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71화 (171/209)

< 경비 업무 일지 : 충격과 공포 작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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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인간이 짠 절반의 계획과 똑똑한 인간이 짠 나머지 절반의 계획을 봄철 새싹순비빔밥처럼 잘 비비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가.

역사상 그 어떤 엘리트와 멍청이도 그런 도전을 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보통은 똑똑한 쪽에 중요한 일을 전부 맡기기 때문이다. 그게 더 편하고, 안심되고,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 논리가 꼭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멍청한 놈이 환경호르몬은 생각하지도 않고 라면 봉지에 뜨거운 물을 불어서 뽀글이라는 위대한 음식을 개발했듯이, 똑똑한 놈은 그걸 '환경 호르몬 걱정할 필요없는' 뽀글이 상품으로 만들어서 팔 생각을 하는 법이니까.

"이야, 진짜 걸릴 줄은 몰랐네요."

세희는 영혼이 담기지 않은 맥빠진 목소리로 칭찬하며 박수를 쳤다. 마네킹이 박수를 쳐도 그것보단 성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적에게 자신의 의도를 들켰다면, 그리고 적이 경계를 강화했다면 내부에서 교란을 일으키기보단 외부에서부터 차근차근 공략하는 게 정공법이니까."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배웠어요? 아니, 그보다 반대 아니예요? 상대가 더욱 견고해졌다면 내부에서부터 공략한다음 흐물흐물하게 만드는 게 정공법이죠."

"날 가르치신 분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이유는 나도 몰라."

세희는 이런 인간을 가르친 양반은 대체 얼마나 괴팍한 괴짜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겉이 단단할 수록 외부에서부터 조금씩 깎아들어간다는 거랑, 지금 이렇게 보란듯이 바보같은 함정에 걸린 ES 의심자랑은 무슨 상관인데요? 제 똑똑한 머리로 열심히 생각해봐도 그럴듯한 상관관계가 떠오르질 않네요."

"뭘, 너처럼 쥐뿔도 없는 4급 선임 연구원이 경호 요원의 보호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당연히 외부에서 그걸 노리지 않았을리가 없잖아."

"이 사람은 그냥 절 헌팅(꼬시려던)하려던 사람인데요?"

"그래, 널 헌팅(사냥)하려고 했지."

하와이에서의 두 번째 해가 떠오르고, 호국은 신입과 함께 은밀하게 행동하며 세희를 미행했다.

호국이 세운 절반의 똥덩어리 같은 계획은 ES 의심자에게 민트초코를 먹여본다는 것이었고, 세희가 세운 나머지 절반의 천재적인 계획은 '수상해보이는' 사람과 직접 접촉해보는 것이었다.

어딜 어떻게봐도 그냥 평범하기 짝이 없는 미끼 유인 작전이었지만, 세희는 과학자로서 자신의 눈썰미를 믿기로 했기에 기꺼이 미끼역을 자처했다.

굳이 민트초코를 먹이지 않아도 자신의 실력만으로 상대의 정체를 간파해서 가드-079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심산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했으며, 결과적으로 관광지에서 마주친 한 서양인 남성이 그녀에게 추파를 던지기에 이르렀다.

그 뒤엔 너무나도 뻔한 래퍼토리처럼 그녀와 함께 으슥한 곳으로 가려던 놈팽이를 호국과 신입이 급습한 게 전부였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밧줄로 꽁꽁 묶여서 두 사람과 하나를 마주보고 있게 된 것이고.

"어, 저기...혹시 그쪽 여성 분의 남자친구였습니까? 그럼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임자있는 줄도 모르고......"

"저 놈이 뭐라는 거야?"

"가드님이 제 남자친구냐고 물어보네요. 만약 그렇다면 임자있는 줄 몰랐으니 사과하겠다고......"

'굳이' 세희의 번역을 들어준 호국은 자신의 번역기 성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득달같이 달려가 놈의 멱살을 잡아챘다.

프로 복서보다도 빠른 주먹이 그의 안면을 가열차게 두들겼다.

"이 추악하고 더러운 새끼! 어떻게 그런 역겨운 상상을 할 수가 있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죄, 죄송합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살려만 주십시오!!"

"왜 그쪽이 화를 내고 그래요? 내가 화를 냈으면 화를 냈지!"

"그럼 너도 화내든가!"

자신은 이만 비켜줄테니 이제 네가 마무리 하라며 얼굴이 떡이 된 남자를 내주었지만, 세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준비한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꺼내들었다.

"이러다 날 새겠어요. 괜히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할 일이나 하자구요."

"자, 잠깐. 뭘 하려는 겁니까?!"

"그냥...약간의 실험 같은 거예요. 이러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사과하고 보상까지 해드릴게요."

호국에게 두들겨 맞을 때보다 더 심하게 발버둥치기 시작한 그는 급기야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이 입가에 다가오자 비정상적일 정도로 고개를 홱 돌렸다.

