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비밀 친구들(2) >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
"으음......?!"
갑작스러운 이명에 호국은 귀를 붙잡고 고개를 떨궜다. 처음 사격 훈련을 했을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갑자기 청각이라는 감각 자체가 완전히 단절된 것 같은 느낌. 하지만 그 감각은 오래 지나지 않아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눈도 좀 뻑뻑하네.'
갑작스러운 이명이 잦아들고, 뻑뻑한 나머지 흐릿해졌던 시야도 눈을 몇 번 문질러주니 금세 회복되었다. 역시 너무 일만 하다보니 지친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아직 휴가를 받을 때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근무중이었다. 정말 몸 상태가 안 좋다면 병가라도 냈겠다마는, 호국은 자신 대신 휠체어에 앉아있는 꼬마를 보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그렇게 속도에 자신있다면서? 내 질주 본능을 감당할 수 있겠어?"
꼬마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동의를 얻었다. 브레이크 안 밟고 미친듯이 질주해도 된다는 동의를.
"그래, 너도 이 맛을 알게 되면 두 번 다시 뛸 수 없는 몸이 될 거야."
오직 김호국표 휠체어 드라이브 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쾌감을 맛보여줄 생각이다.
꼬마를 휠체어에 태운 채 211호실을 나온 호국은 문득 복도가 아주 시끄럽다는 것을 알아챘다.
"...다들 어디 간 거지?"
분명 웅성웅성,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시장바닥마냥 떠들어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코너를 돌아보면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호국의 시선을 피하긴 했어도 환자들이 돌아다니던 병실 복도였는데,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것이다.
'소리가 안 들려.'
웅성웅성 떠들어대던 인위적인 소음도 코너를 돌기가 무섭게 뚝 잦아들었다.
복도 내부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라곤 휠체어가 부드럽게 굴러가는 소리가 전부였다.
혹시 다들 낮잠 한 타임 때리는 건가 싶어 병실 문을 일일이 열어봤지만, 그곳에서도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이불이나 옷가지 따위가 마구 널부러진 침상, 헤지고 찢어진 프라이빗 커튼이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모습은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분명 인기척이 느껴졌다. 호국의 감각이 거짓이 아니고서야 그 인기척이 수 초만에 사라졌을리가 없지 않은가.
"허참. 귀신이 탭댄스 출 노릇이네."
깜빡깜빡. 복도 중앙에서 밝게 빛나던 백열등이 어느새 누런 때가 껴서 혼탁한 불빛을 내뿜었다. 그마저도 몇 초 간격으로 점멸하는지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괜히 눈이 시렸다.
호국은 휠체어에 무릎을 당겨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는 꼬마를 보고서 피식 웃었다.
병원 내부에서 에어컨을 너무 빵빵하게 튼 것일까? 호국은 자신의 양 팔을 문질러봤지만 딱히 춥다고 느끼진 않았다. 대충 복도 의자에 놓여있던 환자용 담요 하나를 집어 꼬마에게 덮어주었다.
녀석은 머리 끝까지 담요를 뒤집어 쓴 채 계속 떨었다.
조금 전에 스스로 속도광이라고 떠들어놓고도 막상 휠체어의 속도는 인간이 걷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호국은 지금도 충분히 빠르다고 생각했다. 이 휠체어가 복도를 가로지를수록, 다른 구역으로 향할수록, 누군가에게 향할수록 브레이크 따윈 밟을 수 없는 셈이니까.
하지만 맞서 싸워야 한다. 공포라는 감각을 망각해선 안 된다. 항상 마음 속에 새겨두면서도 결국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자신도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잊을래야 잊혀지지도 않겠지.
"이 세상엔 보기 싫지만 억지로 봐야 하는 게 참 많아."
가면 속에 진짜 얼굴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
호의라는 선물을 내밀면서 배신이라는 칼을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사람들.
그렇게나 상냥했던 의료인들도, 막상 호국의 머리통에 뾰족한 전극을 꽂아 넣을 때면 한없이 냉랭해졌다. 그들은 무표정이라는 가면 속에 희열이라는 감정이 뻔히 드러나고 있다는 것도 몰랐겠지.
"듣고 싶지 않은 것도 억지로 들어야 할 때가 너무 많아."
화장실에서 흘러나온 검은 물과 얼룩이 복도를 가득 메워나갔다.
병실의 모든 문이 쾅! 쾅! 쾅! 하고 순서대로 닫히기 시작했다.
빠르게 점멸하던 백열등 전구는 이내 펑펑 터져나가며 유리조각을 흩뿌렸다.
