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200)

하지만 눈물은 멈춰지지 않아도 가슴 속에 박힌 한 마디만은 어떻게든 더 해야 했다.

"사부님... 휘아를 봐서... 아버지들을 구해 주실수 없나요?"

고봉천은 말문을 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입을 닫고 있었다.

헌데 불쌍하기 그지없는 제자가 물어온다.

제길, 체면이 문제 다더냐? 

"내가... 내가 어떻게든 구하마! 걱정 말아라..... 크윽!"

두 사제의 격정은 일각이 더 흘러서야 가라 앉았다.

고봉천은 휘아에게 좀더 자세한 것을 물었다. 

휘아는 무저뇌옥안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다.

".... 지금은 두 아버지만이 있어요."

세상에...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니. 

하기야 철광석이 계속 올라오니 사람이 있기는 있었겠지. 

"아버지들은 지금 몸이 안 좋으세요."

오죽하랴. 살아 있다는 것만도 기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고봉천이 휘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디 사부하고 연구를 해 보자꾸나. 내 알기로 특별히 그곳을 지키는 사람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힘없는 두 사람을 구한다 해서 별 다른 일이야 있겠느냐? 내일이라도 당장 자세한 것을 알아보마."

"감사합니다. ....사부님."

"휘아야..."

고봉천이 나직이, 그리고 따뜻한 눈빛으로 휘아를 불렀다.

"예..."

"고맙다... 마음을 열어 줘서...."

다음 날, 고봉천은 구노인을 통해서 무저동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점심 무렵 고봉천과 휘아가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

"무저동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헌데 말이다...."

고봉천이 무엇 때문인지 머뭇거리고 있다.

휘아는 가슴이 철렁,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제부터 철광석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한다."

오오.... 안돼!

"아무래도 이상이 있는 것 같다."

움켜쥔 두 주먹이 경련을 일으켰다. 설마??

"오늘 저녁에 한 번 가 보도록 하자."

"사부님...."

"요즘은 저녁에 지키는 자도 없다 하니 그리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구나."

"예..."

"그리고... 마지막 수감자에 대해서 알아봤다. 헌데...."

사부님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왜 그러시지?

"조씨 성의 시비가 혈사궁의 첩자로 몰려 수감되었다는데, 일년 정도 지나서 밝혀진 바로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일하다 그녀를 고발한 여자가 첩자였다고 한다. 헌데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만... 무저동에 갇힌 여인을 풀어 주는 것을 잊었다고 한다. 아마 죽었을 거라 생각 했겠지..."

전신이 벼락을 맞은 듯이 부르르 떨렸다. 

'왜 그리 비참한 운명이 어머니에게 닥쳤단 말인가!'

사실 어머니를 느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깊게 생각해 본 적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들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런데도 알 수 없는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 오른다. 

움켜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려 온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휘아는 힘이 없는 자신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헌데 그 때였다.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휘아의 머리 속은 복잡하게 얽혀 들어 갔다.

'그럼 낙양 유벽혜라는 이름은 뭐지?'

휘아의 의문을 알길 없는 고봉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시비는 궁주부인의 시비인지라 아이를 가져서는 절대로 안 되는 시비라는 것이다. 거 참, 의원이 맥을 짚어 아이가 밴 것을 알았을 정도면 상당히 되었다는 것인데, 어찌 그런 사실을 아무도 몰랐는지..."

“모를 수도 있는게 아닌가요?”

“다른 곳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궁주부인의 주위에는 뛰어난 의원이 항시 대기하고 있는데다 호위하는 고수들이 즐비하단다. 아이를 벤지 두세 달이 흘렀다면 절대 모를 수가 없단 말이지.”

의혹에 차있던 휘아의 눈이 면사 속에서 반짝 빛났다.

아버지들이 보기에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속아서 무저뇌옥에 갇혔을 거라 했다. 게다가 기품있는 귀부인같이 보인다 했었다. 그렇다면...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시가 넘어 갈 무렵, 크고 작은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망설임도 없이 무저동의 입구로 다가갔다. 

고봉천과 휘아였다.

생각대로 무저정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물레의 고리를 푼 고봉천이 휘아를 돌아보았다.

"괜찮겠느냐?"

"예."

동굴에는 휘아가 내려가기로 했다. 몸도 가벼웠고 무저동에 대해서는 휘아가 훨씬 잘 아는 것이다.

