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 쓰는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12화 (13/36)

제 12화 대련(2)

태산호 교관의 발언에 대련장은 삽시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그가 누구인가.

현 아카데미 제일의 교관이자, 현역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철권'으로 불리우며 S급 영웅의 자리를 꿰찬 인물이었다.

스스로가 일선에서 물러나 생도들을 가르치길 원했을 뿐, 그 강함은 여전했다.

"정말인가···? S급 영웅이셨던 교관님이랑 대련이라니. 저 그레이라는 녀석, 불쌍하지 않아?"

"갑자기 뭐가?"

"뭐긴 뭐야. 아무리 수석이라도 상대가 교관이면 뭘 할수 있겠어."

"그런데 예전에 뉴스에서 마도왕을 죽인 사람이 쟤라고 떠들지 않았어?"

"···진심으로 그딴 소리를 믿었던 거냐, 병신아?"

생도와 교관의 대련이라니,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매치업이었다.

안그래도 성적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이라 생도측에서 민감하게 반응할만도 했다.

대련장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저 남자는 딱히 상관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하지만 미츠키는 그것이 불쾌했다.

마치 자신이 그토록 원망하는 제 아비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저 눈빛.

그레이라는 저 재수없는 자식 특유의 따분하다는 듯, 흔들림 없는 눈동자는 저절로 마음 속 열등감을 자극했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작자도 저런 눈빛으로 제 딸을 노려봤었으니까.

단지 자신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주인 그가 딸을 천대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른 장로들도 마찬가지로 그녀를 반푼이 취급했다.

'미츠키, 넌 히메노 가문의 차기 당주로서 그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헌데 지금 그 꼴은 뭐란 말이냐!'

'대체 뭐가 부족하기에 클라디스 가츠필드를 뛰어넘지 못하는 거냐! 그것이 그리도 힘들더냐?'

'아직까지도 겨우 그 정도 성취라니···. 네년은 대 히메노 가의 당주가 될 자격이 없다!'

···씨발.

또다시 머릿속을 맴도는 불쾌한 잡생각에 짜증이 솟구쳤다.

생각만 해도 절로 이가 갈려오고 주먹에 핏줄이 솟으며 잔뜩 힘이 들어갔다.

어쩌라는 걸까.

쉴 시간, 먹을 시간, 하다못해 잠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수련을 거듭했다.

자학 수준으로까지 스스로를 내몰며 최고가 되고자 했지만 돌아온 입학 시험 결과는 4위였다.

수석이나 차석도 아닌, 고작 4위.

미츠키는 그 사실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천재라고?'

어릴 적부터 지겹게 들어왔던 칭찬이었지만, 이제는 어줍잖은 위로이자 역겨운 위선이었다.

진짜 천재라는 건 눈 앞의 그레이라는 남자를 위한 말이 분명할테니까.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치하고 있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 * *

철권이라는 이명은 영웅들 뿐만 아니라 빌런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았다.

세계 영웅 랭킹에도 그 이름이 등재되어 있을 정도였다.

강원도에서 활개를 치던 A급 마수 케르베로스를 때려잡은 S급 영웅, 태산호.

그런 그가 나와 대련을 하겠답시고 마주보고 서 있었다.

"뉴스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만, 그런 소문이 있더군."

자세를 잡은 그가 차분히 내려앉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마도왕을 죽인 은거기인 한 명이 국제 영웅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라는."

"그렇습니까?"

나는 태연히 되물었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미 사진까지 대거 찍힌 마당에 별 소용 있나 싶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또 언론에서 이상한 찌라시를 뿌린다며 믿지 않는 분위기였고.'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제 막 18살이 된 풋내기가 마도왕을 죽였다는 사실을 믿는 것도 이상했으니까.

하지만 태산호 교관이 반응은 달랐다.

"그 소문을 믿지 않는 모양이군?"

어렴풋한 의심이 서린 말투.

그것을 눈치 챈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런 소문은 되려 믿는 편이 어리석은 법이지. 하지만 난 이런 생각이 들더군."

서늘함이 맴돌던 대련장이 태산호 교관의 신형을 기점으로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다.

그가 서서히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 소문의 당사자가 바로 너라면···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쿠구구구.

매끈하기 그지없는 대련장의 바닥이 거칠게 덜덜 떨렸다.

그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 일어나는 전조 현상.

백색의 아우라가 태산호 교관에게서 뿜어져나오더니, 이내 그의 주먹에 휘감아지기 시작했다.

'온다!'

허리춤에 올려놓은 주먹이 정면을 향해 쇄도하자 날카로운 파공음이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그의 초능력인 충격파가 내게 날아들었다.

마력 하나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의 몸으로 저 공격에 맞는다면 십중팔구 즉사였다.

"막아라."

【'아이기스의 방패'를 발동합니다.】

허공에 떠오르는 알림창.

지면에서 박차오른 반투명 장벽이 푸른 빛을 발산하며 충격파를 파쇄시켰다.

"무슨···?"

