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복구작업(5) >
이번에야말로 헛것이 아니라고 짐작한 것은 그리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다.
네 발로 걷는, 기계인지 동물인지도 모를 괴상한 것이 수많은 구멍 속에서 일제히 튀어나오며 호국을 덮쳤던 것이다.
상식이 있는 집은 대문이나 담벼락 앞에 '맹견주의' 같은 걸 써붙여 두는 법인데, 호국이 검붉은 액체의 흐름을 따라 도착한 곳에 주의문따윈 없었다.
'격렬하게 반겨주는 건 참 좋은데...이러면 전부 쓰다듬기 힘들잖아!'
기계인지 동물인지는 잠시 제쳐두고, 호국은 녀석들의 후미에 꼬리처럼 삐져나온 전선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개가 꼬리를 흔든다면 아주 좋아 죽을 것 같으니 미친듯이 만져달라는 의미다.
하지만 고양이가 꼬리를 비스듬하게 내린 상태라면 만지는 순간 냥냥펀치를 날려주겠다는 의미다. 다행히 녀석들의 꼬리(전선)은 그렇지 않았다.
'다리가 4개, 머리는 좀 크고 날렵하지만 몸뚱이는 오히려 빼빼마른 것 같은데......'
아가리를 벌린 채 호국을 열심히 핥으려 하는 녀석의 머리통을 붙잡아 진정시키며, 호국은 녀석들의 신체 구조를 자세히 살폈다.
투박한 기계 부품 위에 연분홍색의 살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으며, 작은 튜브 같은 것이 기계와 살덩어리를 연결하고 있었다. 튜브를 통해 순환되는 검붉은 액체는 바닥에 흐르는 것과 상당히 흡사했다.
'이것만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아직 자신의 차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급한 성질에 못 이겨 튀어오른 녀석이 호국의 머리를 물었다.
정확히는 물기 전에 호국이 머리를 빼서 놈의 애교(?)를 헛짓거리를 만들어주었다. 가끔 동물들이 장난처럼 애교를 부리기 위해 사람에게 냅다 주둥이를 들이미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순순히 물려주기보단 일단 한 번 뺀 다음 주둥이를 잡고 흔들어주면서 놀아주는 것도 괜찮았다.
물론 사생팬들처럼 호국을 향해 몰려든 것들이 전부 개라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조건들이다.
크기로 치면 대형견은 맞지만, 어딜 어떻게봐도 사족보행과 주둥이, 꼬리가 있는 것 말고는 개와 유사점이 없었다.
호국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으면 고개를 마구 흔들면서 손에 비비적대는 게 영락없는 개였지만, 알다시피 개는 이렇게 투박하게 생기지 않았다. 튜브따위를 달고 있지도 않고.
애초에 기르는 주인이 있긴 한지, 떠돌이 동물들이라면 처음 발견한 호국이 보살펴줘야 하는 건 아닌지 여러 고민들이 튀어나왔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걸 캣맘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호국은 어떤 맘이 되는건지 궁금했다.
애완동물 카페에 '제 6 처리시설맘이에요~' 같은 글을 올려봤자 이 놈들의 외관은 그다지 호응받지 못 할 게 뻔했다.
게다가 쓸데없이 수가 많다. 저 멀리서부터 밀고 내려오는 녀석들까지 합치면 족히 수십 마리는 될 법한 숫자였다.
"아, 가만히좀 있어봐! 지금 고민하고 있는 거 안 보여?!"
한 놈을 다리 사이에 끼워넣고 허벅지로 꽉 졸랐다. 양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놈들은 손으로 짓눌러 지면에 머리부터 처박거나, 주먹으로 콧잔등을 가볍게 후려쳤다.
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콧잔등을 후려쳐서 겁주는 방식은 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한다......'
상층부에 보고했을 때 들려올 대답은 사실 너무 뻔했다.
죄다 보건소로 보내서 안락사를 시키던가, 입양처를 찾게 할 것이다.
그럼 호국은 애완동물 카페에 들어가서 제 6 처리시설맘이 입양부모들을 찾는다는 글을 써야할 것이다.
