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특수 근무(3) >
호국의 귓가를 계속 때리는 벨소리의 원인은 다름아닌 책상에 올려둔 스마트패드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헛것을 보는 건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살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롯이 설치되어 있는 스마트패드는 이두근이 가져가버리고, 그가 새로 지급해준 스마트패드를 가지고 왔다.
통신기능이 제한된 기종이라 미리 다운로드된 컨텐츠를 즐기는 게 아니면 벽돌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게 수십년 전쯤에나 쓰였을 법한 벨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이다.
-발신자번호표시제한
'이러면 전화 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이두근이 너무 급하게 이것저것 챙겨주다가 실수로 통신 기능을 제거하지 않은 기종을 지급해줬을 수도 있다.
아침부터 다들 시장통 상인들마냥 바빠보였으니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걸려온 전화는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호국은 메뉴얼대로 행동했다.
"당직 근무자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가장 먼저 귓가를 파고든 것은 송곳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였다. 왠지 꺼림칙해서 듣기 싫은 목소리였지만 이상할 정도로 귓구멍에 찰떡같이 박혀들었다.
묘하게 중독되는 맛이 있는 목소리라고 할까? 꼭 사극에서 거친 쇳소리를 내는 노신(老臣)이 폭군 앞에 나아가 목숨을 걸고 쓴소리를 내뱉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이 목소리로 왕을 향해 '님 도르신?' 이라고 했다면 시청률 10%는 가볍게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책임자를 바꿔달라는 질문도 아니었는지라 호국은 이 전화를 끊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노인들을 많이 상대해본 경험상, 멋대로 전화를 끊었다간 귀신같이 다시 전화를 걸어 쌍욕을 퍼부을 게 뻔하다. 그렇다고 계속 듣고 있자니 직장에서, 그것도 병원 대합실에서 통화나 해대는 개념없는 놈으로 보일까 걱정되었다.
'근무시간에 통화 때문에 일터를 벗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답은 하나 뿐이었다.
스마트패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이어폰을 착용한 호국은 CCTV를 살피는 척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저 혼잔데요."
-약속이 다르군!
멍때리고 있으면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세상이긴 하지만, 설마 자신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약속을 들먹일거라곤 예상도 못 했다.
기억력 하나는 자신있는 호국이 약속에 대해 되물었다.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요?"
-헛소리! 매년마다 그렇게 했잖아! 암수 한쌍! 그렇게 준비하기로 약속했었다고! 만약 그쪽에서 줄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받아내겠어!!
대뜸 상대가 소리를 지르자 짜증이 난 호국은 이를 갈았다.
"귀가 먹은 것도 아닌데 소리는 왜 지르고......! 끊었어?!"
어느새 통화가 종료된 스마트패드는 '업데이트가 있습니다' 라며 제멋대로 리부팅을 시작했다.
목소리만큼이나 참 괴팍한 양반이었다. 실제 모습도 꼬장꼬장한 콧수염 노친네일 것이 분명했다.
초면인 사람을 상대로 버럭 소리를 지른 것도 모자라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릴 정도였으니, 어쩌면 씩씩대는 얼굴로 병원을 찾아올 가능성도 있다. 그땐 남자 대 남자로써 조용히 끌고나가 진중한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스마트패드가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동안, CCTV를 대충 훑어보던 호국은 3번 CCTV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B병동 2층 중앙 복도 CAM이 찍고 있는 것은 중앙 계단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2층 남녀 화장실 입구였다.
당연히 공용 화장실은 아니었고, 제대로 남성용과 여성용 입구가 따로 나뉘어 있었다. 다만 두 화장실의 입구 사이에 위치한 흰 벽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검은 얼룩같은 것이 번져나왔다.
CCTV는 실시간 촬영이라 1초 단위로 기록되고 있는 상황. 호국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수초 전의 벽과 지금의 벽은 확실히 얼룩이 번진 정도가 달랐다.
수도시설이나 건축 관련의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호국이었지만, 최악의 상황 정도는 유추해볼 수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규모의 병원인데 화장실 배수관이 터져서 똥물이 역류할 만한 미친 구조로 건물을 지었겠어?'
그것도 역류한 똥물이 얇은 콘크리트 벽을 뚫고 나온다? 솔직히 말해서 믿기 힘들다. 믿고 싶지 않다.
