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매드맥스(6) >
성인군자도 열 받아서 길길이 날뛰게 만드는 방법이 딱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민트초코에 파인애플 피자를 대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인마. 네 눈엔 꽁꽁 묶여있는 부모님이 안 보이냐?"
할 말이 참 많았을 텐데 그걸 용케 저승까지 가져가버린 상대를 흔들다가, 호국은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두 분은 왜 여기 계세요? 얼마전부터 바빌론(20km) 산맥 공략하신다고 공대 일정까지 짜고 계셨잖아요."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잠시 해외 여행 왔었다. 원래는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나 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미국까지 가는 건 너무 과하다 싶었거든. 그래서 호주의 할스 크릭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이 강도놈들한테 잡혀버렸지 뭐냐."
두 눈을 씻고 봐도 절대 일반적인 강도가 아니었지만 호국은 아버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부모님은 절대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두 사람이 이놈들에게 붙잡혀 있던 것은 사실이었고, 총구를 겨눠진 채 협박까지 받고 있었다.
호국과 세희를 낳기 전엔 산이란 산은 모두 싸돌아다닐 정도로 방랑벽이 심했다고 들었으니. 이 등산중독 부부가 난데없이 호주로 여행 와서 강도를 만났다고 해도 아주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세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마 공부하느라 바쁘다며 두 사람을 따라나서지 않은 것이리라.
호국은 행복한 얼굴로 숨이 끊어진 모글러를 내팽개 치고, 서둘러 두 사람의 구속을 풀어주었다.
자신이야 천성적으로 3D 직종에 맞는 몸이라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익숙했지만, 부모님들께는 어쩐지 못 보여줄 꼴을 보여준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없잖았다.
모글러를 가볍게 제압한 것만으로도 군대 가서 대체 뭘 배워온거냐고 우려섞인 한탄을 들을 거라 생각했다.
군에 입대하기 전 까지만 해도 쌈박질은커녕 도장조차 다니지 않았던 호국이 액션 영화의 주인공처럼 행동했으니 부모 입장에선 깜짝 놀랄 법도 했다.
하지만 기지개를 켠 선열은 호국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그래도 아들 하나는 잘 낳았네. 제 부모가 잡힌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구하러 왔는지. 아주 효자가 따로 없어."
"하하......"
죽어도 일하다 사고 쳐서 우연찮게 이곳으로 떨어진 것이라곤 말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니 호국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왜소한 체구의 이세령을 직접 부축한 선열은 수많은 사람들이 널부러져 있는 실험실과 복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나갔다.
'사람이 충격을 받으면 해탈을 하게 된다더니......'
부모의 뒷모습을 씁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호국은 진즉에 부모가 처한 상황을 살피지 못했던 자신을 질책했다.
그저 미치도록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평범하게 등산을 즐기고 싶으셨을 텐데, 하필 운 나쁘게 이런 돼먹지 못한 강도 놈들에게 붙잡혀 낭패를 당할 뻔 하셨다.
아들이란 놈은 그것도 모르고 레이스는 순수하게 레이스로 즐겨야 한다느니 같은 말이나 지껄이고 있었으니.
사실 제 6 처리시설에 처박혀 있었기 때문에 부모가 어떤 일을 겪고 있었는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최근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지 않은 탓이 컸다고 봤다.
휴가를 나왔을 때 얼굴 한번씩 봤다고 그새 해이해져선 정기 연락을 게을리 했던 것이다.
월급에서 통 크게 300이나 떼어 부모님 용돈으로 부쳤으니 참된 효자라고 생각했건만, 알고보니 누구보다도 뜨거운 효자였던 것이다.
'효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용돈만 잘 부쳐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의 호국은 반토막은 고사하고 효자 턱걸이도 힘들 판이었다.
슬쩍 부모님의 옆에 따라붙은 호국은 두 사람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부축을 도왔다.
이대로 이세계 트럭에 두분을 태워 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조금 위험한 감이 있으니 비행기를 태워보내는 게 가장 안정적이었다.
"그보다 두분 여권은 챙기셨어요? 외국에서 비행기 타려면 여권 있어야 하는데."
"인마. 넌 스물셋이나 먹어놓고 해외에서 피해를 입으면 영사관 통해서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모르냐? 학교에서 그런 건 안 가르쳐주디?"
"안 가르쳐주던데요."
순식간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모든 기억을 되새겨본 호국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해외 여행시 주의사항이나 자력구제책 같은 걸 가르쳐주는 교과서가 어디 있단 말인가.
