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3화 (193/200)

"적상! 안으로 들어가 문을 열고 살펴봐라!"

오적상이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장원의 담장을 넘어갔다. 그리고.

끼이익...

경첩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문이 열렸다.

장원의 안은 적막감만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도 고요해서 등줄기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쿠르르릉...

하늘 저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려 온다.

그 소리에 장호가 흠칫 몸을 떨더니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표사들이 앞다투어 장원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밖에 남은 것은 유현명과 휘 일행, 그리고 마차 뿐이었다. 

오적상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방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어둠이 방안을 고요함으로 물들이며 덮어 버린 것처럼... 

헌데... 저벅 저벅, 천천히 두어 걸음 들어 갔을 때였다. 어둑한 방 안쪽, 침상에 옆으로 돌아 누워 있는 여인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흡! 이크!' 

오적상은 자신이 실수한 것 같아 다급히 뒤돌아 섰다. 순간, 돌아서던 그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마음을 고쳐 먹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 문득 어둠 속에 여인의 축 처진 손이 보였다. 

앙상한... 뼈 위에 거죽만 씌운 것 같은 손이... 

그 자리에 서서 굳은 눈으로 다시 여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제야 오적상은 그 여인이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리고 오적상은 볼 수 있었다. 

휑한 눈, 바짝 말라 버린 얼굴. 백골에 살가죽만 씌워져 있는 기괴한 시신이 어스름한 어둠을 등지고 누워 있는 모습을.

"헉! 이런!"

헛바람 들이키는 소리와 함께 오적상의 급한 외침이 안에서 터져 나오자, 유현명이 말에서 신형을 날렸다.

"자네들은 이 곳에 있게!"

휘와 두 사람에게 일갈을 남긴 채.

휘는 유현명이 들어간 장원을 보다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오적상은 들어가서야 상황을 알았다. 유현명은 자신의 말을 듣고서 거기에 생각이 미쳤고. 그리고 자신은 묘한 기분을 느끼긴 했으나 정확한 것은 알지 못했었다. 헌데.... 마차 속의 여인은 어떻게 자신보다 먼저 장원에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사람이...

'설마? 무공을 익혔단 말인가? 그것도 내가 알아볼 수 없을 경지에 이른 무공을?'

휘가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하늘이 울어 댄다.

콰르릉!!

점점 커지는 천둥소리, 하늘은 먹구름에 뒤덮여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 것만 같다. 

휘가 마차의 여인에 대해 생각에 빠져 있자 초평우가 다가왔다.

"형님, 어째 기분이...."

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를 바라봤다. 순간, 나직이 들려 오는 여인의 전음.

<그대가 무슨 생각하시는 줄은 알고 있어요. 그 일은 나중에 설명을 해 줄 테니 우선 아가씨를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겠어요.>

마차 안에 있는 중년부인의 목소리였다. 

휘는 놀라지 않을 수없었다. 며칠간의 여행에도 태연한 것을 보고 그녀가 무공을 익혔을 거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마차의 벽을 뚫고 전음을 보낼 정도라는 것은 휘의 예상 밖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행동을 눈으로 본 듯 말하고 있다.

"초형, 풍형. 일단 우리는 마차를 지킵시다."

"예? 마차야..."

초평우가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하려다 휘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있는 것을 보고 말문을 닫았다. 저런 표정일 때는 얌전히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이미 수차례 경험 했었으니...  

두 사람이 마차의 좌우로 가서 어깨를 펴고 서자 휘의 신형이 마차의 지붕으로 날아 올랐다.

지붕 위에서 오연히 사방을 훑어보는 휘의 모습은 마치 고목 위에서 먹이감을 찾는 독응의 모습과도 같았다.

일각이 지나자 장원에서 오적상이 나왔다. 그의 안색이 하얗게 굳은 걸로 보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지만, 휘는 움직이지 않고 눈만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오적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조형, 유사숙께서 마차와 함께 들어 오라 하시오."

오적상의 말에 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차를 내려왔다.

