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Task Force! (2)
자동화 공장을 소유한 기업이나 공장주들은 대부분 공장을 신경쓰지 않는다. 최근 대세는 가상현실 사업이고, 애초에 자동화 공장은 돈만 투자하면 알아서 돈을 벌어주는 기계의 집합체였다.
그래서 불량 노동자들이 자동화 공장 내부에서 설비만 건드리지 않으면 뭘 하든 신경쓰지 않는 이들이 많았다.
정전 미로라는 침식 현상이 하필 타겟으로 삼은 것이 바로 어마어마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 공장들이었다. 산업 단지 전체의 전력을 죄다 집어삼키고, 어둠의 미로를 만들어낸다.
그 곳에서 1시간 이내에 빠져나가지 못하거나, 비상발전기를 작동시키지 못하는 인간들은 모두 실종된다. 이 사실은 극소수의 생존자들을 통해 알아낸 귀중한 정보였다.
'하지만 한국은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국가다. 몇 번이고 이런 사태를 겪어봤을 중국과는 달라!'
분명 일시적인 정전이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느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창원시에서 발생했던 최초의 정전 미로로 수 백명이나 실종되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 놈을 잡을 수만 있다면...빌어먹을!"
쓸데없는 곳에 전력을 낭비한 기동타격대를 원망하며, 김현도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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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정전이 찾아오면 보통 사람들은 크게 당황하거나, 정전은 잠깐 뿐이라며 무시해버린다.
특히 한국처럼 생활 인프라가 빈틈없이 잘 깔려 있는 선진국이라면 대부분 전력 부족에 의한 정전이 아니라, 사고에 의한 전력 누수, 혹은 일시적인 전력 차단일 확률이 높았다.
과거에는 여름철에 심심찮게 전력난을 겪은 적도 있었지만, 이미 자동화 공정으로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 대부분을 뽑아내고 있는 지금은 전력난을 겪을 일도 없었다.
국민들의 생활은 윤택해졌고, 자원을 심하게 소비해야 할 만큼 현실에 상주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가상현실 속에 처박혀서 자신만의 판타지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다.
덕분에 2050년인 지금은 정전 그 자체가 매우 희귀한 현상이 되었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에너지 부족 현상을 겪어본 적 없는 인간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정전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얘기다.
"장씨, 뭐 좀 보이는감?"
"아무것도 안 보이는구만! 공장주 양반은 최신예 설비들이니 뭐니 잔뜩 자랑질해대더니만, 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영양 통조림을 생산하는 한 자동화 공장에 갇힌 두 남자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짜증을 쏟아냈다.
장만득은 과거에 따두었던 자격증 덕분에 괜찮은 시급을 받으면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이 공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공장주가 필요한 것은 자격증을 소유한 전문가였기 때문에 고장날 일이 없는 설비를 지켜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구를 불러 대낮부터 술판을 거하게 벌이고 있었건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정전에 낭패를 겪었다.
"이 빌어먹을 스마트 패드도 배터리가 나갔구만. 세계 최고 성능이라더니, 순 사기였어!"
"일단 공장에서 나가봄세. 길이 좀 복잡하긴 해도 나가는 건 어렵지 않을...어어어어억?!"
"무, 무슨 일인가 장씨!"
"방금! 방금 뭔가가 팔을 찔렀...!"
나이를 먹은 터라 기억력이 많이 감퇴했지만, 장만득은 대략적인 공장의 구조를 외우고 있었다. 그래서 멈춘 설비들을 더듬거리며 길을 찾아나섰을 뿐인데,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자신의 팔을 찔렀다.
자신을 찌른 물건은 부피가 그렇게 큰 것 같지 않았지만, 찔릴 때의 감각은 불에 데인 것 처럼 매우 쓰라리고 고통스러웠다.
"으으...설비의 부품에 찔린 건가? 자네도 설비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게. 설비에 부딪치기라도 하면...이보게?"
