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화 충격의 여파(2)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 길드 중 하나, 태양 길드의 부길드장.
마찬가지로 업계를 휘어잡는 또다른 대형 길드, 도성 길드의 고위 간부.
대형 언론사, 한성 일보의 편집장을 비롯한 각종 유명 인사들까지.
뿐만 아니라 각 업계의 거물이라 불리는 높으신 양반들도 여럿 있는듯 보였다.
황금 세대의 입학 시험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이들이 전원 모인 이유.
마도왕을 죽였다는 소문을 몰고 다니는 소년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이들은 그저 헛소문이라 치부하고 있었다.
마도왕이 누구인가.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꼽히는 5개의 왕좌 중, 당당히 그 일각을 차지한 괴물이다.
한낱 아카데미 입학 시험을 치루러 온 예비 생도 따위가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인사들이 참석한 두 가지였다.
전례가 없었던 '특별 시험'과 협회장의 적극적인 활동.
한국 영웅 협회장은 여러 분야에서 강력한 결정권을 발휘하는 만큼,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그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지닌 권력과 그에 대한 책임을 엄숙하게 대하는 사람인 만큼,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공정의 대명사였다.
그런 그가 직접 나서기까지 해서 만들어 낸 기회.
게다가 마찬가지로 철저하다고 소문난 아카데미 인사위원회의 허가까지.
'마도왕 살해자라는 소문을 믿지는 않지만, 얼마나 대단한 천재이길레 두 거물이 저토록 설레발을 치는 건지.'
'황금 세대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아니면 저 소년의 재능이 클라디스 에버란트를 뛰어넘는다는 소리인가···?'
'어찌됐든 예상치 않은 움직임이야. 우리 길드 쪽에서 먼저 선점해야해.'
여러가지 생각을 가지고 모여든 이들은 사뭇 기대를 가지고 특별 입학 시험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처음에 든 생각은, 그저 '특별할 것 없다' 였다.
"E급 마수마저 단번에 죽이는 걸 보니 근력은 강한 듯한데··· 다른 건 못하나?"
"아까부터 주먹만 내지르고 있군. 별다른 기술도 없이 말이야."
"신체 능력만 믿고 설치는 부류였나. 간만에 특종일 줄 알았더니 실망인데."
태양 길드의 부길드장, 유선호 역시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황금 세대와는 너무나도 비교되는군. 그중 클라디스 양은 현역 영웅에 필적할 수준이였는데 말이지."
다들 그 말에 동의하며 협회장의 안목을 지적했지만, 단 한 명.
맨 뒷자석에서 말없이 다리만 꼬은 채 앉아있던 차가운 인상의 미녀만이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상해."
주먹의 궤도가 눈에 훤히 들어오는 느려빠진 속도.
겉으로 대충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단련 따윈 하지 않은 몸.
마지막으로, 기이할 정도로 느껴지지 않는 마력.
'그런데 어떻게 D급 마수마저 한번에 죽이는 거지?'
시험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헛걸음 했다며 궁시렁대는 중, 오직 그녀만이 주의깊은 눈길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시아.
한국 최고의 길드이자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청천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현직 S급 영웅일 만큼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기에 얼굴을 가린 채로 참석한 상태였다.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아. 마력이 이렇게까지 느껴지지 않을 수가 있다고?'
마치 마력이 없는 생물체라도 되는 것 같잖아.
그렇게 중얼거린 이시아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길가의 식물조차 먼지만한 마력량 정도는 보여하고 있다.
적어도 이 세계에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아무리 적은 양의 마력이라도 가지고는 있을 터였다.
'신체 능력 쪽 초상능력을 각성한 거겠지. 꽤나 흔한 능력이긴 하지만, 각성자마다 그 강도가 다르니까.'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단순히 생각했다.
'그래, 마력도 내가 잘못 느낀 거겠-'
- 콰아앙!
일순간 울려퍼지는 굉음.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이시아가 눈을 치켜 떴다.
"뭐야? 지금 D급 마수가 즉사한 거야?"
일격에 시원하게 터져버린 마수의 머리.
그때부터 이시아는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광경에 눈을 치켜떴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한낱 시험생이 B급 마수를 일격에 터트렸어!"
"말도 안돼! 이번엔 A급 마수마저?"
"잠깐···! 이렇게 되면 S급 마수 차례잖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야!"
A급 마수마저 저항조차 못하고 죽어버렸다.
청천 길드가 자랑하는 최정예들도 불가능한 모습에 이시아는 탐욕의 눈빛을 내비쳤다.
'저 정도의 재능이라면 무조건 S급 영웅까지 성장할 거야! 어떻게든 청천 길드에 데려와야겠어!'
기존에 생각했던 예산을 넘기는 무리를 하더라도 감수할 만했다.
그만큼 눈앞이 소년이 가진 잠재력은 뛰어났다.
"아무리 그래도 S급 마수는 힘들테지. A급 마수와는 급이 다른 놈들이니까. 괜히 몸 상하기 전에 내가 나서야겠어."
