 좀 시원하게 하여다오!짐이 더워서 미칠 것이다!"
헛소리인 양 계속하시는 말씀이 오직 그것 하나이다.홍준이 전하 어수를 감히 잡고 진맥한 다음,중전마마께 돌아앉아 고두
하였다.중전마마,너무 큰 충격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방법이 없소?저리 무작정 덥다 소리치시니,대체 어찌하면은 좋겠소?"
"통촉하옵소서,중전마마.어찌하였든 이 신열이 가라앉아야 환후가 회복되시는 것이니 잠시도 눈을 떼지 마시고 용체를 서늘
하게 하여주십시오.신은 다시 약제 처방을 하여 볼 것입니다."
중전마마,가엾고 슬픔과 절망이 담긴 눈으로 열에 들뜬 지아비의 참혹한 용태를 돌아보았다.
'신첩이 전하를 위해 이토록 아무것도 할 것이 없습니다.'
또다시 중전의 커단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안타깝고 답답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그저 입술만 깨물고 오열하고
있을뿐이다.아아,이 몸이 얼음 덩어리라면 좋으련만.그러면 내 몸으로 끓어오르는 이 신열을 식혀 드리련만....'
중전마마,갑자기 바로 앉았다.눈물에 젖었으되 영리한 눈동자가 반짝거렸다.그래,어쩌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몰라,나지막이
중얼거렸다.옆에 앉은 나인들에게 화급히 분부하셨다.
"너는 당장에 빙고에 가서 얼음을 있는대로 다 꺼내어오너라.허고 너는 나가서 욕간통에 찬물을 반만 담아오너라.어서 서두
르거라!내가 전하 열을 녹일 방도가 생각났느니!"
중전마마께서 재촉하시니 나인들이 서둘러 빙고로 달려가얼음덩어리들을 함지박에 담아왔다.큰 욕간통에 담은 냉수를 대령하
였다.중전마마,준비가 끝나자 주변의 아랫것들을 모다 나가라 하셨다.상선과 윤 상궁만 곁에 두고 문 앞을 지켜라 하였다.
엄히 하명하시었다.
"절대로 뉘든 예에 접근 하지 못하도록 하여라!오직 전하와 아만 있게 하여다오."
둘만 된 침전. 중전은 전의감들이 왕에게 입혀놓고 덮어놓은 땀에 절은 의대에 홑이불이며를 훌러덩 다 벗겨 버렸다.온몸에
얼룩덜룩한 붉은 반점 투성이로 변한 왕의 나신이그대로 드러난다.그렇게왕을 알몸으로 만들어 놓고 중전 역시도 속의대까지
훌훌 벗어버렸다.망설이지 않고 미리 얼음덩이를 집어넣은 냉수통에 풍덩 들어가앉았다.
뼈골까지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한기.입술 한번 열어 차다 비명 한번 지르지 않는다.한참동안 냉수통에 앉아 계시다기 나오는
데 왕비의 입술이 새파랗고 온몸이 얼음덩이가되었다.달달 떨며 왕비는 그런 차가운 알몸으로 덥고 짜증나서 소리 지르는 왕
의 알몸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덥고 기운없어 축 늘어졌다.열에들떠 정신이 혼미하사 짜증만 나고 그저 오락가락 혼수상태이던 전하,차갑고도 서늘한 것이
품에 들어오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간신히 정신을 더듬어보니 중전의 차가운 나신이 서늘한 촉감으로 품 안에
들어와 있었다.간신히 혼수에서 깬 터이니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여하튼 기분은 좋기만 하여 더듬어 끌어안았다.
중전의 손을 잡아 볼에 대며 시원하오,중얼거렸다.
열에 젖고 진물 굳어 안떠지는 붉은 눈을 간신히 뜨시려 한다. 억지로 빙그레 웃었다.
힘 끄트머리도 남아 있지 않은 어수를 억지로 들어 아니 갈 것이야,눈물 주르르 흐르는 중전마마 등을 쓰다듬도 토닥여
주었다.
"우지마오,우지......마오.다시는,그대를 울리지 않겠다고....천지신명에게 맹세하였어.일어날....것.......이야. 반드시
일어날 것이오.그러니 걱정마....오. 어린새처럼 쓸쓸한...그대...두고,짐은 가지 못해. 저승서도 그대 가엾은 울음소리가
들릴것이야....그래서 짐은 눈을 떠야해.아,시원하오.한결 시원해.아,이제 잠을 좀 잘 것 같아."
상감마마,이윽고 스르르 편안한 잠이 빠졌다.거칠고 격하던 숨소리가 한결 가라앉았다.얼음 덩어리 같은 중전마마 나신을
품고 상감마마,숨소리도 서늘하게 깊이 잠이 드시었는데 환후 위급하여지신 지 닷새 만에 처음 주무시는 깊은 잠이다.
