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해피해피 프로젝트(2) >
개미부대 후발대를 위에 남겨두고 먼저 내려온 선발대는 모든 전등이 꺼진 B55의 키즈존에 당도했다.
선발대를 이끄는 A-001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순간 가드-079가 기습적인 사격을 해올 것이라고 예상했었지만, 가드-079는 불확실한 기습보단 은폐를 선택했다.
기습을 걸어올 것에 대비해 미리 방탄 방패를 전개해두었는데,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가버렸다.
숱한 전투와 특별한 학습(훈련)을 통해 개미부대원들은 위기상황에 봉착한 인간의 심리는 거의 꿰고 있었다. 그럼에도 초장부터 허탕을 친 것은 그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발전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겠지만 고의적으로 내부 전등을 모두 꺼버렸어."
"CCTV도 모두 깨져 있군. 시설내의 CCTV는 별도의 발전기를 통해 자동적으로 전력이 공급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
"찾으려면 애좀 먹겠는데. 어쩔거야?"
009의 질문에 001은 임의로 두명씩 조를 나눴다.
"둘씩 나뉘어서 놈을 수색한다. 놈의 움직임이 재빠르긴 해도 방아쇠 한 번 당기지 못 할 만큼 어리숙한 놈은 없을 거라고 본다."
여기저기서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 당해버린 네 명은 '고작 가드따위'라고 생각하며 지나치게 방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팀원들 중 누구도 방심하고 있지 않았다.
겉으로는 비릿한 웃음을 흘리면서도, 속으로는 전신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운 채 가드-079의 움직임을 포착하려 애쓰고 있었다.
FCD보다 우선시되는 최고 수석 연구원의 대리자에게 명령을 받았다.
본래는 가드-079를 털끝 하나 건드릴 생각이 없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손을 봐줘야 한다.
지금 이곳엔 명령을 내릴 FCD도, 자신들의 행동을 저지할 최고 수석 연구원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소한 일로 누군가의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006, 넌 나와 함께 간다."
"그럼 내가 선두에 서지."
방탄 방패를 앞세운 006이 라이트가 부착된 권총을 겨눈 채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다른 6명의 팀원들은 넓은 키즈존을 수색하기 위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지 오래였다.
팀원들의 키즈존 수색이 모두 끝난다면 마지막으로 발전실과 고위험군을 뒤질 것이다. 가드-079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진 않았으니 반드시 B55 어디선가 발견될 터.
바로 그때, 놈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요리해줄 생각이었다.
정글짐과 플라스틱 공이 잔뜩 들어있는 풀장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 라이트를 비춰 구석구석을 살폈다.
정글짐은 특히 플라스틱 합판으로 일부 공간이 가려져 있어, 바깥에서 내부를 전부 살피는 건 어려웠다.
가드-079가 설마 꼴사납게 정글짐 안쪽에 엎드려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001은 망설임없이 정글짐의 합판을 발로 걷어차 박살냈다.
팀원들 모두 총성을 발견 신호로 알고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무전기가 시끄러워지는 일은 없었다.
"설마 그런 곳에 있겠어?"
"그래도 하나하나 확인해봐야 한다. 그런 놈에게 상식을 찾는 것 보단 이 편이 훨씬 더 빠를테니까."
짧은 기간 동안 이 시설에 머무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가드-079의 몰상식이었다.
단순히 지능이 낮아서 그런 것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몰상식한 행동들을 곧잘 보이곤 했는데, 대표적으로는 ES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접근한다는 점이었다.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당연히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태도였다.
그밖에도 사람을 주식으로 삼는 ES와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ES와 도박을 하고, ES의 밑에 깔려서 3시간 59분 정도 낮잠을 자기도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모두 사실이다.
가드-079에겐 일반적인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설마 자신들이 쳐들어올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고작 정글짐 속에 숨어있을리가 없다.
굳이 숨자면 정글짐이 아니라 풀장 속에......
"끄으으윽......!"
풀장 속에 숨어있던 가드-079가 006의 배후에서 튀어나와 목을 조르고 있었다.
제딴에는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쉽게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동료가 죽건말건 001은 다짜고짜 권총을 겨눴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그가 발 디디고 있던 매트리스 바닥이 엄청난 기세로 튀어올랐다.
'요격 시스템!!'
권총을 쏘려다 말고 양 손으로 천장을 받아내 간신히 뇌진탕을 면한 그는 정글짐 위에 어렵사리 착지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006의 목은 이미 꺾여있었고, 가드-079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풀장이 조용한 것으로 보아 쥐새끼처럼 다른 장소로 도망친 듯 했다.
'CCTV가 전부 깨져있어 변조 AI 프로그램이 이곳 상황을 보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른 '눈'이 있었나?'
