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200)

=======제9장    꽃자리 영근정해===========

소슬하니 맑은 바람이 총총히 별무리를 씻어 지나가고 새파란 밤하늘은 그저 높다.

영근 밤송이는 툭 하니 벌어지고 후원 뜨락에 피어난 국화꽃 향내가 그저 짙기만 하다.

교태전 서온돌.

닫힌 문안에서 지금 한참 즐거웁다.무슨 말씀들을 나누시노.숨죽인 중전의 수줍은 웃음 사이로 젊은 왕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뒤이었다.숨죽여 웃던 중전마마.간질거리는 상감마마 어수 피하여 도망치다 이내 맑은 종소리처럼 커다란 웃음을 또르르 또르

르 터뜨렸다.두 분 마마 즐거운 웃음소리 따라 창밖의 오동나무 잎이 푸르르 털썩 떨어지누나.

지금 중전은 무릎 세워 앉은 채 손끝으로는 바늘로 수틀 찌르며 깔깔 거리고 있는 참이다.이미 자리옷 차림으로 금침 안에

엎드려 누운 전하,목을 빼서 중전의 야무진 손끝을 바라보았다.

"웬 용 그림이니?이번서는 무에를 수놓을 참인고?"

"마마 용보하여 드리려구요.저가 침선 상궁더러 문양을 배웠기로 이번서 새로 짓는 용포에 달아드릴 것이야요."

"짐이 중전 덕분에 호사를 하는도다.중전께서 직접 지은 의대를 입는 임금은 아마 짐뿐일 것이야?"

"신첩이 전하께 해드릴수 있는 일이 그것뿐인걸요.마마,자리옷 편안 하시옵니까?"

중전은 정다운 눈길로 지아비를 바라보며 수줍게 물었다.왕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전하께서 입으신 자리옷을 중전

께서 만들었다.엷은 쪽물 들인 고운 하늘색 무명베 아주 정갈하게 씻고 벼려 부드럽게 한 다음 그렇게 힘없이 처진 천을 곱게

박음질 하여 솔기 하나 도타운 데 없이 그저 정갈하고 편안하게 마른 의대이다.땀땀이 정성뿐인 의대를 중전이 손수 입혀 드

린 참이니 상감마마,그저 얼띠고 좋아서 입이 함박만해졌다.

"응,아주 편안하여.짐 몸에 이렇게 딱 맞는 의대는 처음이거든.헌데 버선은 언제 또 하여줄 것인가?"

"금세 하여드리께요.성미도 그하셔라.이보셔요,용보는 실로 어려운 것이기에 저가 정신을 딴 데 팔면 실수를 한단 말이어요.

요것을 다 끝내고 나서 버선 열켤레 하여드리께.이렇게 바늘 한땀 놓을 적마다 마마 생각하는 것을 알까 몰라 무어."

새침하게 투정하듯 눈꼬리에보드라운 미소 머금고 어리광 부리는 지어미 바라보며 상감마마,그저 좋아서 실쭉실쭉 웃음이었다

"짐도 편전에 나가 조하 일 볼때도 중전 생각만 하는걸?교태전만 바라보며 실없이 웃는것을 대제학에게 들켜서 우세하였다

뭐!침수합시다.짐이 명일 바쁜고로 일찍 기침하여야해.오정에 재포 나루에 나갈 참이거든."

"재포 나루에는 어찌 나가시는지요? 세물걷이 보러 가시옵니까?"

"음,호조에서 다 알아 하지만은 늘 문서로만 보아서 그양을 짐작할수가 없는 고로 짐이 직접 한번 보고 싶어서 말이야.병이

낫고 난 다음에 오히려 일 욕심이 더 나는것이니 실로 짐이 철이 들었다 이말이야.재포 갔다가 다시 평창 가서 미곡 쌓는것

까정 보고 올참이오."

왕은 이 근래 금침에 드러누워서 중전을 상대로 조하 일이야기 하기를 좋아하였다.

딱딱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여도 왕비가 영리한 터이니 다정하게 들어주기도 잘하였다.한마디씩 묻잡는 말에 정곡을 찔러

대답도 잘하여주니 어느 사이인가 마음 깊은곳 의논 상대가 된 것이다.

