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71화 (71/209)

< 기동타격대 작전 일지 : 언제나 충성(3) >

"야, 야...! 야!!"

너무 당황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어휘 능력이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벌떡 일어난 진도형은 허공에서 흔들리고 있는 뿔테 안경의 몸을 잡았다.

목에 줄이 걸린 상대의 몸을 함부로 끌어내리면 되레 목이 부러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위로 끌어올려줘야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렵지 않게 뿔테 안경을 구할 수 있으리라.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진 중사님?"

"너 이 새끼야! 지금 네 후임이 이 지경이 될 때 까지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의무병에게 소리친 그는 출혈량이 늘어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최대한 힘을 줘서 뿔테 안경을 구하려 했다.

"치료받다가 갑자기 뭐 하시는 겁니까?!"

"미친 새끼! 당장 이거 놓지 못......?"

진도형은 자신의 발치에서 쭈그려 앉은 채 VR기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뿔테 안경과 시선이 마주쳤다.

분명 목이 매여있던 그가 대체 어느 틈에 아래로 내려온 것인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야, 너 괜찮냐?!"

"스파이더 봇 울렁증이라면 안 괜찮은데요? 지금이라도 다른 분께 맡기는 게......"

"아니, 너 목! 목 괜찮냐고!!"

"멀쩡한데요?"

자신의 목을 손으로 훑은 뿔테 안경은 의아한 눈초리로 진도형을 바라보았다.

작전 도중에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짬이 가장 낮은 그라도 이상을 느낄 법한 반응이었다.

"너, 너...방금 목에 줄이 감겨 있었다고! 여기 바로 위에 매달려서......"

진도형은 문득 자신의 양 손이 붙들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뿔테 안경이 멀쩡히 살아있다면 조금 전까지 자신이 붙들고 있었던 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뭐고 자시고 없다. 진도형의 머리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전선에 목이 매인 뿔테 안경도, 전선이 흘러나온 작은 구멍도, 자신을 내려다보는 '눈'도.

그저 먼지가 조금 자욱할 뿐인, 텅 빈 공간에 불과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내가 환각이라도 본...환각?'

정신오염계 ES에게 근접했을 때 기동타격대 대원이 가장 흔하게 겪는 이상현상. 그중 하나가 바로 극심한 환각이었다.

'이 모든 광경이 ES가 만들어낸 환각이라면? 팀원들은 겉으로는 멀쩡해보이지만 나는......!'

3급 정신오염 대비 훈련을 완수한 것으로 기고만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민간인 한 명 죽이지 못한 ES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자신을 상대로 수작질을 부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환각이지? 자신은 어디까지 정상이며, 팀원들은 이 환각에 어느정도의 영향을 받았나?

'아직 환각을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만약 누군가 자신과 같은 환각을 봤더라면 벌써 한바탕 난리가 났어야 했다.

하지만 다들 경계 태세를 굳힌 채로, 갑작스럽게 소리 친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는 부끄럽게도 자신만 정신오염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손이 아플 정도로 주먹을 움켜쥔 그는 다시 뿔테 안경에게 정찰 작업을 계속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갑자기 왜 그러신 겁니까? 답지 않으십니다."

"나도 몰라 인마."

의무병의 걱정을 신경질적으로 걷어낸 그는 응급처치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장비를 챙겨들고 계단 앞에 섰다.

뿔테 안경의 원격제어를 받아 먼저 올라간 스파이더 봇이 2층의 상황을 스마트패드로 알려주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2층 내부 광경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칼로 베인 것 처럼 바닥이나 벽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사람이었다면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만큼 거대한 칼을 몇번이고 휘두른 것 같은 흔적이었다.

그리고 참상의 중심 속에서 그의 시선을 붙드는 존재가 있었으니,

"미친!"

"왜 그러십니까?!"

"2층에서 습격받고 있는 여성이 있다. 스파이더 봇 거두고, 외부팀에 지원요청할 준비해!"

깜짝 놀란 팀원들이 모두 그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펄스라이플의 총구를 치켜세웠다.

"내가 선두에 선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고 자시고 소대장인 내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대체 누가 선다는 거냐? 잔말말고 진입한다."

그가 앞장서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팀원들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의 뒤를 따랐다.

좁은 계단인 만큼 적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비하기 힘들지만, 그는 스파이더 봇을 통해 '상대'가 계단을 신경쓸 상황이 아니란 것을 이미 파악했다.

'미친놈. 이런 상황에서 태연하게 여성을 습격하고 있을 줄이야. 설마 ES의 정신오염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하면 민간인인 이상 즉시 '처리' 할 수 밖에 없겠지.'

그는 최대한 발소리가 울려퍼지지 않게 발에 힘을 줘가며 계단을 올랐다.