CCTV가 있을만한 위치를 전부 확인해봐도 멀쩡한 CCTV는 없었다.
조심스럽게 무전기를 통해 상황을 알리려던 순간, 001은 발 아래에서 느껴지는 싸한 느낌에 다급히 정글짐에서 뛰어내렸다.
정글짐 아래의 빈 공간에서 일제히 치고 올라온 금속 작살들이 정확히 모든 공간을 관통하며 천장까지 치고 올라갔다.
B55에 은폐되어있는 것들 중 무언가가 정글짐을 타고 올랐다면 틀림없이 이 꼬챙이형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우리를 볼 수 없을 텐데 요격 시스템이 정확히 작동하고 있다. 느긋하게 수색할 시간은 없겠어.'
목이 꺾인 채 상반신이 풀장 속에 파묻힌 006의 시체를 힐끔 바라본 그는 투척용 단검을 몇개 뽑아 풀장속으로 던졌다.
플라스틱 공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단검이 풀장의 매트리스 바닥에 꽂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풀장에 남아있지 않다면......'
001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과자 모형 주택가로 향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소꿉놀이 전용 모형 집이 주택가처럼 쭉 늘어선 공간이 있었는데, 집집마다 문과 창문이 달려 있어 성인 남성 한 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드나들 수 있었다.
파우치 속에서 즉발형 최루탄을 몇개 꺼내서 던져준 뒤, 곧바로 방독면을 착용했다.
어둠 속에서 연막까지 더해진다면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니 요격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을 터.
가드-079 역시 감각에만 의존하며 숨죽인 채 숨어있거나, 반대로 스스로 튀어나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수 밖에 없다.
'놈이 스스로 튀어나와준다면 내쪽에서 먼저 알아차릴 수 있다. 튀어나오지 않고 숨어있는다고 해도 직접 찾아내서 죽여주겠다.'
권총에 소음기까지 장착한 001은 자신의 특기인 암살을 위해 연막 속으로 숨어들었다.
어딘가에 바짝 엎드려 숨어있을 가드-079는 갑작스럽게 날아드는 총탄에 꿰뚫리게 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006처럼 배후에서 목을 붙잡혀 고통스럽게 발버둥치다 목이 꺾이게 되겠지.
자욱한 연막 속에서도 모형 집 안에 사람이 숨어있는지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파앙!
한 발씩 총알을 박아주면 된다.
플라스틱 모형을 관통한 총알이 설령 빗나갔다고 해도 충분한 공포심을 자아낸다.
2차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심코 움직여서 자신의 위치를 노출할 수 밖에 없다.
파앙! 파앙! 파앙!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의 맥빠지는 총성 속에서 과자 모형 집들이 차례차례 꿰뚫려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면서 집집마다 총알을 박아주었던 001은 마지막 집에 총알을 박는 대신,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차서 모형 집을 날려버렸다.
자신들의 작업복을 입고 있는 가드-079가 그곳에 엎드려 있었다!
팡! 팡! 팡!!
연이어 방아쇠를 당겨 머리부터 상반신에 골고루 총탄세례를 퍼부어주었다.
하지만 튀어오른 건 피가 아니라 솜털이었다.
"...인형!"
소꿉놀이에 쓰이는 두툼한 봉제 인형에 작업복을 덧입히고 눕혀놓았다.
어둠 속에서 짙게 퍼진 연막 때문에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작업복을 보자마자 방아쇠를 당긴 게 미스였다.
'그럼 놈은......!'
개미부대 작업복을 걸치고 있는 인형에게 딱 하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방독면이었다.
"흡!"
001은 거의 반쯤 육감에 의존한 뒷돌려차기를 시전했다.
아니나다를까, 배후에서 그를 덮치려던 가드-079는 팔을 내려 발차기를 막아냈다. 그는 통풍이 잘 될 것 같은 반바지에 면티 하나를 입고 있었다.
'감히 내게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덤벼들다니!'
정정당당한 승부따윈 중요하지 않다. 싸움은 결국 이겨야 의미가 있는 법. 가드-079의 자세가 살짝 무너진 틈을 타 권총을 겨눈 그는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달칵, 달칵.
"......!"
"집집마다 한 발씩 쐈지만 마지막 10번째 집에선 남은 세 발을 모조리 퍼부었지. 12발들이 탄창을 전부 소모시키려면 이 방법이 딱 좋겠다 싶었어. 프로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한 발 한 발을 신중하게 쏘다가도, 마지막엔 왕창 퍼붓는 법이라고 배웠거든."
마치 체포된 자가 오사마 빈라덴이라는 것이 확정되자마자 냅다 총알을 갈겨버렸던 미군처럼.
"...네깟놈이 내 심리를 꿰뚫어봤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냐?!"