그 이후 사흘 동안,중전은 몇 번이고 그렇게 차가운 얼음물에 들어가 스스로를 얼려 왕의 들끓는 신열을 온몸으로 식혀주
었다.이성적으로 생각할 형편이 되지 못한 상감마마.중전의 여린 몸이 얼마나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다만 짜증스러운 신열
을 식혀주는 차갑고도 향기로운 몸을 끌어안고 깊이깊이 주무시었다.
왕비의 서늘한 나신에서 풍기는 기이한 향기를 맡으면 정신이 상쾌하고 새로운 기운이 차 오르는 기분이라,하루에도 몇 번
씩 제 목숨 베어주는 중전의 품 안에서 편안한 잠을 주무신다.
차츰차츰 그리도 펄펄 끓던 용체의 신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용체에 가득 돋은 열꽃도 제풀에 죽어 사라지고 숨결이 정상으로 돌아오며 진물 흐르던 눈도 한결 뜨기가 편안하여졌다.
그렇게 되니,싫다 내뱉으시던 탕제도 시키는 대로 잘 드시고 몇 숟갈 뜨지 못하던 죽도 반 대접은 비우시게 되었다.
기력이 돌아오시니 견뎌내는 힘도 그만큼 강해지는 것이다.
약물 드시고 편안하게 잠에 빠지시니 드디어 가망없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위급하던 병세가 차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주상전하 가장 위급한 고비가 마침내 넘어간 것이다.
사흘후,왕의 팔목에 묶인 무명실이 방문을 넘어왔다.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전의태감 홍준이 두근거리며 진맥을 하여보았다.
펄떡이던 신열기는 이미 사라지고 맥이 정상으로 뛰고 있었다.
중전마마께서 잠시 침전 문을 열었다.금침 위에 누우신 전하.용체의 열꽃도 많이가라않았고 눈을뜨고 계시다.중신들을 바라
보시는 눈빛이 깜짝 놀랄 만큼 맑고 힘찼다.안절부절,대걱정,큰 근심이던 왕대비마마 이하 종친들과 삼정승이 문 바깥에서
전하의 그 고비 넘기시어 회복 중인 모습을뵈었다.이구동성 홍복입디다,감축하오,하는 소리가 절로 터졌다.
헌대 이것 정말 기이하고나,진정 이상하여라.
병환 나아지시니 안심은 하였지만 이거이 진정 불가사이다.가망없다 전의들도 포기했던 주상전하 환후를 대체 어떤 방법으로
중전마마께서는 가라앉힌 것인가?전의감을 비롯해서 바깥에 있는모든 사람들은 궁금해서 죽을 참이었다.호기심을 참다 참다
못하여 제조 상궁인 엄 상궁이 왕대비전 윤허를 받아 무엄함을 무릅쓰고 열지 말라 엄명하신 침전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살펴보았는데.....
"뭐라?참말이냐?진정 중전께서 그리하셨더란 말이냐?"
너무 놀라시었다.왕대비마마,경악의 소리를 지르시며 펄쩍 뛰어 올랐다. 엄 상궁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두하였다.
"예,마마.차가운 얼음물에 들어가 퍼렇게 옥채가 얼어붙을 지경이 되도록까정 앉아 계시다가 나오시어 주상전하를 안아주시
었나이다.전하께서는 편안하게 주무시나 중전마마 옥체는 망가지시기 일보 직전이라.덜덜 떨면서도 비명 한 번 지르시는 바가
없었나이다.목숨 모다 내어놓고 주는 정성이 아닐지면은 그리는 못하실 것이라.실로 중전마마께서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
상전하께 드린 것이니....마마,마마.흑흑,쇤네가 중전마마 가엾고 눈이 괴로워 말을 이을 수가 없사옵니다."
엄 상궁,어린 중전마마 하시는 일이 너무 가엾고 기가 막혀 대성통곡을 하였다.왕대비마마께 아뢰는 일이 그리 참담한 정성일
지니!왕대비전하의 노안에도 벌건 물기가 어렸다.
"아아,감사하여라.감사하고 감사하도다.참으로 중전은 하늘이 내린 열녀인 게야!상감이 환후 위급하다 하니 제 몸 돌보지도
않고 한결같은 지극정성,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병하여 이렇게 살려낸 것 좀 보아라.진성이 말하기를 중전을 맞아 주상이
그저 탄탄대로 명운까지 바뀔 것이라 이리하더니 그 말이 하나 틀린것이 없도다.중전의 저 지극한 정성이며 어진 덕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이야!"
