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1화 (11/209)

경비 업무 일지 : 1일째(6)

호국은 딜러의 머리를 잡아채 그대로 테이블 위에 처박았다.

상대가 아무리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해도 경비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비록 국가의 녹을 받아먹고 사는 공무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TF에 고용되어 시설 경비라는 막중한 책무를 떠맡았다.

그런 경비에게 돈다발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내밀다니? 이건 대놓고 자신들을 잘 봐달라는 의미였다.

몇몇 범죄 영화나 게임에서도 이런 상황이 제법 많았다. 범죄자들은 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다짜고짜 억대의 돈을 내밀기도 하며, 그게 먹히지 않으면 총이나 칼을 뽑아들고 위협한다.

즉 호국이 이 뇌물을 거부한 순간부터 상대는 호국을 회유 대상이 아닌 협박 대상으로 간주했다는 얘기다. 옛 시대의 유물에선 하나같이 그런 묘사들 밖에 없었으니, 호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했다.

"날 뇌물이나 받아먹은 쓰레기로 만들 속셈이었지?! 하지만 난 그렇게 멍청하지 않거든!!"

쾅! 한 번 더 테이블 위에 딜러의 머리를 내려 찍은 호국은 가드 전용 수갑을 꺼내 그녀의 양손을 뒤로 묶어 포박했다.

옛 드라마를 보면 종종 미국 경찰이 범죄자를 상대로 감정을 실어서 수갑을 꽉 조이곤 했는데, 이는 범죄자의 인권을 생각하면서도 화풀이를 하기 위한 꼼수였다.

당연히 호국도 그렇게 했다. 가녀린 그녀의 손목이 꽉 조일 만큼 수갑을 단단히 채웠다.

"넌 오늘 아주 콩밥 먹는거야."

호국은 이대로 딜러를 체포해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경찰은 억대의 뇌물을 주려고 했던 딜러를 조사하고, 호국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수여할 것이 틀림없었다. 생각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았다.

테이블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중년 신사가 일어서려 하자, 호국은 재빨리 권총을 그에게 겨눴다.

"댁도 한 편이야?!"

그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호국처럼 단순히 게임을 즐기기 위해 방문한 게이머인듯 했다.

호국은 딜러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운 뒤, 재빨리 6-10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초콜릿도 챙기지 못 하고 그냥 나가는 건 아쉬웠지만, 대신 시설의 보안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범죄자를 잡았으니 만족했다.

문제는 호국이 방을 나온 직후에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손에 붙들려 있던 딜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손에 남은 것은 어느새 풀린 수갑 뿐이었다.

혹시 몰라 안을 들여다보니, 예상대로 딜러가 멀쩡한 얼굴로 테이블 옆에 서있었다.

"체포 불응도 모자라 도주를 해......?"

쾅!

다시 딜러의 머리통을 아래로 처박은 호국은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그녀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피가 통하지 않을까 의심이 될 만큼 단단하게 조였다.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콩밥에 콩반찬까지 먹게 될 거야."

하지만 방을 나서기만 하면 딜러는 유령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그 곳에는 태연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딜러와 중년 신사가 있었다.

그렇게 반복된 힘 차고 강한 체포와 현행범의 도주는 어느덧 10회를 넘기에 이르렀다.

대충 10번 쯤 테이블에 안면이 처박힌 딜러는 여전히 멀쩡했으며, 테이블에는 흠집도 없었다. 중년 신사는 착잡한 얼굴로 시가만 태우며 둘의 실랑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호국은 그녀를 직접 체포하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수갑이 불량인지, 아니면 자신이 모르는 그녀의 대단한 탈출 능력이 있는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든 체포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급 받은 스마트 패드의 안전 체크 여부에 모두 '이상 있음'으로 체크했다. 덧붙여서 기타 의견 란에는 '범죄자가 체포에 응하지 않음. 가드는 심각한 명예 회손...? 훼손을 입음.' 이라고 써넣었다.

이렇게 체크해두면 나중에 상층부에서 알아서 처리해줄거라는 의도였다. 괜히 가드가 일을 제대로 안 한 것 아니냐고 꾸중을 듣기 싫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너흰 이제 큰일난거야. 태스크 포스(TF)라고 알아? 내가 소속된 곳인데 아주 무서운 아저씨들이 많아! 그러니 알아서들 하라고!"

화가 나서 문을 거칠게 닫으며 나온 호국은 권총을 다시 집어넣었다.

군대에서 경계 근무를 설 땐 수상한 자가 명령에 불이행할 시 발포하게끔 교육 받았지만, 경비에게 뇌물을 준 범죄자를 쏴도 된다고 배운 적은 없었다.

마음 같아선 공포탄이라도 쏴서 겁을 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경위서를 써야 할 것이 두려웠다. 경위서는 종이를 빼곡이 채우지 못 하면 반려된다고 들었는데, 호국은 경위서를 가득 채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 경위서 쓰는 것 보다는 낫지.'

