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비밀 친구들(4) >
'분명 나와 같은 경비팀이었어.'
호국은 자신보다 앞서 일했던 이전 경비팀의 근황을 알진 못 했지만, 계단을 쿵쿵 걸어올라오고 있는 저 무리들이 이전 근무자들일거라 확신했다.
그렇다면 같은 경비인 저들이 왜 호국을 공격하느냐고 묻는다면 호국도 알 길이 없었다.
저들이 경비라는 본분을 잊고 이 병원에 매수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협박을 당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내가 경비처럼 보이지 않으니까 착각하고 공격했을 수도 있어.'
피가 묻은 환자복을 내려다본 호국은 이제와서 옷을 갈아입을 틈따윈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도 공격하지 않았을거라는 보장이 없어.'
계단 옆의 벽에 기대선 호국은 고개만 빼꼼 내밀어 아래를 살폈다.
진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올라오는 네 명의 경비는 호국과 시선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다시 총구를 들어올렸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본 그들의 시선 속에서, 호국은 영 꺼림칙한 살의를 느꼈다.
충동적으로 상대를 죽이고자 마음먹은 사람의 살의는 마치 잠잠했던 휴화산이 일시에 폭발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겉보기엔 멀쩡해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이성의 끈이 끊어졌으며, 본인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게 된 만큼, 뒤에 이어지는 행동이 필연적으로 거칠어 진다.
반대로 계획적인 살인을 준비하는 자들의 살의는 흔들림이 없는 차분한 수면과도 같다. 물론 수면 아래에선 당장이라도 희생자를 덮칠 준비가 되어있는 괴물(살의)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튀어나갈 때를 기다린다.
하지만 저 아래에서 호국과 꼬마를 쫓아 올라오는 경비들은 전자와 후자 모두 해당하지 않았다.
이유도 없고, 원한도 없고, 분노도 없고, 계획도 없다. 그냥 목표한 대상을 죽이고자 하는 순수한 살의로 가득 차있었다.
앞선 두 사례는 호국이 군 시절에 마주친 적이 있었다면, 저들 같은 경우는 '인간' 기준으로 이번이 처음이었다.
'행보관님은 상대가 나를 죽이고자 마음 먹었을 때, 거기서 이유를 찾지 말라고 하셨지.'
이유를 찾을 시간이 있으면 총이든 뭐든 꺼내들어서 반격을 해라. 반격을 할 수도 없을 만큼 수적, 화력적 열세인 상황이라면 있는 힘껏 도망치고 숨어라. 그렇게 배웠다.
'숫적으로도, 화력적으로도 열세가 맞아. 하지만 이 병원에 숨어봤자 결국 들킬테고, 남은 건 도망 뿐인데......'
호국은 시험삼아 2층 창문을 겨누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1층 로비의 대형 창문에 비하면 직접 열고 닫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창문이었다. 물론 잠금장치까지 전자동식이라 직접 열고 닫는 건 불가능했다.
퍽! 티잉!
초탄은 탄두가 찌그러진 상태로 반쯤 박혀버렸고, 차탄은 각도가 좋지 않았는지 유리에 거미줄 같은 균열을 일으키곤 튕겨버렸다.
설마설마했던 방탄 유리. 라이플을 챙겨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호국은 즉각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본관 3층은 집중치료실(ICU) 구역이었다.
대충 방 하나를 골라잡고 들어간 호국은 각종 기기와 튜브를 달고 있는 한 중환자를 발견했다. 그 환자는 신기하게도 다리를 내놓은 채 상반신만 담요를 덮고 있었다.
"......"
훤히 드러난 다리는 무릎 아래부터 마구잡이식으로 꿰멘 흔적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무릎 위쪽의 피부가 햇빛에 그슬린 구랏빛 피부라면, 무릎 아래쪽은 다른 누군가의 것이었을 새하얀 다리였다.
딱히 욕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역겹다고는 생각했다.
이 병원에서 어떤 일이 자행되었고, 또 멀쩡한 다리를 원하는 자들이 이곳을 병원이 아닌 지옥으로 만들었다고 한들 호국과는 관계없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호국은 그저 경비팀장일뿐 탐정이 아니다. 당연히 경찰도 아니고, 판사도 아니며, 하다못해 창작 컨텐츠 속의 영웅도 아니다. 이런 자들을 상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은 없다.
다만 참고 넘어가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커튼을 잡아 뜯어낸 호국은 조용히 병실을 나섰다. 저 아래에서 순수한 살의 99.99%가 함유된 경비 넷이 올라오기 전까지 최대한 묶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모아 밧줄을 만들었다.
타카카카카!
어느새 3층 복도에 도달한 경비들이 복도 끝의 호국을 발견하고 탄환을 쏟아부었다.
피잉! 피잉! 공기를 찢어발기는 음속 탄환과 고막을 작살낼 것 같은 총성. 호국으로 하여금 마치 전장 한복판에 서있는 것 같은 감각을 안겨주었다.
