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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고문재단-151화 (151/209)

< 경비 업무 일지 : 냄새(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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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천장이다."

익숙한 침대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으며 눈을 번쩍 뜬 호국이 대뜸 중얼거렸다.

-아침 식사를 준비해뒀습니다.

옆에서 들려오는 젠틀한 목소리에 호국은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어젯밤부터 갑자기 보이지 않았던 프롯이 해피의 몸을 빌려 꼬리를 휙휙 흔들고 있었다.

"어제 2차부터 보이지 않던데, 어딜 갔던 거야?"

-해피의 외형을 신경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공원에서 시간을 때웠습니다. 이후 가드의 귀가 시간에 맞춰 저 또한 귀가했습니다.

알아서 잘 놀고, 알아서 잘 돌아왔다고 하니 영락없는 시골의 똥강아지였다.

하지만 그리 탓할 일도 아닌지라 호국은 노곤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부터 켰다. 어제 술을 그리 퍼마셨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다.

술에 익숙치 않은 사람이 한 번에 과음을 해버리면 다음 날은 무조건 술병으로 고생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호국은 조금 피곤한 게 전부였다.

"아침 먹어야지, 아침."

호국은 프롯에게 어떻게 식사 준비를 했냐고 묻기보다, 우선 침대에서 뛰쳐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과음으로 고생했을 호국을 위해 준비한 것일까, 식탁에는 콩나물이 듬뿍 들어간 북어국과 계란 프라이, 구운 햄, 김치, 고봉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침 식사치곤 조금 염분이 과한 게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원체 어린애 입맛인 호국에겐 이보다 더한 진수성찬도 없었다.

"잘 먹는다."

-많이 드십시오.

호국의 반대편에 앉은 해피는 정면에 레이저 빔을 쏴 홀로그램 영상을 투영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뉴스 기사나 해외 토픽이 담긴 동영상 같은 것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재생되었다.

해피나 호국이나 빠른 속도로 재생되는 영상을 모두 캐치할 능력이 있었기에,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필요한 정보는 모두 수집할 수 있었다.

-휴가 첫째 날은 화끈하게 달리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만, 혹시 이틀째의 예정도 정해두셨습니까?"

"그런 거 없으어."

북어국을 사발째 들이키고, 밥 위에 젓가락으로 찢은 계란과 햄, 김치를 올려 한 입에 삼킨 호국이 으적대며 대답했다.

간밤에 화장실에서 기분 좋게 쏟아내고 잠들었던 호국에게 든든한 아침 식사는 없던 식욕마저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보였다.

그 증거로 북어국 한 사발을 순식간에 비워버린 호국은 앞에 놓인 냄비를 뒤져 북어국을 리필했다. 누가 끓였는지는 몰라도 잘 부스러지는 북어 살의 풍미가 콩나물에 고스란히 베어있어서 목넘김이 일품이었다.

-예정이 없으시다면 오늘 하루는 무난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저와 함께 피크닉을 간다거나.

"피크닉...피크닉...어디로?"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피크닉 장소가 한강 말고 더 있습니까?

"하긴, 최근에는 현실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이 적어져서 괜찮다고 들은 적 있어."

프롯의 말에 적극 동의한 호국은 밥 위에 구운 햄을 얹고, 그 위에 케첩을 쭈욱 짜서 발랐다. 마지막으로 간장을 몇 방울 뿌린 계란으로 위를 덮어, 커다란 샌드위치 같은 것을 한 입에 털어넣었다.

폭발하는 나트륨! 지방과 만나 군살이 되는 탄수화물 기폭제! 김세희가 이 식탁을 봤더라면 이게 사람이 먹을 식단이냐며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른다.

"어흐으...잘 먹었다."

고봉밥과 반찬은 깔끔하게 전멸. 냄비에 담긴 북어국도 절반 가량 양이 줄어 있었다. 건장한 20대 청년의 식욕이 폭발하면 이렇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꼭 이 더운 날에 피크닉을 나갈 필요가 있을까?"

-가드는 햇빛을 오랫동안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은 햇빛에 스스로를 노출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집구석에 틀어박힐수록 사회성이 현저하게 하락하며, 스트레스 수치가 크게 상승합니다.

"누가 들으면 집구석이 멀쩡한 사람도 병자로 만드는 곳인 줄 알겠네."