때문에 뚜두둑, 하고 목뼈가 어그러지는 불쾌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일반인이라면 벌레를 들이댄다고 해도 저런 반응을 보기 힘들었으리라.

다들 올빼미도 아니고 자신의 목이 어디까지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을테니까.

"...입좀 벌려주세요."

"입 벌리랍신다."

호국이 턱짓으로 신호를 주자 사내의 뒤에 석상처럼 버티고 서있던 신입이 우악스러운 손길로 그의 입을 벌렸다.

"으으, 으으으으?!"

"제가 과학도로서 정말 이런 일을 하기는 싫은데...이것도 과학계의 발전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세희가 그의 입에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한덩이를 기어이 집어넣자, 얼마 지나지 않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

"가악, 가아가가가가...가아아아악!"

각질이 우수수 떨어져나오는 것처럼 피부가 빠르게 벗겨지고, 화장실에서 처음 맡았던 것과 같은 괴악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상대가 탈피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세희가 재빨리 호국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반쯤 녹아내리기 시작한 그것을 집어넣은 뒤 덮개를 확실하게 잠궈버렸다.

아이스박스에 갇힌 그것이 거칠게 날뛰면서 무의미한 반항을 이어나갔으나, 호국이 미끌미끌한 바닥에 아이스박스를 회전시켜서 헤롱거리게 만들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 토하고 싶은 건 다들 똑같으니까.

이윽고 그것이 잠잠해지자 호국은 아이스박스를 의자처럼 깔고 앉았다.

"어때? 이제 민트초코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무기인지 알겠지?"

"무기가 아니라 음식이겠죠. 그리고 솔직히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요. 민트초코좀 먹었다고 형태가 붕괴되는 ES라니...대체 어떤 원리인지 감도 잡히지 않아요."

"조화롭지 않은 걸 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예를 들면요?"

"짜장면&단무지, 라면&김치, 상상만 해도 찰떡궁합일 것 같잖아."

"민트&초코는 아니다?"

"어떤 변태 새끼가 초콜릿 먹고나서 이 닦고 자라는 부모님 잔소리에 바로 양치질 했다가 발명한 게 민트&초코잖아. 진짜 정상적인 것 같아?"

호국의 날카로운 일침에 세희는 자신도 모르게 일리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자신은 딱히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민트&초코의 조합은 확실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진득하면서도 씁쓸달달한 초콜릿에 상큼상쾌하기만 한 민트가 더해진다? 맛이 어떤지는 둘째치고 정상적인 조합 같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백보 양보해서 파인애플 피자는 피자의 기름기 때문에 파인애플 특유의 맛이 옅어지기 때문에 '색다른 맛' 으로 평가할 수는 있다. 하지만 민트&초코는 색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색다른 게 아니라 마구 싸지르다 나온 돌연변이 같은 실패작이지."

팔랑팔랑. 김씨 가문의 인간들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팔랑귀가 이번엔 김세희의 딱딱하게 굳은 사고를 유연하게 만들어주었다.

"요컨대 조화롭지 않은 걸 쳐먹었으니, ES가 인간인 척 연기할 때 필요한 조화로움이 버티지를 못 한다는 거네요."

세희가 괴상하기 짝이 없는 궤변을 논리적으로 해석하자 역으로 당황한 건 호국이었다.

"그, 그렇지 않을까? 어쨌든 몸에 안 받는다는 거잖아."

"후, 좋아요. ES 구분법은 민트초코를 먹이든 찍어바르든 알아서 하시고, 대체 얼마나 더 많은 ES를 생포해야 하는 거죠?"

"모르지. 어쩌면 이미 우리말곤 죄다 당해서, 다들 자발적 민트초코 혐오자가 됐을 수도 있으니까. 어제 호텔에서 놓친 녀석만 해도 움직임이 굉장히 빨랐으니, 일반인 사냥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걸."

"지금이라도 기동타격대를 호출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요."

"높으신 분들이 안 하잖아.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뺑이 치고 있는 거고."

호국은 다시 덜컹거리기 시작한 아이스박스를 신입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아이스박스를 받아든 신입은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그것을 들고가, 자기 방식대로 '처리' 했다.

살점이 찢어지고 무언가가 터졌으며, 삼켜지는 듯한 끔찍한 소음이 새어나왔지만 두 사람은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적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않는다는 건 자신들의 전력이 약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배웠어. 그러니까 지금 저 놈들도 아직 많지는 않을 거야."

"저런 것들이 태연하게 현지인이나 관광객 행세를 하면서 우리에게 접근할 정도로 똑똑한데, 역으로 공세를 취하지 않고 조용히 묻어가려는 의도일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언젠가는 이 하와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테니까요."

"사냥에는 적극적이지만, 그러면서도 조심성이 많은 놈들이야. 최소한 주변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잖아?"

주변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건 대놓고 당당하게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아직 세력이 작거나, 발각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특성을 ES들 역시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젠장, 역시 이럴땐 해피가 있었어야 했는데......"

