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200)

모자랄 판에 이토록 방정맞은 행보를 하라 누가 하였소?중전한 사람 때문에 여럿 목숨 상하고 이런 소동 벌어짐이라.꼭

이러고 싶었소?"

"잘못하였습니다.다시는 마마의 뜻을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을 터입니다.한 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나지막이 사죄하는 중전의 얼굴을왕이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격정적으로 중전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아,그대가 무사하여 얼마나 다행인가?되었어,이리 무사하시면 되었어.암암,탈없이 중전과 태중 아기가 무사히 돌아왔으

니 인제는 된 게야."

위로하여 속삭이는 목소리는 예사로왔되,중전을 꼭 안은 왕의 팔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도도하고 위엄 높은 그가 중전의 위급함에 대경하여 지금껏 차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함이었다.

더없이 안심이 되었다.동시에 한없이 미안하였다.

그리운 분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중전은 눈을 감았다.자신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다시는 이분을 뵙지 못할

지니,흉적 놈 발길질 아래서 딱 죽을 것이다 각오한 순간,오직 떠도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죽어갈 자신에 대한 두려움보다

남겨질 그분이 근심되고 아팠다.우리 모자가 죽고 나면 또다시 홀로 남으시어.홀로 얼마나 애통해하고 외로워하실까?

나는 차마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그리 생각하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미안하고 죄송하고 부끄러웠다.

중전은 가만히 아직도 떨고 있는 왕의 손을 잡아다가 만월처럼 부푼 아랫배에 살며시 가져다 댔다.

모후께서 진정하시니 인제 아기도 편안하여졌다.예전마냥 굼실굼실 아바마마 어수 아래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중전을 눈물을 흘리며 생긋 웃었다.

가이없는 애정을 담아 속삭였다.

"위급한 순간,마마만 생각하였나이다.두렵지 않았습니다.언제 어디서든 마마께서 신첩을 지켜주시리라 믿었기에 두렵지 

않았습니다.이날 우리 모자 목숨이 산 것은 전부 다 마마의 은덕입니다.한번만 더 경솔한 신첩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중전은 짐의 빛이며 목숨이고 하늘이야.다시는 짐에게 이런 시련을 주지 마오,부탁이오."

서로의 품안에서 맞부딪친 심장.두근거리는 고동소리가 하나로 합쳐졌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때에야 비로소 거칠게 일렁이던 왕의 숨결이 천천이 잦아들었다.

잠시 후 부스럭거리며 중전이 머리맡을 손 더듬어 찾았다.왕은 눈을 치떴다.중전이 손에다 내준것은 커단 오얏 한알이었다.

"철도 아닌데 어인 오얏인가?"

"소녀 시절 살던 사가에 잠시 나갔기로,게에 익고 있던것이라.마마께 드리려고 이것 따다가 시각이 늦었어요.정신없이

바구니는 놓쳐 버렸지만 그래도 한알은 꼭 쥐고 왔지,마마 드리려고."

"아니 먹어!이깐 것!까딱하였으면 두 목숨값이 될 뻔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신첩 정성인데 받으시어요."

"흥,그 정성 두번 받았다간 짐의 마음이 문드러져서 남아나지 않을 참이네.이깐 것,무엇이 그리 별나서 이것 때문에...."

기분 같아서는 냅다 저 멀리 던져 버리고 싶었다.그러나 왕은 꿀꺽 말을 삼켰다.

중전이 섭섭한 빛을 띠고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전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왕을  노려보았다.입을 오물오물 토달거렸다.

"씨는 주시어야지."

"무어?"

"씨는 주셔야 신첩이 또 아기씨 가질 것 아닙니까?씨뿌려 아기씨 가질 참이라,씨까정 마마께서 가져가시면은 어찌하셔요."

피식,경직된 왕의 입가에 비로소 편안한 미소가 떠올랐다.중전의 입가에도 꽃망울 같은 미소가 맺혔다.

톡톡 중전의 볼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왕이 을렀다.

"요 부른 배이나풀고나서 그말 하십시다그려.인제 정신이 좀드는구먼.중전께서 농까정 하시다니.인제 살만 하오?"