조용하였으니 찬찬히 들어주는 것이 정성스러웠다.격한 성미이시니 성정이 끓어오르면 전하,두서없이 기분대로 벌컥 화를

냈다가 짜증을 내었다가 이리저리 엇길로 가다가 하시며 말씀하시는데 영리하지 않으면 말의 실마리를 놓치는 것이 예사라.

허나 중전은 차분하니 잘 가려서 듣기도 잘하였고 꼭 가려운 데를 알고 있는 사람인 양 왕의 어두운 곳을 꼭꼭 찔러 주었다

또한 찬찬히 다시 되물어 전하께서 다시 한번 생각하실 여지를 남겨주니 당신 스스로 실수를 고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더냐?중전 상대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 사이 전하,생각이 정리가 되고 일의 실마리가 풀리기도 하였다.

중전으로서는 그저  들어나 준다 하지만 전하께는 둘도 없는 자문역이 생긴 셈이었다.

"갑자기 전하께서 친림하신다 하면은 호조에서 놀랄 것입니다."

"그래야꾸미지 않고 평상시 일하는 모습을 볼수있지.일들을 잘하고 있다면야 무에 두려워하겠소?호판이 일을 잘한다 하였어.

보암직하여서 햇곡식이 넘친다 하면 평창에 있는 묵은 미곡을 싼값에 기민들이 살수 있도록 내어놓아라 할것인데 중전 생각

은 어떠하오?"

"묵은 곡식을 눅은 값으로 내면야 없는 이들에게는 큰덕이지요.헌데 마마,양 평창에 곡식을 쌓으면 모다 얼마나 쌓사옵니까?"

"글쎄,문서로 보아지면은 두 평창에 근이십만석은 쌓는다 이리하오.풍년이나 흉년이 들 적서 가감은 있을 것이되 항시 방비

하여 쌓아두는 곡식은 그 정도라 하였어.선대왕께서  항시 짐에게 당부하시기 도성 백성 모다 달포는 먹일 곡식은 반드시

쌓아두라 하시었지.다행이 풍년이 든 고로 짐이 한숨 돌린 참이야.아,곤하도다.어서 이리 안기시오.중전 안고 침수할것이다.

짐이 조금 더 한가해지면 중전 모시고 사냥터 가서 사슴 잡아다 주께."

"약조하시었어요."

"암만, 짐이 약조하여 아니 이루어준 것이 있었니?"

죽은  복동이 대신 이쁜 꽃사슴을 다시 데려다 준다 약조하시었다.상심한 중전마마 더러 월성궁 편액을 불쏘시개로 하였거니.

하며 살살 달래었다.혁이놈과 월성궁 계집의 운명이라,평생 죄인 신분으로 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말에 중전

마마 그나마 속이 풀리었다.간신히 눈물 그치고 이 모든 일의 시작인 왕의 과실을 다시 한번 용서해 주었던 것이다.

새산 다짐하며 재촉하는 지아비 급한 마음 앞에,중전은 생긋 웃었다.망설이지 않고 촛불 훌훌 불어 끄고 금침안으로 드어갔다

난짝 품에 안겨드는 중전의  몸에는 언제나 처럼 짙은 방향이 흐른다.냉큼 의대 벗겨 윗목에 던져두고 덥석 달디단 구슬부터

집어 삼켰다.한 가지에서 피어난 꽃처럼 얼려 뜨거운 정분을 나누시는구나.

죽고 못 사는 그정이야 아니 보아도 알것이지.병풍 두른방 안에서 벌어지는 그일.짝짝 달라붙고 달큰하기만 한 치태야 두분

만이 아실일.크흠!

얼씨구나,좋다.사냥터 일로 뒷장 넘어갑니다.

왕께서 사슴을 잡아다 줄것이야 하시며 사냥 준비를 하라 명하신것은 그 말씀을 하신 지 보름후였다.

북문 밖 왕실 사냥터 효림.

