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81화 (181/209)

< 경비 업무 일지 : 세일럼 마피아 게임(7) >

"네 잘못이야!"

"네 잘못이지 이 양심없는 새끼야!"

정확히 일주일째 되는 날 낮, 기어코 간수와 처형자가 서로의 멱살을 잡고 드잡이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네가 오냐오냐 다받아주니까 낮에 처형된 사람만 50명이 넘었어!!"

"그러는 너는?! 아군한테 총질하고 뭐가 그리 잘났는데?! 나야 투표때문에 반 강제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쳐도 너는 그러면 안 되지!!"

"맞네, 맞네. 저 새끼가 잘못 했네."

그들 사이에서 호국이 지적을 받은 간수의 행태를 꼬집었다.

"그래! 네 잘못이야! 네가 아군 총질만 안 했어도 처형 투표가 우리한테 좀 더 유리하게 돌아갔을 거라고!!"

"개소리 하고 있네! 그러는 너는 밤에 처형 안 했냐? 처형 포인트로 처형 조지게 했잖아!!"

"맞네, 맞네. 이 새끼도 잘못 했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데, 호국은 아예 싸움을 부추기는 시아버지가 되어 둘의 분노 게이지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둘의 분노가 자신에게로 향하면, 호국은 왜 자신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냐는 식으로 되물었다.

"저는 항상 기권표만 냈어요. 동네 바보 직업이라 살인도 못 하고요."

"...으음. 그건 그렇지."

"지금껏 용케 살아있었네. 그런데 다음 처형에는 꼭 투표해. 투표 안 하는 중립은 투표 하는 중립보다 못 하니까."

호국은 일찌감치 가죽 주머니 속의 범죄도구(?)들을 모두 처분해버렸다. 죄없는 사람에게 마약 사범 누명을 씌우는 것처럼 '던지기'를 하는데 사용했던 것이다.

덕분에 호국은 몇 안 되는 시민 측 전문 직업 중 한 명인 마을 자경단원에 의해 소지품 검사를 받고 무죄로 풀려난지 오래였다.

만약 호국이 '던지기'를 하기 전에 소지품 검사를 당했다면 빼도박도 못 하는 악질 버그 유저로 몰렸겠지만, 이미 깔끔하게 손을 털고 빠져나온 터라 누구도 그의 꼬리를 잡지 못 했다.

치밀한 계산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전략전술로 이런 상황을 유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이렇게 하면 왠지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서 했던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게 이런 결과로 다가올 줄은 당사자인 호국도 몰랐던 일이지만, 좌우지간 상황이 개판으로 돌아가게 된 것 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 경과한 지금, 세일럼 빌리지에 남은 총 생존자의 수는 고작 120명. 전체 생존의 3분의 1밖에 남지 않았다.

시민, 마피아, 그 외의 세력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도 앞으로 10일째에 도달하기 전에 깨질 것이 분명했다.

시민 측은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적대 세력을 처형하거나 사살해야 하지만, 시민 측 조력자 중 그것이 가능한 전문 직업은 처형과 간수 뿐이다.

게다가 이제와서 처형 투표를 진행한다고 한들, 51% 이상의 찬성표를 얻기는 힘들어 보였다. 왜냐하면 120명 중에 시민 측이 61명을 넘겼을리가 없으니까.

서로 팀킬을 하는 과정에서 시민과 중립의 피해가 가장 컸다. 마피아나 사이비 교단도 내분을 일으키긴 했지만, 그들은 기껏해야 몇 명 죽는 선에서 그쳤다.

시민을 제외하면 마피아, 중립, 사이비 교단, 그리고 살인마를 합쳐서 가볍게 50%를 넘길 것이다.

하지만 세력이 잘게 쪼개진 상태이기 때문에 서로를 처형 대상으로 지목할 수도 없는 상황. 결국 남은 방법은 살인 스킬을 지닌 전문 직업들이 밤에 여포 짓을 하는 것 뿐이다.

뒤늦게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갔음을 인지한 시민들은 밤이 오게 되면 무방비하게 당할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서로 싸우지 말고 꾸준하게 타 세력을 처형시켜나갔다면 무난하게 시민이 승리할 수 있었겠지만, 다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집단 광기가 터지기 직전에는 항상 의심과 불만이 새싹처럼 돋아난다.