역시 총은 사람을 두들겨 패는 용도로 사용하는 게 가장 좋다.

총을 쏘지 않은 건 정말 잘 했다고 자화자찬한 호국은 결코 알지 못 했다. 자신이 무기 사용 여부에도 '사용했음'으로 체크해버렸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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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레드! 코드 레드! 빨리 연구 자료 챙겨!"

"다 챙긴 사람들은 서둘러 나가! 곧 시설 전체가 폐쇄될 거야!!"

"미친! 신입 가드가 오자마자 사건이 터질 줄이야! 이 시설은 진짜 마가 낀 건가?!"

"군소리 말고 얼른 연구 자료나 챙겨! 경보음이 울린지 벌써 3분이나 됐다고!!"

처리시설과 연구시설은 모두 보안 위협 사태가 발발할 경우, 중간거점의 윗층에만 경보음을 울린다. 중간거점 아래로 시끄러운 경보음을 울리면 자칫 다른 ES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중간거점 아래로 향하는 경비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이유중 하나였는데, 그들은 경보음이 울려퍼지는 것도 모른 채 업무를 속행하다가 보안 사태에 휘말려 사망하는 일이 흔했다.

보안 사태라고 하면 언뜻 대단한 사건이 벌어진 것 같지만, 사실 TF 산하의 대규모 시설에선 시도때도 없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보안 사태는 흔히 코드 오렌지, 레드, 블랙으로 나뉘는데, 우선 코드 오렌지는 시설 경비가 대거 출동하면 충분히 사태를 진압할 수 있을 만큼 낮은 위험이다. 대피 상황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코드 레드부터는 경비가 무기를 사용했음에도 사태를 해결하지 못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굉장히 위험한 ES가 은폐실에서 탈출했거나, 혹은 시스템 일부가 완전히 파괴되었기에 서둘러 시설 인원들은 대피해야 하는 상황.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한 지 10분이 지나면 시설에 누가 남아있든간에 시설의 출입구는 완벽히 폐쇄되며, 바깥에서 보안등급 2급 이상의 인물이 직접 열어야만 폐쇄 상태가 해제된다.

코드 블랙은 시설 전체가 위험에 빠진 것은 물론, 주변 지역, 나아가서 국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탈출 시간은 3분으로 한정되며, 시설 종말 프로그램이 발동한다.

그냥 시설 곳곳에 설치해둔 핵폭탄을 무자비하게 터뜨려버리는 것이다.

이는 특수 보안 등급을 자랑하는 파이널 카운트 다운(FCD)의 인물이 아닌 이상 해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그런식으로 처리된 시설들이 몇 개인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중국 동부 연안에 위치한 원자력 발전소로 위장한 지하 시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제 6 처리시설에 코드 레드가 발령되었다는 것이고, 별 다른 일감이 없어 연구실에 축 늘어져 있던 연구원들이 졸지에 피난민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 없었잖아?!"

"관리봇은 대체 뭘 했길래 경고는 커녕 정기 보고도 하지 않은 거지?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킨 건가? 12년이나 된 시스템이?!"

"그런 건 나중에 따지고, 일단 나가자고! 그 신입 경비가 경보음은 확실하게 울려줬으니, 우리라도 살아나가야지!"

"그, 그래, 일단 나가자고!"

각자의 짐과 연구 자료를 챙긴 연구원들은 앞다퉈 화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한 번에 많은 인원과 보급품이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의 규모도 작지 않았다.

10분이 지나기 전에 무사히 시설에서 탈출한 연구원들은 쌀쌀한 저녁의 바람이 몰아치는 한라산의 초입에 모여 섰다.

이윽고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던 지하의 입구가 쿠구구구, 하고 거슬리는 소음을 자아내며 문이 닫혔다.

무려 50cm 두께에 달하는 격벽이다. 설령 안에서 폭탄을 터뜨리더라도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

"우와, 미치겠네 진짜.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팀장님은 뭐 아는 거 없어요?"

"나란들 뭘 알겠냐? 이미 오래 전 부터 시설 관리는 전적으로 관리봇과 경비들에게 맡겨두고 있었잖아.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개인 연구에 시설 관리 정기 보고서 작성 말고 더 있냐?"

"상층부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엄청 쪼아댈걸요. 대탈주 사건 해결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코드 레드냐고 난리칠 게 분명해요."

"역시 그렇지......?"

덥수룩한 머리에 뿔테 안경을 낀 중년 사내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일전의 대탈주 사건은 78기 경비팀이 정기 안전 점검을 하는 사이에 벌어진 사고였다. 누구의 책임도 없었기 때문에 상층부에서도 사건을 덮고 시설을 복구하는 선에서 그냥 넘어가주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연구원인 자신들도 원인조차 모르는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

코드 오렌지였다면 서둘러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라도 했겠으나, 탈출 시간에 제한이 있는 코드 레드가 발령된 탓에 모두들 짐 싸서 빠져나오는 것에만 급급했다.