두분 마마의 사냥을 위하여 이미 산막이 지아져 있었다.보기도 처음이지만 지내시기도 처음이라 중전에게는 모든것이 신기 

하였다.산막은 비가 새지 않도록 수지 칠을 한가죽 천으로 만든 바깥의 큰 막사 안에 실제로 두분 마마께서 주무시는 악차가 

들어가 있는 이중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왕은 막사를 세우려면 먼저 땅을 다져 짚더미로 바닥을 단단히 깔아 냉기와습기를

방비한 다음,그위에 기름종이를 서너 겁 다시 채운 후에 막사의 진짜 바닥이 되는 얇은 판자를 까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요란족에게서 배워온 방법이니 이렇게 하면 아무리 추워도 장막 안은 봄날이라더군.그들을 두고 야만적이라 하였지만 배울 

점도 있는 법이거든.그러니 사람들은 견문이 넓어야 한단 말이지."

바깥의 큰 막사와 침수하시는 막사 사이는 제법 넓었는데 두분마마 시중들 아랫것들이 잘수 있도록 침상이 몇개 있었고 탁자

가 있어 두분 마마 필요한 일용품들을 놓을수 있게되어 있었다.

침수 하시는 막사는 방 서너칸 정도 크기였다.양털로 밖을 두르고 벽 노릇을 하는 속의 사방 휘장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터라

겉으로는 소박하였으되 안은 호사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두분 마마의 침상과 욕간통,무구를 걸수 있는 활대가 차비되어 있었

다.바닥에는 두툼한 대국의 양탄자가 깔려 있어 발목이 들어갈 정도로 폭신폭신하였다.

산막에서 보내시는  밤이라,정숙한 교태전과는 색다른 정휘였다.은근히 야릇하고 실쭉하니 방탕하여졌다.넘치는 것은 양기뿐

이요.가진것은 혈기라.냉큼 애욕의 놀음질을 시작하시었것다?그 판 한번 걸쭉하고 농밀하니 사랑,사랑,사랑타령이로구나!

들어간다,들어간다,사랑타령이들어간다.산막 정취는 장엄하고,장막 속은 향기 그윽하니 야릇하고도 달큼하여라.

우리 상감마마,잡으라는 사슴은 아니 잡으시고 중전만 잡으시는데,일단 욕간통 안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물방울 비산하고 훈김은 오르는데,인어 한마리 건져 올렸구나.바둥이는 하얀 두다리 허리에 걸쳐 두고 박자도 장하셔라.좌우

삼삼 우삼삼,상하진퇴,적진을 치고 들어가는 장군마냥 박력있게 도리깨질을 하시었다.눈처럼 하얀 살갗이 진분홍으로 익어버

리었다.중전마마 할딱이며 지아비 품에 매달려 혼백이 오락가락,정욕이 주르르 뚝뚝.

침상도 필요없다.모피 깔린 바닥에서 바둥이는 여체을 딱 눌러 두고 다시 한 번 입맛을 다셨다.어헐어헝 굶주린 범이 야들탱

탱 살찐 사슴 한마리 잡아두고 밤새워 냠냠거리는 형국이라.아름다운 안해를 타고 올라 요리 굴렸다가 조리 굴렸다가 당신 

맘대로 회롱하신다.물고,빨고,깨물고,간질이고,건드렸다,꼬집었다,핥았다가,그도 양에 차지 않으니 찔렀다가,박았다가 전진

후퇴,좌충우돌,참말 씩씩하시지.참말 늠름하시지.하룻밤에 너덧번도 하시다는 그 실력을 마침내 중전마마 상대로 펼쳤도다.

넝실넝실 굼실굼실.출렁출렁 번쩍번쩍,운우지락 끝이 없네.밤하는ㄹ은 맑은데 장막 안은 천둥벼락.비 내리고 바람 불어 폭풍

우가 몰아친다.더없이 강건한 지아비 아래서 축 늘어진 중전마마.마침내 두손 모아 인제 그만 하옵시오 싹싹 빌정도였으니

혀에 짝짝 달라붙는 맛있는 고 꽃잠 일을 일러 무엇하랴?

산막의 뜨거운 하룻밤이 지나고 그 이튿날 새벽에 사슴 사냥이 시작되었다.