바구니에 몸을 담았다.

올라올 때는 바구니 밑에 매달렸는데, 내려갈 때는 바구니에 타고서 내려간다. 새삼 가슴이 벅차 올랐다.

'염소아버지... 석두 아버지... 제발...'

드르륵 드르륵, 물레가 풀린다. 

십장 이십장... 가로로 찢어진 시커먼 동굴이 보이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삼십장 오십장... 넓어지는 무저동 아래에서 퀴퀴한 냄새가 풍겨온다. 

우스운 일이다. 얼마나 됐다고 무저동의 냄새가 이상하게 느껴진단 말인가. 빌어먹을 일이다.

바닥이 가까워 올 수록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다.

휘아는 억지로 입을 열어 아버지들을 불러 봤다.

“염소아부지! 석두아부지! 나 휘아야!” 

.........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면 안 되는데... 아버지들은 휘아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휘아야! 아버지들 여깄다!! 하면서.... 

불안감에 가득찬 가슴을 안고 얼마를 더 내려 갔을까. 

턱!

바구니가 마침내...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휘아는 볼 수 있었다.

염소아버지가 허공을 향한 채 누워 있다.

석두아버지가 그런 염소아버지를 끌어안고 있다.

두 사람의 주위로 밀가루로 만든 만두와 여러 가지 소채들이 나뒹굴고 있다.

"아...버...지..."

휘아는 두 아버지를 불러보았다. 대답이 없다. 

허공을 향해 치켜 뜬 염소아버지의 눈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오냐! 휘아야!'

'휘아 왔구나!'

반겨 주어야 할 두 아버지가 말이 없다.

"아버지!!!"

달려가 염소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우리 휘아가 무사히 나갔구나.' 안심한 눈빛이다.

석두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눈 주위에 자국을 만든 채 말라 있었다.

'휘아야. 염소가 죽었다. 나 혼자 어떡하라고.' 

"아...부...지.... 크윽!!"

털썩, 무릎 꿇고 불러보지만 한이 담긴 울음소리만 허공에 메아리 칠 뿐이다.

죽었다! 아버지들이 죽었다!

조금만 기다리라니까. 왜! 왜!!

휘아가 온다고 했잖아!! 왜 조금을 못기다린 거야!!

그 때였다.

염소아버지의 옆에 천이 하나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글씨가 쓰여 있는 다 떨어진 옷이...

[휘아가 이 글을 볼 수 있었으면... 

휘아야. 늙으면 죽는 거란다. 울지 말아라. 그래도 무사히 휘아가 나갔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놈들이 들어오지 않고 음식도 넣어 주는 걸 보니 우리 휘아가 무사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휘아야... 이제 사람답게 살아라. 아버지들은 빼빼 옆에다 묻어 주고.... 휘아야.... 사랑했다.... 사랑했다...]        

"으엉!! 아버지!! 아버지!!!"

눈물이 메마를 정도로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가 멍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휘아의 마음은 가라앉을 줄을 모른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휘아가 비칠거리며 일어났다.

"아버지.... 빼빼아버지 옆에다 묻어 줄 게요."

염소의 몸을 들어 빼빼아버지가 묻혀 있는 돌무덤가로 옮겼다.

석두아버지의 몸도 옮겼다. 그리고 하나하나 모나지 않은 돌을 모아 아버지들의 시신 위에 얹어 줬다.

"세 분이서 싸우지 마시고 지내셔야 해요. 나중에... 시간이 날 때마다 휘아가 찾아 올게요."

하나 둘 쌓인 돌이 두 아버지의 몸을 다 덮자, 휘아는 처음으로 아버지들에게 큰 절을 올렸다.

"아버지... 휘아에게 멋진 사부님이 생겼어요. 사부님도 아버지들을 보고 싶어 했어요. 이제 늦었지만...."

휘아는 흘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하염없이 무덤 만을 바라보았다.

"두고 보세요. 휘아가 사람답게 사는지 어떤지... 아버지들이 저승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재미있게 살 게요. 그리고... 다시는 울지 않을 거예요. 눈물은 아버지들에게만 보일 거예요."

다시 한 번 큰 절을 올린 휘아가 빙그레 웃었다. 눈물진 웃음이었다. 