병실 문 안쪽에서 뭔가가 벅벅 긁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갑작스러워도 당황하지 않는다. 호국에겐 그 날 이후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으니까. 갑작스러운 것에는 익숙해져 있다.
쾅! 쾅! 문 안 쪽에서 제발 열어달라는 듯이 주먹으로 두들기는 소리도 울려퍼진다. 그럴수록 담요 속에 자신을 감춘 꼬마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마치 과거의 호국처럼.
"좋은 것만 보고 듣고, 느껴도 부족한 세상인데."
콰직!
옆에서 날아든 문짝이 호국을 덮치기 직전, 주먹으로 문짝을 쳐서 날려버렸다. 합금 강판이라 호국의 주먹도 성하지는 않았지만 그정도는 괜찮았다.
시커먼 암흑 밖에 존재하지 않는 병실에서 기어나온 것은 두 다리가 잘린 채 피눈물을 흘리며 기어나오는 환자들이었다. 똑같은 외모, 똑같은 이름, 똑같은 상처를 지닌 환자들이 한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아니 '그'는 몇번이고 다리를 빼앗긴 탓에 억울함을 표출하는 것일까? 물론 호국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다.
호국이 다리를 빼앗아 간 것도 아니고, 이 아이가 '대신' 빼앗겨 줄 것도 아니니까.
두 다리가 멀쩡해도 뛸 수 없고, 휠체어를 직접 밀어서 움직일 수 있음에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인지 다들 이 아이를 원한다. 이 병원에 단 한 명뿐인 아이를.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아이를. 적어도 호국은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나라의 보배이자 미래인 아이들은 마음껏 원하는대로 뛰어다닐 자유가 있고, 휠체어를 타고 시속 50km가 넘는 속도로 병원 복도를 질주할 권리가 있다.
호국이 초콜릿으로 꼬마를 유혹했다면, 병실의 문을 박차고 하나둘씩 기어나오는 양반들은 어딜 어떻게 봐도 꼬마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호국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으니까.
휠체어를 향해 피에 절은 손은 내밀던 한 환자의 손이 호국의 발에 차단되었다.
"그대로 계속 담요 쓰고 있어. 대충...백만 세면 될 거야."
호국의 날카로운 시선에 포착된 다리없는 환자들은 호국의 다리가 멀쩡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요할 정도로 휠체어만 노렸다.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에 아이를 노린다는 건 안다. 다만 왜 노리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다리는 자기들에게 맞지도 않을 텐데.'
호국이 이 병원에서 본 환자들은 모두 성인이었다. 아이는 곰인형을 쥔 이 꼬마 한 명 뿐이었다.
'당연히 이유야 있겠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하나같이 애만 노리는 건 그림이 좀 이상하지 않나?'
대충 좌우에서 치고들어오는 손들을 발로 걷어차서 분쇄하며, 호국은 느긋하게 휠체어를 끌고 나아갔다.
어차피 발목까지 차오른 검은 물 때문에 빨리 달리고 싶어도 휠체어 바퀴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니 느긋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어른들이 뻗치는 마수를 떨쳐내는 것에 집중했다.
화장실 옆을 지나칠 때는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입구 사이의 벽에 검은 얼룩이 져있는 것을 보았다.
동시에 안쪽의 수도관이 터지기라도 한 건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가 꽤 크게 들렸다. 누군가 볼일을 보고 있었다면 아주 낭패였을 것이다.
'내 마음 속의 안식처가 이런 꼴이 될 줄이야......'
호국은 이미 검은 물과 얼룩으로 난장판이 된 화장실 앞을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만 했다.
마음 같아선 직접 공구 상자와 뚫어뻥을 들고가서 싹 고쳐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호국이 비록 어디가서 IQ 자랑조차 하지 못 할 만큼 멍청하긴 해도 눈치가 없지는 않다. 211호실 환자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이 병원에 '뭔가'가 있다.
그리고 그건 A 병동의 환자들이 끌려가 다리를 절단당한 지하 수술실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드라마 매니아인 호국이 '생각할 머리가 안 되면 감으로 찍어라' 라는 말을 떠올린 결과였다. 모 영국 탐정은 순전히 지능파였지만, 셜록 호국은 순수하게 직감파였다.
하지만 직감대로 그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는 지하에 가는 것이 맞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었다.
'거길 왜 가. 여기서 나가야 하는데.'
경비인 호국에겐 진상 규명도 하나의 일이지만, 그전에 이 꼬마에게 필요한 건 자유였다.
누구에게도 제지당하지 않고, 붙잡히지도 않고, 다리를 절단당할 일도 없는 완전한 자유.
재난 사고가 터지면 아이와 여자, 노약자부터 대피시키는 이유와 일맥상통했다.
