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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고문재단-167화 (167/209)

< 경비 업무 일지 : 대충 심각한 사건(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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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젊은 친구는 잘 들어갔나?"

"예. 아주 날렵하더군요."

"무슨 태릉선수촌 출신인줄~"

밝은 꽃무늬가 그려져 알록달록했던 알로하 복장이 붉은 피로 물든 상태였다. 그가 얼마나 치열한 도주를 벌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낸 강백산은 비틀비틀 움직이며 일행에게 다가왔다.

중년의 몸으로 날랜 경호원들의 추격을 뿌리치는 건 꽤나 힘들었던 모양인지, 그의 팔이나 다리에선 아직도 진득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만약 관광객이 그를 봤더라면 상어에게 물리기라도 했느냐며 크게 걱정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목을 좌우로 몇 번 꺾더니, 알로하 복장을 벗어던졌다. 미친듯이 술을 퍼마셔대던 중년인 것 치곤 잘 빠진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반신에는 탄환이 박힌 흔적이 적나라하게 보였지만, 일행들 중 누구도 그것을 걱정하거나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우리에게 정보를 가져다 줄 거예요. 판 맥베인 정도면...나쁘지 않죠?"

"나쁘지 않지. FCD 소속이 아니면서, TF와 깊은 연관은 없지만 다리 하나 정도는 걸치고 있는 인물. 거기에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높아서 쉬이 건드리기 어려운 인물이기도 하지."

"하지만 전 마음에 안 들어요. 못 생겼으니까!"

남은혜의 말에 강백산이 껄껄 웃었다.

"그렇게 편식을 하면 안 돼.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단 기회가 보이면 무조건 잡을 생각부터 해야지. 안 그래?"

"다행히 기회를 만드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차태준이 슬쩍 턱짓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자, 수백 미터 너머에 떨어진 한 호텔에서 '젊은 친구'가 이상한 동료와 함께 서류 봉투 하나를 챙겨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판 멕베인이 반응할 거예요.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느꼈을테니 더욱 구석으로 숨어들겠죠."

"누가 하지?"

"백산 씨가 해주셔야죠. 저랑 은혜는...아시잖아요?"

"그럼 내가 해야지 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팔을 빙빙 돌리던 그때, 그들이 서있던 으슥한 그늘로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어디로 도망쳤나 했더니 이런 곳에 있었군. 두 번 말하지 않겠다, 투항해라."

권총을 겨누며 다가온 한 경호 요원이 무전기에 대고 뭐라뭐라 말하며,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숙련된 솜씨를 지닌 자 답게 권총의 총구는 흔들림 없이 등을 보이고 있는 강백산을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차태준이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이자, 강백산이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그래, 그대도 손을 머리에 얹고, 무릎 꿇......"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잘 됐어."

푸욱!

강백산의 상반신에 만들어진 총알 구멍에서 검은 액체 같은 것이 송곳처럼 튀어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경호 요원을 꿰뚫었다.

"어, 흐으......?"

"웬 멍청해보이는 놈들로 갈아탄 건 좋았는데, 설마 일을 '해결'하지 못 하면 하와이에서 나갈 수 없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이렇게 할 걸."

경호 요원의 몸을 파고든 송곳이 이윽고 흐물흐물한 액체로 변하더니, 그의 체내로 쏙 들어가버렸다.

사시나무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던 그는 이윽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나쁘진 않은데, 이 놈 이거 완전 약에 절어있군."

"TF에 소속된 놈들 중에 멀쩡한 인간이 있을리가 없지."

강백산이 악수를 청하자 경호 요원이 언제 적대했냐는 듯 악수를 받아주었다.

"이 떨거지도 처음 집어삼켰을땐 술에 절어있던 놈이었어. 태준이랑 은혜도 마약 중독자였던가?"

"정확히는 손님에게 점을 봐준다고 하면서 마약을 사용하는 놈팽이였죠."

"저는 그 손님 중 하나였고요~"

차태준이 어깨를 으쓱해보이고, 남은혜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하와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몸 하나를 마련하기는 했는데...하나로는 부족해. '우리' 모두가 나가야 의미가 있지."