함원도 땅서부터 장장 삼백여리.화록떼를 몰아온 물이군들이 인시경에 연기로 신호를 보내니 십여리 앞에 왔다는 뜻이다.

횃불은 수십 개 타오르고 있고 병사들 오깃거리라 모닥불 위에 걸린 국밥 솥에 김이 허옇게 오르고 있었따.

"너희들은 잘 헤아려 고운 놈으로 상하지 않게 잘 몰아쳐야 할것이다.산채로 너덧 마리만 잡으면 나머지는 필요없으니 너희

마음껏 한번 실력을 발휘하여 보아라!제일 많이 소아 잡는 놈에게는 짐이 특별히 상급을 내릴 것이니라!"

전하를 위시하여 씩씩항 무장들이 여나믄 명,사령 포수를 위시하여 전문 사냥꾼들이 십여 명.모다 이십여명이 차비하고 사슴

떼가 몰려오기를 기다린다.

막 이른 동이 틀까 말까 하는 바로 그 시각에 어디선가 발굽소리가 들리는가 하였더니 갑자기 북쪽에서부터 사슴 떼가 수백

마리 달려들기 시작하였다.몇 백여리 쫓겨온 화록떼들이 우왕좌왕하며 사냥터로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말 등에 올라 기다리고 있던 상감마마,앞장서서 말에 박차를 가하였다.그것이 신호였다.사냥꾼들이 사슴 떼에게 돌진했다.

산채로 잡아야 하는것이니 먼저 사령 포수가 가장 귀엽고 어여쁜 놈을 향해 그물을 확 펼쳤다.그물에 걸린 사슴이 애처로운

소리를 내며 다리를 꺾은 채 바둥였다.가까이 있던 두명의 무사가 단번에 그놈의 두발과 다리를 새끼줄로 꽁꽁 묶어버렸다.

그놈을 다른 사냥꾼이 짊어지고 미리 마련한 우리 속에 옮긴다.이렇게 하여 산채로 꽃사슴 대여섯 마리를 잡은 것은 한 식경

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되었다.인제부텀은 사냥하라,활을 쏴라!"

피비린내 나는 무차별한 살육의 시작이었다.피비린내가 맑은 아침의 산을 진동하였다. 약육강식의 세상. 씩씩하고 잔혹하며

새삼 혈기 끓는 그런 냄새이다.

 다른 무장들에게 질세라 팽팽하게 매겨진 왕도 활도 당당한 대왕 사슴의 목을 겨누어 핑 소리를 내며 튕겨졌다. 급소에 화

살을 맞은 사슴이 단번에 떨썩 쓰러지고 말았다. 왕은 말에서 뛰어내려 단도를 뽑아 들었다. 그대로 목을 푹 찌르니 분수처

럼 선혈이 솟구쳤다. 다른 무사들이 다 그러하듯이 왕도 입을 대고 뜨거운 녹혈을 빨았다. 비릿하면서도 영기가 풍만한 피를

배부를 때까지 마셨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치며 왕은 만족스럽게 일어섰다.

 산의 아들이 된 기분. 굿굿하게 대지를 밟고 하늘을 향해 선 승리자의 쾌감이다. 완벽하게 천하를 정복했다는 일종의 도착

된 희열.자신의 핏속에 홀르내리고 있을 대왕 사슴의 영기가 그대로 옮겨온 듯이 왕은 이 순간 더없이 자유롭고 씩씩하고 

잔인하였다. 바깥의 소동과는 달리 그저 조용한 장막안. 밤새 시달린 터라 혼곤한 잠에 빠졌다가가 아침 느지막이 일어난 

중전마마, 인제 머리단장 중이었다.

"산막에 오시어 사슴은 아니잡으시고 중전마마만 잡으셨나요? 옥체에 어이 이리 붉은 꽃이 많이 피셨습니까?"

