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화 초신성의 등장
"하루 3번 제한에, 24시간 안에 쓴 핵은 반복 발동이 안된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고창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이러면 완전 유리 대포 신세나 다를 바 없는거 아닌가? 빌런들과 마수들이 판치고 다니는 세상에서 하루 3번으로 버티라니.
전형적인 악질 희망고문 그 자체였다.
"끄으으···, 크으으윽···."
연신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도왕에게 고개를 돌리자 제우스의 철퇴에 당해 흉측해진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내가 한 번에 끝내기 위한 절명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지금 저 모습이 내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섬짓함이 몰려왔다. 까딱하면 방금 싸움에서 목숨을 잃을 뻔 했으니까. 어줍잖은 기술로 횟수를 낭비했다면 꼼짝없이 죽었을 거다.
"일단 마도왕부터 마무리 해야겠네."
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에게로 다가갔다. 이미 의식이 끊어진듯 보이는 마도왕은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 콰드득!
녹아내린 살점 위로 발을 올려 짓밟자, 뼈가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이 반대로 돌아갔다.
번개로 몸 내부가 완전히 망가졌는지 별다른 힘을 주지 않고도 쉽게 돌아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떻게든 아카데미에 입학부터 해야겠어."
뉴클리어 런쳐에 결함이 있다는 걸 알게된 이상, 절대로 혼자서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특히나 하루 3번 횟수 제한은 상당한 리스크였기에 서포트를 받을 수 있는 강력한 팀이 필요했다.
주인공인 클라디스를 예정대로 성장시키고, 다른 조연 캐릭터 중에서도 최고 실력자들만 골라 스토리를 진행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클리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단 아카데미 인사위원회에 면담 신청부터 해야-
- 찰칵!
"마, 말도 안돼···!"
뭐지?
뜬금없이 들려오는 카메라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몰려온 기자들과 영웅들이 인근 지역을 봉쇄하고 있었다.
"마도왕이 죽었다고? 이게 무슨···!"
"설마 저 사람이 한 거야?"
"난 아까 봤어! 저 남자가 하늘에 손을 뻗더니 황금 번개가 내리쳤다고!"
군중들 사이에서 시작된 웅성거림은 점차 그 크기가 커지더니, 이내 어마어마한 함성으로 돌변했다. 순간적으로 월드컵 경기장이 연상되는 크기였다.
"데일리 뉴스 박지현 기자입니다! 인터뷰 가능하신지요!!"
"본인께서 직접 마도왕을 쓰러뜨리신 겁니까? 한마디만 해주세요!"
"방금 일어난 낙뢰 현상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 찰칵! 찰칵! 찰칵!
연신 울려대는 셔터 소리와 기자들의 아우성에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절대 정신'이 발동중임에도 불구하고 멘탈이 흔들릴 정도였다.
계속되는 질문 세례에 짜증이 턱 밑까지 차오르기 직전,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요원들이 기자들을 제치고 나를 둘러쌌다.
그중 팀장으로 보이는 덩치 큰 사내 한 명이 내게 속삭였다.
"이곳에 계시다간 더욱 복잡해지실 겁니다. 저희 영웅 협회에서 모시겠습니다."
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게임 속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많은 일을 겪어버렸다.
'피곤하네.'
하지만 단순히 피로의 표현일 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한숨을 내쉬자 주변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열심히 입을 움직이던 기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문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협회 소속 요원들은 애써 떨리는 팔다리를 붙잡고 최대의 공손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들 저러는 거지?
"호, 혹시라도 기분이 불쾌해지신 것이라면 대단히 죄송합니다. 아, 아무런 불편함 없이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 설마···.
내 눈치를 보고 겁을 먹은 건가?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
"부디 화를 거두어주시길 간청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정확한 추측이었다.
자신을 팀장이라 밝힌 남자가 허리 숙여 내게 사과하자, 다른 요원들 역시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기자들 역시 슬금슬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이런 걸 바란 적은 없었기에 꽤나 난처했다.
"괜찮습니다. 다들 궁금하시니 물어보신 것이겠지요. 단지 피로가 쌓여 조금 지쳤을 뿐입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긴장을 풀도록 싱긋 웃으며 이야기하자, 깊게 감동받았다는 듯 팀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다른 이들도 그제서야 안심했는지 굳어있던 표정을 풀었다.
"이쪽입니다."
모세의 기적 마냥 갈라진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자, 고급스러운 독일제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정색 바탕 사이사이에 박힌 고급 브랜드 마크를 보아하니 대충 봐도 어마어마하게 비싸 보이는 차였다.