"미리 말하는데 난 많이 못 도와줍니다. 경호 요원이라 VIP 보호에 힘 써야 하는데, 항상 주위에 시선이 있어서 거죽을 확보하려 했다간 즉각 발각당할 겁니다."

"그건 문제없어. VIP 거죽은 우리가 직접 확보할 생각이니까. 저 멍청한 놈 하나가 우리에게 협력해주고 있거든."

강백산이 가리킨 곳에는 괴상한 놈 하나와 같이 거리를 걷고 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스스로 피지컬이 좋다고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정말 피지컬이 좋지만, 그래봤자 결국 인간에 불과하다. 일단 거죽만 빼앗으면 저 지식, 저 피지컬, 그리고 그가 가진 사회적 신분과 인간관계까지 모두 그들의 것이 된다.

"VIP 정보 수집에 아주 도움이 되는 녀석이야. 저 놈을 따라다니는 이상한 놈은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지만...어느 쪽이든 마지막에 쓰고 버리기 딱 좋은 패지."

"VIP들에게 혼란을 줘서 고립을 유도하는 방식은 나쁘지 않지만, 그것도 적당히 사용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일단 나도 경호 요원 신분이라 움직일 땐 같이 움직여야 하고, 모든 대화 내용이 기록되기 때문에 신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호 요원은 자신이 미리 박살내버린 무전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돌아가서 왜 무전기가 박살났느냐는 말을 들으면 거수자를 추격하다가 부숴먹었다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래, 중요한 건 자유지 욕망이 아니니까. 솔직히 그 '연구실'은 너무 좁았어."

일행 모두가 강백산의 혼잣말에 심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쪽이 본격적인 파티 준비를 하기 전에 몇 번 더 흔들어 보자고. 그래야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되려는 멍청한 놈들이 생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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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은 낮동안 뭐 빠지게 돌아다니며, 그야말로 잠입 액션 영화를 1편부터 3편까지 시리즈로 촬영했다.

첫 번째 조사 대상이었던 판 맥베인. 그는 전형적인 탈모에 시달리는 주책바가지 늙은이었으나, 그 속에 감춰진 끈적하고 더러운 어둠은 호국도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것 투성이었다.

'설마 취미가 여장이었을 줄이야.'

그렇다!

판 맥베인은 그 나이에, 그 몸매에, 그 신분을 지니고서 VIP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장소에서 여장을 즐기며 노는 천하의 주책바가지였다.

덧붙여서 그가 함께 놀겠다던 '예쁜이'들도 그와 함께 여장을 즐기는 변태들이거나, 그의 놀이에 어울려주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이었다.

그것 외엔 수상쩍은 점도 없었고, 그가 또 다른 은밀한 계획을 감추고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라는 게 밝혀지자 자연스럽게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다.

그래도 만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호국은 기가막힌 눈썰미로 그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탈주한 ES는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 쓴다는 말을 들었으니 혹 이상한 점이 있나 살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완전 무죄였으며, 호국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자신의 기억을 저주하면서 호텔을 빠져나왔다.

다른 VIP들도 함께 조사해볼까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들 모두 방에 없었다. 철저하게 이번 여행을 준비한 판 맥베인과 달리, 아직 하와이에 도착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다른 곳에서 관광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다만 TF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차태준 같은 민간인들에게 온전히 건네줄 수는 없어, 호국은 불필요한 정보를 담은 서류 뭉치를 그들에게 대신 건네주었다.

판 맥베인이 어디서 놀 계획이라던가, 누구와 만날 예정이라던가, 기분 나쁜 사진이나 일정표를 대충 던져준 것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호국은 VIP들이 본격적으로 파티를 즐기기 시작하는 저녁엔 다들 쉽게 움직일 수 없으니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저 징글징글한 얼간이들과 드디어 헤어진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지만, 곧 쉴 틈도 없이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힘이 쭉 빠졌다.

"내 첫 해외 여행이 이런 식으로 망가질 줄이야...뭐하냐 신입, 가서 파티 참석해야지."

호국이 건넨 서류 뭉치를 받고 사라지는 일행을 신입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자신 만큼이나 저 얼간이들을 손봐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 싶어, 호국은 적당히 고삐를 당겨주었다.

