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진실의 파편(3) >
"저어...베넥트 대사제님?"
"왜 그러지 엔지니어?"
"정말 이 잠금을 해제합니까?"
"당연하지. 그 잠금을 해제하지 않으면 진실의 파편을 손에 넣을 수 없지 않나."
은근한 목소리로 자신을 재촉하는 베넥트의 태도에 젊은 엔지니어를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이 침투 계획에 참전 했을 때부터 어느정도 예상했던 상황이긴 했다. 자신처럼 교단 내에서도 그 지위가 매우 낮고, 교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자들은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재능과는 별개로 취급이 좋지 않았으니까.
교단내에서도 으뜸으로 쳐주는 이들은 주로 명예롭게 적과 싸울 수 있는 전사, 혹은 교단 내의 교리를 연구하고,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탐구하는 사제 계급 뿐이었다.
아직 그러한 계급에 도달하지 못한 자들은 진리교에 입단하기 전의 모든 사회적 정보를 말소당하고, 새로운 삶을 부여받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고행자'들로 분류된다.
고통받으면 받을수록, 마치 장인의 망치질에 두들겨지는 명검처럼 훌륭한 교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 교단에서 주장하는 고행의 이유였다. 덕분에 이름도 없이 수많은 하위 기술자 중 한 명이었던 그도 '엔지니어' 라고 불리면서 결국 이런 상황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건 죽겠지.'
정예 전사들은 시간을 벌기 위해 쪼개졌다. 그렇다면 남은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동원되어야 할 인력은 엔지니어 한 명뿐.
그는 베넥트가 지켜보는 앞에서 천천히 제단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들이 비밀 문을 열어 거대한 공동에 들어서자마자 본 것은 천장에서 내리꽂히는 한 줄기의 빛 아래에서 고고하게 존재하는 제단이었다.
과거 부족 단위로 생활하던 야만족들이나 사용했을 법한 전형적인 석재 제단. 마침 길이도 적당한 것이 성인 남성 한 명을 눕히면 딱 맞을 것 같았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수술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베넥트 대사제는 그 제단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었고, 누군가가 제단 위에 올라서야 무언가를 대가로 '진실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으니, 아마도 틀림없으리라.
단지 베넥트는 그것을 단순한 잠금 해제로 명명했을 뿐이고, 눈치빠른 엔지니어는 그게 희생 절차라는 걸 알아챈 것이 전부다. 결국 결과가 바뀌지 않을 거란 것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교단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수 있다면......!'
그가 교단에 입단한 것은 고작 수년 밖에 되지 않았다. 사회인이었을적의 그는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항상 돈을 주는 '갑'의 횡포에 시달리며 미친듯이 일을 해야 했다.
기술밖에 없었던 그를 받아들여주고, 형제로 환대해준 교단은 그에게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무한한 영광을 약속했다. 그것이 순교로 이어지는 잔혹한 운명일지라도.
"후, 좋아. 겁내지말자. 교단을 위해서라면...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어."
진리에 도달하려면 고행이 필요하고, 고행을 하게 된다면 결국에는 순교할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란 존재는 바스러져 사라질테지만, 진리교가 무한한 영광을 거머쥐고 진리에 도달하는 순간, 순교한 자신에게도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마침내 엔지니어는 제단 위로 올라가 정자세로 누웠다. 살짝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반대로 엔지니어는 불안해졌다.
"베넥트 대사제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그대로 가만히 있게. 그리고 이왕이면 눈을 감는 게 좋겠지."
그래, 차라리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자. 그렇게 생각한 엔지니어는 즉시 눈을 감았다.
차갑고 딱딱한 석재 제단이 배후를 쿡쿡 자극하는 듯 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자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항상 격무에 시달렸던 그라 잠깐 방심하면 그대로 잠들 것만 같아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렇게 또 다시 몇 분이 흘렀을까, 엔지니어는 이상한 기분에 몸을 뒤척였다.
