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잘 이용해야 돼!"
"그게 아니다니까! 손을 양 옆으로 이렇게, 이렇게, 저어!"
"처음에는 코를 잡고 들어가야 돼! 코로 물 들어가면 눈물 나오거든!"
"힘들 때 누워서 쉬는 데는 송장헤엄이 최고야!! 힘을 빼고. 그렇지! 우리 아들 잘한다!"
휘아는 하루만에 헤엄을 익혔다. 개헤엄도, 송장헤엄도. 잠수헤엄은 숨만 안 쉬면 되니 더 쉬웠다.
그리고 다음날, 휘아는 호수 안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어제 그렇게 더러워졌던 물이 다시 깨끗해졌다. 아마도 어디선가 적지 않은 물이 들어오는 것 같다. 먹을 물 걱정은 안 해도 될 듯싶다.
안으로 들어가자 천장이 매우 낮아졌다. 물 위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였다.
십오륙장은 들어간 듯싶다. 여전히 올라갈 만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쳇! 아무래도 여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실망이다. 그래도 제일 가망성이 있던 곳인데.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 때였다. 몸을 돌리다 보니 물 속에서 뭔가가 희끗 보인다.
'응?'
숨을 멈추고 머리를 물 속에 집어 넣어 봤다.
보인다. 바위 틈바구니에 낀 옷자락이 보인다.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다. 사람이라면 죽은 지 오래 된 시체일 것이다. 하지만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사람은 아닌 듯하다.
물구나무 서 듯이 하고 들어 가 봤다. 이럴 땐 석두아버지의 잠수헤엄이 최고다.
손에 옷자락이 잡힌다. 잡아 당겨 보지만 쉽게 빠지지를 않는다.
천천히 옷자락을 잡은 채 바위에 바짝 몸을 붙이고는 발로 바위를 밀면서 옷자락을 당겨 봤다.
조금씩 옷자락이 딸려 나온다. 그러더니 결국 옷자락이 완전히 빠져 나왔다. 뭔지 모르지만 묵직한 것이 느껴진다.
휘아는 그대로 한손으로 옷자락을 잡고 몸을 물 밖으로 빼냈다.
"푸우!"
나오긴 했는데 옷 때문에 헤엄을 칠 수가 없다. 잠시 발을 놀리며 생각에 잠겼던 휘아는 옷자락을 뭉쳐 쥐더니 앞 쪽으로 던져 버렸다.
천장이 낮아서 일장을 겨우 날아 갔다. 하지만 그게 어딘가.
몇 번 반복하는 사이, 어느 덧 호수의 가장자리가 보인다.
호숫가로 나온 휘아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 시키고는 옷자락을 바라보았다.
뭐가 있을까?
맛있는 꿀떡을 아껴 먹으려 조금씩 베어 먹는 심정으로 스을쩍, 옷자락을 한 겹 들추어 봤다.
아직 몇 겹이 남아있다.
한 겹, 한 겹, 벗겨 가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자신이 처음으로 발견한 물건이다. 어찌 떨리지 않을 건가. 하지만.
"쳇! 내가 봐도 남자가 너무 쪼잔한 것 같네. 아부지가 남자는 통이 커야 한다고 했는데."
펄럭!펄럭! 순식간에 옷자락이 벗겨졌다. 그러자 나타나는 물건. 그것은 하나의 단단해 보이는 목함이었다.
"뭐야?"
한참을 살펴보던 휘아의 입에서 마침내 참지 못하고 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떻게 여는 거야?"
이음매가 보이지 않는다. 열쇠 구멍도 없다. 이건 함이 아니라 나무토막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다.
"젠장! 기껏 건져 왔더니 나무토막이잖아?"
이만 저만 실망이 아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응?"
따그락!
무슨 소리가 난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도 안에 뭐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휘아의 손은 그야말로 예민하기 그지없다. 자칭 진맥의 대가인 조동인도 인정할 정도로.
그렇다면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다시 한 번 살펴 봤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물건이 이음매가 없다.
'부셔버려?'
그러다 안에 있는 물건까지 부숴지면.... 그건 안되지.
'잘라내?'
뭘 로?
'에이.... 아버지에게 물어 봐야겠다.'
아직은 어린 휘아였다.
휘아는 목함(?)을 옷으로 싸들고 아버지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 날부터 세 아버지에게는 고민이 하나 늘어났다.
오랜 만에 아들이 물건 하나를 건졌는데 문제는 그것을 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리 해 보고, 저리 해 봐도 열 방법이 없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가 다 빠져 나갈 판국이다.
하필 가져와도 이런 물건을 가져 와서.....
그렇다고 아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자기들은 이런 물건도 못 건졌지를 않은가.
부실까? 자를까? 처음 생각은 똑 같았다. 애나 어른이나.
