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개미지옥(6) >
"갸아아아아악!"
"구와아아아악!"
B56에 잠입한 교단원들이 식물원의 수풀 속에서 매복하고 있던 직경 10cm 크기의 플라스틱 인형에 기겁한 나머지 특이한 비명을 내질렀다. 구체적으로는 오징어덮밥과 제육덮밥을 다 함께 섞어먹을 때의 비명을.
진리교단이 재단을 침입할 때까지만 해도 먼저 나서지 않았기에 몰랐을 뿐, 이미 군대를 매복시키기 적절한 층마다 플라스틱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바깥에서 온 추악한 것들'이 은폐되어 있는 B56의 저위험군은 인공 식물원이라는 천혜의 환경 덕분에 매복 작전을 벌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미리 만들어둔 야포를 잔뜩 끌어와 수풀 사이에 듬성듬성 배치해두고, 플라스틱 병사들 스스로 수풀에 걸맞게 초록색 염료를 발라 위장력을 강화했다. 진짜 실전 같은 워 페인팅(전술위장)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교단원들은 이 평화롭기 그지없는 식물원에 어떤 끔찍한 것들이 숨어있었는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발을 들인 것이 약 5분 전의 일. 각종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불법 설계된 안드로이드조차 플라스틱 병사들을 '인공물'로 취급했기 때문에 사전에 위협을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빌어먹을 장난감은 대체 뭐야!"
자신의 이마에 들러붙어 곡괭이인지 삽인지를 힘껏 내려치고 있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떨쳐낸 교단원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엔지니어! 안드로이드가 왜 이 빌어먹을 것들을 감지하지 못 한 거지? 모든 전략전술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된 게 아니었나?!"
"그건 같은 인간이나 안드로이드 상대로 펼치는 전략전술에나 대응 가능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아오! 내 다리! 그런데 이 빌어먹을 것들은...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자신의 정강이를 힘껏 들이박은 슬리퍼 크기의 지프차에 엔지니어는 다리를 문지르며 최대한 변명을 했다.
그렇게 대단한 물건도 아닌데 일단 몸에 닿기만 하면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이 전해지는 게 굉장히 짜증났다.
예를 들어 자신들을 둘러싼 증오스러운 플라스틱 병사들이 쏘는 총알은 어느 부위에 맞든 바늘로 찌른 것 정도로 따끔한 통증이 올라왔다. 마치 국가 단위로 물가를 고정해둔 것 처럼 절대 그 이하로 약해지거나, 그 이상 가는 격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따갑...! 이런 썅! 분명 기동 슈트가 막아주고 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따가운거지?!"
1초도 안 될 만큼 찰나의 순간에 따끔! 하고 통증이 올라오는 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통증에 익숙한 어른이라면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통증이 초당 수십, 수백 번씩 반복된다면? 그것도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마구 엄습해온다면? 따끔하다는 통증을 넘어서 전신이 벼룩떼에게 물어 뜯기는 것마냥 가려움을 느끼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일단 쓸어버려!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환경을 조성해놓았으니, 필시 이 아래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감춰져 있겠지! 우리가 다른 조보다 더 대단한 것을 찾아야만 한다!"
드르르르륵!
라이플을 연발로 바꾼 뒤 냅다 따발이를 갈겨버린 수색조의 우두머리는 빈슨이라는 이름의 남자였다.
정예 전사나 사제가 되기 전까지는 모든 형제 자매들의 호칭이 형제님이나 자매님 따위로 고정되지만, 그는 머지않아 정예 전사로의 승급식을 앞두고 있었기에 미리 이름을 부여받았다.
그런 빈슨은 자신을 가르쳤던 뛰어난 전사들의 가르침에 따라, 적이 많으면 연발로 갈기고, 적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으면 단발로 갈기라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다.
퍼석! 퍼석! 탄환에 스치기만 해도 케이크 위의 설탕 과자처럼 허무하게 박살나는 플라스틱 인형들은 기세가 매서운 것 치곤 상당히 물렀다. 급한 김에 군홧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내려치기만 해도 원상복귀가 불가능 할 만큼 큰 손상을 입었다.
"으흐흐흐! 이것들, 수가 많기는 해도 생각보다 별 거 아냐! 그냥 밀어버려!!"
따끔 거리는 바늘 탄환도 어느샌가 익숙해졌다. 야포가 대구경 포탄을 쏴재끼는 경우도 있었지만, 끽해야 옛날 옛적에 사용하던 발사형 폭죽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 폭죽은 손 안에 쥐고 터뜨리면 굉장히 위험하지만, 쏜 걸 얻어맞았다고 해서 큰 상처는 입지 않는다. 운이 나빠도 2도 화상 정도?