-물론 그것은 VR이 나오기 전의 인간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입니다. 지금의 인간은 VR을 통해 굳이 집밖을 나가지 않아도 현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세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적과 인종, 문화를 초월하여 다양한 만남도 기대할 수 있으니, 집구석에 박히는 게 더 이득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난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없잖아."

-그러니 가드는 집구석에 처박히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나가서 햇빛도 쬐고, 사람도 만나고, 풍경을 둘러보면서 심신에 안정을 가져다 주어야 합니다.

만약 호국도 VR 접속 가능자였다면 집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을 텐데. 하필 세계유일의 특이체질이라 반 강제적으로 집밖에 나가야 한다는 일침을 들었다.

더욱 짜증나는 것은, IQ 84의 한정된 지식과 단순한 사고방식으로는 프롯의 말을 반박할 거리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집구석에 처박혀서 스마트패드만 두들기겠냐. 나가라면 나가야지......"

옛날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힘없는 50대 가장이 이런 기분이었음을 제대로 느낀 호국은 하는 수 없이 외출 준비를 했다.

생각해보면 휴가를 제외하고 지난 날 동안 햇빛을 거의 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무슨 어둠의 자식도 아니고, 24시간내내 두더지마냥 지하 시설에 처박혀 있었으니 걱정받을만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8월의 지옥같은 햇빛을 쬐봐야 행복해질 일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즉 프롯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피크닉 일정을 온전히 소화하면, 호국은 '광합성도 못 하는 주제에 하루종일 자외선에 시달린' 멍청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여름에도 강제로 햇빛을 쬐야했던 건 군 짬찌 시절이면 충분해.'

해피가 피크닉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는 사이, 호국은 안방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넓은 안방에는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있는 전용 캡슐 두 대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헬멧 같은 소형 VR 기기만 착용해도 편하게 가상 현실에 접속할 수 있는 시대지만, 그래선 인간의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별도의 전용 캡슐도 존재한다.

캡슐 안에 있다면 시간에 맞춰 정부와 기업에서 관리하는 안드로이드가 파견되어 건강 관리를 해주며, 본인이 직접 현실에 나와서 스스로의 건강을 챙길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가 편했기 때문에 근로자나 학생이 아닌 이상, 캡슐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김선열과 이세령 부부 역시 아들이 휴가를 나왔건 말건, 가상 현실에서 지옥같은 산을 정복하기 바쁜 잉꼬 부부였다.

지금쯤 어마어마한 난이도의 산 정상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며, 진짜 정체가 누군지도 모를 산악동호회 회원들과 하하호호 웃고 있을 것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버지도 결국 저한테 하나둘씩 계승당하는 겁니다!'

바퀴벌레처럼 안방을 기어 움직인 호국은 커다란 벽장을 열어 김선열의 개인 물품을 뒤적였다.

등산 전문 블로거이자 유뉴버(Younoober)이기도 한 아버지는 더이상 현실에서 등산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등산을 하더라도 등산복만 챙겨 입을 뿐, 과거에 쓰던 캠핑 장비는 버리다시피 했다.

호국은 우선 김선열의 캠핑 용품중 초보자도 간단하게 펴고 접을 수 있는 2인용 텐트와 충전용 아이스박스를 챙겼다.

그리고 이번엔 벽장 안쪽에 숨겨진 비밀 버튼을 눌러, 그가 이세령 몰래 감춰두었던 비장의 콜렉션에 손을 댔다.

어릴 때 부터 혼자였던 호국이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이 이중벽장을 발견하게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아버지. 이것들은 이제 제겁니다."

자신의 콜렉션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김선열을 내버려둔 채, 호국은 벽장 안쪽에 설치된 비밀 냉장고에서 각종 술과 음료수를 쓸어담았다.

어제 조원석과 진탕 퍼마시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술이란 게 호국의 입맛에 꽤 잘 맞았다. 마셔도 마셔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하지 않았고, 숙취도 없었기 때문에 타고난 술고래라고 해도 무방했다.

게다가 김선열의 콜렉션 중 유독 호국의 눈길을 잡아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캡틴-Q 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자랑하는 술이었다.

다른 건 발렌타인이나, 조니 워커, 임페리얼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호국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각 라벨마다 니 17, 21, 30 같은 숫자들이 붙어 있었지만 술을 잘 모르는 호국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술이란 건 맛만 있으면 된다는 걸 바로 어제 배운 참이니까.