"신첩은 인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마마.하니 괜스레 신첩 때문에 애꿎은 사람 벌주고 그러지 마시어요?네에?"

"짐도 다 요량하고 있소이다.출산 전후에는 각도의 혈벌도 피하고 도살도 금지한 차이라.짐이 가혹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

자,일어나십시다.당장 궐로 모시고 갈참이오.다시는 짐 곁에서 떼놓지 않을 것이오.그대는 짐에게서 떨어지면 변란이 일어나.

인제 절대로 곁에서 멀리 가지 마시오."

중전을 뫼시고 궐로 돌아온 대전마마.

일단 중전을 서온돌에 뫼셔놓고 금부도사와 승지를 불렀다.

용안에 추상 같은 빛을 가득담으신 채 엄명하시었다.

"비가 안즉 출산을 아니하시었다.불길한 일은 매사 금하라 하였으니 이번 일에 얽힌 죄인들은 곤전의 산후에 칩죄할 것이다.

옥에 가두고 잘 감시하라. 이 인간들을 움직여 일을 꾸민 자들이 행여 궐 안에 스며있어 그들의 입을 막고자 술수를 부릴지

모르니 잘지켜야 할것이야.내 이미 그들의 배후가 누구인지 중전과 윤 상궁.일성이 말로 알고 있으되,잠시 참고 더 깊이

조사함이라.두어 이레 후면 모든것이 끝나겠지."

그일이 끝나고 왕은 다시 영의정과 이왕에 정하여진 산실청 관리들을 불러 산실을 다시 꾸며라 분부하시었다.

"정심각을 조사한 바 중전을 향한 악한 방물이 나오고 이미 사기가 침범하였다.불길하고 사위스럽다.비가 교태전으로 돌아

오심이 가하다.동온돌에 산실 꾸며 비의 출산에 대비하라."

상의 하명받자와 나인들이 동온돌 안팎을 정결하게 쓸고 닦았다.다음으로 차지내관이 들어가산실의 북쪽 벽에 24방위도.

최산부.차지부*(셋다 순산을 기원하는 부적)를 붙였다.

그 다음으로 산자리를 장만 한는데 월덕방위,즉 달이 떠오르는 방향으로 산모의 머리가 향할수 있도록 자리를 정하고는,

방바닥에 제일 아래로부터 차례로 볏짚,가마니,돗자리를 갈았다.다시 양모로 짠 자리,기름종이를 놓고는 그 위에 양 귀가 

완전히 달린 백마피를 깔았다.횐색은 양기이며 상서로운 색이므로 출산의 안전과 신속함을 기원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그위에 고운 짚자리를 깔고 백마 가죽 머리 위에는 삼실과 족제비가죽을 깔으니 산실이 완성되었다.

"태의*(태를 받아놓은 옷)를 둘 방향에도 주사로 쓴 부적을 붙이고 분만 중의 중전마마께서 힘을 쓸때 붙잡을 수 있도록

사슴가죽으로 만든 말 고삐를 방벽에 걸어놓았다.

이일이 끝이 나자 전의태감 홍준이 상감마마 윤허를 받아 차지법을 세번 읽었다.

"중궁전 김씨 만삭이라,드디어 출산하시니 동서남북 상하로 열보씩 순산하실 자리를 빌리옵니다.신명께서 보호하사 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순산하옵시기를  도와주소서!"

산실 밖 대청의 추녀 끝에는 구리종을 걸었다.산실 문밖에는 세치 길이의 못을 세개 박는 것으로 산실 꾸미기가 끝이났다.

혼절할 정도로 심히 놀라고 옥체에 충격을 받으신 탓일까?상감마마께서 싸안고 돌아오신지 이틀 만에,아침 늦다이 중전

마마께서 마침내 진통을 시작하였다.

칠월 스무하루 날이었다.안즉은 이르리라.한 보름 더 있어야 합니다 하였던 출산이 모체의 발동으로 이르게 시작된것이다.