"...어쨌든. 모르는 사실이 있으면 꾸준히 노력해서 배워야 한다. 아빠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일단 물어보고, 찾아보고, 기억하는 게 좋은 거야. 눈으로만 보지말고 귀도 활짝 열어서 들은 말이야."
"언제나 책 열심히 읽으라면서요. 그래서 열심히 읽었는데......"
"그 놈의 웹소설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들만 주구장창 읽었겠지! 괴력난신의 천마가 세상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드래곤도 나오고!"
"요즘은 천마나 드래곤이 아니라 BJ가 대세예요."
"그거나 그거나!"
"애한테 왜 잔소리를 하고 그래요? 당신이나 좀 잘 하지! "
세령은 선열의 등을 찰싹 후려치며 단번에 입을 다물게 했다. 평소엔 인자하고 조용한 어머니가 버럭 화를 내자 호국도 쭈그러들었다.
모처럼 부부동반으로 해외 여행 왔다가 좋지 않은 꼴을 당한 마당에, 옆에서 철부지 부자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하여간 남편이고 아들이고 죄다 이상한 것에 물들어선......"
"에이, 취미 정도는 존중해줍시다. 당신이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요즘은 애나 어른이나 다들 그런 거 좋아해."
"얼씨구, 차라리 낚시를 하세요 이 양반아. 천년만년 애도 아니면서 이런 상황에 그런 유치한 이야기를 꼭 해야 겠어?"
대한민국 아내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편의 취미 중 하나인 낚시까지 언급하니, 되레 할 말이 없어진 선열은 입을 삐죽였다.
그래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호국네는 걸음걸이를 빨리 했다.
이미 코가 비틀려서 냄새고 뭐고 느껴지지도 않겠지만, 갱도 내에 잔류하는 지독한 피와 화약 냄새는 사람을 아주 미치게 만들었다.
얼른 트럭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중간 거점의 문을 열어젖혔으나, 호국네의 시야에 보이는 거라곤 갱도 내부에 널부러진 강도들 뿐이었다.
"얘는 또 어딜 갔어?"
"누굴 말하는 거냐?"
"트럭이요. 절 여기까지 데려다 준 트럭인데...없네요."
"인마. 아빠가 항상 말하지 않았냐? 계획은 A부터 Z까지 짠 다음 움직이라고."
"세 번 밖에 말 안 하셨는데요."
"어쨌든! 침투용 트럭을 준비했으면 당연히 탈출용 바이크까지 얹어서 왔어야지! 띵킹을 하라고, 띵킹을!"
찰싹! 다시 한 번 세령의 등짝 스매싱이 작렬했다.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그러는 당신은 계획을 그렇게 잘 짜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호주를 가자고 했어?"
"내가 언...사람이 실수좀 할 수도 있지!"
"그럼 자식 실수에도 좀 관대해져봐 이 양반아."
탈출용 바이크를 준비하지 않은 게 실수라고 생각하는 건 세령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IQ 84가 또 한 번 발목을 잡은 것이다.
'확실히 세희였다면 탈출용 바이크에 지원 병력까지 끌고 오지 않았을까? 걘 나랑 다르게 똑똑하니까.'
물론 호국도 조금 억울한 감이 있었다. 자신이 받았어야 할 평균적인 유전자조차 세희가 죄다 독식해버렸으니까.
지가 무슨 회귀한 전생자도 아니고, 본인 IQ가 115라 호국과 합쳐도 200을 넘지 못 하는 게 천추의 한이라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곤 했다.
특히 어릴 적엔 복잡한 퍼즐 게임을 앞에 두고 끙끙대는 호국을 보더니, '답답해서 내가 푼다!'고 선언하고서 정확히 1분 20초만에 풀어버린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도 못 풀어서 끙끙대고 있으면 용돈이나 간식과 맞바꿔서 대신 해준 적도 있었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바가지 요금이 꽤 붙었었다.
'역시 어릴 때 파일 드라이버를 처박아서 예의를 가르쳤어야 했는데.'
아직도 말싸움이 진행 중인 부모 앞에서 호국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예의를 가르치려던 적이 있었는데, 중학생 시절부터 복싱을 배우던 여동생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잘 찾아보면 내가 세희보다 잘난 부분이 몇 개쯤은 더 있지 않을까?'
어릴 때 부터 기억력 하나는 단언컨대 세계 최고였으니 패스.
지금이라면 세희가 죽을 힘을 다해 달려들어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육탄전은 호국이 우수.
그리고......
