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73화 (173/209)

< 경비 업무 일지 : 충격과 공포 작전(3) >

"냄새가 나. 민트초코를 싫어하는 뻐킹 레이시스트들의 냄새가 난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걸어들어오는 호국을 보고서 프론트 직원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떤 일로 방문했는지 묻는 것이었다.

"제 사랑(민트)과 정의(초코)의 이름으로 차별주의자(ES)들을 심판하려고 왔는데요."

"마스터 키를 드릴까요?"

"괜찮아요. 처음엔 사이 안 좋은 사람들이 친해지는 과정에서 서로 부대끼다보면 기물좀 파손되고, 소방호스에서 물도 새고 그러는 법이잖아요."

"그럼 기물 파손 청구서를 어디로 보내면 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TF 앞으로 달아주세요."

호국은 꽤 오래전부터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윙크하며 손가락 튕기기를 했다. 쥐뿔도 없는 주제에 돈만 많은 졸부가 쿨가이처럼 보이려고 하는 행동 중 하나였다.

프론트 직원이 정중하게 안쪽을 가리키며 이만 들어가봐도 좋다고 하자, 호국은 신입과 함께 척척 계단을 올라갔다.

호국은 행보관에게서 대 테러 진압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고, 이 상황은 마침 대 테러 진압 작전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민트초코를 혐오하는 범죄자(ES)들이 호텔 내부에 숨어있는데다, 기회만 보이면 즉시 호국을 요격하려 발톱을 갈고 있는 상황. 게다가 상층부의 부당한 명령으로 인해 파트너도 아닌 소지품과 함께 적지에 진입할 수밖에 없는 호국.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이야. 너도 그렇지?"

호국의 물음에 신입은 두근거림이 없는 자신의 가슴을 잠시 손으로 쓸어보다가, 이내 심장을 직접 만들어 맥동시켰다. 그제야 자신도 두근거린다는 듯 엄지 손가락을 척 세워보였다.

"내 '귀'가 알려주길 천장에서 기어다니는 놈이 하나 있고, 501호실 침대 밑에 숨어있는 놈이 하나, 그리고 호텔 최상층의 테라스 바에서 사태파악 못 하고 술 퍼마시는 놈 둘이 있다고 해."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호국의 정수리를 노리고 천장에서 내려온 촉수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점액질에 가까운 놈이 아주 작은 소음을 내면서 슬금슬금 기어왔다고는 하나, 호국의 '귀'가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거봐. 프론트 직원 분이 나한테 마스터 키를 주려고 하셨지만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벌써부터 천장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에 호국은 혀를 끌끌 찼다. 저걸 싹 뜯어고치려면 합판을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

망가진 배선도 손봐야 할테고, 새로 도색도 해야 한다. 고작 구멍 하나 낸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부수적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들 물건 귀한 줄 몰라. 돈이 귀한 줄은 더더욱 모르고."

이러니 인테리어 시공과 건물 수리업자들만 좋아라 하는 것이다. 호국도 만약 TF에 입사하지 않았다면 그런 쪽으로 꿈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연이어 우박처럼 떨어지는 촉수를 백스텝으로 피해내며, 호국은 신입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러자 녀석은 서전트 점프로 단숨에 천장까지 뛰어올라, 합판을 부수고 천장으로 기어들어갔다.

이 호텔의 가치가 점점 떨어져간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었지만, 이왕 부서질 거라면 확실하게 부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키이이이이이!"

합판 위로 무언가가 쿵쿵 뛰어다니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ES로 추정되는 놈이 괴상한 비명을 내질렀다.

호국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이지 않는 합판 너머의 광경을 상상했다. ES와 신입이 만들어내는 천장 대난투 합주는 음정이나 박자가 썩 괜찮았다.

그리고 합주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ES는 더이상 날뛰지 못 하고 사그라들었다. 녹아내린 건지, 흡수된 건지, 아니면 그냥 뿅 하고 사라진 건지는 호국도 알 수 없었다.

더이상 아무런 소리도 울려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쿵!

먼지 투성이가 된 신입이 합판을 뚫고 멋들어지게 복도에 착지했다. 물론 호국은 박수갈채 대신 녀석의 뒤통수를 찰싹 후려갈겼다.

"네가 무슨 슈퍼 히어로냐? 그렇게 착지하면 무릎 연골 아작나 인마."

배불뚝이가 되었던 신입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더니, 순식간에 다시 슬림한 몸매로 돌아왔다.

호국이 다음으로 찾은 곳은 예의 침대 밑 괴물이 숨어있는 501호였다.

"침대 밑 하니까 떠오른 건데, 난 어릴 때 혼자 자는 게 무서워서 내가 직접 침대 밑으로 들어가서 잔 적도 있어."