문득 호국은 3번 CCTV 모니터 아래에 전원 버튼이 있는 것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전원 버튼을 누르자 모니터가 픽 꺼져버렸다.
자신은 아무것도 못 봤고,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양 손을 모은 채 주변 눈치만 살피고 있으려니, 때마침 업데이트가 끝난 스마트패드가 명랑한 전자음과 함께 부팅을 알렸다.
화장실 벽의 얼룩에 대한 건 잠시 뒷전으로 미뤄두고, 호국은 업데이트가 막 끝난 스마트패드를 만지작거렸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뭐든 눈요깃거리가 필요했다.
그런데 바탕화면에 보이는 파일이라곤 딱 하나 뿐이었다.
-facility control.exe
'게임인가?'
계기판 모양의 아이콘을 터치해보자 순식간에 스마트패드의 화면이 바뀌었다. 정말 게임 화면처럼 여러 선택지가 나타난 건 덤이었다.
1. 감시 모드
2. 제어 모드
3. 방송 모드
4. 진행률 확인
누구도 손대지 않은 새 게임에 자신이 직접 세운 기록을 덧씌우고 싶은 게 모든 게이머들의 로망이다.
가장 먼저 진행률 부터 확인한 호국은 No.001 research facility 의 진행률이 벌써 15%나 진행된 것을 보고 안타까움 섞인 한숨을 흘렸다.
우리의 이두근씨가 자신이 즐기던 게임의 세이브 파일을 그대로 남겨둔 모양이었다.
'평소엔 게임이랑 담 쌓고 지낼 것 처럼 생긴 양반이 뒤에선 이런 걸 하고 있었다니.'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할 게 아니었다.
1번 파일을 꾹 눌러보자 감시, 제어, 방송 모드의 선택지가 나열되며 진입 방식을 요구했다. 설명도, 튜토리얼도 없는 불친절한 게임이라 일단 감시 모드를 눌렀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수많은 원통형 유리관들이 놓여있는 시설 내부를 걷고 있는 두 명의 경비원이었다. 가상현실 만큼은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그래픽 기술력을 잘 살렸는지, 그저 바라보는 것 뿐인데도 풍경이나 캐릭터들의 그래픽이 정말 괜찮았다. 꼭 진짜처럼.
'주인공과 조연이 비밀 연구소라도 탐험하는 내용이었나?'
두 캐릭터 근처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놓여있는 유리관들 속엔 뭔지도 모를 괴생명체가 들어 있었다.
학교 과학실에 가보면 꼭 하나둘쯤은 있는, 개구리 표본 같은 것이 포르말린액에 담겨 있는 것과 비슷한 광경이었다.
어떤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건지 알아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캐릭터를 터치한 호국은 잠시 후 나타난 팝업창을 보고 소스라차게 놀랐다.
-희생 절차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아직 진행률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미친! 당연히 안 되지!!"
비록 이두근씨가 아깝게 15%나 진행해두긴 했지만, 그렇다고 남의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건 못 할 짓이었다.
설마 캐릭터를 터치한 것 만으로도 희생시키니뭐니 떠들어댈 줄 몰랐던 호국은 급히 팝업창을 닫고 다른 요소들을 터치해보았다.
인벤토리나 설정창을 열 수 있는 기능은 없었지만, 주변에 잔뜩 존재하는 유리관이나 계기판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는 기계들 또한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1-555-37 : 식욕 증진제 투여중......
-1-555-28 : 식욕 증진제 투여중......
-1-555-89 : 식욕 증진제 투여중......
어떤 유리관을 눌러봐도 죄다 식욕 증진제를 투여중이라는 팝업창만 떴다.
하지만 기계를 눌러보면 조금 다른 팝업창이 나타났는데, 의외로 다양한 선택지들이 존재했다.
1번 절차 : 식욕 증진제 투여(진행중)
2번 절차 : 성욕 증진제 투여(진행 예정)
3번 절차 : 마약성 환각제 투여(진행 예정)
4번 절차 : 각성제 살포(진행 예정)
5번 절차 : 표적기 발포(대상 지정 준비)
6번 절차 : 모든 출입구 폐쇄
7번 절차 : 모든 전력 차단
8번 절차 : 디저트 투입
시험삼아 식욕 증진제 활성화 버튼을 눌러보니 '이미 진행중입니다. 취소하시겠습니까?' 라는 주의문구가 나타났다.