장만득은 쓰라린 팔을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캄캄한 어둠은 그대로였다. 암순응이 아직 되지 않은 건 둘째치고,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던 친구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최신형 스마트 패드가 작동하지 않는다며 불평을 터뜨렸던 것이 몇 초 전의 일이었는데, 지척에서 느껴지던 그의 숨소리도 사라져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이 곳에 친구따윈 없었다는 양, 주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설마 술김에 쓰러진 건가? 아니, 그럴리가. 이 친구가 아직 나보다는 더 정정할 텐데......'
술판을 벌인지도 얼마 안 됐다. 점점 노쇠해지는 자신과는 달리 꾸준히 등산도 다니면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양반이 갑자기 쓰러졌을리가 없다.
무엇보다 갑자기 쓰러졌다면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져야 정상이다. 장만득은 비록 노쇠했을지언정, 아직 귀가 먹지는 않았다. 그런 소리는 듣지 못 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일부러 장난을 치고 있다? 그런 실없는 짓거리를 할 친구는 아니었다. 애초에 술판을 벌인 것도 늙은 자신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이긴 하나, 눈치가 없진 않았다.
'그럼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몇 번이고 눈을 비벼 보고, 일부러 팔과 다리를 넓게 휘저어서 주변의 사물을 인식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따끔한 고통과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허무한 공간 뿐이었다. 어느새 설비가 있던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듯 했다.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건가!'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설비로 가득한 구역에서 빠져나온 것도 이상하지만,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점점 이상한 공간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정말 지면을 밟고 걷고 있는 건지, 애초에 이 곳이 익숙한 공장 내부이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워질 무렵.
문득 장만득은 자신이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잡아 올렸다.
"아......!"
번개처럼 푸르게 빛나는 두 개의 거대한 눈. 검은 어둠과 푸른 눈은 서로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빛에 의해 주변이 밝혀지는 일 없이, 그저 어둠 속에 푸른 눈이 둥둥 떠있었다.
다만 두 눈에서 새어나오는 전류의 잔재들이 상당히 익숙했다. 그것은 정말 번개처럼 사방팔방 뻗어나가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에 닿았는지 짐작한 순간, 비명도 나오지 않을 만큼 강렬한 충격이 장만득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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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은 머리 속에서 펼쳐진 가상의 공장 구조도를 확인하며 자신있게 걸음을 옮겼다.
정확히 몇 걸음을 옮기면 어디에 도착하는지, 몇 분만에 도착하는지 전부 외워두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 길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강박증 덕분이기도 하지만, 공장주에게 혼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아무리 생각이 짧은 호국이라도 공장주씩이나 되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손가락 한 번 까딱이는 것 만으로도 해고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세상은 가진 자들의 세상이다, 라는 말을 행보관님으로부터 배웠다.
'가진 자들에게 반항하지 말고 순응하는 게 편하게 사는 지름길이라고도 하셨지. 그런데 순응이 뭐지?'
요컨대 반항만 하지 않으면 된다. 시키는대로 일 잘 하고, 불평불만도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면 제아무리 호국이라도 평생 직장 하나는 마련할 수 있을 터.
어느덧 미로 같은 공장의 설비 구역을 빠져나와, 관리 구역으로 들어선 호국은 발전기를 찾아냈다.
메뉴얼을 외우는 과정에서 공장의 모든 구조도 외웠기 때문에 발전기의 가동 버튼과 레버의 위치도 기억하고 있었다.
"우선 가동 버튼을 누르고, 그 다음 내려간 레버를 올려서 전력을 공급하는 거였지. 여기서 레버가 다시 내려가면 전력 누수가 일어나고 있다는 상황이니까 공장주님께 전화를 해야 한댔지."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메뉴얼대로 하면 최종적으로 공장주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었다.
즉시 메뉴얼대로 발전기를 재가동하자 쿠구구구구, 하는 거친 작동음과 함께 발전기가 작동했다. 곧 꺼져 있던 불들이 하나둘씩 들어왔고, 재부팅된 공장의 시스템은 정지되었던 공정을 다시 시작했다.