2층의 구조는 식당보다는 VIP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단체 객실과 비슷했는데, 계단 바로 앞에는 칸막이가 있어 자신들이 2층으로 올라올 때 까지 '상대'는 눈치채지 못 했다.

"상대는 ES의 정신오염에 심각한 간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필요하다면 발포를 허가한다."

"꼭 그래야 합니까?"

"작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존재라면 민간인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발포하는 게 규정이다. 아니면 너도 '민간은 꼭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거냐?"

"그건......"

"그렇게나 민간인이 소중하다면. 내가 먼저 상대를 제압할테니 너희는 위협을 받고 있는 여성부터 구해라."

얇은 나무 칸막이를 힘껏 발로 걷어찬 그는 '상대'에게 조명 불빛을 비췄다. 총구가 놈의 머리통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움직이지마라!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머리통에 구멍을 내주겠다!!"

'상대'는 고개를 꺾어 그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런 자신들의 난입을 영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 앞에서 잔뜩 겁을 먹고 있는 가엾은 외국인 여성과, 필사적으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막아선 청년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양 손 머리 뒤에 올리고 무릎 꿇어!"

하지만 '상대'는 그의 권고에 따르기는커녕 품 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무엇을 꺼내려는 것일까? 권총? 사제폭탄? 어쩌면 생화학 테러에 쓰이는 위험한 독성물질일 수도 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자신이 말한대로 그는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상대'의 낯짝을 깨부수기 위해 분당 1천발에 달하는 연사속도를 자랑하는 초고속철갑탄이 총염과 함께 총구를 떠났다.

총구는 '상대'가 아니라 천장을 향하고 있었지만.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오 중위님!!"

"잡아!"

"의무병, 안정제! 안정제 투여해!!"

주변에서 달려든 악귀들이 '상대'를 지키기 위해 우악스러운 손길로 그의 팔을 잡아챘다.

덕분에 총구는 한참이나 틀어져 헛된 곳에 탄환을 낭비하고 말았다. 가엾은 여성과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앞을 막아선 청년을 구해내지 못 한 것이다. 이 악귀들 때문에!

"이 개자식들! 다 죽여버리겠어!!"

먹혀든다.

가라앉는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다.

무엇에게?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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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은 김시영을 어떻게든 뜯어 말리려 했다.

당장 썩어문드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이상한 장식에 매달리는 것도 꼴사나웠지만, 그것을 '프렉티나님!' 이라고 부르짖으며 호국에게 적의를 보이는 것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갑자기 손님들이 빠져나가서 가게 주인되는 입장에선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 혹시 자신의 서비스가 구린 것은 아닐까, 음식이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들이 앞섰겠지.

그 다음은 SNS와 블로그를 통해 돌아다닐 '유랑가(家), 내 입에는 맞지 않았던 삼류 식당 후기' 같은 글을 떠올린 나머지 정신이 회까닥했을 수도 있다.

호국이 가게 주인이었더라도 갑작스러운 손님 이탈을 겪었다면 마찬가지로 큰 충격을 받았을테니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프렉티나님께 울고불며 매달리고 싶어지는 것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저건 아니지.'

척 봐도 끈적끈적할 것 같은, 반쯤 썩어문드러진 머리통을 소중한 보물마냥 부둥켜 안은 채 호국을 노려보고 있는 꼴이란.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냥 내버려두기 힘들었다.

사실 갑작스러운 손님들의 이탈이 호국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도 하니,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내가 잘 알지는 못 하지만, 음식점 주인은 위생에 신경써야 하잖아? 그럼 그건 그냥 버리는 게 어떨까? 다른 손님들도 그걸 보면......"

"찢어죽여도 시원찮을 새끼! 너한테는 프렉티나님의 울음소리가 안 들리는거냐? 안 들리냐고!!"

김시영의 고함소리는 잘만 들리니 귀가 고장난 건 아니었다.

"어, 안 들리는데."

"프렉티나님께선......!"

어쩌면 군 동기는 저런 걸 좋아하는 특이한 성적 취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필사적으로 이해해주기 위해 성능이 떨어지는 머리를 굴려봤지만, 호국이 역겨운 머리통을 끌어안고 있는 그를 이해하는 것은 끝내 불가능했다.

자기가 좋다는데 남이 뭐라 할 수 있겠느냐마는, 김시영은 '개인 취향 존중'의 선을 가볍게 넘어버렸다. 솔직히 계속 보고있자니 아까 먹었던 희멀건 죽이 식도를 타고 역류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옛 정을 생각해 한 번 더 충고를 하려던 호국은 갑자기 옆에서 목재 칸막이가 무너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10명의 기동타격대가 삽시간에 2층 객실 내부를 점거하며 호국과 김시영을 에워쌌다. 그중 한 명이 호국에게 총을 겨누며 위협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쏴버리겠다는 발언에 거짓 한 점이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였으므로, 호국은 조심스럽게 품 속의 ID 카드를 꺼내들었다.