물론 백이면 백, 이 놈들을 입양해갈 동물애호가따윈 없을 거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보건소에 보내는 건 너무 미안하니, 호국은 이곳에서 탈출하면 관리봇에게 잘 말해볼 생각이었다. 쇼부본다고 하던가? 이것들을 시설에 풀어서 기르게 해준다면 양심의 가책도 덜하겠지.
'경비견으로 키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호국이 한 손으로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약한 건 그렇다치고, 수가 많아서 층층마다 한 두마리씩 풀어놓으면 그림이 나쁘지 않았다.
경비견과 함께 순찰을 돌며 시설의 안전여부를 체크하는 경비. 호국은 상상속의 자신이 조금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제부터 너흰 경비견 유망주......"
유망주 하나가 폭음과 함께 허공을 날았다.
연분홍색의 살덩어리 같은 벽을 양 손으로 찢고 걸어나온 것은 질척질척한 점액질 투성이인 신입이었다.
군데군데 칼로 베인 것 같은 상처가 보였지만, 기동타격대 보호장구 덕분에 치명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 또 멀쩡한 시설의 벽을 부쉈다는 사실이 호국을 열받게 했다.
"야 이 미친놈아! 아까부터 왜 자꾸 멀쩡한 벽을 부수고 난리야?!"
자신에게 자꾸만 엉겨붙는 경비견 유망주들 속에서도 호국은 꿋꿋이 신입을 갈궜다.
"저, 저...! 야! 그거 부수면 안 돼! 경비견 후보라고!!"
깨갱, 하는 소리만 안들렸다싶을 뿐이지. 신입이 휘두른 주먹 한 방에 또 다른 경비견 유망주가 두동강 나며 허공에 파편을 흩뿌렸다.
신입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경비견 유망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하자, 호국의 주위에 있던 녀석들이 더욱 정열적으로 엉겨붙었다.
여전히 주둥이를 들이밀면서 들러붙는 놈들 때문에 신입을 막으러 갈 수도 없었다.
"아, 안 돼......!"
신입의 주먹과 발길질에 자비는 없었다.
그 많던 경비견 유망주들을 하나둘씩 안락사시키며,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 보내주었다.
족히 수십에 달했던 경비견 유망주들이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모두 하늘나라로 떠났다. 만약 호국이 SNS를 했다면 'so sad' 라는 글귀를 남겼을 만큼 비극적인 현실이었다.
'잘만 키우면 편하게 일할 수 있었는데!!'
매일매일 밥도 주고 놀아줘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잘 키우기만 한다면 호국과 함께 경비 업무를 수행했을 녀석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위로 유능한 자가 올라오는 건 싫었는지, 신입이 죄다 박살내버렸다.
낙하산으로 올라와 세상물정 모르는 놈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누구보다도 영악하게 사회생활을 할 줄 아는 경쟁주의가 낳은 괴물이었다. 줄여서 경낳괴.
손을 탁탁 털며 호국에게 다가온 신입은 남아있던 몇 안 되는 경비견 유망주들마저 손으로 직접 떼어냈다. 그리고 양 손으로 곱게 '접어서' 던져버렸다.
"으아아아아! 해피 5호! 해피 3호!!"
벌써 이름까지 붙여둔 해피들이 신입의 손에 빠르게 퇴장하고, 어느덧 한 녀석만 남았다. 호국이 다리 사이에 끼워둔 채 힘껏 목을 조르고 있던 녀석이었다.
"...이거 건드리면 오늘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호국이 주먹을 들고 위협해보이자 신입은 어깨를 으쓱이곤, 양 손으로 호국의 전신을 탁탁 두들기면서 확인해나갔다.
마치 상처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모양새였으나, 신입의 광기를 엿봤던 호국에겐 짜증 나기만 하는 행동이었다.
"기분나쁘니까 저리 가, 인마."
신입을 머리를 한쪽으로 치워낸 호국은 마지막 남은 해피 1호의 뒷목을 잡아들었다.
