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 ep9. 새로운 사건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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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
하린과 강서는 지금 앰버드에 탄 채 ‘읏시아의 절벽’을 내달리고 있었다. 강서가 경단을 한 개 더 먹이자 앰버드는 거의 강서의 펫이 되었다.
“몬스터를 타고 달릴 날이 올 줄이야...”
하린은 중얼거렸다. 말 그대로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하린은 테이밍 스킬이나 성흔에 대한 생각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거부감이 많았지.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개인의 호감도로 다른 사람까지 <라이딩>이 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읏시아의 절벽’ 내에서 최고의 속도를 자랑한다는 말을 방증하듯 앰버드는 엄청난 속도 내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건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이유는-
‘이쑤신장군’님이 ‘20,000원’을 후원!
[판다님 가라사대- 낚시는 허공에서 하는 법이니라....]
-ㅋㅋㅋㅋㅋ저 경단에 멍청해지는 약도 들어있는 거 아니냨ㅋㅋㅋ
-판다아재가 하니까 왜이리 쉬워 보이냐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음 솔직히
-응 아니야~
강서가 긴 막대기 끝에 실을 묶고 경단을 메어놓았기 때문. 마치 낚시를 하듯 그것을 앰버드 앞에 놓았고 앰버드는 경단을 먹기 위해 열심히 달렸지만 그 간격이 좁혀질 리가 없었다.
그 덕분에 강서는 짧은 시간 내에 보스가 있는 지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중간중간 몬스터들을 피하여 경로를 설정하는 강서의 세밀한 손길도 있었지만.
“아저씨 저기!”
하린이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강서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필드던전:읏시아의 절벽>의 주인인 ‘읏시아’가 있었다.
‘들깨칼국수’님이 ‘10,000원’을 후원!
[최단시간 클리어 각이다. 지금 몇분 지남?]
-한 시간 안 걸린 것 같은데 ㄹㅇ 킹갓 제네럴 슈퍼레이서....
던전보스인 읏시아는 굉장히 특이하게 생긴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버섯같이 생긴 몸체에 팔다리가 없는 모양. 하지만 엄청난 도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몬스터였다.
다행히 하린이 가리키고 있는 읏시아는 눈이 감겨있었다. 그 말은 즉 기습이 가능하다는 소리. 식물계열 몬스터들은 보통 방어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유리한 시작이 가능했다.
“아. 저거 안 잡을 거에요.”
“...네?”
하지만 강서는 그대로 읏시아를 지나쳐버렸다. 하린과 시청자들은 강서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사람들이 <던전:읏시아의 절벽>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읏시아’였기 때문이었다.
읏시아는 그 자체로 엄청난 아이템을 드랍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부산물의 양이 굉장히 많았다.
몸 전체가 아이템을 제작할 때 쓰이는 경화제의 재료였기 때문이었다. 그 품질도 특출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꽤나 준수한 수준이어서, 사람들이 ‘읏시아의 절벽’을 찾는 대부분의 이유는 ‘읏시아 그 자체였다.
그런 읏시아를 그냥 지나쳐 버리니 시청자들은 강서가 무엇 때문에 읏시아의 절벽에 온 것인지 궁금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여니’님이 ‘10,000원’을 후원!
[킹갓 판다사마...그럼 여기 왜 온 거에요? 앰버드 타러?]
-???: 드라이브 겸 던전 좀 와봤습니다.
-ㅋㅋㅋㅋㅋㅋ던전유랑 수준;;
“그러니까요. 저도 모르겠어요! 뭔가 재료를 찾으러 온 건 확실한데...”
강서가 몬스터병 치료준비의 일환으로 ‘읏시아의 절벽’에 온 것을 아는 하린은 그가 어떤 재료를 찾으러 왔다는 것은 확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찾으러 왔다까지 이야기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하린도 확실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강서는 계속 앰버드를 몰아 읏시아를 지나쳐 쭉 달려갔다. 지나온 경로를 보면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일직선으로 쭉 달려온 모양.
시청자들이 보기에 그 모습은 정말 이상해보였다. 보스지역을 지나면 아무것도 없는 땅이 이어지는 게 ‘읏시아의 절벽 이었으니까.