급하게 중환자실의 문을 열어 젖혀 엄폐물로 삼은 뒤, 자세를 낮춰 반격을 가했다. 한 팔에는 꼬마, 총을 든 팔에는 밧줄까지 짊어지고 반격을 하는 건 정말 극한의 사격 기술을 요구했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짊어지고 있는 게 많아서 총격으로 자세가 흐트러질 염려는 없다는 것 정도.
타캉! 타캉!
두꺼운 철제 문을 엄폐물 삼아 권총을 갈기는 건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상대는 엄폐하지도 않았고, 서로 번갈아가며 재장전과 제압 사격을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걸어다니는 표적판이나 다름없었다.
상반신과 머리는 방탄복과 헬멧으로 보호받고 있었기에, 호국의 총구는 가급적 저들의 사지를 노렸다.
퓩퓩! 양 다리에 한 발씩 얻어맞은 선두의 경비가 볼품없이 자빠졌다.
네발짐승도 아니고, 이족보행 인간이 부상당한 다리로 어떻게 체중을 감당하며 걸을 수 있겠나.
'우선 하나 제압했고.'
쓰러진 상대는 양 팔로 기어오면서도 집요하게 총을 쏴댔다. 저걸 처리하려면 헬멧을 뚫어야 하는데, 권총으로는 불가능했다.
호국은 탄창이 바닥난 권총을 밧줄 끝에 묶어 갈고리처럼 만든 뒤, 반대편으로 던져서 또다른 병실의 문을 열었다.
중환자실의 문은 손잡이를 돌려서 여는 게 아니라 잡아 당기기만 하면 열리는 구조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했다.
그렇게 문 하나를 열면 바로 이동해서 또 다시 반대편 문을 열기를 반복했다. 지그재그 식으로 몇 개의 문을 더 열어서 확실한 엄폐물 지대를 형성한 것을 끝으로 밧줄을 회수했다.
'이정도면 충분해.'
지그재그 식으로 열려있는 문들은 너무 솔직하게 들어오는 탄환 세례를 그럭저럭 잘 막아주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 끝의 비상계단으로 뛰쳐나온 호국은 때마침 아랫층의 철문들이 요란하게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비밀친구 혼자서 모두를 제압하는 건 불가능했는지, 환자복을 입은 악귀들이 철제 계단을 타고 빠르게 기어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꼭 우물 속에서 기어나온 처녀귀신 같아서 호국은 발에 땀이 나도록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족히 수 백개가 넘는 계단을 단숨헤 뛰어 올라간 호국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옥상문을 열었다.
철컥철컥.
"...이런 씨!"
심심함을 주체할 수 없어서 매일같이 봤던 드라마나 영화에선 항상 병원 옥상이 개방되어 있었는데, 하필 이 병원의 옥상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사람 다리 자르고, 총질이나 해대는 병원에서 안전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면서 문은 왜 잠궈놔?!'
권총의 그립으로 손잡이를 힘껏 내려쳐봤지만 튼튼한 금속제라 손만 아파왔다.
"쓰읍......"
어디 한 군데 부러질 각오를 하고서 전력을 다해 내려친다고 해도 찌그러뜨리는 게 고작이지 싶었다. 당연하지만 그것도 컨디션 만땅일때나 가능한 얘기다.
사실 조금 전에 주먹이나 발을 몇 번 휘두르면서 군데군데 피멍이 들고 부어올랐다. '고통'에는 익숙했기 때문에 호국은 자신의 안위보다도 뒷일이 더 걱정이었다.
'이 꼬마를 반드시 병원에서 내보내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설령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분명 올바른 일이다. 그럼에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건 정상적인 올바름이라고 보기 어렵다.
호국은 힐끔 철제 계단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악귀들이 서로의 몸을 마구 밀치고 짓뭉개면서 좁은 비상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다시 한 번 문을 내리치려는 순간, 문 손잡이가 전화가 온 스마트패드처럼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진동은 이윽고 세탁기의 진동 수준을 넘어서, 마침내 문 손잡이를 산산조각 내기에 이르렀다.
"나이스 타이밍."
원리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진동을 줘서 문 손잡이를 박살내준 비밀 친구에게 감사하며, 호국은 최종 목적지인 병원 옥상에 다다랐다.
여전히 별 한 점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의 풍경은 투신자살 방지를 위해 세워진 2m 놈이의 철조망이 전부인 황량함을 자랑했다.
이 황량한 옥상에 흰 가운을 입은 선객이 없었다면 호국은 즉시 철조망을 까부수고 밧줄부터 내렸을 것이다.
"그대로 뒈져버릴 줄 알았는데, 용케 여기까지 왔군. 어린 시절의 애정결핍 때문에 그 아이에게 동질감이라도 느꼈나?"
"...그 목소리 기억나네요. 저한테 전화하셨던 분이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억력을 자랑하는 호국은 근무 시작부터 대뜸 전화를 걸어왔던 노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지금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상대의 목소리와 완벽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역시 듣던대로 기억력이 좋군. 아니, 이 경우는 '귀'가 좋은 건가?"
옥상 입구의 전등 불빛 아래까지 모습을 드러낸 그는 하얀 이가 보일 정도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노인들이 보이는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순진무구한 미소를 알고 있는 호국은 인상을 찡그릴 수 밖에 없었다.
