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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쓰는 밸런스 파괴범이 되었다-17화 (18/36)

제 17화 첫 번째 에피소드(2)

미츠키 히메노.

절벽 위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지만, 반면에 지나치게 타인에게 무관심하여 감정 없는 벽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중등부 때부터 남들과 섞이지 않고 묵묵히 수련의 길만을 걸었던 노력파였으니.

하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는 좋게 비춰지지 못했다.

그녀 본인의 무력도 강하고 출신 집안도 엄청났지만 성격이 나쁘다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혔기 때문이었다.

클라디스를 제외한다면 검으로는 견줄 상대가 없었고, 무엇보다 일본 최고의 명가인 히메노 가의 차기 당주 자리는 그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나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더더욱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날 도와준다는 생각··· 아직도 그대로야?"

떨리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간절함.

평소 보이던 무감정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감당하지 못할 슬픔과 좌절에 지쳐 도움을 갈구하는 소녀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때 말했잖아. 원한다면 얼마든지 도와준다고."

일부러 울음으로 인해 엉망이 된 얼굴에 대해 언급하진 않았다.

그녀로서는 자존심을 한풀 꺾고 나를 찾아온 것이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터였다.

"일전에 내게 한 말, 다시 설명해 줘. 부탁할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고 있어?"

"검으로 그림자를 휘두르려 하지 마라. 네 진정한 힘은 검이 아닌 그림자로부터 비롯 될 거다, 라며?"

···의외였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히 외우고 있을 줄이야.

'사실 한 귀로 듣고  흘려넘길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녀의 대답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반문했다.

"방금 그 말이 네 성장에 대한 핵심이었어. 넌 시작점부터 잘못 디뎠거든."

"뭐라고····?"

시작점부터 잘못되었다는 말에 그녀의 표정에 경련이 일었다.

이전까지의 노력을 부정하는 듯한 어조에 반박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했다.

하지만 어쩌겠어, 명백한 진실인 것을.

"클라디스 에버란트."

- 흠칫.

그녀의 어깨가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트라우마나 다름없는 라이벌을 언급했으니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난 미츠키의 착각을 통째로 뽑아낼 작정이었다.

"넌 이때까지 줄곧 클라디스를 이기려 했지만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했지. 그 이유를 알아?"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야?"

"그럴 리가. 만약 네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시작점이 잘못되었다는 말에 반박할 자격이 없다는 거니까."

- 까드득.

울음이 서린 가련한 미모와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빨 갈리는 소리에 괜스레 몸서리가 쳐졌다.

"이제 와서 울음 섞인 약한 모습 보이니까, 내가 만만해 보이나봐? 역시 너도···!"

미츠키는 울컥하는 마음에 격노를 쏟아냈지만, 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지금 같은 중요한 순간에 감정의 소용돌이에 같이 휘말릴 순 없었다.

"각성 능력의 활용."

화를 내도 되려 동요하지 않자 되려 당황하는 쪽은 미츠키였다.

두서 없이 내뱉은 내 한마디에 그녀가 눈가를 가늘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그게 영웅의 본질이야."

"갑자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네가 클라디스를 대하는 자세부터가 틀렸다는 뜻이야."

"···자세히 설명해줘."

나쁘지 않은 전개다.

보통이라면 더이상 듣지 않고 쌩하니 가버렸을 텐데, 불쾌함을 드러낼지언정 자리는 뜨지 않고 있었다.

"클라디스의 각성 능력은 검기, 그야말로 검술에 최적화된 능력이야. 하지만 넌 아니지."

"···내가 검술에 재능이 없다?"

"재능의 문제가 아닌, 효율성의 문제야. 클라디스의 강함은 검을 휘두름으로서 정점에 달하지만, 너 같은 경우는 오히려 반대가 될 수 있다고."

미츠키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나를 노려봤다.

결국 검술을 뒷전으로 두라는 말이었으니, 예상하고 있던 반응이었다.

'히메노의 피를 이은 자들은 마땅히 검의 길을 걸어야 한다.'

미츠키가 어릴 적부터 꾸준히 들어온 격언이었다.

검술 명가이니만큼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멍청해도 너무나 멍청했다.

검법과 관련된 각성 능력은 흔하지 않다. 그런데도 무조건적으로 검만을 강요한다면 개개인의 가능성을 스스로 깎아먹게 하는 격이었다.

"···내게는 하나밖에 없어. 검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 그거 하나뿐이야."

"검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야. 다만 네 각성 능력을 중점으로 둬야 한다는 의미지."

"그게 무슨···."

현시점에서 그녀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 그림자 마스터리의 강점을 스스로가 제한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림자의 활용 능력은 무궁무진해. 그림자에 관한 수련을 소홀히 한 너조차도 어렵지 않게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난 그 방법을 모르―"

"그러니까 내가 도와준다고."

미츠키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응시했다. 그 눈길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자 그녀는 조용히 팔짱을 꼈다.

고요히 오가는 적막이 지속되자, 굳게 다물린 입술에서 조심스러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네 소문은 들었어. 입학 시험 역대 최고치 기록 달성에, 마도왕까지 죽여버렸다며? 심지어 태산호 교관과 대등하게 겨루기까지."

"뭐, 사실이긴 하지."

"그럼 대체 뭐가 모자라서 나를 도와줄려는 건데?"