이 병원은 이미 폭풍 속이나 다를 바 없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서 그런 게 아니다. 아이가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호국은 그곳이 설령 병원이든 놀이터든 모두 재난 영화 속 중심지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수당 많이 준다고 근무를 하는 나도 참 대단하긴 해.'
그냥 나대지말고 반쯤 억지를 써서라도 해피나 신입을 데려왔어야 했다..
마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달려드는 소방관이 딱 이런 기분일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온 호국은 텅 빈 1층의 복도를 가로질러 A 병동 현관으로 향했다. 이대로 병원을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꼬마는 부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호국이 그랬던 것 처럼.
쿠르르르르 쾅!
현관까지 앞으로 10m 가량 남겨두고 있었을 즈음, 갑자기 입구의 방범 셔터와 방화유리벽이 매우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철컥철컥! 방범 셔터는 제멋대로 잠금 장치까지 걸려버렸고, 방화 유리벽은 지면의 연결부에 단단히 고정된 채 굳건한 성벽처럼 호국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호국이 가슴팍에 매달아두었던 스마트패드가 삐빅, 하고 고전적인 전자음을 울렸다.
발신자가 '수칙과' 라는 대상이 보낸 문자 메시지 한통이 도착한 참이었다.
-긴급 공지! 병동 내에서 환자 탈주 사건 발생! 지원 요망!
"응, 삭제."
-14번 : 스마트패드를 통해 "긴급 공지! 병동 내에서 환자 탈주 사건 발생! 지원 요망!" 이라는 메세지가 오면 즉시 삭제하십시오.
애초에 환자가 정말 탈주했다고 해도 그건 병원측의 관리 부실 문제였다. 그것보단 우선 이 통통한 꼬마를 집에 보내줘야 할 것 아닌가.
소요 사태 발생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수칙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병원내 방송 시스템을 이용해 환자 탈주 사건이 발생했다는 긴급 공지를 때려버렸다.
프롯이 있었다면 이깟 문쯤...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던 호국은 발길을 돌리다말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계단을 통해 우르르 몰려 내려온 다리 없는 환자들, 엘리베이터에서 모습을 드러낸 의료인들, 구름다리를 통해 A 병동으로 건너온 휠체어 집단이 순식간에 A 병동 1층으로 몰려든 것이다.
대충 어림잡아도 수백명은 될 것 같은 인파였다. 모두 뚫고 나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호국 혼자라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이 꼬마와 비밀 친구를 맺은 상태라 혼자 두고 갈 순 없었다.
팀이 없다고 해서 일손이 이렇게나 부족할 줄이야!
"하아...나도 도와줄 비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무심코 내뱉은 한숨과 한탄.
그건 이 상황을 자신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호국의 헛소리였다.
직후, A 병동 1층에 존재하는 모든 전등이 일시에 박살나며 전선들이 살아있는 뱀처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촉수처럼 내뻗은 전선들은 호국을 향해 스스럼없이 접근하고 있던 자들의 목을 둘둘 감아 단숨에 매달아버렸다. 천장에 데롱데롱 매달린 자들은 상상속의 동물이나 내지를 법한 괴성으로 울부짖으며 사지를 마구 퍼덕였다.
그것이 일종의 자극을 준 것일까. 인간의 탈을 쓰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그 탈을 벗기 시작했다.
결국 보고 싶지 않았던 것들마저 다시 보이자, 호국은 슬그머니 담요를 내리려던 꼬마에게 다시 담요를 씌워주었다..
"아무래도 오늘 천 까지 세야겠다. 아, 귀도 막고."
더이상 호국의 눈에 평범한 환자나 의료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IQ 84라도 확연히 인지할 수 있는 적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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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특수 근무 체제 현황 (Day 1) (AM 10 : 00)
-제 1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20%) (무허가 접속자 Ear-004, Eye-004 차단 성공)
-제 1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1%)
-제 2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5%)
-제 2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6%)
-제 3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8.3%)
-제 3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6.8%)
*B 특수 근무 체제 현황
-제 4 연구시설 : 시설의 34% 가량 영역화 진행됨(전체 시설의 3할이 무력화 되었으므로 추가 병력 투입 취소)(시설 종말 시스템 가동)
-제 4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9%)
-제 5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6%)
-제 5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3%)
-제 6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7%)
-제 6 처리시설 : ERROR(기억 복원중 : 0.003%)
*예외
-AREA 51(소요사태 규모 확대)(인근 지역 대규모 공습 확인)
-마리아나 해구 특수 감옥(술래 도우미 찬스 사용)
-제 3 우주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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