"저 양반들이 그냥 민간인이면 구석에 끌고가서 손봐줘도 되겠지만, 일단 TF에서 의뢰를 받은 양반들이라 아직은 건드리면 안 돼. 그러니 지금은 신경 꺼라."

호국이 거기까지 말하자 신입도 더이상 분노를 끓어올리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얌전히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번에 열리는 파티는 TF에서 통째로 전세를 낸 초대형 호텔의 최상층에서 열릴 예정인지라, 호국은 신입과 함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어차피 다 같이 모여서 하하호호 웃고 떠들며 마시기나 하는 마당에 드레스코드가 뭐가 중요한가 싶지만, 지체 높으신 분들과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분들은 격식 따지는 걸 병적으로 좋아했다.

여자는 반드시 드레스, 남자는 정장을 입어야만 들여보내준다니.

'이럴거면 그냥 패션쇼를 하든가.'

결국 내가 더 잘났고, 그쪽은 조금만 잘났고 하는 눈치싸움, 정치질의 연속이라 호국은 벌써부터 정신적 피로가 쌓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탈의실에서 빠져나온 호국은 때마침 자신의 옆에서 걸어나온 신입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경호 요원들이나 착용할 법한 말쑥한 정장에 방탄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기동타격대 헬멧은 그대로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헬멧 만큼은 죽어도 얼굴에서 떼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 너라고 드레스코드를 피해갈 수 있겠냐."

소지품으로 등록하는 꼼수를 써서 데려온 놈이라 경호국에서도 봐주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아마 신입더러 파티장에 출입하고 싶다면 그 답답한 기동복부터 벗고 오라는 소리를 들었으리라.

"그럼 가볼까."

파티장에 참석하기 위해선 총 세 가지 보안 절차를 거쳐야 했다.

우선 TF 관계자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한 ID, 보안 카드의 확인. 그 다음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홍채와 지문으로 재확인, 마지막으로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 알 수 있는 개별 코드(암호)를 말해야만 비로소 초대받은 자라는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호국이 알고 있는 명단에만 150명이고, 실제로는 좀 더 참석할 것이기 때문에 파티장에 드나드는 인간은 얼추 200명 내외라고 봐야 했다.

약 200명에 달하는 인간들이 밤새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걸 홀짝이며, 부자 동네의 아줌마들이 점잔 빼며 말하는 것 처럼 나긋나긋한 수다를 떨 게 뻔했다.

음악은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올 것이고, 음식이라고 해봐야 분위기를 가꾸기 위한 '장식용'이 대부분일 터. 속 편하게 산해진미를 맛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난 아는 사람도 없지.'

옆에 얌전히 붙어있는 신입을 데리고 테이블을 순회하면서, 남들은 눈치 보여 잘 건드리지도 않는 음식을 마구 퍼먹는 기행을 저질러도 괜찮겠지만.

파티가 오늘 하루만 열리고 쫑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성 낮은 호국이라도 여기선 일단 사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슬아슬한 시간에 맞춰 파티장에 입장하자 이미 많은 VIP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맥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말 옛 드라마에서 보던 광경과 판박이라 익숙치 않은 호국은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여기서 뭐해요?"

그런 호국의 팔을 툭 치며 끼어든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수면가스에 맥없이 잠들어버려 방에 처박아두고 나온 김세희였다.

"책상머리에만 앉아 계시던 분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수다를 떨 수 있는지 구경하고 있었지."

"풉! 뭐예요, 그게. 그냥 끼어들기 어려운 분위기라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고 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연스럽게 호국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터번을 벗기려 했다. 그걸 신입이 손으로 막아 제지했고, 세희는 아쉬운 듯 손을 물렸다.

"잘도 그런 걸 쓰고 보안 요원이 입장 시켜줬네요? 이런 자리에 참석하는 건데 눈치껏 좀 벗고 오시지......"

"신비주의 컨셉이면 인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어휴, 말이나 못 하면."

저렇게 한숨 짓는 여동생도 곧 파티 마지막 날의 일정 중 하나인 시상식이 다가오면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호국은 그때까지의 즐거움을 남겨두기 위해, 그녀와 함께 다른 시설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절대 터번을 벗지 않았다.

그렇게 하와이의 첫날 밤이 저물어갔다.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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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대충 심각한 사건(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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