두 나인이 잡고 있는 면경 안에서 중전의 눈이 새치름히 변하였다. 원망하는 듯 민망한 듯 윤 상궁을 노려보는데 늙은 상궁,

눈알만 대굴대굴 먼 산만 바라본다. 지은 죄가 있으니 말도 못하고 어린 중전마마, 면경 안의 자신의 모습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자리옷깃 사이로 번져 난 꽃물을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어젯밤 왕이 만들어놓은 선명한 장미화다. 중전은 작은

손을 들어 스스로 분통을 열었다. 박 상궁에게 사정하였다. 

"여기 분을 더 발라보아.응?"

"바르면 무엇합니까? 금세 또 생길 터인데요?"

방긋 웃으며 박 상궁도 한마디 놀림이다. 어젯밤의 치태며 광증어린 사랑놀음질이 소문 다 난것이라. 왕비는 발을 동동 구르

며 울상이었다.

"참말 이렇게 다들 나를 놀릴것이야?

"어디 한두 군데라야 감추기라도 하지요. 옥체가 온통 붉어지셨는데 무엇을 어찌합니까? 가라앉으실 때까정 기대리셔야지요

무어"

이러는데 장막이 홱 젖혀지고 왕이 들어왔다. 피 얼룩이 진 사냥복 차림의 그에게서는 바람 냄새와 진한 피비린내가 났다.

면경안에서 두 사람의 눈이 딱 마주쳤다. 이글거리는 야수의 눈빛.아침 단장 중인 왕비를 바라보는 눈빛이 욕정으로 붉었다.

한 손으로 장막을 젖힌 채 나지막이 명하였다.

"모다 나가라. 비와 함께할 것이다."

황황히 아랫것들이 물러갔다. 성큼 다가온 왕이 뒤에서부터 꽉 끌어 안았다.

"그대를 갖고 싶어.지금당장!"

딱 한마디였다. 왕은 지금 손에 묻은 살육의 쾌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뜨거운 피를 마시며 차 오르던 그 희열을, 그 흥분

을 도저히 식힐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사나운 야수였고 잔인한 살육자였다. 그 무서운 흥분을, 절정의 쾌락을 꽃냄새 나는

이 여자를 가지면서 다시 한 번 발산하고 싶었다.

왕비는 자신의 등을 찌르는 사내의 거대한 일부를 느꼈다.왕의 손이 다짜고짜 엷은 속치마를 걷어 올렸다.남은 한 손으로 왕

은 중전을 침상에 밀어 고정시키고 뒤에서부터 아스라이 드러난 여체의 꽃집속으로 바로 진입했다.

지금껏 두 사람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주 잔인하고 동물적인 교접이었다.의대도 다 벗지 못한 상태에서 말 한마디도 없이

그저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정복하는 자와 정복당하는 자만이 있는 그런 전쟁같은 교접.중전은 왕이 지금 이 순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느꼈다.야수는 야수처럼 암컷을 다룬다.그녀는 그에게 복종했다.그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마치 짐승처럼 사지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그녀의 몸 위로 다시 수컷이 된 왕이 발광처럼 타고 올랐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왕비는 피비린내와 정액의 냄새가 진동하는 장막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본다.눈앞이 캄캄했

다.동시에 후련하고 괴롭고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왕은 그녀의 몸위에 겹치듯이 엎드려 지금 깊은 잠에 빠져있다.젊은 두 몸

에서 흘러내린 땀과 체액으로 끈적끈적했다.두 사람의 몸은 아직도 하나였다.손가락이 마주 얽히고 몸의 일부가 하나로 결합

된 그대로 왕은 마치 침상에 누운 것처럼 안해의 몸 위에서 편안하게 코까지 골고 있었다.

마치 해일에 휩싸였다 빠져나온 기분이었다.아니,폭풍을 온몸으로 견뎌낸 기분이었다.이렇게 광기 같고 잔인하고 사나운 교접

은 처음이었다.왕은 그녀를 물어뜯어 어깨에 핏자국을 남겼고 두번이나 그녀를 타고 올라 파정을 했다.가늘게 고통의 신음을

지르는 그녀의 입술을 물어뜯어 찝찔한 피맛을 보며 황홀경에 빠지는 모습도  보여주었다.왕은 맹수였다.

아주 사나운 광기에 젖은 야수였었다.그러나 너무 사랑스러웠다.