중전마마 산기있으시다는 기별에 온 궐이 화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고통에 찡그린 얼굴로 중전마마,부원군과 왕대비전,왕의 배웅을 받으며 약방 상궁들과 조산부들의 도움을 받아 산실에 

듭시었다.원기 나시라 금세 인삼가루가 올려졌고,불수산 대접이 드어왔다.붉은 끈으로 묶은 해마와 석연을 손에 꼭 움켜쥐

고 쥐고 중전마마,엉거주춤 앉아 조산부들의 의견대로 진통을 견뎌낸다.

이마에는 구슬같은 땀이 송알송알,붉은 입술 사이론 신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고운 아미 찡그린 채 중전은 열두 시진이 넘는 극심한 진통을 견뎌냈다.

마루 하나 건너편,서온돌에 앉아 고통에 찬 지어미 신음 소리를 듣는 상감마마,안절부절 못하신다.

뒷짐지고 방 안에서만 오락가락.당장 산실로 뛰어들어 가서 손을 꼭 잡아주고 싶지만은 근접도 못하게 하니 어쩌란 말이냐?

가능하다면 대신 아파주고 대신 낳아주고 싶지만 이것만은 절대로 사내가 해줄수 없는 노릇이다. 

날이 저물고 밤수라 올려졌지만 입맛이 어디 나나?두어 저분하시고 물리신다.

대체 언제 어린놈이 나오냔 말이닷!제법 대단히 진통하였으니 적당하게 하고 쑥 나오면 좋으련만!

이 어린놈이 애초부터 부왕 닮아 고집 피우고 아니 나오니 모후만 죽어난다.

삼경이 다 넘어가는데 아기씨는 나오지 않고 고통 어린 중전의 신음소리만 교태전 마당까지 가득 찬 터.

오죽하였으니 상감마마,한달음에 소격전 나아가 중전의 순산을 기원하며 백배를 다오렸을까?

"마마,마마!좀 더,조금만 더 기운내소서!아기씨 머리가 보이옵니다!더 힘 주어보소서!"

꼬박 열두 시진.산실에서 죽을힘을 다하는중전마마.곁에 돕는 창빈마마와 조산부들의 격려를 받아 마지막 용을 썼다.

"으아아,으아앙!"

홍희13년.칠월 스무이튿날.막 아침햇살이 산머리로 고개를 내밀던 때였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 울음 소리가 문안에서 터졌다.

서온돌의 부왕전하 귀까지 울릴 정도로 옹골차고 기운 넘치는 울음소리였다.

상감마마 벌떡 일어나 마루로 뛰쳐나갔다.

경훈각의 왕대비전하 역시 손수 문을 열고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땀투성이가 된 창빈마마께서 산실 문을 열고 나왔다.벙싯벙싯 함박웃음이었다.

"상감마마,감축드리옵니다.중전마마께서 순산하시었나이다.덩실하니 고추를 달았습니다.늠름한 원자 아기씨가 탄생하시었습

니다."

"중전은?중전은 무사하십니까?"

"암만요!순산하시었습니다.첫국밥 젓수시고 기진하신 터로 곤히 잠드셨나이다."

상감마마.은애하는 정궁의 몸에서 마침내 첫아들을 얻은 그득한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억지로 진정하며 돌아서서 두손 

맞잡고 왕대비전하께 하례를 올렸다.법도대로 정중하게 인사를 치렸다.

"전하의 은덕을 입어 소손이 금일 원자를 보는 대경사를 맞이하니,이는 전하의 무궁한 복력이 아무것도 한것 없는 소손에

까정 미침입니다.하례드리옵니다."

"감축합니다,주상.종묘사직과 천지신명이 도우시사 덩실하나 순산하시고 더구나 원자라.아국의 복록이 무궁하며 주상의 

기쁨이 넘침이라.참으로 감축드립니다."

왕대비전하,넘치는 기쁨으로 눈가가 벌겋게 젖어 있었다.마루와 마당에 모인 사람들 전부 다 두분 전하께 한목소리로 감축

드리옵니다 외치었다.

뎅뎅뎅!!

산실 문 밖에 달린 구리종이 청아한 소리를 떨치었다.