왜 갑자기 이곳에 기동타격대가 들이닥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항에서도 먹혔으니 이번에도 먹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욕설과 함께 고막을 때리는 총성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주변의 대원들이 재빨리 나서서 그를 제압했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정말로 호국의 머리통에 바람구멍이 날 뻔 했다.

"이 개자식들! 다 죽여버리겠어!!"

"진짜 왜 이러십니까! 저 분 ID 카드가 안 보이시는 겁니까? 제 6 처리시설 소속 경비팀장님이란 말입니다!!"

"으아아아아아!!"

군대에서도 소문으로만 들었던 총기 사고를 현장에서 목격하게 되니 호국은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총에 맞아 죽을 뻔 했다는 사실은 강심장인 호국에게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오늘 총을 맞아 죽었더라면, 개같이 일하고 월급도 못 받은 멍청이 여기에 묻히다, 라고 새겨진 묘비가 세워졌을 것 아닌가.

총기 사고를 일으킨 남자가 주변인들에게 제압당해 끌려나가고, 가슴팍에 적십자 마크를 박은 의무병이 호국에게 서둘러 다가와 대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설마 오 중위님이 갑자기 현장에서 발작을 일으키실 거라곤 생각치도 못 했습니다! 이 일은 저희 부대에서 책임지고 보상해드리겠습니다!!"

상대가 처음부터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저자세로 나오자 호국도 당장 그를 탓하기보단, 경위부터 물었다.

"...발작을 일으킬 줄 몰랐다는 게 무슨 소린가요?"

바로 조금 전에 죽을 뻔 했으면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래도 고레고레 소리를 지르며 호국을 죽일듯이 노려보던 그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아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실시간으로 다른 대원들에게 제압 당해 체포된 김시영과는 질적으로 다른 순수한 살의를 품고 있었으니까.

호국은 훈련을 하던 도중 실수로 자신을 죽일 뻔 했던 행보관을 제외하고, 자신에게 그 정도의 살의를 품었던 사람을 아직 만나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행보관은 훈련도 실전처럼! 을 주장하던 사람이었으니 그런 태도도 이상하지 않지만, 생전 처음 보는 관계인 오 중위가 자신에게 살의를 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게...실은 일전에 정전미로 사태가 발발했을 때 오 중위님과 저희 소대가 긴급 출동을 했었습니다. 당시 산업단지로 현장 체험학습을 나간 학생 30명과 인솔 교사 두 명이 정전미로에 갇히는 사태가 발발했었습니다. 그들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오 중위님께선 관측반에게 조사만 맡겨두고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었는데...진도형 중사님이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아이들을 버릴 수가 있냐며, 명령을 어기고 정전미로에 뛰어들어간 겁니다."

"그럼......"

"예. 정전미로가 사라지고 난 뒤에 인솔 교사 두 명과 진도형 중사님의 시체를 수거했습니다. 1개 소대 인원은 열 명이기 때문에 진도형 중사님의 빈 자리는 다른 대원으로 빠르게 채워졌습니다만, 오 중위님은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종종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곤 했습니다. 매일 VR 기기를 이용해서 뇌파를 바로잡아주고, 뇌의 호르몬 제어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치료를 받으셨습니다만, 오늘은 치료를 받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침을 꿀꺽 삼킨 의무병은 착잡한 목소리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여전히 진도형의 중사의 자리로 남아있는 라커룸의 캐비닛 앞에 홀로 서서 소리치던 오 중위, 다른 부대의 현장 지휘관 앞에서 자신을 진도형 중사라고 소개하던 오 중위, 임관한지 얼마 안 된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작전 중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까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에 병을 얻은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하는지 알 수 있는 내용들 뿐이었다.

스스로 치료를 포기한 것 만으로도 사람이 저렇게까지 바뀌다니.

'어쩌면 내가 가상현실에 접속하지 못 하는 것도 도중에 치료를 포기했기 때문일까?'

뇌에 전극을 꽂고, 쓰디 쓴 약을 몇 개나 삼키고, 팔과 다리에 튜브를 연결해서 정체불명의 약을 흘려보냈던 그 치료를 꾸준히 받았더라면.

그랬다면 호국도 가상현실에 접속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과로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시겠지만, 오 중위님은 즉시 직위가 해제되고 TF 전용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집중 치료를 받게 될 겁니다. 혹 처벌을 원하신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저희가 대신 처벌을 받겠습니다."

"아뇨. 고의도 아니고 사고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호국이 말끝을 늘어뜨리기가 무섭게 한 대원이 군홧발로 날뛰는 김시영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김시영으로부터 여성의 머리를 회수한 한 대원이 무전기 비스무리한 기계를 갖다대며 '원흉을 찾았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별 다른 검사없이 호국도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유랑가(家)에서의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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