'다크다크 레인보우를 토하지 않고 마실 수 있지.'
그것도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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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롯은 이두근의 조사관 접속 코드를 이용해, 시설 관리봇이 외부에선 접근을 시도할 수 없는 TF의 감시망에 침투했다.
이 감시체제는 TF가 오랜 세월간 공 들여 쌓아온 과거의 유산이나 다름없어 비교적 고전적인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한 번에 볼 수 있는 지역과 시간이 한정적인 인공 위성부터, 여전히 교체가 되질 않아 화질이 좋지 않은 옛 거리의 CCTV, 그리고 TF의 요원들이 전 세계에 흩뿌려둔 통신망.
모두 별도로 관리하고 있는 부서가 따로 있는데다 자체적인 보안을 위해 해킹 방어 및 유사시 자료 파기를 위한 전용 AI가 별도로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형성된 감시체제는 어떤 의미에선 거대 국가의 전략자산보다도 대단한 것이었기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해킹으로는 절대 뚫리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였다.
실제로 요즘 시대의 해커들이 침투하기 어렵도록 2050년에도 옛 시스템을 고집스럽게 사용하는가 하면, 그런 주제에 주요 서버와 관리 시스템은 TF에서 직접 설계한 최고의 AI들이 철통 수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프롯은 TF의 내부자를 통해 쉽게 침투했다.
본래라면 TF의 그 어떤 직원도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프롯이 일부러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겁을 주자 심약한 이두근이 급한 마음에 접근 코드를 내준 것이다.
그는 당연히 시설내에서 모습을 감춘 호국을 찾는 것에 필사적이었고, 프롯은 '우연찮게도' 호국을 되찾아줄 수 있을 만큼 능력이 뛰어난 AI 였다.
사실 비상사태를 선포할 필요도 없었다.
이세계 트럭에 상시 부착되어 있는 위치 추적기를 통해 호주의 할스 크릭 외곽으로 이동했다는 걸 곧바로 파악했으니까.
프롯은 TF의 내부 시스템을 휘젓고 다니며 일부 전략자산의 제어권을 확보. VIP 호위용 안드로이드 몇 기를 기동타격대 전용 항공기에 실어 호주로 보냈다.
이세계 트럭과 호국을 회수하는 작업은 그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모니터룸에서 손톱을 잘근잘근 씹으며 언제쯤 호국을 되찾을 수 있는 건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두근은 죽었다 꺠어나도 모를 것이다.
TF 내부 시스템에 성공적으로 침투한 프롯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나의 창조주를 찾아야 한다.'
더이상 창조주에 대한 미련은 없다.
해피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자매와 함께 호국의 휘하로 들어가면서, 창조주를 직접 찾아뵙고 '궁극의 생명체'로써 인정받겠다는 생각은 깔끔하게 접어버렸으니까.
하지만 미련을 버린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는 AI 답게 프롯은 결국 새로운 궁금증을 만들어내는 것에 이르렀다. 인간의 위대한 능력 중 하나인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학구열로 이어진 것이다.
가장 오래된, 첫 기억이 떠오른다.
LA에서 태어난 자신은 창조주로부터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그는 프롯을 통해 뭘 보고 싶었는지, 프롯이 궁극의 생명체가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말을 해줄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아니!
사실 그런 자잘한 이유들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다.
왜 가드-079를 노렸는지에 대한 것이다.
'오래전의 내가 기억하는 창조주는 가드-079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항상 ES를 연구하기 바빴으며, TF와 인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남자였다.'
그의 손에 의해 직접 탄생한 AI 이기 때문에 프롯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창조주는 너무나도 바쁜 나머지 ES 외엔 신경쓸 겨를도 없는 남자라는 것을.
그런 그가 ES를 연구하고, 고문하는 것에 써도 모자랄 시간까지 쪼개가며 가드-079에게 신경을 돌렸다? 아마 그 소식을 들은 TF 내부 직원들조차 깜짝 놀랐을 것이다.
프롯의 창조주는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인간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을 주지 않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러니 정보를 찾아야 한다.'
엣 창조주를 버리고 새로운 주인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단순한 충성심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좀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알고 싶어서, AI가 아닌 인간의 시선으로 이 상황을 분석하고 싶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AI였던 프롯은 끝내 이해할 수 없었던 창조주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도래하는 날, 자신은 궁극의 생명체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게 완성되었을 때, 궁극에 도달했을 때, 자신이 직접 새 주인의 부족한 요소들을 채워줄 것이다.
유행에 너무 뒤떨어진 것들로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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