'이 정도로 비싼 차를 손님 하나 모시는데 보냈다라···'
번듯하게 차렷 자세를 유지한 요원이 뒷문을 열어주자, 편안해 보이는 가죽 시트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를 따라 앞자리 보조석에 팀장이 앉자, 차가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탑승감은 괜찮으십니까?"
"문제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 불편하게 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아닙니다! 한국 영웅 협회장님께서 직접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 영웅 협회장이라.
어느 정도 거물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 외로 아주 큰 거물이었다.
거대 길드장이나 기업의 회장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마도왕이 쓰러지자마자 내게 사람을 보냈다는 뜻은······
"협회장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었나 봅니다?"
- 흠칫.
내 말에 한차례 어깨를 들썩인 팀장이 눈을 내리깔았다.
역시나.
"단순히 궁금해서 그러는 거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협회장님께서는 안전하십니까?"
"예! 덕분에 협회장님께서는 안전하게 본부로 피신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등을 기대누웠다. 마도왕은 나한테 맡기고 자신은 본부에 숨은 협회장이 괘씸하긴 했지만 이 이상 따질 생각은 없었다.
그가 죽지 않는게 훨씬 더 이득이기도 하니까.
"도착했습니다."
출발할 때와 같이 부드럽게 정차한 차에서 내리자 거대한 고층 빌딩이 시선을 끌었다.
'한국 영웅 협회'라는 글자가 새겨진 건물에 들어서자, 일렬로 정렬한 직원들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한국 영웅 협회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슨 영화도 아니고 이게 뭐야.
"아니, 다들 왜 그러시는건지."
솔직히 말하면 꽤나 부담스러웠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던 내게 이런 극빈 대접은 금시초문이었다.
그러자 팀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마도왕을 쓰러뜨리신 건 세계적으로도 길이 기억될 업적입니다. '왕'급 빌런은 사실상 퇴치 불가 판정이니까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엘레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안쪽에 위치한 문을 열고 협회장실에 들어가자 중후한 풍채의 노인이 맞이해주었다.
"어서오십시오. 귀한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영웅 협회장 박태호라고 합니다."
그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한 뒤 차 한잔을 따라 내게 건너주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마도왕이 제 목숨을 노리고 있었으니까요.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쪽에서 먼저 절 죽이려 들길레 맞서 싸운 것이니까요."
차분히 고개를 끄덕인 박태호 협회장은 차를 한 번 홀짝인 뒤 본론을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다면 저희 협회에서 물심양면으로 돕고자 합니다."
"물심양면으로 도우신다라··· 물론 대가가 있겠지요?"
국내에서 한국 영웅 협회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타 대형 길드들 역시 그에 뒤지진 않지만, 협회장은 내게 굳이 협회에 소속되지 않아도 뒤를 봐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감사한 제안이었다. 이런저런 뒤처리나 비용같은 부분에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문제는 그 대가로 무엇을 요구하냐였다.
"귀인분 정도 되시는 강함이라면 전 세계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겁니다. 온갖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지겠지요."
맞는 말이었다.
내 소문이 언론과 각 업계에 퍼져나가는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을 테고, 탑 길드들부터 미국 정부까지 천문학적인 금액을 주고서라도 영입을 제안할 것이다.
헛기침으로 숨을 가다듬은 그가 진중한 말투로 질문을 건넸다.
"부디 한국에 남아주시지 않겠습니까?"
미국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한국 역시 그 다음가는 영웅 강국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활동해야 할 나로서는 굳이 외국까지 나가야할 필요가 없었다.
그에 나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좋습니다. 저도 딱히 외국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협회장은 시원하게 나온 내 답변에 눈빛을 반짝였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혹시 지금 당장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예,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가 직접 나서서라도 꼭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난 웃음을 지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국제 영웅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싶은데, 어떻게든 힘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아, 아카데미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봐도···?"
협회장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내게 되물었다.
'아카데미 입학은 18살에 가능하기에 나이 때문에 걸리는 것이겠지.'
비록 대학 1학년생이었다 해도 빠른 년생이라 만으로는 18살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문제는 없지만.
"나이 부분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올해로 딱 18살이 되니까요."
"···예?"
우물쭈물하던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는 내 말에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정녕 본모습이신 겁니까? 혹시 정말로 반로환동이라도 하신 거 아닙니까···?"
"······"
* * *
한편, 각국 언론은 새로운 거물의 등장으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모든 관심사는 마도왕의 죽음과 그를 누가 죽였냐에 몰려 있었으며, 각 나라와 정부 그리고 기업들은 한시라도 빨리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충격 보도! 마도왕을 쓰러뜨린 초신성의 등장! 대체 이 의문의 남자는 누구인가?]
[마도왕을 죽인 남자! 그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