상감마마.구리종 줄을 잡고 힘차게 울렸다.용안에 미소 가득히 지으며 마당 아래 부복한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짐은 알리노라!금일 묘시 깨에 원자가 탄생하였다!각 담당부서에서는 제반 사항을 전례에 의거하여 거행하라!"

산실에서 짚자리가 나왔다.권초관이 짚자리를 돌돌 말아 쑥으로 끈 새끼줄로 묶어 문 위의 못에 매달았다.

다음에 소격서로 나아가 노자상 앞에 초제를 지낼 준비를 시작하였다.상의원에서 올린 오색채단과 복두,포,홀,조화,금대를

상위에 놓고 원자 아기씨의 만복을 비는 의식이다.

이렇듯이 상감마마 보령 스물넷에 겨우 얻은 이 아기씨,귀하신 원자마마,훗날 익종대왕이 되실 범이 도령 그분이다.

휘는 면,자는 명호,아명은 범이라.부왕께서 꿈에 호랑이를 보고 탄생하신 터이니 아명을 그리 정하여 주시었다.

경사,경사,대경사로다!

전국각지에 대사면령이 내려지고 별시가 치러질 터다.중전마마 출산에 관여하였던 모든 관원들에게 푸짐한 상이 뒤따를

것은 불문가지.기분 한껏 내신 참이라!삼감마마,교서를 발표하시어 원자 탄생한 기념으로 대은덕을 널리 알리었다.

팔도 환곡 일년치를 면제해 주시고,요역을 감해주시며 팔도의 여든 넘은 노인들에게 쌀과 고기와 포목을 내려주시었다.

별시를 방 붙이고 삼일만에 종묘에 원자 탄생을 고하고 칠일만에 진연을 베푸신다.

만조백관이 탄연하례 선물을 품에 안고 입궐하누나.중전마마 출산에 관여한 모든 관리들에게 푸짐한 상급과 은전이 내려졌다

즐겁고 기껍도다.허연 수염의 노신들이 어주 한잔에 덩실덩실 추을 춘다.다투어 상감마마께 꽃을 바치고 원자 얻으신 덕을

치하하였다.

초이레가 지나,원자아기씨가 마침내 궐 식구들에게 선을 보이었다.

"까꿍.부왕전하 뵙는 날에 이렇게 꼬질꼬질하셔서 되겠습니까?욕간하십시다.우리 원자아기씨.아이고,웃으시오?네네,고우

십니다.참말로 어여쁜 이시오."

산후조리 지휘하시는 창빈마마께서 방싯 웃으며 놋쇠 대야에 목욕물 준비하여 아기씨 욕간을 시키었다.

매화뿌리,산돼지쓸개,복숭아씨앗.호두껍질을 함께 끓인 물이다.

"요렇게 하면 안질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욕간하기를 도통 싫어하는 범이도령.대야 안에서 앙앙앙 장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어마마마 곤히 주무시는데 시끄럽게 한다고 앙증맞은 엉덩이를 한대 얻어맞았것다?궁금하고 보고싶고.......

초이레를 어찌 참았을꼬?새벽빛이 밝아지자마자 냅다 뛰어들어 온 상감마마.어마마마 옆에 누운 아기씨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바마마 헌옷으로 어마마마께서 만든 배내옷을 입고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아기씨 범이 도령.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의 모습.상감마마 이 귀여운 원자 얼굴이 눈에 밟혀 어찌 대전에 나가시려나.

"곱구먼요."

주상전하 아드님을 만난 첫 감상이다.

고운 중전 닮아 앙증맞은 코며 이마가 어질고 반듯하였다.오물거리는 입술이며 원만한 턱이 중전을 많이 닮은 듯 하였다.

하얀 피부며 짙은 눈썹은 부왕의 판박이라.갓난아기답지 않게 숙성하고 덩치가 장하였다.

"아이고,마마.그런 말씀 마옵사이다.귀신이 투기하여 아기씨에게 아니 좋을 것입니다."

곁에서 배행한 창빈마마,곱다는 말에 질색하여 소리쳤다.상감마마 말을 덮으려 냉큼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아이고!이런 못난이가 어디 있을고?뭉툭 코에 더럽고 찌질하니 이런 흉한 아기는 처음이오!"