초평가 마차를 몰고 안으로 들어가자 표사들이 횃불을 켜 들고 사방을 수색하고 있었다. 그 때 유현명이 방에서 나오더니 휘에게 말했다.

"마차 안의 손님을 모시고 들어오게."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마차의 문이 열리고 두 여인이 내려섰다. 휘는 젊은 여인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중년여인을 직시했다. 순간, 다시 들려 오는 전음.

<아직은 묻지 말아요. 때가 되면 말해 줄 테니...>

휘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이 자리에서 묻기도 그런지라 일단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리고 젊은 여인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겨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왠지 어둡게만 보인다. 언뜻 눈에는 눈물이 맺힌 듯 보였다. 헌데...

'엇? 그러고 보니 저 여인의 모습이...'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생소한 모습이다. 분명 몇 번을 봤거늘, 눈을 빼고는 어떤 곳도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입도, 코도, 전체적인 윤곽도... 

휘는 놀람을 가라앉히고 그녀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왜지...?'  

방으로 들어가자 유현명이 서서 일행을 맞이했다. 방안에는 다탁과 네 개의 의자만이 놓여 있을 뿐, 침상은 없는 걸로 봐서 단순히 손님을 접대하는 방인 듯했다. 

두 여인을 의자에 앉히고 유현명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원에서 시신 여섯 구를 찾아냈소."

"아!"

젊은 여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기이한 일이었다. 놀람이 아닌 탄식이라니...

그러나 유현명은 미처 느끼지 못했는지 여인을 보고 단호한 어조로 계속 말했다.

"이들은 실상 우리 식구나 마찬가지의 사람이었소. 표국에서 은퇴한 후 이 곳에서 노후를 보내던 사람이오. 얼마 전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들이었소. 헌데... 모두 죽었소.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해서 조사를 할 생각이오. 표행이 하루이틀 늦춰질 수가 있소."

말을 잠시 멈춘 유현명이 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일을 간과할 수가 없네. 해서 조사를 할 생각이네. 자네들이 떠나겠다면 지금까지의 임금을 주겠네. 판단은 자네들이 하도록."

휘가 막 입을 열어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 할 때였다. 여인이 나직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도... 지금 떠나서는 안 되요..."

의아한 표정으로 유현명이 여인을 쳐다보았다.

"무슨...?"

"한가지... 묻겠어요."

여인이 떨리는 눈으로 유현명과 오적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죽은 사람들... 모두 백골이 아니던가요?"

유현명의 표정이 흠칫 굳어졌다. 오적상도 입을 벌리고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에 발견한 여인의 시신 이외에도 다섯 구의 시신을 더 발견했다. 개중에는 허리가 부러진 시신도 있었고, 머리가 잘려진 시신도 있었다. 그러나 공통점은 모두가 백골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여인은 그 시신들을 보지 않았다. 누가 말해주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도 마치 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유현명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여인을 직시했다.

"어떻게 알았소?!"

여인이 말했다.

"그게 중요한 가요? 아니면 왜 죽었나가 중요한 가요?"

유현명은 일시지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풋내기도 아니었고, 어리석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의 질문에 미처 그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음... 우선... 그들이 왜 죽었다 생각하시오?"

젊은 여인의 눈이 다시 가늘게 떨렸다. 그러자 옆의 중년여인이 나서며 그녀를 말렸다.

"아가씨, 좀 쉬었다가..."

중년여인이 나서자 유현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하던 말부터 하고 쉬어도 늦지 않소."

중년여인이 유현명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아가씨를 함부로 몰아치는 유현명이 마음에 안 들었다.

"아가씨께선 심기가 많이 상하셨어요. 너무 몰아치지 않았으면 싶군요. 그리고... 아가씨가 굳이 대답을 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먼저 말을 한 것은 저 낭자외다!"

"흥! 그렇다고 해서 꼭 말을 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 같군요!"

유현명과 중년여인의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몸에서 기세가 흘러나왔다. 순간 유현명은 중년여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결코 자신보다 못하지 않음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껏 몰랐던 사실에 눈빛마저 싸늘히 굳어질 정도였다.