하지만 역시 경험은 무시할 수 없었다. 사흘째 되던 날, 조동인이 마침내 작은 실마리를 찾아 낸 것이다. 못쓰는 정를 갈아 만든 침으로.
처음에 정을 갈아서 침을 만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비웃었던가. 일 년이 지나 마침내 침이 완성 되었을 때도 '미친 놈!' 소리가 절로 나왔었다. 헌데 그 침이 제 몫을 해 냈다. 그리고 조동인의 고개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뻣뻣하게 세워졌다.
목함의 이음매를 옆 면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다못해 위나 아래에서 찾으려 하는 것도 당연한 생각이다.
조동인은 도저히 이음매의 틈새를 찾을 수 없자 아끼던 침을 꺼내 이곳 저 곳을 쑤셔 봤다. 그래도 찾지를 못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모서리를 긁어 댔다. 그것은 순전히 답답해서 한 행동이었다.
마치 답답하면 머리를 긁듯이 긁어 댄 것이다. 헌데....
"어? 뭐야?"
모서리에 침이 살짝 걸치는 느낌이 전해 온다. 눈을 뒤집고 자세히 살펴 봤다. 틈이라 하기에는 뭐하지만, 그나마 목함에서는 유일하게 침이 들어간 곳이었다.
열심히 긁어 댔다. 아까운 침이 다 닳도록. 그리고 마침내, 한 푼 정도까지 침이 박히자 그 때서야 조동인은 목함의 구조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만세!"
휘아의 표정이 환해 졌다. 진형구와 여강두는 박수.... 는 치지 못할 망정 아니꼽다는, -그 까짓거 갖고 되게 잰다- 는 듯이 째려 보고 있다.
그래도 조동인은 아들의 환한 웃음을 본 것이 더 즐거웠다.
'짜식들!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지. 쫀쫀한 놈들!'
"험! 이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말이다. 요... 구석을 정확하게 깎아서 맞춘 다음 아교로 붙인 것이다."
"아! 그렇구나!"
"나뭇결까지 같은 걸로 봐서는 통나무를 그대로 잘라서 만든 것 같다. 아주 세밀하게 작업 된 것이 예사 물건이 아니다."
"뭐가 들었을까?"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을 여강두가 물었다. 그러자 자신있는 조동인의 대답.
"열어 보면 알겠지."
"어떻게?"
"....."
아!! 제기랄! 또 고민이다. 확! 부셔버려?
목함을 여는 것은 세 아버지에게 맡겨 두고 휘아는 호수동굴을 더 탐색해 봤다. 그러나 삼일을 뒤져 봤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다음은 높은 곳에 있는 다섯 개의 동굴을 탐색할 차례다.
휘아는 자신이 파 놓은 발 디딜 구멍을 바라 보았다. 세치 정도의 깊이, 두자 정도의 간격으로 삼장 높이의 동굴에까지 파여 있었다. 열 몇 개의 구멍을 파다가 하마터면 떨어질 뻔 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다행히 떨어지지 않은 것은 석두아버지가 자신의 신체 단련을 워낙 잘(?) 시켜 놓았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동굴에 들어가자 그는 새삼 마음이 두근거려졌다. 여기는 아버지들도, 죄수는 그 누구도, 들어와 보지 못한 곳인 것이다. 오래 전, 일 년에 한 번씩 들렀다는 간수들이나 들어 올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이십 년도 넘은 이야기이니, 최소한 이십 년만에 자신이 처음으로 들어 온 동굴이라 할 수 있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놓았다. 사방을 훑어 가며.
삼장을 들어갔지만 눈에 띄는 것은 그저 평범한 석벽, 군데 군데 부서진 돌무더기뿐. 그다지 눈 여겨 볼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칠장 정도를 들어가자 동굴의 끝이 보였다.
“허탕인가?”
나오면서 다시 세밀하게 탐색해 보았다. 결국 휘아는 첫 번째
탐색에서 아무 것도 발견하지를 못했다. 하지만 아직 동굴은 네 개가 더 남았다.
두 번째 동굴을 들락거리길 삼일 째, 이 곳은 첫 번째 동굴보다 훨씬 길다. 거기다 갈래져 있다.
오른쪽으로 먼저 갈까? 왼쪽으로 먼저 갈까?
손바닥에 침을 뱉고 탁!
"왼쪽이 먼저네."
일장 높이의 동굴이 들어 갈 수록 낮아진다.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십여장이 더 이어지다가 막혀 버렸다.
젠장! 쳇! 이다!
털래 털래 되돌아 나와 오른쪽 동굴로 들어갔다. 오장 정도를 들어가자 갑자기 동굴이 넓어졌다. 높이는 그대론데 넓이가 삼장에 달한다. 게다가...
"어? 바람이?"
안 쪽에서 바람이 불어 온다.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약한 미풍이.