겸사겸사 눈도장도 찍고, 침도 좀 발라놔야 할테니.
살며시 중얼거린 그녀가 가면을 벗고 앞으로 나서려한 순간, 소년이 하늘 위로 손을 들어올렸다.
S급 마수를 상대로 보이는 이상 행동에 장내의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쟤 지금 뭐하는 거야? 설마 S급 마수마저도 이길 수 있다 생각하는 건가?'
아무리 강하다해도 아직 입학도 채 하지못한 예비 생도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 쿠르르릉!
"뭐야?"
"번개 소리? 갑자기 웬 뜬금없는···."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둥 소리.
작게 으르렁거리듯 그 존재감을 표출한 번개가 소년의 손을 중심으로 구름 위에 모여들었다.
···창의 형상을 갖춰가면서.
"어···?"
이시아는 순간 인지 부조화라도 온듯 말을 더듬었다.
그와 동시에 팔뚝에서는 소름이 올라오며 전신에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내리쳐라."
소년의 한 마디에, 마수를 강타하는 번개의 창.
그 모습은 흡사 신화 속의 제우스를 보는 것만 같았다.
요란하게 울부짖는 번개의 폭풍 속에서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었고, 그 여파가 끝난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한국 최고의 영웅 중 한명이라는 이시아 정도만이 겨우 몸을 추스랄 수 있었다.
'마도왕이 만약 이 일격을 맞았더라면···'
살 수 있었을까?
아니, S급 마수도 눈 깜짝할 사이 소멸시켜버리는 저 공격을 마도왕이라고 해서 버틸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마도왕을···?"
'그 헛소문이 사실이었다고?'
마도왕의 시체를 밟고 서 있는 그 사진이 합성이 아니었다는 확신에, 이사아는 전율을 느꼈다.
그러나 눈독을 들이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협회장과 학장이 나란히 자리를 비우자, 멍하니 서있던 스카우터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우두커니 서 있던 그레이 주변으로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저희 도성 길드로 모시고 싶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 태양 길드의 유선호 부길드장이라고 합니다! 연봉 70억까지 맞춰드리겠습니다."
"젠장! 그럼 저희는 80···!"
"그럼 이쪽은 더···!"
마치 시장통이 연상될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이 장내에 가득차자, 소년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대놓고 불쾌함을 내비치는 그의 반응에 쩔쩔매는 것은 오히려 이시아 길드장이였다.
'저, 저 미친놈들! 왜 괜히 저 사람을 자극하는 거야? 기분 나빠하고 있잖아!'
마도왕을 쓰러뜨린 것이 확실시되는, 측정불가의 괴물.
조심히 대해도 모자랄 판에 왜들 저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엘게나 학장의 살벌한 목소리가 들이쳤다.
"다들 그만! 이제부터는 면접 시간이니까, 다들 돌아가세요."
"면접이라뇨?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오, 학장!"
"맞습니다! 그레이 군께서도 그걸 더 원하실 겁니다."
"저희는 아직 제안도 못 건넸단 말입니다! 지금은 일단-!"
그 말에 열받은 엘게나 학장이 목소리를 높이려는 순간, 그레이가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학장님."
높낮이 없는 무감정한 목소리에 주변을 둘러싼 이들은 절로 침을 삼켰다.
짜증이 잔뜩 번진 그의 표정을 보자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것이었다.
"이쪽이야, 그레이 군."
* * *
정말이지, 귀가 터지는 줄 알았다.
손 쓸 틈도 없이 둘러싸는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파격적이었다.
'너무 오버했나.'
S급 마수한테 손대지 않고 기권했을수도 있지만, 내가 지닌 핵의 위력을 테스트할 기회는 필요했다.
이곳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니까.
'확실히 위력은 엄청나. S급 마수 중에서도 맷집이 좋은 부류였는데, 한방컷이라니.'
그놈의 저주들만 아니었으면···.
"이쪽에 앉도록 해."
잡생각에 빠져 엘게나 학장을 따라가던 와중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학장실 안이었다.
순식간에 방 중앙의 책상에 앉은 그녀는 날 노려보더니 대뜸 말을 꺼냈다.
"하나만 묻고 싶은데. 당신, 목적이 뭐야?"
···당신?
엘게나 학장은 설정상 까칠하긴 해도 생도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참인간 중 하나였다.
결코 처음보는 예비 생도인 나한테 적대감을 품을 이유가 없었다.
"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죠?"
"시치미 떼지 마. 당신 정도 되는 괴물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입학하려는지 알아야겠어."
그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대답하지 않자 멋대로 오해했는지 한층 날카롭게 기세를 세운 그녀가 마력을 일으켜 나를 압박했다.
"대답해. 어째서 협회장까지 들쑤시면서··· 어라?"
그녀는 속사포처럼 쏟아내던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대뜸 화내다 말고 마치 고장난 인형처럼 우뚝 행동을 멈추고는 안구에 마력을 집중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잔뜩 떨리는 동공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 마력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