"기뻐서 웃는 게 아니신데 왜 웃고 계시죠?"
"눈썰미도 대단하군. 역시 '눈'이 좋기 때문이겠지? 부럽군, 부러워. 늙으면 눈이든 귀든 전부 안 좋아지기 마련인데...자넨 미래영겁 그럴 일이 없을 것 아닌가. 시작부터 그래왔고, 끝에도 변함없겠지.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러워."
"타고난 거라서요. 부럽다고 하셔도 떼드릴 순 없어요."
"암 그렇고 말고. '절단'이 전문인 나조차도 그것들은 떼어낼 수가 없...큭!"
호국이 들고 있던 밧줄이 제멋대로 뛰쳐나가 노의사의 목덜미를 휘어감았다.
비밀 친구가 또 손을 쓴 것일까, 호국은 슬며시 밧줄을 잡아당겼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으니까.
거짓말처럼 스르륵 풀려나온 밧줄은 알아서 철조망 지지대에 고정되었다. 이제 밧줄을 반대편으로 던지기만 하면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라면 궁금증을 못 이기고 상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을 호국이 무심하게 지나치려 하자, 노의사는 호국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챘다.
그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긴 했으나 적의가 담겨있지는 않아 반격하지는 않았다.
"흠흠! 홀려있는 와중에 미안하네만, 그걸 애써 탈출시켜주려 할 필요는 없네."
"그게 무슨......"
"여기가 종착점인데 뭐하러 더 힘을 쓰느냐 이 말이지."
노의사의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 본 호국은 자신의 팔에 안겨있는 것이 어쩐지 가볍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조심스럽게 담요를 풀어헤쳐보면, 그 안에 있는 것은 작고 귀여운 곰인형 하나 뿐이었다. 초콜릿을 좋아했던 통통한 꼬마는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호국이 어느새 굳게 닫혀있는 옥상 입구를 바라보았다.
"도중에 놓친 건 아니니까 다시 찾으러 갈 생각도 하지 말고."
"분명 꼬마가 있었는데요......!"
"있었지. 다만 그건 일시적으로 꼬마라는 형태를 취했을 뿐인 열쇠였을 뿐이야. 이 병원에서 대체 얼마나 희생당했는지도 모를 열쇠."
IQ 84도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라는 시선을 의사 씩이나 되는 양반이 모를리 없다.
그는 피식 웃어보이곤 양 팔을 벌려 아주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 두 개를 보여주었다. 각기 TF 소속 남성 경비와 여성 경비의 모습을 본딴 물건이었다.
"남자와 여자, 결합, 가족, 자식 사랑, 희생 정신, 해방. 이 키워드들을 듣고 떠오르는 게 있나?"
"...잘 모르겠는데요."
"몰라도 상관은 없네. 쉽게 말하자면 병원의 모습을 한 이 케케묵은 시설의 오랜 염원을 자네가 풀어준 것이니까. 본래는 남녀 2인조 팀이 협력해서 자신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 꼬마를 탈출시키는 게 올바른 과정이지만...모로 가도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문제없다고들 하지 않나. 자넨 잘해줬어. 훌륭하게 '아빠' 역할을 수행해줬고, 고통 받던 '아들'을 해방시켜줬지. 지금껏 78개나 되는 팀이 도전했음에도 모두 실패했던 일을 혼자서 해낸 거지.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
"만약 자네가 실패했다면 또 케케묵은 염원을 다음에 오는 남녀가 풀어주길 기다리며 모두가 고통의 나날을 보냈겠지. 그걸 풀어준거야. 10년 묵은 체중을 쑥 내려버린거라고. 기쁘지 않나?"
"처음부터 누구도 성공시킬 생각도 없으셨잖아요."
호국은 가슴팍에 매달아두었던 스마트패드를 그에게 던졌다.
스마트패드에는 특수 근무자가 절대로 지켜야 할 수칙(메뉴얼)들이 적혀 있었다.
78개 팀이나 도전하고서도 그 꼬마를 '열쇠'로 쓰지 못한 건 전부 그 특수 메뉴얼 때문이었다. 저 얘기를 듣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노의사는 여전히 기뻐 보이지 않는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늙으면 늙을수록 목숨 아까운 줄 아는 법이거든. 나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서로 같은 처지끼리 이정돈 이해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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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특수 근무 체제 현황 (Day 1) (AM 11 : 00)
-제 1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22%) (시스템 복구 성공)(대규모 ES 탈주 사태 발생)
-제 1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4%)
-제 2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7%)
-제 2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9%)
-제 3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1%)
-제 3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9%)
*B 특수 근무 체제 현황
-제 4 연구시설 : 시설 폐쇄
-제 4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2%)
-제 5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0%)
-제 5 처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9%)
-제 6 연구시설 : 준비 완료(진행률 : 11%)
-제 6 처리시설 : 해방 성공(기억 복원중 : 0.1%)
*예외
-AREA 51(소요 사태 진압 성공)
-마리아나 해구 특수 감옥(술래 응답없음)
-제 3 우주 정거장(통신오류 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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