철컥철컥. 501호의 문고리를 잡고 비틀던 호국은 이윽고 팔꿈치로 문고리 바로 위쪽을 후려쳤다.

콰앙! 하고 고풍스러운 목재 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손을 집어넣어 문고리 잠금을 해제하자 너무나도 쉽게 문이 열렸다.

이처럼 나무로 문을 만드는 건 굉장히 나쁜 선택이 될 수 있는데, 너무 멋을 챙기다보면 의도치 않은 보안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봐. 침대 밑에 뭔가가 있을 것 같아서 무섭다면, 직접 침대 밑에서 자면 되잖아. 그래서 난 옷장이나 책상 밑에서 자본 적도 있어."

어린 시절의 호국은 24시간 중 거의 20시간에 가깝도록 혼자 지냈기 때문에 스스로 무언가를 이겨내는 법을 터득했다. 물론 그렇게 해도 똑똑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이젠 침대 밑에 뭐가 있더라도 하나도 안 무서워."

문을 따고 들어간 호국이 과감하게 퀸 사이즈의 침대를 발로 차서 옆으로 밀어버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첫 번째 파티의 화장실에서 봤던 텅 빈 거죽과 오물 덩어리 뿐이었다. 청소부가 이걸 봤더라면 심장마비가 왔으리라.

"오, 여기에 거죽이랑 오물밖에 없어! 그럼 ES는 대체 어디로 간 거지?! 무서워서 손발이 덜덜 떨려!!"

호국이 과장된 몸짓으로 오버 하다가 슬쩍 오물덩어리 속에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한 덩이를 집어 넣었다.

그러자 부글부글 끓는 소리와 함께 오물 속에서 은밀하게 몸을 감추고 있던 점액질 형태의 ES가 분수대의 물처럼 튀어 올랐다.

일부러 상대에게 방심을 유도한 뒤, 상대가 돌아서는 순간 기습하려는 생각이었겠지만 호국은 처음부터 ES가 침대 아래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호국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악마적인 수법이었지만, 역으로 호국이었기에 너무나도 쉽게 간파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으으, 아아아......! 싫어! 나는, 나느으으으은...돌아가지 않을 거야!!"

"확실히 아이스박스로 돌아가라고 하는 건 내가 봐도 좀 심한 것 같아."

그럼 자신이 처리해도 되냐고, 스스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신입에게 호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스박스가 아니라 아이스크림 통에 담아주자."

호국은 측은한 얼굴로 손수 ES를 퍼담아서 민트초코 범벅인 아이스크림 통에 집어넣었다.

이제 이 ES는 그저 차갑기만한 아이스박스가 아닌, 좀 더 진득하고 상큼한 아이스크림 통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 자신이 너무 착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어떻게 우리 집안에서 나같이 착한 놈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아버지처럼 가정에 너무 무심하지도 않고, 어머니처럼 너무 빡빡하지도 않고, 여동생처럼 너무 건방지지도 않다. 그야말로 착한 인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호국이었다.

들썩들썩 춤을 추는 아이스크림 통을 아이스박스에 집어넣은 호국은 흘가분한 심정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이제 남은 건 둘. 신입도 더이상 다른 장소로 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호텔의 최상층에서 한가롭게 술이나 퍼마시고 있는 두 놈이 마지막이었다.

호텔 최상층은 사실 말이 좋아 최상층이지, 야외 테라스와 바가 자리잡고 있는 VIP 전용 라운지나 다름없었다.

오직 돈 많은 졸부와 늙은 것만이 장점인 권력가들에게만 허락되는 달콤하고 더러운 휴식터. 그곳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 청년과 중년의 사내가 호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부터 재수없게 꼬였던 차태준과 강백산. 호국은 바로 지척에 있었음에도 두 사람이 사실 ES였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해, 결과적으로 지금 이 지경이 되게 내버려두었다.

괜히 화가 난 호국은 멀뚱멀뚱 옆에 서있던 신입의 머리통을 한 번 더 후려쳤다.

"넌 인마, 저 떨거지들이 나쁜 놈들이란 걸 알았으면 재깍재깍 보고했어야지. 나랑 일하기 싫다고 시위했던 거냐? 진짜 일하기 싫게 만들어줘? 모든 구역 화장실 청소 다 해볼래?"

멍청하게 머리를 긁적이는 신입을 내버려두고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호국은 재빨리 신입의 뒤로 몸을 숨겼다.

트카카카카카!

잔뜩 취해있는 것 같았던 강백산이 대뜸 품 속에서 접이식 기관단총을 뽑아 미친듯이 난사했다.

본래 경호 요원이 가지고 있어야 할 무기였지만, 경호 요원을 ES로 만드는 과정에서 탈취한 게 분명했다.