눈에선 눈물이, 입에선 웃음이...

"저... 갈 게요. 사부님이 기다리셔요. 참 좋은 분이에요. 살아서 친구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던 휘아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쳇, 다시는 울지 않는다고 했는데... 저... 진짜 가요..."

고봉천은 혼자 올라오는 휘아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짐작은 했었다. 철광석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버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혼자서 올라온다.

입을 꾹 다문 채. 

말라붙은 눈물자국만이 휘아의 말을 대변하고 있었다. 굳이 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휘아가 바구니에서 뛰어 내렸다. 바라보는 눈길이 한없이 안쓰럽게만 보인다. 

고봉천은 아무런 물음도 던지지 않은 채 뒤돌아서 걸어갔다.

휘아도 뒤따라 걸어갔다.

머리 위에 떠오른 밝은 보름달만이, 환한 빛으로 말없이 걸어가는 두 사제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을 뿐이었다.   

           *             *           *

태양은 여지없이 떠오른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었다. 어느 한 사람의 사정 따위는 봐주지도 않는다. 

휘아는 밝아오는 태양빛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 올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이제 아버지들은 휘아의 가슴 속에 묻혀 버렸다. 한가지 해야 할 일이 사라졌다.

슬픔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 없이 붙들고 있을 수도 없다. 

이를 지그시 깨문 휘아의 주먹이 힘있게 움켜 쥐어졌다. 

'일단은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저승에서 바라보는 아버지들이 실망하는 휘아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 구노인이 다듬어 놓은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태양빛이 온 세상을 덮어 버릴 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고봉천은 마주 앉은 휘아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이 되었는지 몸가짐이 흐트러짐이 없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아픔을 겪으면 그 아픔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앙금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헌데, 휘아는 다행이 그 아픔을 가슴 속에서 삭여 낸 것처럼 보인 것이다. 

대견한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아버지들에 대한 것은 나도 마음이 아프구나. 허나... 그 분들도 네가 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실 것이다."

휘아의 고개가 깊숙이 숙여졌다.

"후우.... 본래 며칠 더 지나서 시작할까 했다만, 너를 보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 하구나. 괜찮겠느냐?"

"예. 사부님."

"휘아야. 살아가다 보면 무공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먼저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다. 너는 앞으로 이 곳에서 당분간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변상황에 대한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랬다. 휘아는 지금껏 다른 세상에서 살아 왔다. 당장 휘아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무공보다 세상의  단순한 흐름에 대한 것일지도.

"가르침을 주세요."

“먼저 철혈성에 대한 것을 이야기 해주마. 어찌 보면 너 역시 철혈성에 적을 두고 있다고 봐야하니까 말이다. 언제까지 일지는 몰라도...”

고봉천의 입이 열리고, 회한에 찬 듯한 목소리가 조용히 휘아의 귓전을 파고 들었다.

-오랜 동안, 철혈성은 섬서삼세(陝西三勢)의 하나로 불리긴 했지만, 강호 전체를 놓고 보면 삼십 위권에 겨우 들어갈 정도의 문파였다. 물론 그것도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전대의 성주인 철혈패황(鐵血覇皇) 철무경이 성주위에 오르고, 철혈의 도전을 선언하면서, 철혈성은 삼십 년만에 무림팔패 중 하나로 섬서의 하늘이 되었다. 

심지어 삼세의 둘이자 구대문파에 속해 있던 종남이나 화산조차 철혈성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철혈성을 팔패의 하나로 올려 놓았던 철혈의 도전은 그다지 특이할 것이 없는 쟁투 방식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어느 문파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문파대 문파의 세력전에선 집단전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강호의 통념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니...

오직 일대 일의 대결, 열 명을 내세우던, 백 명을 내세우던, 모든 대결이 일대 일의 대결이다. 철무경은 그 것을 철혈의 도전이라 이름 붙였다.

그 어느 세력이고, 철혈성을 넘보기 위해선 철혈의 도전법에 따라 도전을 해야 했다.  

또한 그 누구고, 철혈성에 불만이 있는 자는 개인적으로 도전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철혈의 도전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졌다.

그러자 무인임을 자부하는 자들이 폭풍처럼 열광하며 철혈성으로 모여 들었다.   