기동 슈트를 착용한 진리교단원들은 그들에게 있어서 진격하는 거인이나 다를 바 없었으며, 고작 10cm 크기밖에 되지 않는 플라스틱 병사들은 물리적으로 그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벌이 웽웽 하고 날아오는 것만 같은 소음이 울려퍼졌다. 눈치빠른 빈슨이 곧바로 총구를 돌렸으나 그의 동체시력보다도 훨씬 더 빠른 무언가가 순식간에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벌...? 아니야. 벌이라고 하기엔 너무 빠르다!'
세차게 머리를 스쳐지나갈 때 느꼈던 그 풍압은 벌 따위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벌도 당장 눈앞에서 붕쯔붕쯔 하고 날뛰는 플라스틱 병사들보다 작았다.
'벌이라기보단 오히려 새에 가까운...하지만 새가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나?'
지금 이 웃기지도 않는 상황을 '전투'라고 칭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빈슨은 우선 현 상황을 전투 상황으로 구분짓고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눈동자를 굴렸다.
전투란 생사의 기로가 걸려있는 만큼 최대한 변수가 발생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가령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플라스틱 병사 떼거지가 상대라 할지라도 방심해선 안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저기다!'
자신의 콧구멍에 삽을 쑤셔넣기 위해 달려든 플라스틱 병사를 가볍게 후려친 빈슨은 식물원의 높은 천장에서 빠르게 접근중인 미확인 비행물체(UFO)들을 포착했다.
총 5기, 삼각형의 대열을 갖춰 하나의 편대를 이룬 그것들은 웨에에에엥 하는 소음을 꼬리처럼 늘어뜨리며 빠르게 접근해왔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시야에 담은 빈슨은 그것들이 필통 크기의 전투기라는 것을 확인했다.
'무슨 웃기지도 않는......!'
드다다다다다다!
그냥 날아다니는 필통인줄 알았던 그것이 대뜸 기관포를 쏘기 시작하자 고스란히 안면에 두들겨 맞은 빈슨은 얼굴을 세차게 흔들었다.
"아, 빌어먹을! 잠깐만! 인중 맞았어!!"
플라스틱 병사들이 줄기차게 쏴대고 있는 성냥개비 크기의 소총이나, 폭죽 수준의 야포와는 다르게 전투기의 기관포는 다른 의미로 위력이 대단했다.
무려 진짜 플라스틱 BB탄을 초고속으로 쏘아댄 탓에 물리적인 위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비, 빈슨 조장! 이 녀석들을 다 처리하려다간 끝이 없을 겁니다! 벌써 대사제님께서 정한 작전 시간 중 절반 가까이 소모됐단 말입니다!!"
"그럼 이 잡것들을 무시하고 수색을 속행하자고? 그러다 우리가 찾아낸 성과에 흠이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거냐?!"
"여기서 계속 발목이 잡혀 아무것도 해보지 못 하고 빈 손으로 돌아가는 것보다야, 뭐라도 해보고 돌아가는 게 더 낫지 않겠냐 이겁니다! 그리고 이 놈들...제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우리의 공격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헛소......!"
거의 반사적으로 분수대 위에서 저격질을 하고 있던 놈을 권총으로 겨누고 쐈으나, 그 플라스틱 저격수는 빈슨이 총구를 겨누기도 전에 훌쩍 물속으로 뛰어들어 회피했다. 아무리 체구가 작다고는 하지만 반응 속도가 바퀴벌레급이었다.
당연히 장난감 따위를 상대로 헛손질을 한 빈슨은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을 수 밖에 없었고, 이를 바득바득 가는 것도 당연했다.
"이, 이이익......! 좋다! 놈들의 공세가 거세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뚫고 나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 우선 강행 돌파한다!!"
그때, 와아아아아! 하는 괴상한 함성과 함께 수풀 속에서 화염 방사기를 든 플라스틱 병사들이 대거 튀어나왔다. 어느 동양의 국가처럼 멍청하게 칼을 들고 돌진하는 것도 아니고, 무려 화염방사기를 들고 돌진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리고 왠지 다른 공격들은 어찌어찌 참을 수 있을 것 같아도, 저 화염방사기가 뿜어낼 가스레인지 수준의 불꽃은 참기 힘들 것 같았다. 촛불이 작다고 해서 뜨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에라이!!"