그 순간 고전 게임 짬밥 10년에 달하는 호국은 직감적으로 이게 어떤 컨셉의 게임인지 눈치챘다.
'탈출 지원형 게임인가?'
플레이어는 전지적 관찰자 시점으로 모든 상황을 주시하면서, 캐릭터가 탈출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나 상황을 준비해주는 게임을 일컫는다.
결국 마구 누르다보면 깨지는 단순무식한 게임이기도 하지만, 이 상황에 이 요소를 사용해보면 어떨까? 하고 기대하면서 시도해보는 퍼즐형 게임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족쇄에 묶인 주인공이 탈출하기 위해 톱을 준비해주고, 그 톱으로 이것저것 시험해보다가 결국 마지막엔 족쇄가 묶여있는 신체 부위를 직접 잘라내서 답을 만드는 형식의 게임.
고전적이지만 꽤 마음에 드는 장르였다.
'보아하니 이 괴물들에게 뭔가 주입해서 아주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럼 이 두 남녀가 성공적으로 빠져나갈 발판이 마련될 것이다. 꼭 그게 아니어도 뭔가 시도를 해보는 게 게임의 기본 아니겠나.
-아직 1번 절차가 진행중입니다. 정말 3번 절차를 병행 하시겠습니까? Y/S
"예스, 예스, 예스!"
식욕이 들끓는 것도 모자라 마약으로 정신을 쏙 빼놓으면 저 불쌍한 미아들을 쉽게 쫓아가진 못할 터.
아주 유리관 속에서 마약으로 뇌까지 절여 디버프를 잔뜩 쌓아놔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호국은 Y 버튼을 연타했다.
바로 그때, 호국이 열고 들어왔던 뒤쪽의 유리문을 통통 두들기는 인물이 있었으나, 상대가 조금 전에 번호표를 받아간 휠체어를 탄 여성이란 걸 확인했다.
-9번 : 휠체어를 탄 여성이 사무실 앞으로 다가와 유리문을 두들겨도 대화를 시도하지 마십시오.
메뉴얼에 따르면 '유리문'을 두들기면 대화도 하지 말라고 하니, 호국은 손짓으로 그녀에게 반대편으로 돌아오라는 메세지를 보냈다.
멀쩡히 대화용 구멍이 뚫려있는데 왜 굳이 유리문까지 돌아가서 두들긴단 말인가.
하지만 호국의 눈물나는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시 한 번 뚱한 눈빛을 보내더니, 이내 휠체어를 밀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설령 그녀가 아니라 그녀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왔어도 유리문을 두들겼다면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게임이나 계속 하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병원 경비가 할 일은 없었고, 의외로 간호사들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특수 근무라기에 힘든 일이 잔뜩 있을 줄 알았더니 정말 별 것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대놓고 꿀을 빠는 것 뿐이다.
빨 수 있다면 최대한 빨아야 하는 게 꿀이다, 이건 군 선임들이 몸으로 직접 보여준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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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특수 근무 체제 현황 (Day 1) (AM 08 : 32)
-제 1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5%) (일부 시스템 제어 불가능)
-제 1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7%)
-제 2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
-제 2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
-제 3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3.5%)
-제 3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2.8%)
*B 특수 근무 체제 현황
-제 4 연구시설 : 시설의 20% 가량 영역화 진행됨(긴급 상황)
-제 4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4%)
-제 5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0.6%)
-제 5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5%)
-제 6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2.2%)
-제 6 처리시설 : ERROR
*예외
-AREA 51
-마리아나 해구 특수 감옥(술래 휴식)
-제 3 우주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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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도 사람인 이상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것들이 쉴새없이 말을 걸거나 명함을 내밀어대면 어떠한 액션을 취할 수 밖에 없게 되니까.
가령, 자신에게 집요하게 들러붙은 휠체어 탄 환자를 실수로 밀쳐냈다고 치자. 거기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사과'를 한다면 그 또한 게임 오버 루트다. 환자로 인식을 해버린 것이니까.
덧붙여서 사무실에서 경비가 가장 오래 버틴 기록은 3일 하고도 13시간이다.
그는 꽤 눈치가 좋았던 경비라, 당시의 경비팀장이 직접 그를 선발해서 내려보냈다. 눈치가 너무 좋으면 TF의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으니 그 의식을 통해 '처리'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의 파트너는 1일째 근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기증자가 된 것에 비해, 그는 놀랍게도 3일하고도 반이 흐르고서야 사무실을 벗어났고, 겨우 의식의 끝을 장식할 수 있었다.