대사형은 철혈성을 향한 도전에 언제든 최전방에 섰었다. 그리고 상대의 선발들을 꺾어 나갔다. 한 번, 두 번... 열 번...

처음에 강호의 세력들은 철혈성의 무위를 알아보기 위해 평범한 무사들을 내세웠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선발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사들의 사기도 사기지만, 문파의 자존심과 직결된 것이었다. 

때론 대사형 혼자서 열 명의 무사들을 차례대로 상대한 적도 있었다. 

그걸 보고 철혈성의 무사들은 대사형을 공명심에 눈먼 자라 손가락질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강호의 내노라하는 고수들이 차례차례 무너지자, 그제야 대사형을 보는 사람들의 눈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젊은 무사들은 열광하며 환호했고, 철혈성에 몰려든 낭인무사들은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대사형은 철혈성 제일의 영웅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방구석에 처박혀 당금의 성세를 만끽하고 있던 원로들은, 굳이 그렇게 안 하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여력이 있다며 대사형의 위업을 깎아 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대사형이 백여 회에 이르는 철혈의 도전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전승을 거두자, 강호인들이 그에게 무적철검이라는 별호를 지어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이었지, 우습지 않게도 말이다.

무적철검(無敵鐵劍) 철운양.

대사형이 철혈의 도전에 나선지 오 년, 그 이름은 신화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주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전쟁 고아로 떠돌던 거지가 철혈성에 들어와, 우연히 성주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되면서 철가성을 받고 이십년만의 일이었으니까. 

헌데... 그 며칠 후, 대사형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성에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성을 떠났다는 등, 수 많은 의문만을 남겨 놓은 채.

그 때 당시, 비영검단을 이끌고 섬서일대를 휘젓고 다니던 고봉천은 대사형이 사랑하는 것은 검뿐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소문을 헛소문이라고 단정 했었다. 

대사형이 사라진 후, 성은 수많은 도전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되는 철혈의 도전이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질시했던 대사형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었나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수많은 난관을 뚫고 대사형이 다음 대 성주 후보가 되었을 때,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던가. 

나이 먹은 자들은 자신들의 후계자를 그 자리에 올리지 못해서, 그들의 후계자라는 자들은 연고도 없는 비렁뱅이가 어찌 성주가 될 수 있느냐며 반대를 했었다. 오직 젊은 무사들만이 자신들의 영웅을 환호할 뿐이었다.

그러다 그가 느닷없이 사라지고 나자, 그들은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빈자리는 감히 그들이 채울 수 없는 커다란 공백이었다는 것을.            

처음에는 그가 있고 없고 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 했었다. 

철혈의 도전이라는 것이 일대 일의 도전이었고, 그 도전에 맞설 고수들이 철혈성에는 즐비했으니까. 헌데...

일 년이 지났다. 

두 번의 도전을 모두 막아 냈다. 십수명의 고수들을 희생시키고.

이년 째, 다섯 번의 도전이 이루어졌다. 

네 번을 막아 내고 한 번은 막아 내지 못했다. 백여 명에 달하는 고수들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그러고도 철혈성은 감숙으로 넘어가는 연천일대를 현천문에 넘겨 줘야 했다.

삼년 째, 마침내 종남이 검을 들이댔다. 

사년 째, 화산도 검을 들이댄다.

오년이 되었을 때, 성주인 철혈패황 철무경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철운성이 성주가 되었다. 그러자 섬서의 대문파들이 앞다투어 도전을 신청했다.

육 년이 지났을 때, 철혈성은 성문을 닫고, 앞으로 철혈의 도전은 더 이상 존재치 않음을 선언했다. 

수백 고수가 죽어간 철혈성은 더 이상 무사들에게 꿈의 대지가 아니었다. 무사들의 무덤일 뿐. 

철혈의 무사들이 하나 둘 떠나간 철혈성은 본성의 제자들만이 남은 채 오랜 침묵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철혈성이 단 육 년만에 거대한 힘을 모두 잃어버리자, 분란이 일었던 각지역이 허공에 뜨면서 각 문파 간에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야말로 섬서일대가 피냄새로 뒤덮이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그 싸움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종남과 화산이 더 이상의 분쟁을 용납치 않겠다는 포고령을 내린 것이다. 섬서에서 감히 두 문파의 비위를 거스릴 문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우습게도 그 덕분에 철혈성 역시 그 존재나마 보존할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