빈슨은 자신의 발치에 엎어져 있는 지프차를 걷어차 정면에서 몰려오는 화염방사병들을 볼링핀처럼 박살내버렸다.
"일단 움직여! 이 놈들은 체구가 작으니 그리 쉽게 우릴 쫓아올 순 없을 거다!!"
10cm 크기의 장난감이 뛰는 속도와 평균 1.8m 크기의 성인 남성이 뛰는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단 한 걸음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격차를 벌릴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이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걸 다른 녀석들이 봤더라면 우리가 장난감들 상대로 꼴사납게 도망치는 줄 알 거 아냐! 빌어먹을!!'
작전 시간만 좀 더 넉넉했더라면 이 놈들을 모조리 재활용도 안 될 만큼 철저하게 박살내줬을텐데!
빈슨은 정예 전사(진)으로서 이 끔찍하게 귀여운 적들에게 등을 보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너무나도 비참했다. 이만큼 단련했으면서도, 이만큼 좋은 무기를 지급받았으면서도, 고작 플라스틱 병사들 따위를 처리하지 못 해 도망치다니!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이미 교단에 소속되어 있기에 교단 그 자체나 다름없다. 즉 내가 가진 원한, 수치, 비통함은 모두 교단이 갚아줄 것이다!'
오직 그것만을 믿고 조원들과 함께 플라스틱 병사들의 포위망을 돌파한 빈슨은 이윽고 소용돌이 계단 같은 길을 내려가, 거대한 냉동고 앞에 당도했다.
"으슬으슬하군. 거대한 격벽이 가로막고 있음에도 냉기가 새어나오고 있어."
"혹시 여기가 말로만 듣던 외계인 냉동실 같은 곳 아닙니까?"
"어쩌면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인체실험의 생체 표본(잔재)이 보관되어있을 수도 있지."
"어느쪽이든 빠르게 확보해서 가져가야 합니다. 설령 진실의 파편이 아니라고 해도, TF가 감춘 진실을 빼낼 수만 있다면 성녀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좋아! 작업을 시작해!"
인공식물원은 식물들의 생장을 위해 비상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어 밝았다면, 이곳은 아직 전력이 복구되지는 않은 듯 했다.
덕분에 격벽에 갑작스러운 락이 걸리는 일도, 벽이나 천장이 갈라지며 무인 포탑이 튀어나오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엔지니어는 마음 놓고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격벽의 잠금 장치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다른 조원들이 혹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는 플라스틱 병사들에게 대비하는 동안, 한 교단원이 총기를 점검하다 말고 빈슨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음, 그런데 빈슨 조장.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바닥 말입니다. 잘 보면 바닥에 물기가 흥건합니다.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 치곤 물기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상시 냉기가 존재하는 공간과 바깥의 기온차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물기가 형성되는 것이겠지. 너도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맥주병에 물기가 생긴다는 것쯤은 알고 있잖나."
"그거야 그렇지요. 그런데 잘 보면 물기가 격벽의 틈새로부터 이어져 있습니다. 마치 안쪽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건...확실히 이상하군."
물기가 형성될 수 없을 만큼 냉기가 강한 공간에서 물이 새어나오듯 흐르고 있다? 그건 마치 처음부터 안쪽에 있었던 대량의 냉기가 거의 다 빠져나왔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건 즉 안쪽에 냉동되어 있어야 할 무언가가 지금은 해동된 상태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음, 엔지니어?"
"왜 부르십니까? 지금 작업 거의 다 끝났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아니, 잠깐 기다려봐. 우선 격벽의 잠금 장치를 부수는 건 조금 미뤄두고 내부에 뭐가 있는지부터......"
"아! 뚫렸습니다!!"
너무 거대해서 굉장히 튼튼할 거라 생각했던 격벽의 잠금 장치는 예상외로 짧은 시간만에 뚫려버렸고, 빈슨이 엔지니어를 만류하기도 전에 그가 안드로이드를 닦달해 격벽을 개방하도록 했다.
푸쉬이잇, 하고 김이 거의 다 빠진 듯한 콜라 뚜껑을 따는 소리가 빈신의 귓가를 간질였다. 뒤쪽의 길을 경계하고 있던 조원들도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세계의 비밀 중 하나가 밝혀지는 역사적인 순간을 목도했다.
그들이 본 것은 본래 냉동 상태였어야 할 캡슐에서 빠져나온, 하늘을 날아다니는 대량의 파래무침이었다. 기생 번식을 아주 좋아하는 추악하고 더러운 것들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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