하지만 집단 광기가 터지고 어느 정도 안정되기 시작하면, 뒤늦게 벌어진 참사와 망가진 관계로 인해 집단에서 불안과 공포라는 열매가 결실을 맺는다.

시민 측은 미고를 제외하면 아이들의 모습을 한 유저들도 모두 사라졌다.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약자들부터 살인 스킬을 지닌 적대 세력의 표적이 되니,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예고없이 7일째 밤이 찾아왔을 때, 호국은 자신이 오직 재미만을 추구하며 마구 뿌렸던 씨앗들이 풍년을 맞이하는 것을 똑똑히 확인했다.

-7일째 밤에 사망한 생존자 수 : 21명

-세력의 균형이 어그러졌습니다.

-세력 약화로 인한 시민 세력 패배

-남아있는 잔존 시민 세력은 모두 사망 처리됩니다.

-추가로 사망한 생존자 수 : 32명

시민 측 세력이 꺾이면서 모든 시민 세력은 자동 패배 처리 되었다. 120명에서 53명이나 되는 인간들이 사라진 것이다.

개중에는 처형자와 간수가 처리한 타 세력 인원도 존재하겠지만, 결국 처형자와 간수도 압도적인 물량의 총질과 칼질에는 당해낼 수 없었으리라.

이제 마피아와 사이비 교단의 1 대 1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 사이에서 소수의 중립 직업과 살인마들은 마지막 투표에서 줄을 잘 타야 한다.

'살인마도 죽겠네.'

처형자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처형 투표는 존재한다.

그리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확정킬이 가능한 살인마는 1순위 처형 대상일 터. 낮이 되자마자 마피아 측 첩보원에 의해 정체가 들통난 살인마들이 줄줄이 처형당했다.

53명에서 3명의 살인마가 처형되어 56명이 사라졌다. 남은 생존자는 64명.

"이상한데."

모든 살인마의 처형을 끝내자 동료를 리볼버로 쏴버렸던 마피아가 갑자기 의문을 표했다.

"인원 수가 안 맞아. 시스템상으로는 64명이 남았는데...머릿수를 세보면 61명밖에 없어."

"그것도 버그인 모양이지. 중요한 건 지금 남아있는 61명으로 마지막 게임을 해야 한다는 거야."

총 생존자 수가 64명이든, 61명이든, 더이상 처형 투표가 진행되고 있지 못 한 것으로 보아 사이비 교단과 마피아 모두 51% 이상의 투표권을 가지지 못 한 듯 했다.

즉 한 쪽은 30명, 다른 한 쪽은 29명이라는 얘기가 된다.

시스템의 생존자 표기 오류로 정말 61명밖에 남지 않았다면, 59명을 제외한 인원은 미고와 호국뿐이니까. 마지막에 중립 직업이 2명만 남게 된 것이다.

이러면 마지막 대결 구도에서 호국과 미고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해진다.

만약 두 사람 모두 29명이 남아있는 세력의 편을 든다면 30명이 남아있는 세력의 우세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 반대로 둘다 기권표를 던져서 밤이 찾아오게 만들면 확정킬이 가능한 마피아가 승리하게 된다.

사이비 교단이 조금 많이 불리한 상황이지만, 중립 직업의 표만 받는다면 낮에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상황. 이제 마피아와 사이비 교단은 두 명의 중립 직업을 설득해야 할 차례였다.

그들도 마지막이란 걸 아는지, 59명의 인간들은 서로 자신의 팀원과 함께 반으로 나뉘었다. 30명이 살아남은 쪽은 마피아였으며, 29명이 살아남은 쪽은 사이비 교단이었다.

마피아는 처음부터 조력자와 전문 직업을 포함해서 60명으로 시작했고, 사이비 교단은 40명으로 시작했지만 꾸준히 죽고, 포교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그 숫자를 유지한 것 같았다.

"그냥 심플하게 게임 끝내자고! 우리가 한 명 더 많잖아!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좋으니까 마피아로 건너와! 그럼 모두 이길 수 있어!!"

"우세 상황을 뒤집으면 역전승 포인트를 추가로 얻을 수 있어! 사이비 교단 쪽으로 와! 더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면 너희 둘다 이득이잖아?!"

마치 유흥주점이 널린 밤거리에서 삐끼들이 서로 잘 모시겠다면서 졸부 손님을 모셔가려고 애를 쓰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호국은 마지막까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이름이 마피아 게임인데, 마피아가 동네북 취급을 받았던 게임의 역사를 자신이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전 마피아 편 할게요."

