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 업무 일지 : 6일째(4)
호국의 할아버지는 뉴스를 볼때마다 이런 말을 내뱉곤 했다.
그 놈의 빌어쳐먹을 유기농이 그렇게 좋으면 벌레가 절대로 꼬일 일 없는 인공 밭에서 수 억 단위로 유지비용을 써가며 직접 키워먹으라고.
농약 친 농산물은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는 근거없는 뉴스에 할아버지는 개놈의 자식과 말놈의 자식을 혼합 교배시키며 걸쭉한 욕을 기관포마냥 난사했다.
농약 쳐서 키운 농산물은 인기가 없다? 그럴리가 있나. 다들 알게 모르게 농약 친 것만 골라서 먹고 있는 세상이다.
때깔 좋고 한 입 베어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붉은 사과도, 보기만 해도 푸르딩딩한 게 고추장 찍어 먹으면 미칠 것 같은 오이도. 모두 농부들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듬뿍 써가며 키워낸 것들이다.
사실 농약 쳐서 키워낸 농산물이라고 해봐야 실질적으로 인간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었다. 1차 공정 과정에서 기계를 이용해 세척하고, 그 다음 공정에도 또 세척한다. 거기서 상품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골라내 깔끔하게 포장 해서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마트에서 구입한 사과를 씻지 않고 바로 씹어먹어도 딱히 해로울 것은 없다. 그냥 다들 찝찝하니까 한 번씩 더 씻어서 먹는 것이다.
애초에 상품성이 있는 농산물을 키워내기 위해 만들어진 게 화학비료와 농약 아닌가.
만약 세상 모든 농부들이 철저하게 유기농만 고집했다면, 농산물은 지금쯤 희귀 식품으로 분류되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고기와 채소를 적당량 섭취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극단적 채식만 고집하는 비건들이 '채식이 무조건 옳아!'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왠지 농약 쳐서 키운 농산물은 별로일 것 같다고, 유기농이 아니면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고집하는 사람들도 거기서 거기다.
그런 점에서 호국은 딱히 농약을 치든 말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연세도 있으신데, 할아버지는 직접 기계를 운용해 농약을 뿌려가며 정성껏 농산물을 길러냈다. 깡통 로봇의 일처리는 믿을 수 없다는 고집 때문에 밭에서 나는 농산물은 모두 할아버지의 손을 거쳐간 것들이었다.
농부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것이 바로 농산물인데, 거기에 농약좀 쳤기로서니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러니 여기에 농약좀 치는 것도 별 문제 없겠지.'
농약은 매우 독하다며, 어른들만 다뤄야 한다는 경고를 곧잘 들었다.
할아버지의 경고를 잊지 않은 호국은 풀페이스 헬멧을 착용하고서 6-04의 방에 농약을 냅다 들이부었다.
이 괴상한 식물들은 바닥에 흙도 없는데 뿌리를 마구 늘어뜨리고 있었다. 습기로 가득 찬 방에서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면, 그것이 뿌리를 통해 흡수되는 구조였다. 인간으로 치면 위장을 몸 밖에 걸어두고 있는 셈이었다.
농약을 들이붓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같은 환호성에 호국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일전에 가지치기와 잡초뽑기를 해줬을 때도 식물치고 괜찮은 반응을 보여줘서 일을 한 보람이 있었다.
'이렇게 농약을 뿌리면 벌레 꼬일 일은 없겠지?'
우리 집은 깨끗해서 벌레는 없어요! 라고 주장해도, 사실 집구석을 잘 뒤져보면 반드시 벌레가 있다.
쌀통에 숨어든 쌀바구미부터, 대체 언제 집안의 벽을 점거했는지도 모를 흰개미 or 바퀴벌레 집단. 화장실이나 부엌에서도 심심찮게 날아다니는 자그마한 나방파리까지.
이 곳이 비록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지하시설이라고는 하나, 정말 벌레 한 마리도 없을 거라고 장담하긴 힘들었다.
'특히 식물이 있는 곳이면 벌레의 지상낙원이나 다름 없지.'
고인 물이 있는 장소, 물때가 낀 장소, 은신처로 삼기에 딱 좋은 장소. 그 모든 조건을 이 방이 다 갖추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까지 농약을 냅다 들이붓는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호국은 벌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남들은 전부 전투용 안드로이드와 정신으로 연결된 가상현실 속에서 경계 근무를 선 반면, 자신은 직접 몸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날벌레와 격투를 벌이는 일도 흔했다.
얼굴을 가릴 만큼 거대한 팅커벨인지 나발인지 하는 놈이 휙 날아들때면, FM을 지킨다는 자신의 신념을 버려서라도 실탄을 발포하고 싶었다.
