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0화 핵 쓰다 걸려서 빙의당했다
"영구 정지라고······?"
예상치 못한 메일에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를 종료했다. 욱 하고 치밀어오르는 감정에 순간적으로 어지러움까지 느껴질 정도였지만, 가까스로 가라앉혔다.
실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언젠가 걸려서 제재를 당할 것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영정이라니. 내가 이 게임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엘 시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당장이라도 화면 밖으로 튀어나올 법한 입체감 있는 캐릭터들, 역대 최고의 그래픽으로 현시대 최고의 RPG 게임이라 평가받는 수작이었다.
트레일러 영상이 공개되는 시점에서부터 전세계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킬 만큼 인기가 높았지만 그 인기는 순식간에 사그러들었다.
발매와 동시에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대흥한 게임이 나락으로 간 이유는 단 하나였다.
토 나올 정도의 정신나간 난이도.
아무리 현질을 한다 한들 인간이 지닌 순발력과 손가락 근육으로는 클리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어려웠기에 대다수의 유저들은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환불 요청을 하기 일수였다.
그나마 남아있던 재능충들도 겨우 스토리 절반까지 진행했을 뿐, 그 누구도 게임의 엔딩을 본 적은 없었다.
나만 빼고.
"아니, 개발자 그 미친놈들. 진심으로 단순 컨트롤로 엔딩까지 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엘 시드는 현실 세계의 법칙을 기반으로, 완벽한 물리&화학 엔진을 구현한 갓겜이었지만 그건 오히려 게임의 난이도를 수직상승시키는 가장 큰 요소였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갖추어도 절대 이길 수 없는 보스가 나오질 않나, 하나당 적어도 5분은 걸리는 몬스터 수십 마리를 10분 안에 클리어해야 하는것도 모자라 맨몸으로 지옥불을 견뎌내야 하는 미친 퀘스트도 있었다.
내로라하는 프로게이머들조차 수십, 수백만원을 들인 전설급 장비들을 들고도 좌절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난 엘 시드의 끝판왕까지 깬 유일한 유저였다.
내 게임실력은 특출나지 않다. 오히려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똥손에 가까웠다.
대체 어떻게 했냐고?
뭐긴 뭐야.
그야 당연히 핵 쓴 거지.
'장비빨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한 학기 등록금과 피팅 모델 알바비를 현질로 날렸음에도 소용 없음을 깨달은 뒤 이 악물고 인터넷 바닥까지 뒤져가며 어렵게 구한 것이었다.
물론 그 핵 또한 거금을 주고 구매해야 했지만, 현질로 날린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직 엘 시드를 위해 만들어진 전용 핵 파일, 통칭 '뉴클리어 런쳐'.
핵 발사대라는 이름답게 물리 법칙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는 개사기 능력이었다.
단순 무적화부터 시작해서 거대 운석 소환까지, 불가능은 없었다.
공략하는데만 한 달 가까이 걸렸던 튜토리얼 보스 따위는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삭제시켰고, 최종 보스마저도 하루 만에 결국 클리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날 이야기일 뿐이다.
난 다시는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냥 아이디 삭제나 하자······ 괜히 게시판에서 핵 유저로 까이기 전에."
체념한 상태로 게임 사이트에 들어가 내 정보에 들어가자, '영구 정지'라는 딱지가 버젓이 보였다.
전 서버에서 유일하게 엔딩을 본 아이디.
난 미련없이 과감하게 삭제를 눌렀다.
[오류가 발생합니다.]
"오류? 뭐야 이거."
대뜸없이 뜬 오류 메세지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영정먹으면 자기 마음대로 아이디 삭제도 못해?
아무리 개발사라도 그건 개인의 자유의지였다.
난 다시 한번 삭제를 클릭했다.
[오류가 발생합니다.]
또다시 뜬 오류.
이쯤되면 없던 오기도 생길 판이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짜증을 가득 담아 삭제 버튼을 연타하자, 그제서야 오류가 고쳐진듯 화면이 잠잠해졌다.
"그래, 이래야 정상-"
- 띠링!
[오류가 발생합니다!]
"어?"
안심하고 의자 등허리에 편안하게 기댄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오류 메세지가 컴퓨터 화면에서 벗어나, 바로 앞 허공에서 뜨고 있었으니까.
"뭐, 뭐야! 뭐냐고 이거!"
[오류가 발생합니다!]
[오류가 발생합니다!]
[오류가 발생합니다!]
[오류가 발생합니다!]
[오류가 발생합니다!]
귓가를 가득 채우는 경고창 소리를 뒤로하고, 서서히 의식이 아득해지며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