왕비는 왕이 비로소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며 홀로 미소 지었다.그가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안식의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자신이 이 사내의 모든 것을 다 받아주고 진정시켜 주고 위로하여 주었다는 것을 알았기에.그가 오직 그녀에게서만 그

런 평화와 안식을 느낀다는것을 알고 있기에.이사내 왕은 오직 중전만의 사내였다.황비의 하얀 두팔이 왕의 미끈등한 등을 꼭

안았다.

'신첩이 행복하옵니다.신첩만이 오직 마마의 즐거움이 되고 위로가 되고 진정제가 될수 있어서요.놓지 않을 겁니다.

다시는 놓지 않을 겁니다.신첩이 마마의 계집이듯이 마마도 신첩만의 사내가 되셨나이다.하여 정말 행복하옵니다.'

두분 마마께서 산짐승을 피해 얼떨결에 찾아 들어간 곳은 벼랑 아래 작은 동굴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왕이 낮수라를 마치고 환궁하기 전 잠시 중전을 말 태워 주마하고 나선 길.그것이 탈이었다.

하필이면 호젓한 산 길에서 피냄새를 맡고 사슴을 쫓아나타난 굶주린범을 만날것이 무어란 말인가?얼결에 활을 쏘았으되 빗

나가고 말았다.상처 입은 범을 상대로 하는짓은 어리석은 자나 하는것,게다가 홀로도 아니고 말 뒤에는 중전도 타고 있다.

이럴 때는 삼십육계가 최고.왕은 바람처럼 날랜 말을 걷어차 범을 피하려 하였다.중전도 명이 달린 일이라.죽을힘을 다하여

왕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 허리를 부여잡고 매달렸다.급한 김에 왕과 중전이 탄 말은 이리저리 산을 넘고 계곡을 지나 마냥

달렸다.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낯선 곳.깊은 산속.둘만 떨어진 터였다.

말을 동굴 입구 나무에 묶어놓고 왕은 예가 어디쯤인가 휘 둘러 보았다.방향이 가늠되지 않았다.일단 비단 수건을 찢어 근

처의 나뭇가지에 메달라 놓았다.그리고 동굴 안에 숨어 덜덜 떨고 있는 중전을 찾아 돌아갔다.

난생 처음 당한 위급한 일이다.너무 놀랐떤지라 중전은 아직도 달달 떨고 있었다.게다기 날이 추우니 고운 얼굴이 이미 얼어

파르라니 변해갔다.왕은 중전이 가여워 늠름한 팔로 그 여리고 작은 고운 어깨를 감싸 안아주시며 춥소?하고 다정하게 물어

보았다.중전은 보스스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지아비 든든한 품안에서 안심이 되는것인가?중전의 얼굴에 보시시 화색이 돌

아왔다.

"잠시만 기다리오.짐이 불을 피울 것이오."

"신첩은괜찮나이다.어수가 더러워질 것입니다.금세 아랫것들이 찾아올 것이니 신첩이 조금 더 참겠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일지를 모르겠소이다.우리가 산짐승을 피해 돌연 길을 벗어난 고로,아마 우리 종적을 찾을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거릴 것이야.잠시만 기다리오.어렵지 않아요."

언제 험한 일을 하여보신 분이던가?허나 전하 익숙하게 동굴 근처에 쌓인 낙엽이며 긁어 모은 나무 부스러기 위에불을 만들었

다.사냥을 자주 다니시니 잘옷 줌치에 부싯깃이며 장도칼이며 이것저것이 들어 있었다.불길이 일어나자 왕은 바깥을 나가더니

힘들다 하지 않고 예서제서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연기가 흐르면 아랫것들이 우리를 찾을 수가 있을 것이오.마음 느긋하니 먹고 기대립시다.잠시 말을 태워준다 하였는데 일이

어그러진 것이라.짐이 괜한 짓을 하였나 보오."

"하지만 호젓하게 전하를 뫼시고 앉아 있으니 신첩은 오히려 좋습니다."