벌레는 아니지만 감자만한 산왕거미가 거미줄이라도 치고 있는 걸 보면 혐오감에 몸이 부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그런 것들이 이 음침한 지하시설을 제집마냥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보라. 침낭에 들어가 자는 것도 무서워질 것이다.
"후우!"
농약 두통을 다이렉트로 처박은 다음 할 일은 간단했다.
비명을 지르며 줄기를 베베 꼬고 있는 식물들 중,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을 손으로 뽑아서 솎아낸다. 좋은 약도 받아들이지 못 할 만큼 약한 식물은 다른 식물들의 성장에 방해가 될 뿐더러, 왠지 잡초일 것 같았다.
간단한 원예 작업이 끝나면 예정대로 연구팀 측에서 준비해 준 비료를 뿌렸다. 사람으로 치면 영양제와 항생제를 동시에 먹은 느낌일지도 모른다.
옹달샘의 수위가 매우 높아진 것을 확인한 호국은 기분 좋게 6-04의 방을 나섰다. 일을 한 뒤에 먹는 밥은 항상 꿀맛이라던데, 오늘 밥은 최소 세 그릇 보장이다.
6-09의 방엔 따로 나눠줄 것이 없었다. 산타 할아버지도 무생물에게 선물을 주진 않으니까.
곧바로 B42로 내려간 호국은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카지노의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보기만 해도 화가 샘솟는 범죄자 딜러는 여전히 게이머들 사이를 오가며 진행을 돕고 있었고, 멋진 바텐더는 자신의 자랑인 콧수염을 으쓱이며 컵을 닦고 있었다.
고정 손님인지, 아니면 이 곳에서 숙식을 하는 진성 도박 중독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절모를 쓴 중년 신사 역시 한창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보니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손님이 좀 많네.'
평소랑 다르게 손님이 3배 정도 많았다.
당장 바 앞에서 이름모를 칵테일을 홀짝이고 있는 남녀만 해도 다섯 명이었으며,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만 무려 열 명이 넘었다.
꽤 넓은 카지노라 그런지 준비된 테이블이나 머신은 상당히 많았지만, 손님 수가 갑자기 늘어난 탓에 시장통마냥 붐비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디보자, 6-10의 방에 나눠 줄 건...압류딱지?'
압류딱지.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옛 문화 컨텐츠(드라마)에선 심심하면 나오는 단골소재였다.
예쁜 여주인공과 인자한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조합의 화목한 가정에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부도와 빚 벼락! 졸지에 여주인공 가족은 길바닥에 나앉게 되고, 그런 여주인공은 자신의 미래마저 포기한 채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리고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재벌 3세가 PPAP를 추면서 나타나 여주인공에게 뺨을 맞거나 물세례를 받고 한눈에 반해버리지.'
여주인공의 집에 붙은 압류딱지? 그딴 건 갑작스럽게 등장한 절세의 꽃미남 재벌 3세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해버린다.
그리고 여주인공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밀곤 느끼한 목소리로 "이러면 널 가질 수 있겠어?" 라는 대사를 날린다.
현실에서 압류딱지가 자랑하는 포스는 가히 막판 보스 아래의 사천왕 수준인데, 드라마에서 나오는 압류딱지는 하나같이 꽃미남 재벌 3세라는 치트키 용사에게 당하는 병신 머저리 졸개였다.
그 압류딱지 뭉텅이가 지금 호국의 손에 쥐여졌다.
이걸 카지노의 모든 것에 붙이세요 라는 연구팀장 이홍선의 메시지와 함께.
'그러고보니 이 압류딱지를 붙일 때 어떤 기분인지 항상 궁금했었어.'
갑자기 집안에 들이닥친 사람들이 각종 가구와 돈될만한 모든 것에 압류딱지를 강압적으로 붙이는 장면은 심심찮게 봤다.
잘 나가던 인간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걸 증명해주는 보증서가 바로 이 압류딱지. 즉 압류딱지를 붙이는 사람들은 잘 나가던 사람을 나락으로 밀어버리는 쾌감 같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쩐지 불안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딜러를 향해 호국은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게임 한 판에도 많은 판돈이 오가는 이 카지노에서 압류딱지가 오간다면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이다.
호국은 게임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려는 한 손님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의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압류딱지 한 장을 붙였다.
여길 압류해서 뭘 하려는 건지는 호국도 잘 모르겠지만, 압류딱지를 붙인 뒤에 일어날 일은 연구팀 측에서 알아서 할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그저 쾌감 속에서 압류딱지를 흩날리면 충분했다.
손님과 딜러의 경악에 가득찬 표정을 뒤로 하고서, 뾰로로롱, 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퍼지는 슬롯머신에 다가가 액정에 압류딱지를 착! 착! 착! 붙였다. 압류딱지 잭팟이다.
진짜 잭팟을 노리고 있던 손님은 충혈된 눈으로 호국을 바라보았다. 그는 원형탈모가 온 중년 남성이었는데, 왠지 이마가 넓어보여서 악세사리겸 압류딱지 한 장을 붙여줬다.