해부대 위에 올라간 개구리처럼, 누군가가 바로 위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눈을 뜨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오히려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때로는 보지 않는 것이 더 이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그는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기든 끝까지 아무것도 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뇌리에 기억은 남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인간이란 원래 감각 하나가 차단될 수록 다른 쪽의 감각이 더욱 예민해지는 적응의 동물이었다.
눈을 감으니 귀를 통해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코가 비뚤어질 것 같은 썩은내가 스멀스멀 풍겨오기 시작했다. 전신의 촉각이 군기가 바짝 든 군인들처럼 극도로 예민해지자, 살갗이 따끔거리는 듯한 감각마저 느껴졌다.
인간에게 있어서 3대 욕구야말로 참을 수 없는 욕구라고들 말하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하나의 욕구가 더 추가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미친듯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탐구욕이다. 창의성과 합리적 사고방식을 지닌 고등생명체에게 호기심이란 어떤 독보다도 치명적이었고, 어떤 꿀보다도 감미로운 것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기술자였던 엔지니어도 자신의 뇌를 간질이는 듯한 호기심에 이길 수는 없었다.
"!"
급기야 눈을 뜬 그의 앞에는 어두컴컴한 밤하늘이 보였다.
별들이 반짝이는, 이제는 공기청정지역으로 가야만 볼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의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주 잠깐동안 그는 자신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시설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를 떠받드는 자그마한 부품에 불과했던 그에게 이런 장관은 너무나도 큰 사치였다. 일을 좋아했던 그는 일에 매진했고, 부려먹기 좋아하는 자들은 더욱 더 그를 부려먹었다.
사회에서든, 진리교단에서든, 그는 항상 바쁘게 일만 하면서 부려먹혀지고, 희생당하는 입장이었다.
바로 그때, 아주 먼 곳에서부터 울려퍼지는 맑고 청명한 목소리에 엔지니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물이여,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는 무심코 '이 찬란한 광경을 영원불멸하게 맛보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할 뻔 했다. 만약 그가 진리교단이라는 주체를 잊어버렸다면 이 압도적인 광경에 틀림없이 집어삼켜졌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가까스로 자신의 목적을 떠올렸고, 순교를 위해 결의를 내비쳤다.
"진실의 파편을 원합니다."
-어찌하여 그러한 것을 원하는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입니다."
-무의미(無意味), 실로 무의미(無意味)하구나.
밤하늘의 저편에서 말을 걸어오는 존재는 자신에게 그러한 것이 소용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래도 엔지니어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진실의 파편으로 진리에 도달하려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교단을 위해 순교하고, 자신은 교단이 가져올 무한한 영광을 당당하게 누릴 1인이면 족했다.
-대가는 충분하나 자격이 없다. 정당한 '상속자' 외엔 누구도 진실을 거머쥘 수 없음이라.
그 말을 끝으로 더이상 머나먼 곳에서 말하는 존재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엔지니어는 밤하늘을 가득 메운 찬란한 별빛들이 이상할 정도로 크고 선명하게 바뀌기 시작했음을 눈치챘다.
'가만, 저건 별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눈'이었다.
순간 오싹하고 소름이 돋은 엔지니어는 다급히 제단에서 일어서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기껏해야 고개를 조금 돌리는 것에 그쳤다.
그러다 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가히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벌레들의 파도가, 이따금 보이는 흉측한 인간들의 시체와 함께 뒤섞여 자신에게로 몰려오고 있었다.
"아, 아아......!"
실로 무의미한 순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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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주먹을 불끈 쥔 베넥트는 흥분으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 했다.
늙은이라고 불릴 만큼 나이를 많이 먹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엔 충분히 주책을 부리는 것 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환희에 찬 얼굴로 천천히 제단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기꺼이 순교를 택했던 말단 엔지니어가 제단 위에서 조금씩 썩어들어가더니, 이윽고 검붉은 핏물만 남긴 채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가 남긴 핏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이윽고 낡은 책 한 권을 생성해냈다. 그것은 핏물에 젖은 흔적따윈 없었으나, 핏물에 담궜다 빼낸 것 처럼 붉은 표지를 자랑하는 고서적이었다.