다시 십장 정도를 들어 갔을 때였다.
"앗!"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주르륵, 휘아의 몸이 경사로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간다.
다행히 급격한 경사는 아니어서 크게 다친 곳은 없지만 마찰에 의해서 복숭아뼈 부근의 살이 살짝 벗겨졌다.
"으.... 쓰라려."
슬쩍 진저리를 친 휘아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순간, 휘아의 눈에 뭔가가 들어 온다.
'와! 뭐냐?'
아픈 것도 잊어버렸다. 쪼르륵 달려가 자신이 본 것을 살펴 봤다.
삭아 버린 옷가지, 그 속의 뼈다귀. 분명 사람의 흔적이었다.
두근두근. 조심스럽게 옷가지를 걷어 본다. 어찌나 삭았는지 언제 부서질지 모를 지경이다.
옷가지와 뼈다귀까지 다 치워 봤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만 저만 실망이 아니다.
"응?"
다섯 자 정도 떨어진 바위 위, 뭐가 또 보인다. 앗! 돌로 긁어 쓴 글씨다! 이야! 드디어....
-이 글을 보는 놈이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좋아하지 마라. 아마 네 놈도 나처럼 탈출을 하려는 놈이 아니면 뭔가 없을까 해서 들어 왔겠지. 미안하지만 여기가 끝이다. 제기랄, 가끔 나처럼 제 정신이 조금 들어서 이 곳을 나가려는 놈들은 탈출을 꿈꾼다. 그래서 동굴들을 뒤지지. 그러다 절망한다. 발만 성했어도 여기를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지미랄, 먹을 것이 이틀 치 밖에 안 남았다. 이틀 뒤부터는 굶다가 결국은 죽겠지.
크크크... 천하의 광량이 굶어 죽다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이 글을 보는 놈, 네 놈도 내 옆에서 죽어 가겠지. 죽기 전까지 심심하거든 이거나 익혀 봐라. 혹시 아느냐? 살아서 나갈 수 있을 지.-
"엥? 뭐야? 두서없는 내용에 한탄하는 심경만 잔뜩 써 놨잖아? 그런데 뭘 익히라는 거지?"
글 옆에는 세 송이의 꽃이 그려져 있었다. 연꽃인지, 불두화인지 몰라도 수많은 꽃잎이 겹쳐져 있는 그림이었다. 헌데...
"햐! 선이 하나도 안 끊어지게 잘도 그렸네."
휘아의 말대로였다. 언뜻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제법 잘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건 그렇고...
"쳇! 당신은 발이 없어서 여기서 죽었는지 몰라도 미안하지만 나는 아니네. 내가 미쳤다고 여기서 죽어?"
경사진 비탈을 올려다 봤다. 삼장 정도의 높이에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제법 미끄럽다는 것이다. 하긴 그래서 못 올라가고 죽었겠지.
‘가만?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지? 다리도 성치 못했으면서 오장 높이의 절벽을 어떻게 올라 왔을까?’
휘아는 의문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여길 나간 다음에 고민 할 문제였다.
휘아는 바위 위에 그려진 세 송이의 꽃을 한참 살펴보더니 미련없이 뒤돌아 섰다. 그리고 비탈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주르륵...
‘어? 이거 장난이 아니네?’
바위벽면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봤다.
자그마한 틈이 보인다.
어른의 손은 몰라도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문제가 될 것도 없다. 틈바구니는 제법 길게 나 있으니까.
일각을 씨름하고서야 겨우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휴.... 그 틈도 없었으면....."
부르르....
생각해보니 큰일날 뻔했다. 내려다 보니 생각보다도 경사가 심하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막 돌아서려 할 때였다. 휘아의 눈에 뭉텅이 져 있는 물체가 눈에 뜨였다.
"뭐지?"
좀 전에는 구석진 곳, 바위에 가려 있어 미처 못 봤던 것이다. 집어 들고 자세히 살피던 휘아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어? 머리카락이잖아?"
놀라운 일이었다. 그것은 족히 육칠 장은 되어 보이는 밧줄이었다. 헌데 머리카락을 꼬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갈고리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있어야 이 정도 길이의 밧줄을 만들까?"
적어도 수십 명의 머리카락을 사용했을 것이다. 아마 굴러 떨어진 광량이라는 자는 이 밧줄을 이용해 여기까지 올라온 듯하다.
휘아는 밧줄을 몇 번 잡아당겨 보았다.
제법 질겼다. 허리에 둘러보니 촉감도 그다지 나쁘지가 않았다.
"좋았어!"
오늘은 최근의 탐사 중 제일 낳은 성과를 올린 날이었다. 사람의 흔적도 보고 쓸만한 밧줄도 얻었다. 아직 꽃그림에 대한 것은 알 수없지만.