이 모든 것을 오늘을 위해 준비해준 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하며, 호국은 생애 처음 누군가와 함께 한여름 피크닉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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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빌어먹을! 진짜 25년이나 흘러버린 건가?!"

대한민국의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도시인 서울 한복판에서 트렌치코트 차림의 한 남성이 절규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그가 전형적인 서양인이라는 것을 알고 금세 신경을 껐다.

길거리에서 외국인이 절규하는 이유는 대개 길을 잃었거나, 지갑을 잃어버렸거나 둘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혹은 둘다이거나.

어느쪽이든 삭막한 현대인들은 돕지 않는 쪽을 택하기 마련이다. 외국인과 엮이면 피곤하기도 하고,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를 돕겠다고 나섰다가 쓴맛을 보는 일도 있었으니까.

물론 그 역시 딱히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그러는 건 아니었다. 그저 너무 황당한 나머지 길거리 한복판에서 절규라도 내지르지 않으면 스트레스 때문에 죽어버릴 것 같았다.

'죽진 않지만.'

지금껏 사내가 살아온 인생을 햇수로만 따져도 수백 년이 넘는다.

게다가 그를 이런 몸으로 만들었던 남자는 무려 천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괴물 중의 괴물이었건만, 고작 25년의 공백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콘스탄틴'이라는 조직 자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따지고보면 그리 대단한 조직이 아니긴 했지만, 막상 돌아갈 곳이 사라지고나니 난감하네.'

정말 별 것 없는 조직이다. 그냥 스스로를 스승이라고 칭하는 놈이 자신처럼 재능있는 놈들의 몸을 만지작거려서 불로불사로 만든 뒤, 아주 나쁜 놈들과 싸우게 만든 게 전부인 조직이었으니까.

거기서 더 설명할 것도 없는, 좋게 쳐줘도 비밀 결사 비스무리한 영세 조직이었다.

다만 그런 조직이라고 해도 고작 25년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만큼 약한 것은 아니었다. 불로불사의 인간들이 수 천명이나 존재하는 비밀 결사였는데 그걸 어떻게 약하다고 말할 수 있겠나.

'하지만 몰래 카메라도 아니란 말이지......'

현재 그가 있는 곳은 과거 콘스탄틴 대한민국 지부가 존재했던 장소였다.

하지만 이 장소에는 더이상 콘스탄틴의 흔적 같은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이 자랑하는 룬 마술의 흔적도, 서로서로 수신호나 시선만으로 암구호를 보내던 콘스탄틴도 없었다.

그냥 평범한 서울 도심 한복판이었다.

'그 염병할 것들을 처리하고 겨우 반전세계에서 빠져나왔나 싶었는데, 세상이 이토록 평화로워졌을 줄이야.'

자신들이 상대했던 괴물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마법이나 초능력을 사용하는 비밀 결사나 암흑의 세력도 없고, 진보된 과학 아래에서 편하게 살아가는 일반인들 뿐이었다.

스스로를 333번이라고 칭하는 사내가 자신을 이 세계의 유일한 이물질처럼 느낄 정도였다.

짙은 괴리감 속에서 333번은 천천히 몸을 돌려 옛 추억이 깃든 장소에서 벗어났다. 더이상 저곳은 추억조차 존재하지 않는, 쓸쓸한 공터나 다름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불로불사이기 때문에 뇌와 심장이 동시에 박살나지 않는한, 기본적으로 그는 죽을 일이 없다. 당연히 병에 걸리거나 독에 당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조직도, 동료도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언제나 건강한 몸, 강력하고 다양한 룬 마술, 그럭저럭 봐줄만한 외관. 이 세 가지 재주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셈이다.

'내 성격에 일반인 밑에서 굽신거리며 아르바이트부터 할 수 있는 건 아니고...역시 빌붙을 사람이 필요하다.'

정확히는 성격보다 재능의 문제였다. 거의 평생을 괴물과 싸워오는 입장이었던 그에게 평범한 일을 직업으로 가지는 게 가능할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우선은 남에게 빌붙고, 자신에게 적성이 맞는 일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정처없이 걷던 그는 어느덧 한강에 도달했다.

"음?"

전에도 맡아본 적 있는 기묘한 냄새가 미약한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넓은 한강변을 주욱 훑어보던 그는 상당히 낯이 익은 한 청년을 발견했다. 어째서인지 괴상한 형태의 개 안드로이드에 목줄까지 매고 있었지만, 상대의 이상성욕적인 취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빌붙을 사람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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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냄새(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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