태산호 교관은 자신의 일격이 저토록 쉽게 막힐 줄은 몰랐다는 듯 숨을 들이켰다.

그것도 잠시, 다시금 공수도의 자세를 잡은 그가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압도당할 것만 같은 기운이 그에게서 뿜어져나왔다.

"흐읍!!"

흐릿한 잔상을 흘려대며 내질러지는 정권의 속사포.

하나하나가 막강한 에너지를 가진 충격파가 연달아 날아들었다.

정면에서 깨부수는 '철권' 특유의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아이기스의 방패 앞에서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굉음을 내뱉으며 비산하던 일격들은 장벽에 닿자마자 힘없이 사그러들 뿐이었다.

"··· 대단하군."

그가 떡하니 입을 벌린 채 감탄을 내뱉었다.

생도를 상대로 전력을 발휘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출력을 조절하기는 했지만, 스치지도 않을 줄은 몰랐다.

"내 마력 지배를 태연하게 버틴 것도 그렇고, 천재의 수준을 넘어섰군. 이쯤되면 적당히라는 생각은 버려야겠어."

태산호 교관의 주먹에서 튕겨나오는 충격파가 더욱 짙어졌다.

크기 또한 몇 배는 커져서 정면의 시야를 집어삼킬 정도였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기스의 방패는 여전히 건재하게 버티고 있었다.

'모든 걸 막는 방패라··· 말도 안되는 힘이지만, 역시 그러니까 핵인 거겠지.'

한편, S급 영웅이었던 태산호 교관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모습에 지켜보던 생도들은 아우성을 쳐 댔다.

"저, 저게 뭐야. 전체 수석이라고 말만 들었지 아예 생도의 레벨이 아니잖아?!"

"야··· 그러게 내가 아까 뭐라고 했냐. 마도왕을 죽였다는 게 찌라시가 아닐 거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마도왕이라니, 그건 좀···."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봐도 연신 허공을 잡아찢으며 쇄도하는 충격파는 공포스러웠다.

태산호 교관의 진가는 거대한 마력 용적에서 비롯되는 파괴력.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들과 같은 생도가 제자리에서 여유롭게 막고 있었다.

저 앞에서 푸르게 빛나는 방벽은 견고함을 넘어 신성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숨죽인 채 관전하던 올리비아도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과연, 저 방벽이 그레이 씨의 초능력···. 정말 어마어마한 방어력이네요."

옆에서 관전하던 클라디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맞아, 나였으면 초반 연타도 못 버티고 쓰러졌겠지."

"그런데 말이에요, 클라디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이상하다니, 뭐가?"

"저 방벽 말이에요. 무언가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이에요."

그 말에 클라디스는 다시금 그 방벽에 시야를 고정했다.

4원소를 다루며 차기 현자라고 불리는 올리비아의 의견은 결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으니까.

클라디스는 쉴 새 없이 비산하는 태산호 교관의 충격파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주먹에서 처음 날아가는 순간부터, 방벽에 도달해 사그러지는 모습까지.

"네 말이 맞아, 뭔가가 어색해. 설령 전설 등급의 방패라도 공격을 받으면 그에 따른 반동 반응이 생겨. 그런데 저건···."

"아예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느낌이죠. 비록 방어형이라고 해도 엄청난 능력을 각성한 모양이네요."

영웅들 중에서는 드물게 보조나 비전투 분야에 특화된 능력을 각성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비록 직접적인 피해는 가하지 못하겠지만, 전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결국 방어형은 태생적으로 아카데미의 경쟁 구조 특성상 끝까지 살아남기 어려웠다.

그것이 태산호 교관의 실망감을 부추겼다.

"그렇게 연타를 퍼부었는데도 멀쩡하다니, 마력 용적은 정말 타고났구나. 그래서 더 안타깝군. 그 마력으로 타격 능력을 각성했다면 엄청난 영웅으로 자리매김 했을 텐데 말이지."

힘겹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씁슬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내 신경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방벽의 유지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안 죽이고 제압할 수 있는 핵··· 빨리 기억해내야 해.'

자칫하다 '제우스의 철퇴'라도 발동시킨다면 태산호 교관은 무조건 죽을테니까.

"방벽이 옅어지는걸 보니, 마력이 바닥났나 보군. 충분히 잘했다. 그럼 이제 마무리하마."

결국 완전히 소멸해버린 방벽.

그는 길었던 대련을 끝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자세를 잡았다.

'빨리 생각해내야 해. 굳이 제압용이 아니더라도 파괴력이 떨어지는···.'

그래, 그게 있었지.

태산호 교관이 충격파를 일으켜 주먹에 실어넣기 직전, 난 재빨리 외쳤다.

"터져라."

【'연쇄 폭발'을 발동합니다.】

- 퍼펑!

"뭐, 뭐라고···?!"

등 뒤에서 일어난 예상치 못한 충격에 그가 휘청거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박거리는 그의 옆에서 붉은 빛이 점멸했다.

이윽고, 공기 중의 마력이 일그러지더니 갑작스레 불길이 치솟으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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