저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요.첫 참부터 못났다 욕 얻어먹은 아기씨마마.아바마마 억지 트집에 섭섭한가.

삐질삐질 입을 삐죽이어 울음을 울려 하였다.허나 꼭 안고 아바마마께서 자그마한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주니 이내 잠잠하다.

오물오물 젖 빠는 흉내.그러다가 싱긋 웃는 배냇짓을 하였다.차마 건드리기도 아까울 정도였다.

자리에 누워 방긋 미소 짓고 있는 중전을 바라보며 상감마마 따라 빙긋 웃었다.

너무 좋아서 괜스레 힐쭉힐쭉 건드렸다.

"요런 못난 것을 낳아두고 잘하였다고 지금 누워 중전은 미역국을  먹었어야?흥."

말로는 퉁박이되 마냥 대견하고 감사한 그 마음.

어찌 중전인들 모르랴? 이 여린 사람이 모진 산고 이겨내느라 초췌하여지고 이렇게 해쓱하여졌다 싶으니 그저 짠하고 가련하

였다.지아비 다정하고 대견해 하는 그 눈길에 중전은 발갛게 볼을 붉히며 눈을 내리깔았다.

"신첩이 마침내 마마의 끝없는 은덕에 보답한 듯 싶습니다.마마.즐거우십니까?"

"즐겁다마다요!이날 짐의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졌거니!아아 드디어 우리도 인제 식구를 이루었도다."

한 팔에는 원자를 안고 또 한팔로는 중전마마 손을 꼭 잡고 왕은 감격에 겨워 속삭였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싶었다.둘도 없이 아끼는 지어미와 늠름한 아기씨를 안고 있는 지금.

상감마마 어느덧 눈이 벌게졌다.

"고맙구나,원자야.이렇게 무사히 우리곁에 와주어서 전정 감사하느니.너로 인하여 짐이 비로소 열성조에 낯을 들수 있게

되었으며 이날부터 사직이 반석이 되었구나.고맙구나,정말 고맙구나."

여린볼에 아바마마 수염난 볼을 다가오니 따갑다.저가 잠을 좀 자려고 하는데 왜이리 귀찮게 구는것이야?원자가 조그만

이마를 찌푸리며 앙~하고 울었다.그 옹골찬 울음소리가 어찌나 장한지 저절로 흐뭇하였다.

"주상의 내림이라 요 성깔이 오죽할까요?상감마마 어릴 적 모습과 똑같으니 은근히 강골이오.원자께서도 자라면서 그 성질

볼만할 것입니다?"

창빈마마,벙긋이 웃으며 덕담을 하시었다.아쿠쿠,아기씨.아바마마 처음 뵙는 자리에서 체면 구겨지게 쉬를 하였구나.

기저귀를 들치니 구린내가 진동한다.창피하게도 응가를 한것이다.

나인들이 서둘러 씻기고 기저귀 가는 모습을 빙긋 미소 머금은 채 흘린듯이 바라보던 상감마마.중전을 돌아보았다.

"잘 드시오?"

"잘드시고 응가도 잘합니다.새근새근 잘 주무시고 순하여서 신첩을 마냥 편안하게 하여준답니다."

"누가 원자 일을 물었나?중전 말씀이지.산후 조리를 잘하여야 한답니다.푹 쉬시고 조섭 잘하시어 한시라도 빨리 원기 회복

하소서.헌데 듣자하니 중전께서 직접 원자에게 젖을 먹인다구요?힘들지 않겠소이까?"

"젖도 잘나오고 그만합니다.천륜이라 하였나이다.마마께서 항시 생모마마 젖을 먹지 못한 고로 외롭다하신 말씀 유념하였나

이다. 우리 원자는 신첩이 젖을 먹일 것입니다."

"짐이야 마냥 감사한 일입니다.고맙구요,허나 중전의 옥체가 상하여서도 아니 될것이야.심성 고운이로 하여 유모를 선발하

였으니 중전께서 힘드시면 나누어서 양육하시구려."

"명심봉행할 것입니다."