“아.”
보스를 지나서 쭉 내달리던 강서는 갑자기 소리를 뱉으며 앰버드를 조종하던 나뭇가지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앰버드가 멈춰 섰다.
“아저씨 목적지가 여기에요?”
강서가 멈춰선 곳은 굉장히 애매한 공간이었다. 보스가 있는 지역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황폐화 된 지역과 굉장히 가까웠고, 몬스터가 있기는 하지만 굉장히 적은 그런 공간.
하린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뭔가 특별할 만한 것은 없었다. 다 죽어가는 나무가 드문드문 있었고, 몬스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순대렐라’님이 ‘20,000원’을 후원!
[여기가 목적지라고?]
-이건 진짜 아무것도 없는 수준인데...
-한숨 자러 온 듯. 판다수준 유명인이면 사회보다 던전이 편하자너;;
-ㅋㅋㅋㅋ판다 도피설
-속보) 판다 계속된 관심에 지쳐 던전으로 도피해.
강서는 그 댓글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닙니다. 더 가려 했는데...하린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라고요. 더 가면 아마 아무것도 없을 거라서....”
강서의 말에 하린은 얼굴이 붉어지며 양손을 앞으로 내저었다. 사실 아침을 굶고 오기는 했지만 그런 것 까지 시청자들에게 밝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 아니에요!! 안 배고파요!!”
그 손짓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누가 봐도 억울해 보일 정도였지만-
꼬르륵-
“아니야!! 이건 모함이야!!”
‘추적60인분’님이 ‘20,000원’을 후원!
[ㅋㅋㅋㅋㅋㅋㅋ셀프 모함 수준ㅋㅋㅋㅋㅋ]
‘옥수수콧수염차’님이 ‘50,000원’을 후원!
[킹갓 판다를 멈춰 세우는 당신의 우렁참은 대체...]
-ㅋㅋㅋㅋ꼬르륵 쾅쾅
-꼬르륵 쾅쾅ㅋㅋㅋㅋㅋㅋㅋㅋ아 ㄹㅇ이건 큐튜브 클립따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ㅇㅈ 천재지변급이자너;;
더 붉어질 수 없을 것 같을 정도로 얼굴이 붉어진 하린을 두고 강서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앰버드의 넋을 놓게 했던 경단이 들어있던 것과 같은 모양의 병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초록색 경단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분홍색 액체가 담겨있었다. 강서는 뚜껑을 열고 그 액체를 바닥에 몇 방울 떨어뜨렸다.
앰버드는 강서가 바닥에 무언가를 떨어뜨리자 경단인줄 알고 환장하며 달려들어 킁킁 거렸지만-
꾸약?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는 듯이 고개를 양쪽으로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걸어가 촐싹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서는 액체가 담긴 병의 뚜껑을 닫고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은 뒤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그리고 그 종이는 시청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종이였다.
-어? 아공간 페이퍼?
바로 물품을 담아 저장하는 ‘아공간 페이퍼’하지만 강서가 꺼낸 것은 평범한 ‘아공간 페이퍼’가 아니었다. 몇몇 높은 티어의 마법사클래스 시청자들은 그 문양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저건....설마...
-진짜?
강서가 꺼낸 것은 영구 아공간 페이퍼였다.
유흔결계에서 가루다를 잡은 직후, 우연의 일치인지 강서의 화면전송이 중지되어 강서가 헤타이로를 들고 나오는 부분이 방송으로 나가지 않았다.
강서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신격에 이른 아티팩트였으니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나온 것이 밝혀지면 어떻게든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 분명.
강서가 알기로, 지금 지구에는 신격이 서린 아티팩트는 없었고, 아마 ‘신격’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아공간 페이퍼>는 헤타이로를 보관하기 위해 이번에 새로 구매한 물건이었다.
한 번 꺼내는 것이 아니라 보관하고 소지하는 것도 가능한 영구적인 페이퍼였기 때문에 일회성 소모용 아공간 페이퍼와는 가격이 차원이 달랐다.
영구적인 차원을 하나 설정해놓고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좌표가 설정되어있는 공간을 구축해야했기 때문.