생긋 웃으며 대꾸하는 중전의 얼굴이 불길에 익어 발갛다.왕은 벙싯 마주 웃어 보이며 당신의 잘옷을 벗어 중전의 어깨에 덮

어주었다.그러고서 두분 마마 마치 한몸인 양 끌어안고 앉아 나란히 불길을 바라보며 언 손을 녹였다.그저 평안하고 따스하

였다.말하지 아니하여도 통하는 마음.오가는 정해.왕은왕대로 중전은 중전대로 아랫것들이 조금 늦게 찾아주었으면,도착하지 

아니하였으면...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무심코 잘옷 줌치에 손을 넣어 휘저으니 딱딱한 육포 몇 조각이 손을 잡혔

다.아침에 사슴 떼를 쫓을때 혹여 시장할까 봐 윤재관이 말 등에서 씹으시라 하여 넣어드린 육포 조각이다.왕은 모닥불의 

불기에 육포를 그슬려 한 조각을 왕비에게 건너 주었다.

"시장하지요?짐이 근처에다 기표를 해두었고 또연기가 새어 나가니 잠시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이오.여기 육포라 있는데 한조

각 자셔볼 것이오?산중 별미라 이제 중전도 사냥꾼이 다 된것이오.핫하."

짐짓 명랑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중전마마 불안을 씻어주기 위한 왕의 배려였다.곱게 전당 안에서만 오가던 이가 어디 이렇게 

거칠고 한 데서 지내본 경험이 있을 것이던가?우스갯소리라도 해주어야 하나 잠시 궁리하였다.

"전하,만약에요.마마께서 궐이 아니라 시정서 태어나신 분이라 하면은 어떤일을 하고 싶으셨습니까?"

왕이 건네준 육포 한 조각을 받으면서 중전이 물었다.왕은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더 던져 넣으며 아득한 시선을 불길에 주었다

"음,글쎄요.생각을 깊이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구려.짐은 태어나기 오직 선대왕마마 한분 혈손이라 오직 왕이 될것이다 이리 

알고 또 훈육을 받으며 자랐으니까.하지만 만약 그랬다면은 짐은 아마 뱃사람이 되었을 것이야.선대왕마마께서 수로 해운에 

관심이 많으시사 각국에서 배들을 여러 척 들여다가 그를 주의 모방하여 새로운 배를 많이 만든 것이기에,짐 역시 바다 일에

관심이 많다오. 항시 짐은 멀리 배타고 나가 명국이며 야스다국,그보다 더 먼데까지 나가서 낯선 풍물이며 사람들을 보아지

고 별별 희한한 경험을 다 해보고 싶었지."

왕은 싱긋 웃으며 중전을 바라보았다.

"역관들에게 들었는데 명국 너머 미앙국이란 곳에는 코끼리란 짐승이 산다 이리해.수십 일을 말타고 가도 모래언덕만 있는곳

도 있고요,거 말도 아닌데 무쇠덩이로 만든 수레가 저절로 가는곳도 있다 하더군.짐의 침전에 놓아둔 소리나는 자명종도 그

곳에서 만들었다지?아아,듣고만 있어도 가슴 설레지 않소?그런데 중전은 사가에서 그대로 살았다면은 무슨일을 하고 살고 있

을까?"

"신첩이야 여인네이니 그저 어느 집안 며느리가 되어 여도를 걷고 있겠지요.허나 기회가 닿는다 이리하지면은 신첩은 명국의 

명필 현호 선생을 찾아가 글씨를 배우고 싶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대 글씨도 명필이야!야무지고 또 정갈하니 실로 귀한글씨라 생각하오,그러고 보면 비는 학문도 깊고 필체도 아름다우니

여군자라 할것이다.핫하하.짐이 자를 내려야겠소이다."

중전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수줍어하며 속삭였다.

"학문을 치면은 전하께서 소문난 터가 아닙니까?성호 선생께 사사를 받았다니 신첩은 무척 놀랐답니다.그분은 새로운 학풍이

씩씩하고 실용적이라 하였어요.그 영향으로 마마께서는 허례허식을 싫어하시고 조하일을 보심에 쓸모있는 의견을 자주 하교

하시는가 보옵니다."

"음,음.공리공론보다는 실제로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선대왕 아바마마께서 짐을 그분에게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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