사실 TF의 대체 불가 인재인 연구직은 그렇게 하는 게 맞다. 사고가 터지면 그냥 무조건 탈출하는 게 메뉴얼의 정석이다.

문제는 높으신 분들이 그런 행동을 마냥 곱게 봐주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사고의 원인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죄다 자기 짐 싸서 탈출부터 해버렸다. 이건 시말서 각이 날카롭게 섰다.

"어? 저거 기동타격대 수송 헬기 아닙니까?"

한 연구원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육중한 덩치를 자랑하는 수송 헬기 3대가 질서정연하게 날아오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지? 이제 막 시설이 폐쇄됐는데.'

보통 코드 레드가 발령되면 우선 TF 상층부에 자동적으로 보고가 들어간다. 그러면 윗분들이 사태 파악을 하는 동시에 출동 명령을 내리고, 대기중이던 기동타격대가 움직인다.

그 과정이 아무리 빨라도 20분은 걸릴텐데, 단 10분만에 기동타격대가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도 내륙이었다면 모를까, 이 곳은 섬이지 않은가.

이윽고 근처의 헬리포트에 착륙한 수송 헬기는 기동타격대 병력들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냈다. 헬기 한 대당 스무 명씩 내렸으니, 모두 합쳐서 육십 명이었다.

일반 군인이나 특수 경찰이었다면 코웃음 쳤겠지만, 무려 TF 산하의 특수군사조직인 기동타격대가 50명 넘게 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연구원들은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장인 이홍선은 신경질적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정도로 심각한 사태가 발발했는데 자신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시설을 빠져나왔다.

욕을 먹어도 한 트럭은 먹을 상황!

'젠장,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 까지 연구원들은 대체 뭘 했느냐고 추궁하면 답도 없어. 시말서 선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홍선은 호국이 일을 벌이고 있을 때 관리봇이 오류를 견디다 못해 재부팅중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호국이 올린 보고로 인해 경보 시스템이 먼저 작동했고, 이미 시설에서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받은 기동타격대는 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을 뿐.

처음부터 호국으로 인해 상황이 꽈배기처럼 꼬이게 된 것이다.

연구원들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 하고 있을 때, 기동타격대의 현장 지휘관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가드-079는 아직 시설 안에 있습니까?"

"예, 예? 아, 그럴 겁니다! 경보음을 울린 것도 가드-079가......"

"그럼 됐습니다. 여러분은 인근 시내로 나가서 잠시 쉬다 오십시오. 사태가 해결될 때 까지 휴가라도 얻으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른 시설로 이송되는 게 아닙니까?"

"시설이 완전 폐쇄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송할 필요가 있습니까?"

"......?"

"?"

이홍선과 지휘관은 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마주보았다.

코드 레드라면 꽤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 그것도 이번으로 벌써 두 번째다. 아무리 많은 수의 기동타격대가 왔다지만 연구원들은 타 시설로 이송시키는 게 맞았다.

코드 레드도 코드 레드 나름이지, 짧은 기간에 연이어 터졌다는 건, 언제 코드 블랙으로 전환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반면 지휘관은 제 1 연구시설 측에서 '사실확인'이 필요하다며 가드-079가 대체 어떤 원리로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지 조사해올 것을 명령받았다.

딱히 시설 전체를 폭파시키는 것도, 탈출하지도 않은 ES를 진압하러 온 것도 아니었다. 다만 경우가 다른 만큼 가드-079가 극도로 위험한 존재일 가능성에 대비해 과한 전력을 이끌고 왔을 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설을 폐쇄하는 게 아닙니다. 기동타격대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여러분은 잠깐 쉬고 오면 되는 겁니다."

"그, 그렇게 말씀하신다면...그리 하겠습니다."

처리시설에는 연구소장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연구인력도 적게 배치되기 때문에 3급 보안등급을 지닌 팀장이 가장 높은 직급이었다.

허나 그의 앞에 선 기동타격대 현장지휘관은 2급 보안등급을 지니고 있었다. 일시적인 폐쇄 조치를 독자적으로 해제할 수 있으며, 연구직보다도 높은 기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다.

그런 인물이 하는 말이니 이홍선은 잠자코 따르기로 했다.

'그래, 여차하면 그 멍청한 가드한테 다 뒤집어 씌우자. 어차피 지금쯤 죽었을 게 뻔한데, 그깟놈 하나보다야 우리 같은 연구직이 재단에 더 도움이 된다고.'

IQ 84의 3D 직종 종사자가 전문 연구직보다 유능할리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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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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