게다가 금제 때문에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강서를 위해 의지에 반응하도록 하는 마법을 특수로 집어넣었다.
그 복잡한 영구 아공간 마법진에 마법진 하나를 억지로 우겨넣었으니 그 가격은 아마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영구 아공간 페이퍼와도 비교 불가능한 가격이리라.
물론 수혁이 준 카드로 구매한 것이었다.
-와 판다지아 잘 팔리긴 하나보다. 지원 진짜 빵빵하네.
강서는 아공간 페이퍼를 잡고는 ‘몽둥이’를 꺼내겠다는 의지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아공간 페이퍼에서 푸른색 빛이 나더니 거대한 몽둥이가 하나 나타났다.
-저거 오툰의 숲에서 가져온 거네.
-ㅋㅋㅋㅋㅋ평범한 무기를 안씀ㅋㅋㅋ
-근데 그거 왜 꺼낸 거에요 아재?
강서는 그 거대한 몽둥이의 손잡이를 잡았다. 몽둥이의 크기는 강서의 키보다 조금 작은 수준이었다.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았던 그 몽둥이는 생각보다 가볍게 강서의 손에 들렸다.
두두두두!
어디선가 많은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 * *
-???: 이걸 이렇게 조금 뿌리면 이렇게 <와구가>가 몰려옵니다!! 쉽죠?
-진짜ㅋㅋㅋㅋㅋㅋ
발소리의 정체는 포유계열 몬스터 <와구가>였다. 와구가는 모르모르의 친척뻘 몬스터로 생김새가 돼지와 닮았다는 것은 비슷했으나 훨씬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몬스터였다.
강서가 뿌린 액체의 냄새를 맡고 와구가들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그건 강서가 만든 특제 와구가용 먹이의 향을, 따로 농축한 액체였다.
몽둥이를 이용해 달려드는 와구가들을 쓸어버린 강서는 그 중 살이 잘 오른 한 마리를 골라 막 손질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린이 그 옆에서 조금은 애매한 표정을 강서를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하린은 결국 입을 열었다.
“아저씨...저 요리도구들을 놓고 왔는데...”
“아, 그런가요.”
강서가 던전에 들어오기 전 이번 던전은 빠르게 다녀올 거라는 말을 한 것을 기억하고 따로 챙기지 않은 것.
다행히 의도치 않게 가방에 쟁여놓은 수저를 발견했으나 굽는 것 말고는 별다른 요리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흠...김치찌개를 하려고 했는데”
강서는 고민했다. 와구가 요리의 포인트는 그 육즙을 잘 살리는 것에 있었다. 고기자체의 식감이 뛰어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와구가 고기에는 풍부한 육즙이 있었다.
그래서 김치찌개로 제격이라 생각한 것이다. 김치의 짭조름한 향과 맛이 와구가의 육즙과 어우러져 맛을 충분히 살려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
그냥 구워먹기에는 조금 아쉬운 재료였다.
“그러면 잠시 방송을 중지할까요?”
“네...? 갑자기 왜...”
하린은 강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요리도구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갑자기 방송중지로 돌아왔기 때문.
중간에 무언가가 생략되어있었다.
‘은하철도구부려’님이 ‘20,000원’을 후원!
[보고싶다. 우리. 요리를!]
-우리 의견은!
-되는 거냐. 다. 판다면!
“요리 다 되면 다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강서는 아우성을 치는 시청자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하린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화면을 닫으라는 의미.
하린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강서의 말대로 방송화면을 검은 화면으로 돌리고 마이크기능을 off로 바꿨다.
“갑자기 왜 방송화면을 돌리는 거에요? 이제 와서 요리방법 같은 걸 감출 리도 없고...”
하린의 말에 대답을 하며 강서는 속에서 다시 아공간 페이퍼를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좀 그래서요. 이걸 그대로 들고 나온 것도 알려지면 논란도 좀 있을 것 같고-.”
“....?”
그리고 의지를 불어넣어 아공간 페이퍼를 발동시킨 강서의 앞에는-
“보여주기 좀 그렇잖아요. 그래도 영웅이 만들었고, 신격에 이른 작품인데 냄비로 쓰인다는 건.”
김치를 담은 통과 물, 그리고 헤타이로가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