"오늘 영업 끝났습니다. 다들 집에 가서 발닦고 잠이나 자세요."
호국이 압류딱지 뭉텅이를 흔들며 카지노의 종말을 고하자 손님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시선으로 대화를 했다.
그러다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카지노를 떠나려는 것은 아니었고, 하나같이 흉흉한 얼굴로 호국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카지노에서 실컷 즐기려고 헀는데 압류딱지가 붙게 생겼으니 그야 열받을 법도 하지만, 그건 압류딱지를 붙이라고 시킨 연구팀에게 따질 일이었지 호국에게 따질 일은 아니었다.
호국도 이 행위에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 이전에 호국은 직장인이었다.
아무리 부당한 명령이라도 윗선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절대 을의 위치에 있는 이상, 이곳에 있는 모든 것에 압류딱지를 붙여야 하는 슬픈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니까 손님과 카지노 직원이 단체로 들고 일어나도, 호국은 어쩔 수 없이 압류 작업을 속행할 수 밖에 없었다.
파지지직! 손에 쥔 진압봉에서 푸른 전류가 튀었다. 압류딱지 붙이는 걸 방해하는 양반이 있다면 생살을 해피해피 웰던으로 바싹 구워줄 심산이었다.
"특히 넌 끼어들면 가중처벌이다."
군중 사이에서 슬쩍 모습을 드러낸 딜러에게 진압봉을 겨누며 경고했다.
범죄수사물에서 심심찮게 형사들이 언급하는 가중처벌은 대개 겁없이 덤벼드는 조폭들을 상대로 허세를 부릴 때나 쓰는 말이었지만, 호국은 진짜 가중처벌이 뭔지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
'그 커다란 엉덩이가 두 배가 될 때 까지 때려주지.'
먼 옛날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에서도 의외로 엉덩이를 곤장으로 내려치는 형벌이 사형을 제외하면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이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군중이고 호국은 혈혈단신. 장비를 갖췄다고 해도 파워 게임에서 밀릴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가슴팍에 달아두었던 연막탄을 까버렸다.
카지노에서 갑작스럽게 연막이 퍼지기 시작하고, 꼭지가 돌아버린 군중은 소리없는 함성을 외치며 호국을 향해 달려들었다.
처음부터 그들을 상대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신에게 내려진 명령은 압류딱지를 붙이는 것이었지 성난 군중들과 신음 섞인 육체적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보라!
오늘은 얼마나 돈을 잃을지 감도 안 잡히는 호구들을.
그런 호구들을 등쳐먹는 것도 모자라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으려는 카지노 직원 및 범죄자 한 명을.
돈이란 건 그렇게 쉽게 잃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그들도 알아야 한다. IQ가 84밖에 안 되는 호국도 돈의 소중함은 잘 알고 있었다.
카지노에서 인생을 낭비해도 되는 인간은 돈을 딸 준비가 된 부류가 아닌, 돈을 잃을 각오가 된 부류라는 말을 유명한 도박 드라마에서 들은적이 있다.
호국은 테이블을 박차고 뛰어올라 2층의 난간을 붙잡고 원숭이처럼 날렵하게 올라갔다.
2층은 휴게 공간이었기 때문에 의자와 테이블이 많았는데, 호국은 예외없이 모두 압류딱지를 표창처럼 날려서 붙였다. 손님의 음료가 담겨있는 컵 하나까지 압류딱지를 붙인 후에 내용물은 아까우니까 휴대용 보온병에 몰래 챙겼다.
'지금 이곳에서 만큼은 내가 신이다!'
아래에서 날아든 의자를 가볍게 피한 호국은 그 의자에서 압류딱지를 붙였다.
계단을 통해 올라온 성난 손님이 어설픈 솜씨로 호국에게 단검을 내질렀으나, 익숙한 동작으로 몸을 틀어 피한 후 손날을 쳐서 단검을 떨궜다.
전투용 안드로이드는 튼튼해서 날붙이 따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호국은 인간의 몸이니 날붙이를 조심해야 한다며 행보관으로부터 근접격투술을 배웠다.
특히 일반인이 뭣모르고 휘두르는 날붙이는 전문가들처럼 절제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타격으로 피해를 주는 것보다, 무기를 최대한 빨리 떨어뜨리게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손님은 허무하게 무기를 떨어뜨린 것에 당황했는지 호국과 무기를 번갈아보다가 재빨리 무기를 주으려 했다.
"어림도 없지."
그보다 먼저 움직인 호국이 날붙이의 칼날에 압류딱지를 둘둘 감아버리고 저 멀리 던져버렸다.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있던 손님의 이마에도 품질보증표가 붙은 한우마냥 압류딱지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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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있기에 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