"내가 미처 대단한 고수를 몰라봤군!"

두 사람이 느닷없이 기세싸움을 하자 난처한 것은 중간에 끼인 젊은 여인이었다. 

휘는 젊은 여인의 하얀 안색이 더욱 창백히 변해가자 조용히 한소리를 내질렀다.

"두 분 때문에 곤란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나 하는지..."

"어맛!"

"음..."

유현명은 침음성을 흘리며 씁쓸한 웃음을 짓고, 중년여인은 자신의 실수로 자신이 모시는 아가씨가 힘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괜찮아요."

젊은 여인이 휘를 돌아보았다.

"고마워요."

언뜻 웃음이 배인 인사에 휘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곤란한 사람은 아가씨만이 아니었습니다."

휘의 말에 눈을 약간 치켜 뜬 여인이 다시 유현명을 바라보았다.

'의외군. 뾰루퉁한 표정이라니....훗!'

휘가 속으로 웃음을 지을 때 여인이 유현명을 향해 말했다.

"이 장원의 사람들은... 악귀를 만났어요."

"악귀?"

"그래요, 악귀. 그것도 지독한 악귀죠."

어이가 없는지 유현명의 얼굴에 허탈한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유대협, 세상에 악귀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슨...?"

눈살을 찌푸린 유현명이 반문을 하려다 무엇이 생각났는지 얼굴이 딱딱하니 굳어졌다. 그러자 여인이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저는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을 알고 있어요. 그 자는 사람을 죽이고 원기를 자신이 키우는 악귀들에게 나누어 주죠."

오싹한 한기가 방안을 맴돌았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가 이 곳에 온 것 같아요."

그리고 그녀의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서.설마... 귀마련의 귀혼...유사(鬼魂幽邪)?!"

유현명이 대경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소리친 것이다. 그러자 그녀가 전의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말....? 헌데... 그가 왜???"

유현명은 그녀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일 거라 직감했다. 

그자, 귀혼유사라면 장원에서 일어난 일이 설명이 되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오사(五邪)의 한 사람으로 칠패의 한 곳인 귀마련의 호법이었다. 그런 그가 왜 귀마련에서 천리도 더 떨어진 이런 곳에 와서 하찮은 산골 구석의 장원을 덮친단 말인가?  

유현명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자 여인이 단정짓듯 말했다. 처연한 음성으로.

"그자는... 나를 죽이러 왔을 거예요."

모용서하

쿵!!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귀혼유사가 이 곳에 왔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거늘 무슨 말을 할 건가?    

"대체... 그대는 누군가?" 

마침내 유현명이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을 꺼냈다. 이번 표행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절대 자신들의 신분을 알려 하지 마라-는 것이었으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인이 마지 못한 듯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아가씨..." 

"괜찮아요. 유모. 어차피 어려움을 함께 뚫고 가야할 사람들이에요. 알 수있는 건 알아야 대처하는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이미 일은 시작 되었는걸요. 제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빌었지만..." 

"하기는..." 

중년여인이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은... 모용서하에요." 

".....?" 

"모용성에 진자 광자 쓰시는 분이 제 조부님이시죠." 

"...맙소사!!" 

유현명이 탄식하듯 말을 뱉으며 아연한 표정을 짓자, 휘와 풍인강,그리고 오적상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유현명을 바라보고, 초평우만이 눈을 왕방울만하게 뜨고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용혈궁주 광룡(光龍) 모용진광??!!" 

쿠궁!!! 

경악이 장내를 휩쓸고 지나갔다.  

오적상은 그제야 저 냉정한 사숙이 놀란 것을 이해 했는지, 말도 잊고 모용서하를 바라보지만.  

‘왜 용혈궁주의 손녀가 달랑 유모 한명만 데리고 여행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보표가 필요하면 용혈궁에 말하면 될텐데 왜 표국에다 보표를 부탁한단 말이가? 그것도 비밀로... 정말 용혈궁주의 손녀가 맞기나 한건가?‘ 

의문이 꼬리를 잇자, 머리 속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여 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풍인강이 그러했고, 휘가 그러했다. 