천만다행인 점은 기관단총에서 미친듯이 쏟아져나온 9mm 탄환의 대부분이 신입 쉴드에 가로막혀, 호국에겐 생채기 하나 내지 못 했다는 것이었다.

호국은 무기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주의했던 존을 속으로 욕하며, 날카롭게 날을 갈아둔 포크를 재빨리 던졌다.

수리검처럼 날아간 포크가 정확히 강백산의 손목에 박혔다. 인간을 흉내내는 이상, 인간과 같은 골격, 근육 구조를 가지고 있을 테니 저러면 더이상 총을 쏠 수 없었다.

호국의 포크가 노린 곳은 정확히 힘줄과 혈관이 지나가는 급소중 하나였던 것이다.

방탄 성능을 갖춘 신입의 어깨 위로 빼꼼 고개를 내민 호국은 신경질적으로 포크를 뽑아내는 강백산에게 소리쳤다.

"이제 다 끝났어! 순순히 항복하고 민트초코를 받아들여!!"

"젊은 친구가 못하는 소리가 없군. 그 말은 우리더러 다시 그 광기어린 실험실로 돌아가 순순히 고문이나 당하라는 건가?"

"난 그냥 까라는 대로 까는 것 뿐이야!"

"어리석기는! TF의 개가 된다는 건 자신이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더이상 인간이 아닌 것들을 우리와 같은 존재로 바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 않나? 그냥 못 본 척 눈감아주기만 하면 돼! 우린 우리대로, 진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테니까! 인간처럼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고, 자연을 훼손하지도 않을 것이며, 개인과 단체의 이익을 위해 무차별적인 범법행위를 저지르지도 않을 것이다!!"

언뜻 들어보면 꽤 좋은 포부를 가진 것 같았지만, 호국은 쥐어짜내듯이 내뱉는 강백산의 말투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그들이 정말 인간처럼 살고 싶다면, 대체 왜 멀쩡한 인간의 거죽을 빼앗아 쓴단 말인가?

'복잡하게 성형 수술을 안 해도 되니까? 아니, 그건 너무 나갔고. 그 점액질 같은 피부를 관리 안 해도 되니까? 그럴싸 한데.'

여러 생각을 떠올리던 호국이 도달한 결론을 의외로 심플했다.

"진짜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민트초코를 받아들였어야지!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런 걸로 차별 안 한다고! 나 빼고!!"

즉 강백산은 그저 인간답게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외치면서도 사실은 인간인 척 했을 뿐인 위선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면 남의 거죽을 빼앗든,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가로채든, 중요한 건 민트초코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차별주의자들은 너무 역겹지 않은가. 그들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인간 취급을 받지 못 한다. 호국만 빼고.

"그 뒤틀린 황천의 폐기물 덩어리는 우리의 이성적인 사고와 DNA 결합 구조를 파괴한다! 우리가 원해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배척하게끔 만들어진 것 뿐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차별주의자였다고?!"

"그게 아니...빌어먹을! 대체 네 놈은 어떻게 그 머리로 TF의 개가 된 거냐?!"

"추천 받아서!"

"...염병."

강백산은 자신의 손상된 거죽을 복구시키는 한편, 불안한 눈초리로 옆에서 술만 홀짝이고 있는 차태준을 바라보았다.

"1호! 정말 여기서 끝낼 셈이냐? 다시 그 실험실로 돌아가자고?!"

가만히 술잔을 흔들고 있던 그가 강백산의 외침에 자조하면서 대답했다.

"그럼 반대로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나요?"

"그건...저 놈을 죽이고! 그 거죽을 빼앗으면 그만이야! 저 놈만 이용하면 어떻게든......!"

"우리를 제외한 '우리'는 모두 저 자의 손에 당했어요. 당신이나 저나 이미 충분할 만큼 공포와 고통을 맛보지 않았나요? 저 자는 세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우리를 가장 끔찍하게 죽일 수 있는 인물이예요."

"그러니까 그건 이상하다고 헀잖아! 세상 어떤 인간이 '우리'를 마치 한입에 집어삼키듯이 흡수를 하냐고! 저 놈이 정말 그랬다고 해도...실험실로 돌아가는 건 참을 수 없어."

이제는 울먹이기 시작한 강백산을 향해 차태준은 사람 좋은 미소와 느글거리는 태도는 싹 접어두고, 무미건조한 태도로 대답했다.

"제가 이 거죽을 뒤집어 쓰면서 얻게 된 능력이 있는데, '우리'의 점을 봤어요. 두 가지 결과가 나왔는데...그중 하나가 실험실로 돌아가는 결과예요."

"그럼 나머지 하나는......?"

"혹시 밧줄에 매달리는 거 좋아하시나요?"

"...아니."

"저도 싫어해요. 그럼 이제 우린 실험실로 돌아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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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충격과 공포 작전(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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