휘아가 만족한 기분으로 동굴을 빠져 나올 때였다. 바깥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휘아야! 휘아야!!"
다급한 목소리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좋았던 기분이 다 날아갈 정도로 안 좋은 느낌이다.
후다닥 달려나가 밑을 쳐다보자 석두아버지가 보였다.
"아부지! 무슨 일이에요?"
석두아버지가 위를 올려다보며 소리친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휘아야.... 이빨이.... 이빨이... 죽었다."
천공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두워 보이고, 휘아의 피부보다 더 하얀 눈이 송이송이 떨어지던 날, 자신에게 다섯걸음, 오보천환을 가르쳐 준 이빨 아저씨가 죽었다.
그가 죽음으로써 이제 무저뇌옥의 죄수는 6명 만이 남았다.
휘아와 세 아버지, 그리고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말도 못하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두 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도 얼마나 살 수있을 지...
돌로 쌓아 만든 이빨의 무덤 앞에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휘아와 세 아버지였다.
말없이 무덤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선 눈물조차 흐르지 않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렸다.
암울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의 죄수는 들어오지 않을 듯하다. 밖에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밖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었다.
답답한지 조동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아무래도 안되겠다."
진형구가 이마를 찌푸리며 반문한다.
"어쩔 건데?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어떻게든 휘아를 내 보내야 되겠어."
"어떻게?"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
"여기가 어딘지 잊은 건 아니겠지?"
"대철혈성의 무저뇌옥, 지금껏 탈출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전설의 지옥, 됐냐?"
"알긴 아네. 그런데 무슨 수로 어린 휘아를 탈출 시킨다는 거냐?"
"......"
조동인이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침묵만 지킬 뿐이다. 잠시 후. 눈을 뜬 조동인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인데.... 아무래도 밖의 상황이 우리가 들어 올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달라졌다고? 뭐가?"
"죄수가 들어 오지 않은지 십삼 년이다. 휘아의 어미 이후에는 죄수가 끊겼어. 바깥 세상에 악인이 다 없어졌다면 몰라도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야."
"다른 곳에 뇌옥을 만들었을 수도 있잖아."
"이보다 더 완벽한 뇌옥을 어디다? 차라리 철혈성이 망했는지 모르겠다고 해라."
"그럴 수도....."
"미친 놈!"
"아니면.... 변질 됐을 수도 있고..."
"......"
그것은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 악인이 선인되는 것은 보기 어려워도, 선인이 악인이 되는 일은 비일비재 하니까. 더구나 철혈성은 정사 중간의 문파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모든 것은 추론일 뿐이었다.
진형구와 여강두를 둘러보며 눈을 치켜 뜬 조동인이 이를 지그시 깨물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 일년? 이년? 글쎄..... 지금이라도 음식이 끝기면 우리는 굶어 죽어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돼. 우리야 살만큼 살았으니 미련은 없다만, 휘아는..... 내보내야 한다."
진형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강두가 그 큰 머리를 푹 쳐 박고 시무룩하니 대답한다.
"그건..... 그렇지...."
그 때, 아무런 말도 없이 무덤만 바라보고 있던 휘아가 나직하니 말문을 열었다.
"나는... 나갈 거야."
세 사람의 시선이 휘아를 향했다.
"그리고.... 아부지들을 데리러 올 거야...."
"휘.휘아야...."
"그 때까지... 아부지들은 살아 있어야 돼.... 알았지?"
"그.그래..... "
"크윽...."
끝내 여강두의 큰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다른 두 사람도 말만 없다 뿐이지 심정은 여강두와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이빨이 죽고 두 달 뒤, 끝내 조동인이 목함을 열었다. 무려 석달 열흘에 걸친 목함과의 싸움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조동인이 아끼던 다섯 개의 침과 바꾼 결과였다.
조동인이 네 사람을 불러 모았다. 잠시 후,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 앞에서 목함이 공개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목함을 만든 자의 치밀함에 질려 버렸다.
"세상에!!"
목함의 안쪽으로 뾰족한 침이 삼십여 개나 박혀 있었는데, 움푹 패인 그 곳에는 하나의 백색자기병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 목함을 부순답시고 두들겨 댔더라면 그 안의 내용물은 얻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조동인은 조심스레 백색 자기병을 꺼내들었다.
뭘까?
궁금하지 않다면 사람도 아닐 것이다.
네 명은 자신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 주려는 듯 백색자기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반각 정도가 지난 후,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열고 한참 동안 안을 들여다 보던 조동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야? 이거! 애들 영양제 아냐?"
"응? 애들 영양제?"
"뭔데?"
"어... 소젖 같이 생긴 건데, 애들에게 좋다는 영양제야."
"에이... 좋다 말았네. 휘아야! 너 먹어라!"
진형구의 말에 여강두가 헤벌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