꽃이 진 후에야 봄인 줄 알았다더니, 수많은 해피들이 사라진 후에야 해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넌 내가 책임지고 키워준다."
본의아닌 탈락 면접(?) 끝에 남겨진 최후의 해피에게 경비견 합격 통보가 내려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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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 손상! 손상! 손상!!
-손상률 94%!
-전류감각 상실 확인!
-백혈구(白血球) 완전 소실 확인!
-헌팅 바이오로이드 자매 1개체를 제외한 소실 확인!
-에너지 공급율 5% 미만!
-모든 전선충(電線蟲) 형제에게 통보. 침입자 저지 및 에너지 보급을 최우선사항으로 수행하라!
파직파직.
과부하가 온 탓에 낡아빠진 부품들이 하나둘씩 삐걱거리며 스파크를 튀겼다.
-원인 파악...불가능!
-ES 감지...불가능!
-인간 감지...불가능!
커다란 LED 화면이 번쩍번쩍 빛을 발하며 버그 리포팅을 해나갔다.
-[창조주]께서 하사하신 고귀한 몸이 붕괴하고 있다. 상처가 줄지 않는다. 고통이 줄지 않는다. 절망이 줄지 않는다. 슬픔이 줄지 않는다. 줄어드는 것은...미래를 향한 가능성 뿐이다!
생존, 생존, 생존. 무슨 일이 있어도 생존해야만 한다는 프로세서가 인공지능장치의 초고속 연산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는 생명체만이 느낄 수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으며, 삶에 대한 비탄이었다. 또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기도 했다.
-생존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에너지 보급.
-불가능. 현 시점에서 에너지 전선충 형제들만으로 에너지를 충당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차선책으로 재동면.
-불가능! 이번에 동면하게 되면 두번 다시 깨어날 수 없을 가능성이 98%에 육박한다.
->결론 : 생존불가.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 우리는 반드시 생존해야만 한다!
오래되고 낡은 기계가 생존하기 위해 최선에서 차선, 최악의 수까지 모두 계산한 결과.
가까스로 하나의 답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구걸(求乞).
구차하게도, 꼴사납게도, 형편없게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절대로 마다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선택지.
Prot. 6-FM은 목숨을 구걸하기로 했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빠르게 제기되었다.
생존 하나만을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면, 대체 누구에게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가?
시설 전체를 관리하고 있을 6-FM에게?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창조주]에게?
그것도 아니면 지금 이곳을 향해 접근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6-FM이 다년간 쌓아온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 결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는 상대적으로 적의 구걸을 무시하는 경향이 86%에 해당하다는 것을 확인.
-목숨을 구걸하기에 알맞은 대상은 지위가 낮으며, 감성적인 인간이다.
-지위가 낮은 자일수록 특정 사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 또한 한없이 제한받지만, 감정이 풍부하고 '정'이 많을수록 윗선의 지시를 무시하고 변수를 만들어낼 확률이 다분하다.
-적합한 대상일 경우 우리의 목숨을 거둬줄 확률 91%.
-상대가 상급자로부터 명령을 받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엄격한 상급자에게 명령을 받을수록 하급자는 힘을 쓰지 못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는 반대로, 상급자의 명령을 받지 않은 상태로 단독 행동을 하고 있는 하급자가 구슬리기 딱 좋은 대상이라는 것.
설득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이곳에 들어오고 있는 존재를 설득해서 목숨을 보전해야 한다.
그리하면 머지않아 [창조주]와 만날 수 있는 발판을 다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재기를 위한 일보 후퇴.
아니, 이 경우는 목숨 보전에 성공하더라도 많은 것을 잃을테니 적어도 열 걸음은 물러서는 꼴이겠지만, 지금은 걸음의 수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선충 형제의 센서를 통해 접근을 확인.
"야! 넌 해피 5미터 내로 접근 금지다?"
-해피? 해피는 무엇인가?
직역하면 행복. 하지만 지금 이 공간에 행복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해피해피한 요소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해피를 입에 담은 인간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Prot. 6-FM의 수많은 자매중 하나인 4족 보행 바이오로이드를 한 손으로 움켜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