호국이 마피아 쪽으로 들어가자 마피아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로써 마피아가 31명이 되면서 51%의 표를 가지게 되었고, 우승이 확정된 것이다. 미고가 사이비 교단의 편을 든다고 해도 판을 뒤집을 수 없었다.

그 시점에서 게임이 끝났어야 정상이건만, 신기하게도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없이 게임을 하는 건 잘못 됐어요."

이 집단 광기의 주범인 호국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미고가 사이비 교단의 세력으로 넘어갔다.

"어이, 이미 게임은 끝났어. 너희 모두 합쳐도 30명밖에 안 되는......"

한 마피아가 이제 슬슬 현실을 직시하려며 핀잔을 주려 할 때였다.

그녀는 갑자기 주머니 속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이 마을의 관리자인 촌장의 상징, '촌장의 직인' 이라 불리우는 전문 직업 아이템이었다.

-중립 직업 '도굴꾼'이 시민 측 직업인 '촌장'의 직업을 계승하였습니다!

-시민 측 세력이 소멸했기 때문에 도굴꾼이 계승한 촌장의 세력은 중립으로 유지됩니다.

-촌장은 '마을의 관리자' 스킬로 인해 낮에 처형당하지 않습니다.

-촌장의 투표권은 5표로 계산됩니다.

순식간에 사이비 교단이 보유한 투표권이 34표가 되었다.

본래 사이비 교단이 보유하고 있던 29표와 도굴꾼이었던 미고가 촌장으로 바뀌면서 가지고 온 5표가 합산된 것이다.

상대는 34표, 이쪽은 31표. 마피아들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도굴꾼이 사망처리된 촌장의 유품으로 직업을 계승할 줄 몰랐기에 한 방 먹은 표정들을 지었다.

마피아의 승리가 확정되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사이비 교단에게 승리를 빼앗기게 된 셈이다. 당황하지 않을리가 없었다.

호국만 빼고.

"만약 양 세력이 똑같이 50%의 투표권을 가지고 있으면 처형이 진행되지 않고 밤으로 건너가잖아?"

"하지만 우리가 3표나 더 많아요."

"아니야. 우리도 3표 더 있어."

호국은 생존자 수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라며 자신의 머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총 생존자는 64명이잖아."

"하지만 지금 여기에 없으니......!"

"여기 있어."

이 자리에 실체를 가진 61명의 생존자. 하지만 행사할 수 있는 투표권의 갯수는 64개.

3표를 마피아 쪽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34대 34가 되어 마피아와 사이비 교단 모두 낮에 처형 투표를 진행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미고는 처형 투표가 진행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곤 식은땀을 흘렸다.

"내가 처음에 말했지. 나랑 같이 다니려면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고. 그리고 구라치면 손모가지도 날아간다고."

"......!"

"내 비밀친구 셋을 포함해서 마피아도 34표가 됐으니, 이제 처형 투표는 못 하겠네?"

호국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자신의 통수를 친 미고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세워주었다.

"작전은 좋았어. 하지만 이왕 직업 계승을 할 거였다면 촌장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를 했어야지."

그럼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폭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테니까.

미고의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호국과 마피아들은 다 함께 팔짱을 끼고 삼류 악당처럼 낄낄 웃어댔다.

8일째 낮이 빠르게 지나가버리고, 마지막 8일째 밤이 도래했다.

마피아 몇 명이 확정킬을 내는 것으로 세력의 균형이 깨졌다.

-마피아가 승리했습니다!

-최고 공헌자 : 가드-079, Ear-04, Eye-04, Leg-04

-생존한 마피아 수 : 30명

-생존한 중립 직업 수 : 4명

게임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호국은 찢어지는 듯한 여성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입에 흐르던 침을 닦아내며 뻐근한 몸을 일으켜 세우니, 책상 위에 놓여있던 콘솔 게임기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게임기가 망가지면서 게임에서 튕겨나온 듯 했다.

호국은 눈알을 좌우로 굴리다가, 휘파람을 불며 자연스럽게 6-333의 은폐실을 빠져나왔다.

"아무튼 내 잘못은 아니야."

이제는 단종되어서 프리미엄 가격이 붙었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업무 도중에 사고가 발생한 것이니 호국은 자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ES 6-333이 가드-079에 의해 제거되었다는 초유의 사태가 TF 전 지부에 알려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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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세일럼 마피아 게임(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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