그는 메뉴얼을 몇번이고 읽으면서, 4번 수칙(정기 순찰)만을 거부하면 언젠가는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었지만.
"지금 몇 시간째지?"
"...이제 의식 진행 1시간째입니다."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보통 반나절은 넘게 기다려야 슬슬 움직임을 보인다고 들었는데, 단 1시간만에 저 참을성 없는 아귀들이 몰려들 줄이야.
진행자가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탓에 다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이다. 아니, 발이 없으니까 발등이 아닌가?
"가드-079는 화장실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배출 욕구를 느끼면 참지 않고 바로 화장실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각 구역마다 화장실을 설치해달라고 건의했겠죠."
"그래. 아침을 먹긴 먹었을테니 곧 신호가 올거야. 그럼 저 사무실을 벗어날 수 밖에 없게 되는데...아!"
두 사람이 말하기가 무섭게 스마트패드를 만지작 거리던 가드-079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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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 병원 내부 순찰은 반드시 한 시간 간격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스마트 패드의 시계가 9시 정각을 가리키자 호국은 게임하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드가 가드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그건 바로 순찰이다.
진압봉을 붕붕 휘두르고, 마스터 키(보안 카드)를 열쇠걸이에 꽂은 채 찰칵찰칵 소리를 내주면서 걸을 때면, 김호국이라는 인간이 한 시설의 보안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통감하게 된다.
"병원은 어딜 가도 다 똑같구나."
오전 9시. 본격적으로 의사들이 진료를 보기 시작하는 이 시간대는 마치 공휴일의 네버랜드마냥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무할인, 무적립, 무할부 프리패스 이용권을 끊어서 이 사람냄새 나는 길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그러면 너무 미안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 두 다리 멀쩡하오 하고 자랑할 수는 없으니까.'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뚱뚱한 사람은 비쩍 마른 사람을 놀려도 된다. 하지만 비쩍 마른 사람은 뚱뚱한 사람을 놀리면 안 된다. 그건 너무하니까.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그림 자체를 연출해선 안 된다.
마음같아선 속보로 걸어 빠르게 순찰을 돌고 싶었지만 휠체어를 탄 수많은 환자들 앞에선 걸음걸이를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걷지 못하는 환자를 조롱하는거냐며 괜히 트집이라도 잡혀봐라. TF의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감봉에 휴가 제한, 직급 강등 같은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건 너무하니까.'
하지만 다수 앞에 장사 없다고.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너무 많아서 뭘 해도 호국이 불리한 건 사실이다.
"...잠깐. 괜히 나만 두다리 멀쩡해 보이는 게 문제라면...나도 멀쩡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호국은 어렵사리 휠체어 환자 무리들을 지나쳐, 대학병원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휠체어 대여소를 찾았다. 그러다 자신의 복장도 문제라는 걸 알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경비 복장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녀봐야 욕만 먹을 것 아닌가.
호국은 사무실로 되돌아와 짐 하나를 챙긴 뒤,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이두근은 비상사태가 터지면 꺼내 입으라고 했지만, 다리가 불편한 환자들이 병원에 넘쳐나는 지금이 바로 두다리 멀쩡한 호국에겐 비상사태였다.
옷을 갈아입은 호국은 슬쩍 휠체어 대여소로 숨어들었다.
"휴. 이제야 눈치 안 보고 순찰할 수 있겠네."
휠체어 대여소에서 휠체어를 밀며 나온 것은 병원 환자복을 착용한 호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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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특수 근무 체제 현황 (Day 1) (AM 09 : 00)
-제 1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8%) (일부 시스템 제어 불가능)
-제 1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9%)
-제 2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3%)
-제 2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2.6%)
-제 3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6%)
-제 3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4%)
*B 특수 근무 체제 현황
-제 4 연구시설 : 시설의 25% 가량 영역화 진행됨(긴급 상황)
-제 4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6%)
-제 5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3.1%)
-제 5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9.9%)
-제 6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5.2%)
-제 6 처리시설 : ERROR(진행률 : 확인 불가)
*예외
-AREA 51(소요사태 발생. 진압중)
-마리아나 해구 특수 감옥(술래 이동)
-제 3 우주 정거장(행성 지표면에서 일부 ES의 행동을 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