"오오...역시 메뉴얼."
인생에 몇 안 되는 자신만의 힘으로 해결한 사건에 호국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어깨가 으쓱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위풍당당하게 관리 구역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때마침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 패드가 시끄럽게 울렸다.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스마트 패드 판매원의 복잡한 설명을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36개월 할부로 산 것이었다.
"공장주님이네."
혹시 지금껏 자신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호국은 들뜬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들려온 것은 고함소리였다.
-야 인마! 너 거기서 뭐하고 있어?!
"예? 공장에 불이 꺼져서 다시 불을 켰는데요."
-불을 켰다고? 어떻게?!
"발전기 돌렸어요."
-발전기...발전기...그래, 발전기를 돌리니까 다시 불이 들어왔단 말이지?
"예."
-어디 다친 데는 없냐? 이상한 건 못 봤어? 이상한 소리는?
"없는데요. 못 봤고, 못 들었어요."
기계처럼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길을 따라 정확한 보폭을 맞춰 걸었던 호국은 별 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 했다.
갑자기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지고, 지면을 걷는 느낌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건 물어보지 않았으니 보고하지도 않았다.
-혹시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있었냐?
"아무도 없었는데요. 공장은 위험해서 허가받은 사람 아니면 절대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 그랬었지. 아무튼 멀쩡하다니 다행이다. 혹시 지금 공장 밖으로 나올 수 있냐?
호국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공장주가 빈틈없이 설치해놓은 CCTV의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아직 근무시간인데요."
-오늘은 그냥 조기 퇴근해! 시급도 그대로 쳐줄게!!
"진짜요?"
-그래! 네 짐은 내가 나중에 따로 보내줄테니까, 넌 일단 공장에서 나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을 했기 때문일까, 호국은 묘하게 자신을 배려해주는 듯한 공장주의 태도가 아주 싫지만은 않았다.
시급도 그대로 받고, 일찍 퇴근할 수도 있다니. 운수 좋은 날이라며 공장의 문을 열고 나선 그 순간이었다.
"나왔다!"
"잡아! 못 움직이게 해!"
"묶어, 묶어!"
"빨리 차량에 태워! 국내 1호 생존자다!!
밝은 햇빛과 함께 문 너머에서 등장한 검은 복장의 사내들이 호국을 붙잡았다.
'뭐지? 깜짝 파티인가?'
군에 있을 시절, 이런 식으로 깜짝 생일 파티를 맞은 적이 있는 호국은 당황보다는 의문을 느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일은 아직 두 달이나 남아있었으니까.
사내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들린 채 강제로 군용 장갑차에 실린 호국은 멀뚱멀뚱 주위를 살폈다.
"아직 제 생일이 아닌데요."
"...뭐라는 거야? 정전 미로에 있었던 탓에 정신이 나간 건가?"
"안정제라도 투여 할까? 그런 것 치곤 지나치게 멀쩡해보이는데......"
"됐어. 괜히 안정제 투여했다가 연구팀한테 한 소리 들을라. 멀쩡한 상태로 데려가는 게 나아."
"빨리 TF 본부에 연락해. 국내 1호 생존자 확보했다고."
사내들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화 속에서도 호국은 단 한가지 단어만은 확실하게 잡아냈다.
'TF? Task Force? 와!'
국방의 부름 : 삽질 워페어에서 등장한 태스크 포스, 통칭 TF는 국제적 테러리스트 단체를 싹 쓸어버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맺어진 특수부대 팀이었다.
그 TF에서 자신을 찾고 있다는 말에 호국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이처럼 들떴다.
TF에 간다면 비누 소위와 가격 대위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국방의 부름 시리즈 팬으로써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사인 받아야지.'
조기 퇴근한다는 생각은 뒷전으로 미뤄둔 호국은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얌전히 목적지에 다다르기를 기다렸다.
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