10번째 집에 도달하기 전까지 총 9발의 탄환 소모. 마지막 집에서 봉제 인형에게 아낌없이 남은 3발을 죄다 갈겼다.
연막때문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권총의 슬라이드 후퇴를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제 꾀에 제가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저능아 새끼가 그것까지 예상하고 움직였을리가 없다!'
인정할 수 없다.
이건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멋대로 자기합리화하며, 001은 권총을 내던졌다.
그래봤자 놈이 맨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투척용 단검을 견제 삼아 던지면서 절삭력이 높은 헌팅 나이프를 오른손에 쥐고 달려들었다.
"몸뚱이에 칼침이 박히고도 그런 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지 보자!"
복싱선수처럼 격하게 몸을 비틀어 단검 투척을 피해낸 가드-079는 횡베기로 치고 들어오는 칼날을 팔꿈치로 내려 찍었다.
물론 팔꿈치로 내려찍는 선에서 그친 게 아닌, 동시에 무릎을 차올려서 정확히 칼날을 붙잡았다.
무릎과 팔꿈치 사이에 끼인 칼날은 오도가도 못한 채 허공에서 묶일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장인들이나 할 법한 맨 손으로 칼날잡기를 아득히 상회하는 기술이었다.
'같잖은 재주를 부려봤자다!'
1톤 자동차도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강력한 근력. 그것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손길이 우악스럽게도 가드-079의 팔을 붙잡았다.
그대로 팔목을 비틀어 뼈를 조각조각 박살내줄 작정으로 힘껏 움켜쥐었지만, 뼈가 장난감처럼 부서지는 익숙한 파열음이 울려퍼지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의 팔목에 재빨리 두 다리를 감아 파고든 가드-079가 먼저 그의 손목을 꺾어 분질렀다. 정말 찰나라고 해도 믿겨지지 않을 만큼 짧은 시간에, 001이 반응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손목을 아작낸 것이다.
'말도 안......'
"말도 안 된다는 얘기는 훈련 받으면서 자주 들었어."
지나가는 어조로 한마디를 툭 내던진 가드-079는 이미 한 번 꺾인 001의 손목을 붙잡고 몸 전체를 회전시키면서 연이어 꺾어버렸다.
"끄흐으으으으!!"
손목으로 이어진 혈관과 힘줄이 모조리 끊어지고, 뼈와 근육이 파열되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잘라내지만 않았다 싶을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손이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덜렁거리는 손을 박차고 뛰어오른 가드-079는 몰래 킵해두었던 투척용 단검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화살처럼 날아든 단검은 정확히 001의 목을 꿰뚫었다.
"그르륵...크흐......!"
아직이다! 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피거품 섞인 포효.
헌팅 나이프를 매섭게 휘두르며 마지막 발악이라도 되는 양 달려든 그를 향해 가드-079가 한 것은 너무나도 정직한 스트레이트 펀치였다.
단 한 방.
신체 강화 시술을 받은 인간에게 적중한 일반인의 펀치는 예상과는 달리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했다.
명치에 적중한 일격은 그대로 갈빗대를 부수고, 폐를 찌그러뜨렸으며, 심장을 파열시켰다.
"어, 흐으으으......"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만 못한 패배를 당했다.
뇌의 전기 신호가 끊어지기 전에 001이 본 것은 가볍게 손목을 풀고 있는 가드-079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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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와도 돼 해피야."
정확히는 봉제 인형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있던 해피가 구멍 뚫린 작업복 속에서 튀어나왔다.
호국이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고 해도 비좁은 모형 집 속에서 옷을 벗고 몰래 빠져나오기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처음부터 해피에게 봉제 인형의 탈을 씌운 뒤, 자신이 벗어둔 옷 속에 숨어있으라는 명령을 내려두었다.
덕분에 상대는 진짜 호국이 모형 집에 숨어있었던 것이라 착각하고 남은 탄환을 냅다 갈겨버린 것이다.
주변이 조용한 것으로 보아 프롯의 청소 작업도 얼추 끝난 듯 했다.
호국이 미리 스마트패드를 천장에 매달아 두었기 때문에 CCTV가 없어도 프롯이 직접 보고, 이곳에 침입한 자들을 요격 시스템으로 처리해버렸다.
"그럼 이제 노조 협상을 하러 가볼까?"
해피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하자, 때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신입이 홀로 걸어나왔다.
갑자기 기분이 팍 상해버린 호국은 멀쩡한 모습으로 느릿느릿 기어내려온 신입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선임이 뭐 빠지게 뛰어다니는 동안 뭐하다 온 건지는 몰라도, 마치 '이제야 끝났냐'고 묻는 듯한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래서 낙하산은 안 된다니까."
호국은 TF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