"해피? 그 로봇개는 왜요?"

"냄새를 잘 맡아. 냄새를 미리 알고만 있다면 저 혼자서 제주도 전체를 무대로 숨바꼭질을 해도 다 찾아낼걸."

호국은 조금 전에 붙잡은 ES에게서 인간과 다른 냄새를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민트초코를 섭취한 뒤에 나오는 악취로는 충분히 분간할 자신이 있었지만, 인간으로 위장한 상태에서 분간하는 건 불가능했다.

'겉으로 살펴봐도 다른 점이 없었고, 체내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똑같았지.'

혹시 속은 다른 게 아닐까 싶어 '귀'를 기울여 심장이 맥동하는 소리, 내장이 꿀럭꿀럭 움직이는 소리까지 전부 확인해보았다. 그마저도 인간과 똑같다는 걸 알았을땐 역시 호국도 혀를 내두를수밖에 없었다.

"하긴, 동물 수준의 후각을 지녔다면 우리는 맡지 못하는 ES 고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해피는 여기에 없으니까 불가능하겠네요."

"안타깝지만 계속 이렇게 납치하는 방법으로......"

호국이 음습한 범죄자 같은 소리를 하고 있던 그때, 볼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신입이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이스박스를 받아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보면 복부비만이 꽤 심각해진 상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입은 자신의 코가 있는 부위를 가리키며 엄지 손가락을 척 세워보였다.

그 의미를 알아챈 호국이 음흉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래, 역시 여행 마지막 날은 원없이 놀아봐야지."

오늘 안에 모조리 끝낸다. 호국은 스테이크를 썰기 위해 준비된 나이프와 포크를 휘리릭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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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요."

"뭐가?"

남은혜의 중얼거림에 강백산은 목이 잘린 경호 요원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의 손에서 뻗어나온 또 다른 점액질이 경호 요원의 시체 속으로 파고들더니 순식간에 새로운 동료로 변했다.

"관광지에서 활동하고 있던 우리중 하나가 조금 전에 막 사라졌어요."

"사라지다니? 우리의 인식 범위 밖으로 나갔다는 거야?"

"아니예요. 그냥 갑자기 사라져버렸어요. 바람에 촛불이 꺼진 것 처럼요."

"그럴리가 없는데요."

호텔 방의 다른 한 쪽에서 막 동료 늘리기 작업을 끝내고 돌아온 차태준이 즉각 부정했다.

"우리가 유일하게 섞여들어갈 수 없는 거대한 바다로 뛰어들었을리가 없고, 아직 하와이를 벗어날 수도 없으니 인식범위 밖으로 벗어났다는 것도 말이 안 돼요.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졌다는 건 없는 겁니다."

"하지만 사실인걸요."

"일부러 우리와 동화를 낮춰서 인식 저해를 유도했을 수도 있겠죠. 우리중에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려는 자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잖아요?"

"그런 거라면 가장 먼저 알아차리셨을 것 아니예요?"

남은혜의 지적에는 차태준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우리'로 묶인 무수한 '나'들은 같은 채널에 존재하는 것과 같다.

누가 어떤 생각을 품거나, 어떤 언행을 보이든 모든 '나'가 알게 되는 구조였다. 덧붙여서 그걸 알고 있으면서 굳이 입이라는 의사소통 기관을 이용하는 이유는 인간처럼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가 처리했다는 건데...역시 경호국이 나선 걸까요?"

"마지막에 느낀 감정은 어마어마한 통증과 공포였어요."

"으음......!"

'나'가 연구실에 갇혀 지낼 때 느꼈던 익숙한 감정.

그것이 남은혜에 의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자 차태준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과학의 발전과 인류의 보호라는 미명하에 그 어떤 제지도 없이 무자비하게 자행되었던 고문. 그것은 단순히 발전을 위한 실험이라기보단, 어린아이의 관찰 일지 숙제에 가까운 광기어린 해체 쇼에 지나지 않았다.

잠자리의 날개를 하나씩 떼고, 풍뎅이의 껍질을 비틀어 으깨고, 개구리의 다리를 하나씩 잘라보는 것 같은 흥미위주의 폭력이었다.

그 끔찍한 기억은 모든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라 차태준은 가능하면 그 기억을 꺼내지 않았으면 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통제해 떠올리기 싫은 악몽을 잠재운 차태준은 문득 자신의 신경이 따끔, 한 것 같은 통각과 함께 익숙한 감각 하나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자신이 직접 만들었던 또 다른 '나'가 바로 조금 전에 사라진 것이다.

'아니, 살해당했다.'

남은혜가 말했던 것 처럼 마지막에 느껴진 것은 끔찍한 통증과 공포. 그리고 조화스럽지 않은 상쾌한 달콤함!

남은혜와 강백산, 그들이 만든 다른 동료들도 차태준과 같은 것을 느꼈는지 단체로 인상을 찡그리며 신음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 경비 업무 일지 : 충격과 공포 작전(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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