"드디어...누구도 해내지 못 했던 일을 나 베넥트 대사제가 해냈다!"
그렇게 소리친 베넥트는 아주 조심스럽게, 신사적인 몸짓으로 제단 앞에서 경의를 표했다. 이 위대한 진실의 파편을 감히 자신같은 자가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준 '운명'에 감사를 바친 것이다.
'아니, 이 경우엔 숙명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겠군!'
그렇다. 베넥트라는 인물은 선택을 받아 이곳에 당도할 수 있었으며,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말았다! 이것이 숙명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숙명이란 말인가?
'이걸로 나는 한 발 앞서 나갈 수 있다.'
진리교단의 정점에 선, 진리의 대변인이라고도 불리는 성녀조차 아직 손에 넣지 못한 귀물.
물론 이것을 자신이 꿀꺽하고 진리교단 내의 입지를 강화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신이 꿀꺽하기엔 가치가 너무나도 대단한 물건이기에, 자신이 먼저 버티지 못 할 거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녀와 함께 나눈다.
그녀와 베넥트는 늙은 추기경 집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들이 실질적인 자원과 인력을 관리하며 진리교단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서 베넥트는 성녀와 함께 이 공을 나누는 것으로 빼앗긴 주권을 되찾아 올 셈이었다.
그리한다면 베넥트 대사제가 새로운 추기경의 일원이 되는 것도, 어쩌면 그 지위를 넘어서 '법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베넥트 대사제는 가장 먼저 진실의 파편을 찾아낸 진리교단의 선지자가 될 테니까.
베넥트는 꼭 갓난아기를 다루는 것 처럼, 미리 준비해둔 고운 천으로 진실의 파편을 감쌌다. 이것은 진리교단의 본부를 떠나기 전 성녀로부터 성해포(聖骸布)라며 받은 천이었다.
실제 기원이 방직 공장인지, 아니면 먼 과거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던 신의 아들을 덮은 천인지는 오직 그녀만 알고 있으리라.
'이제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된다.'
작전 시간은 이제 막 1시간 30분을 넘겼다. 남은 30분이라면 안드로이드 1기와 또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충분히 탈출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 공항에 미리 준비해둔 경비행기를 타고 이륙해 중국으로 넘어가기만 한다면, 베넥트의 진짜 전성기가 활짝 꽃피게 될 것이다.
말려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리며 뒤돌아선 그에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좀도둑이 내 눈에 들키지 않고 탈출하는 상상함."
"!"
잔뜩 흥분한 탓에 비밀 문이 언제 열렸는지도 몰랐던 그는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청년을 보고 흠칫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진리교단을 비롯한, TF를 적으로 둔 집단이라면 누구라도 증오하는 대상. 검은 개미가 빳빳하게 고개를 처들고 있는 마크가 박힌 작업복, 그것은 틀림없이 TF의 전문 청소부 개미부대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네 놈이 왜 여기에......!"
"영양가 좋은 콩밥 먹이려고."
철컥.
청년이 형제들로부터 노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펄스 라이플을 겨누자 베넥트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제 막 진실의 파편을 손에 넣은 타이밍이라 무기를 잠시 내려두었던 것이다.
'아니지, 놈도 결국은 인간. 1 대 1이라면 안드로이드를 이길 수 없다!'
그 예상대로 베넥트의 호위로 남겨두었던 안드로이드가 멍청하게 단신으로 기어들어온 적에게 레일건의 총구를 겨눴다.
어느 쪽이라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게임이 끝나버리는 상황. 최후에는 안드로이드가 남더라도 미리 명령을 내려두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내리려 하면 상대가 먼저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왜냐하면 개미부대란 것들은 진리교단의 정예 전사들 못지 않은 전투에 미친 놈들이었으니까.
임무 달성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건 피차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베넥트는 진실의 파편을 감싸고 있던 천을 풀어헤쳤다.
'이런 곳에서 죽게 될 거라면 차라리 진리에 도달하겠다!'
베넥트의 거친 손길이 핏빛으로 물든 책의 첫장을 펼쳤다.
< 경비 업무 일지 : 진실의 파편(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