휘가 초평우를 바라보았다. 초평우가 즉시 입을 열었다. 

"모용진광은 칠패 중 하나인 용혈궁의 궁주로 광룡이라 불립니다. 또 달리 젊을 때는 광무신룡(狂武神龍)이라고도 불렸지요. 음... 그런데... 들리기로는 지금 몸이 안 좋다고 하던데..." 

"그래서요?" 

"....예?" 

"단순히 그 사람의 손녀라는 것 때문에 지금 이일이 벌어졌다는 것인가요?" 

휘의 한마디에 뜨겁게 달아 올랐던 공기가 한순간에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귀혼유사라는 사람이 아무리 제 정신이 아니어도 그렇지, 그저 용혈궁주의 손녀이니 죽이려 한다? 별 원한도 없는데? 여기까지 와서?" 

휘가 말을 하며 모용서하를 바라보았다. 

"두 곳이 전쟁 중이라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느닷없이 왜 그런 모험을 한단 말이오? 혹 그럴 만한 확실한 이유가 있소?" 

모용서하가 감탄한 눈으로 휘를 보며 말했다.     

"물론 이유가 있어서 에요." 

놀란 마음을 누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유현명이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혹시 후계문제 때문이 아니오? 낭자가 진짜 모용궁주의 손녀라면 말이오."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에요.” 

모용서하가 슬픈 표정으로 지으며 고개를 숙이자 유현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헌데 모용궁주에게는 자식이 없는 걸로 아오만..."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죠. 오래 전 용혈궁을 떠났을 뿐..." 

"맙소사! ...그럼 ...낭자가 바로 무녀(巫女)와 떠났다는....?" 

그녀의 말에 뭔가가 생각난 듯 유현명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하다 아차 싶었는지 말을 멈췄다.   

그 때였다.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도 될 거 같군요." 

휘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밖을 보며 나직이 말하고, 순간. 

"킬킬킬!!!" 

철판을 긁어 대는 듯한 귀소가 밖에서 들려 왔다. 

"으악!" 

"뭐.뭐야? 크억!" 

"이런!" 

동시에 터진 느닷없는 비명소리. 놀란 유현명과 오적상이 밖으로 다급히 뛰쳐나갔다. 그러자 모용서하가 중년여인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유모, 방 안에 방혼진(防魂陣)을 치세요!" 

"예, 아가씨!" 

유모가 품 속에서 하나의 목갑을 꺼내더니 재빠르게 방을 한 바퀴 돌았다. 순식간에 서른 두 곳에 하얀 나무 막대기가 꽂혔다. 그러자 꽂힌 나무 막대기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며 피어 올랐다.  

모용서하가 다시 소리쳤다. 

"삼십육방을 모두 점하세요!" 

멈칫한 유모가 모용서하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어요. 어서요!" 

"하지만..." 

"죽고 나면 아무 소용도 없어요." 

유모는 할 수 없다는 듯 품 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네 개의 금빛 비녀를 꺼내더니 동서남북 네 곳에 꽂힌 하얀 막대기 앞에 깊이 꽂아 넣었다. 순간, 은은한 금빛이 도는 안개가 금빛비녀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나무막대기 위를 맴돌았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모용서하가 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금령방혼진를 펼쳤어요. 밖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었다. 기문진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세상 만물의 이치를 뒤집기도 한다는 말은 들었었다. 자칫 말려들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된다는 말도 들었었다. 만물의 이치를 모르고는 펼칠 수도 거둘 수도 없다 하던데... 그럼 모용서하는 그러한 이치를 깨우쳤단 말인가? 아차! 그건 그렇고... 

휘가 굳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어찌 되는 것이오?" 

"유대협은 고수예요. 귀혼유사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은... 무사하기만 빌어야죠." 

그녀가 안타까운 눈으로 밖을 보자 휘가 차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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