'그야 당연히 나는 하루 핵 3번이 한계인 개복치이고, 넌 추후에 S급은 가뿐히 뛰어넘을 인재니까 그렇지.'

일전에 만난 마도왕은 분명 세계관 최상위권의 강자였지만, 스토리가 최후반부에 다다르면 클라디스의 강함은 그를 분명하게 뛰어넘을 것이다.

미츠키 역시 마찬가지.

대다수 유저들이 간과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잠재력은 주인공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

그 정도 인재를 가만히 썩히기에는 내 입장에서 아쉬울 수밖에.

"글쎄."

"···참나. 글쎄라고? 당연히 원하는게 있으니까 선뜻 나서서 도와준다는 거겠지. 돈? 아니면 내 몸이라도 원해?"

"그럴리가. 그래도 정 네 입장에서 불편하다면 하나만 약속해주던가."

그 말에 미츠키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역시 이 녀석도 다 똑같은 남자들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외모나 몸매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미인이니 이미 여러 차례 음흉한 시선을 상대해왔을 테니까.

그러나 직후 내뱉은 내 한마디에 그 비웃음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내가 곤란할 때, 성장한 네 힘으로 좀 도와줘. 아무래도 혼자라면 버거울 일이 많은 것 같거든."

흘긋 시계를 쳐다보자, 취침 시간이 훌쩍 넘어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며 발걸음을 돌리자, 미츠키의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정말 그것 뿐이야? 너 정도 되는 사람이 원하는게 고작 그거라고?"

꽤나 미묘한 말이었다.

아무리 핵 사용자라고 해도 실전 현장에 투입된다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미각성자, 그게 나였다.

무적의 방어를 자랑하는 아이기스의 방패?

'그럼 뭐해, 지속시간이 있는데.'

심지어 24시간 내에 같은 능력은 재사용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 성장이나 신체 강화도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추후 왕급에 비견되는 대영웅으로 성장할 그녀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정작 나는 생존 장비, 그리고 아티팩트나 찾으러 다녀야 하는데.

여전히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미츠키에게 허탈하게 내뱉었다.

"난 네 생각만큼 강하지 않거든."

그날을 기점으로, 미츠키와 내 관계는 기묘한 변화를 맞이했다.

* * *

학기 초반에는 잠으로 체력을 보충하느라 바빴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마력이 없더라도 체력이나 완력 부분에서는 만족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으니까.

빙의되기 전에는 딱히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저질 체력이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혹독한 훈련을 받으니 달라질 수 있었다.

그 과정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만큼 힘들었지만.

"어느새 시간이 됐네."

화면으로 시각을 확인한 나는 부리나케 훈련장으로 뛰어갔다.

매일 저녁 7시.

미츠키와의 특별 훈련이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먼저 와 있었네?"

나름 딱 맞는 시간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매번 일찍 도착해 몸을 풀고 있었다.

살짝 땀이 맺힌 것을 보아하니 적어도 도착한 지 30분은 넘어 보였다.

"···어."

내 모습을 슬쩍 본 미츠키는 평소대로 검을 내려놓고 양반다리 자세를 취해 앉았다.

특별 훈련 시간에는 당분간 검이 아닌, 그림자에만 집중할 것.

우리 둘이 사전에 동의한 약속이었다.

"치켜떠라."

【'투시안'을 발동합니다.】

바닥에 진 얼룩조차 희미하게 보이던 시야에 미츠키를 둘러싼 그림자의 세밀한 움직임이 포착됬다.

그녀의 각성 능력인 그림자 마스터리는 그림자를 인위적으로 생성할 수도 있었지만,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그림자를 다루는 것이 먼저였다.

투시안의 발동을 확인한 후, 나는 미츠키의 등에 손을 올렸다.

【'감각 동기화'를 발동합니다.】

평소 미츠키의 한계점은 그림자로부터 칼날을 형성하여 적에게 쏘아내는 정도였다.

하지만 투시안을 발동한 상태에서 그녀에게 감각을 공유해 준다면 점차적으로 그림자 마스터리라는 능력의 본질을 깨우칠 수 있었다.

수없이 다양한 그림자 조작 능력을 포함해서, 주변 공간을 어둠으로 침식하는 기술까지 습득할 수도 있었다.

거기까지 도달한다면 현역 영웅과 견주어도 다를 바 없다.

물론 감각 동기화를 사용한다더라도 오래 걸릴 테지만.

그림자 마스터리는 다른 각성 능력과 비교해도 상당히 다루기 힘든 능력이었다. 마치 제 3의 신체 부위를 원래의 육체와 일체화시키는 과정과 비슷했다.

"···후우."

감각 동기화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 미츠키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핵 사용자가 아닌 이상, 투시안의 감각을 사용한 부담은 꽤 클 터였다.

"수고했어."

그녀에게 수건과 물병을 건네주자, 왠지 모르게 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태도로 아랫입술을 깨문 채 낚아챘다.

처음 훈련을 시작할 때는 별다른 내색이 없었는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어색하게 행동했다.

'슬슬 내가 불편한 건가?'

- 띠링!

씁쓸한 기분으로 알림을 확인하자, 이시아로부터 일주일 내내 기다렸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 이시아: 내일 방문 까먹고 있었던 거 아니죠? 예정대로 기다리고 있을게요.

주말 있을 첫 외출.

드디어 첫 에피소드의 개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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