죽기를 각오하고 중전이 열꽃 잡아 뜯으려는 왕의 손을 용안에 대지 못하게 막아냈다.비록 꽃딱지가 흉하게 남았으되 떨어
지면 그뿐이니 훤출한 용안 하나 상하지 않고 말짱하시었다.전하께서 딱 하나 입술 끝에 열꽃 흔적이 남았다.이는 짐의
복점이야 농하실 만큼 회복이 되시었구나.도성 하늘을 떠돌던 검은 구름이 간신이 걷히었다.이는 지극정성 중전마마 마음이
하늘마저 감동시킨 것이 아니랴.
몇 날 며칠 꼼짝도 하지 못하고 대전에 모여 비상시를 대비하던 조하 중신들 비로서 한숨을 돌렸다.
"급한 불은꺼졌으니 인제는 퇴궐을 하여도 좋을 것 같소이다."
영의정의 말에 막 일어나는데 차지내궁이 들어와 아무도 나가지 말고 편전에 모다 그냥 계시라는 전갈을 하였다.
"중전마마께서 백관 여러분께 전하의 하교 말씀을 전하시겠다는 분부이십니다."
얼마 후,상궁의 인도로 아랫것들을 딸린 중전마마께서 옆문으로 들어오시었다.용상 옆,주렴이 쳐진 자리에 좌정하시니 일어나
절을 하였다.잠시 후 모다 앉으시오 하는 분부가 있으셨다.
"주상전하께서 이날로 환후를 잘 넘기시어 고비를 넘기신 터입니다.전의태감이 말하시기 이제 한 보름만 조섭을 잘하시면은
아무 탈도 없이 정사를 보암직하다 하십니다.허니 너무 근심 말라 하교하셨나이다."
"만세,만세,만만세.실로 성덕의 다행입니다.아국의 천운이며 왕실의 천복이옵니다."
중신들이 입을 모아 하례를 올렸다.잠시간의 시각이 지난 후,중전이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다시 시작하는 옥음에는 하얀눈
처럼 냉기가 풀풀 날렸다.
"실로 망극하고 가슴 떨리는 일이라.이 중전이 경들에게 금일,감히 한마디 경고를 하고자 합니다!"
갑자기 공활한 공간에 물끼얹은 듯한 침묵이 서렸다.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중신들 칼날같이 뻣뻣이 긴장하여 중전의 입만 바라보았다.늘 조용하시고 조하의 일에 일말의 간섭은 커녕 눈길도 아니 돌리
시던 중전마마께서 대전에 듭신 것만도 놀랄 일이다.게다가<경고>의 하교를 내린다고 하였다.대체 왜 저리하시노.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저리 서슬이 싯푸르신가.
"주상께서 환후 위급하신 그동안 그대 중신들이 이곳에서 무슨일을 의논하고 있었는지 이 중전이 들었습니다.사직의 대통이
이어져야하고 한시도 그 보의 비워질 수없음이니 경들의 그 답답하고 망극한 심사를 짐작은 하나,이중전이 섭섭하고 분하였소!
전하께서 강건하시고 힘이 넘치시던 분이니 필시 환후 위급하셔도 차고 일어나실 것이다 이리 믿으셔야 도리가 아닙니까?
전하께서 병환중에 그리 힘들고 고통스러워 신음하시는 중인데도 중신이라 하는 이들이 그 회복 기원하며 정성을 기원하여도
모자랄 판에 그대 경들의 처신은 어쩌하였소이까?월성궁 여인 소생 아이를 동궁으로 세우자 먼저 나섰습니까?그런 망측하고
무도한 요구가 어디있소?전하께서 월성궁 그여인,홀몸되어 돌아온 청결한 정조 깨뜨렸다 자책하시고 성총 주어 귀애하신 것은
아나 그아이,그 여인이 주상전하 용체 모시기 전에 이미 잉태하여 탄생한 아이입니다.전하 승은 입기전에 이미 다른 사내
알아 그 몸 더럽히고 방탕하게 노는 계집 씨앗을 두고 사직의 대통을 잊자고요?그토록 방자하고 고약한 논의를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전하께서 아직 강건하시고 이 중전 아직 연소한데 그 몇 년도 못 기다려 줍니까?실로 섭섭하고 통분하구려.!"
죄의정 이하 벽파들의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이 되었다.정안로 고두하고 그저 앉아만 있는데 두렵기도 할뿐더러 분하고 부끄
러운 마음이 넘치어 무릎이 덜덜 떨리었다.
혁을 소생 인정하여 동궁 삼아라 한 것은 이 나라 사직을 바꾸려는 역모로다.대놓고 쏘아붙이지만,고개 들고 감히 부당하
옵니다 소리치지 못하였다.
당당한 중전마마 말씀이 하나 사리에 그른 것이 없고, 낱낱이 법도에 맞으시니 무어라 항변할 수도 없었다.전하께서 위급하실
동안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정신 차리게 하신 분이시다.하물며 당신 스스로 죽을 각오하고 얼음물에 들어가 전하의 신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