중전마마 출산하신 후 기진한 잠에 빠졌다.긴 잠 후에 원기 회복하시어 눈을 떠보니 분명 아까 곁에 누워 있던 원자가 

보이지 않았다.유모 상궁이 안고 있었다.궐의 법도라.따로보육 상궁인 아지와 젖어미가 선발되어 있음이라.아기를 기르는

터다.중전마마 아기를 낳기는 하였되 도통 할일이 없음이라.섭섭하고 허접하였다.이리는 못할 참이다.

어진분이 문득 노화를 내며 호령하시었다.

"원자 데려오너라.이몸으로 낳은 아기이니 이몸의 젖을 먹일것이다.이 중전 소생이니 내가 훈육할 것이다.천륜이라 하였다.

아무리 법도라 한들 그 천륜을 어찌 어길수 있으랴?"

지아비 상감마마 평생 마음에 박힌 못이 그것이 아니더냐.생모마마 두고서도 아기가 없는 장경왕후 슬하에서 젖어미 젖을

먹고 자라신 분이라.항시 말씀하시기를 우리 원자는 중전이 직접 젖을 먹여 키우소 당부하시었다.

다행히도 아기씨가 순하고 잘 드시고 힘들지 않게 하였다.

상감께서도 그러하지만은 중전도 얼마나 외로운 분이냐.미리 가진 아기를 한번 잃고 마침내 품에 안은 첫아들이라.

아기를 안고 고 말랑한 살에 얼굴 대이고 있다가 풍염한 젖꼭지 물리면 쭉쭉 잘도 빨아드시었다.

배냇짓도 더없이 귀여웠다.하품도 하고 방귀도 뀌고 생긋생긋 웃다가.....그야말로 하루종일 들여다 보고 있어도 심심치 

않고 싫증나지 않았다.

나란히 않아,어린 아들을 안고 중전마마와 상감마마,인제 더 이상 바랄것이 없다 그런 생각만 하는 것이었다.

그 밤이다.

진연을 끝내고 편전 돌아오신 상감마마,황이를 불렀다.

"짐이 명일 중전의 일과 관련한 죄인들을 친국할 것이다.차비하라."

전하,너무 이르지 않습니까?허고 원자께서 탄생하신 경사라 팔도에 대사면령까정 내린 터로 어찌 이토록 이르게 친국하려 

하십니까?전례가 아니옵니다."

"대사면을 하였으되 그것들은 임금을 배신한 흉적들이오,용서할 일이 아니지.감히 만삭인 중전을 습격하여 태중 원자와  

중전의 목숨을 해치려 한놈들이니 바로 역적이 아닌가?짐의 마음은 이미 정하여졌으니 차비하라.중전께서 교태전에 계시니

성덕궁에서 죄인을 악형하는 소리는 내지 못할 차라,경덕궁에 백관을 모으시오.만인의 눈과 귀앞에서 짐이 그놈들의 죄를

명명백백 밝혀낼 것이오."

거복이 놈을 위시하여 중전의 가마를 직접 습격한 흉적 놈들은 그 다음날,윤재관을 위시한 호위밀들에게 잡혀왔다.

내통하는 의원 집에 숨었다가 가가호호 샅샅이 털고 나간 눈에 발각된 것이다.

김 내관,상침 허씨,선이 년도 고스란히 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대리는데,저들은 오직 금전에 협박에 무섭고 눈이 어두워 

희란마마며 정안로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발뺌이었다. 주동이 아니라 하수인이라 하면 죄가 다소 덜해질까 하는 기대였다.

줄줄이 저들이 알고 있는 바, 시키는 대로 해온 행악들을 불어냈다. 굳이 친국 아니하셔도 죄상은 명명백백 드러난 터인데

전하께서 굳이 백관들을 모아놓고 친국을 하심은 무슨 뜻인가? 

이튿날 아침. 경덕궁. 대전인 환정전 앞. 새벽부터 모여든백관들 앞에 죄인들을 치달하는 형구가 벌려졌다. 

저 위 월대에는 겹겹이 차일이 쳐지고 용상이 놓여졌다. 죄인들이 검은깔때기를 쓴 나장들에게 끌려나와 형틀에 오랏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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