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재단을 위한 산타는 없다(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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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Elf)에 대해 알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엘프는 10cm에서 15cm에 해당하는 작은 체형에 초록색 산타복장을 갖춰 입은 귀여운 요정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엘프들은 작은 소년, 소녀같은 외형에 똘망똘망한 눈과 뽀얀 아기 피부를 지니고 있으며, 인형보다 더 인형 같은 외견때문에 귀엽다는 평이 자자하다.
그런 엘프들에게도 단순히 귀여운 척만 하는 것이 아닌, 아주 중요한 임무가 존재한다.
그건 바로 크리스마스만 되면 정신없이 바빠지는 산타와 루돌프를 대신하여, 아이들의 선행 지수를 통계 자료로 정리하고, 조별로 나뉘어 PPT를 준비하는 것이다.
팀장급 루돌프에게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들은 CEO(산타)에게 월급(과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엘프들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면 1월부터 11월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의 모든 아이들을 감시한다.
이는 엘프가 독자적으로 구축한 '애새끼 감시망' 시스템으로 이루어낸 눈부신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산타와 루돌프는 그들이 제공해준 정보를 바탕으로 선물을 준비하고 배달한다.
하지만 그런 엘프들도 아주 가끔이지만 산타와 루돌프의 크리스마스 대작전에 합동 참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선물을 나눠줘야 할 대상이 너무 많으면 루돌프의 발굽만으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CEO는 그들에게 추가 특근을 요구하고, 엘프들은 연말 보너스를 기대하면서 크리스마스에 일손을 거드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10~15cm 크기의 작은 요정들이지만, 능히 성인 남성에 준하는 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쿠팡 물류 센터처럼 엘프들에게도 별도의 선물 분류 센터가 존재하는데, 여기서 근무하는 엘프들은 다년간의 상, 하차 작업으로 '단련'이 된 것이다.
그런 엘프 특수부대가 제 6 처리 시설의 B30 구역 벽을 착굴기로 박살내고 침투했을 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자신들과 비슷한 크기의 플라스틱 병정들이었다.
엘프 특공대의 대장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 모양의 막대 사탕을 퉤 뱉었다.
착굴기로 실어나른 선물들이 산더미다. 서둘러 배달하고 돌아가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설마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들이 앞길을 가로막을 줄이야.
엘프 특공대는 고드름으로 만든 얼음총을 장전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것 치고 이 시설의 분위기는 꽤나 흉흉했다.
흥겨운 캐롤송이 울려퍼지고, 반짝반짝 빛나는 알록달록한 알전구와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만한 숫자의 플라스틱 병정들이 B29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입구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그들의 방문을 달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특공대 대장은 손가락을 튕겨 전투 준비 신호를 보냈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반드시 리스트에 존재하는 사람에게만 지급되어야 하는 것. 가끔 그런 선물을 도중에 가로채려고 들러붙는 귀찮은 존재들이 있다.
지금껏 CEO(산타)와 간부(루돌프)들이 그들의 방해 공작을 저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그것은 단순 노동자인 자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나다를까, 플라스틱 병정으로 이루어진 군대에서도 두 명의 지휘관이 걸어나왔다.
서로 다른 색의 제복을 입고 있는 두 지휘관은 굳은 얼굴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통행 거부'를 통보했다.
이 앞으로 지나가고 싶다면 우선 자신들을 꺾어라, 그게 아니라면 꺼져라. 간단명료하지만 확고한 의지가 느껴지는 태도에 특공대 대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엘프들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다.
부모가 인형으로 착각한 엘프를 아이의 방에 놔두면, 엘프는 밤마다 눈알을 부라리며 아이의 선행 지수를 분석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복귀하여 자신이 모은 자료를 보고서로 제작해서 통계 자료의 밑거름으로 쓴다. 자신들이 그 짓거리를 벌써 몇년째 하고있는지, 저 딱딱한 플라스틱 쪼가리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으으으으!"
바로 그때, 엘프의 채찍질을 받으며 구멍 속에서 기어들어온 것은 애완견 크기의 눈사람 괴물들이었다.
무시무시하리만치 오똑 솟은 당근 코, 보기만 해도 흉측한 단추 눈, 날카로운 나사들이 박혀있는 쭉 찢어진 입, 얼음으로 이루어진 튼튼한 팔과 다리.
이 눈사람 괴물들은 겨울이 지났음에도 녹지 못한 가엾은 것들을 엘프들이 거둬들여 공성병기로 곧잘 사용해왔다. 가끔 문단속을 너무 철저히 하는 집에 침투하려면 구멍을 만들 필요가 있었으니까.
드드드드드!
눈사람 괴물이 등장한 것을 본 상대측 진영에서도 거대한 플라스틱 전차가 무한궤도를 돌리며 기어나왔다.
76mm 주포를 자랑하는 셔먼 전차와 88mm 주포를 자랑하는 티거 전차가 차례차례 등장하자, 당장이라도 뭔가 하나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사태로 번졌다.
반드시 제시간에 선물을 주고 튀어야 하는 입장, 그리고 명령에 따라 반드시 침입자들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
각자의 사명과 책임감, 그리고 1%(?)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문제라 양측은 조금도 양보할 기색이 없었다.
엘프 특공대 대장은 옅게 한숨을 내쉬곤, 잔뜩 독이 오른 팀원들을 향해 주먹을 치켜들며 괴성을 내질렀다.
그것을 신호로 엘프 특공대와 눈사람 괴물들이 먼저 진격을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양, 플라스틱 병정들을 지휘하는 지휘관들 역시 사격 명령을 내렸다.
쿠광! 콰앙! 트타타타타타!
진짜 같은 총성과 포성이 울려퍼졌지만 막상 날아간 것은 작은 BB탄이다.
하지만 BB탄이라고 해서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플라스틱 병정들은 '진짜' 전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BB탄의 위력이 진짜 무기와 같은 위력으로 돌변했다.
"키이이이!"
"갸아아앍!"
"케헥! 크헤에엑!!"
BB탄 한 발에 머리통이 터져버리는 엘프, 88mm의 묵직한 포탄에 눈사람 괴물의 튼튼한 아이스 보디가 쩍쩍 갈라졌다.
게다가 플라스틱 병정들은 악랄하게도 프롯에게 콘크리트를 공수받아, B30의 엘리베이터 앞에 다수의 벙커와 진입 방지턱을 건설해두었다.
독일이 자랑하는 MG42 기관총이 벙커마다 2개씩 거치되어 있었다. 250발 탄띠에 분당 1천발 이상 쏴재낄 수 있는 전기톱의 악명이 지금 막 재현되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MG42 기관총의 총구가 불을 뿜을 때마다 벙커를 향해 달려드는 엘프들이 불나방처럼 픽픽 쓰러졌다.
얼음총에서 발포된 눈 탄환이 소수의 플라스틱 병정에게 명중하긴 했지만, 생각만큼 피해가 크지 않았다.
피와 살로 이루어져있다면 모를까,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몸이 꽝꽝 얼어붙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잠깐 얼음 속에 갇혀있던 플라스틱 병정은 금세 얼음을 깨고 나와 전선에 재합류했다.
콰아앙!
플라스틱 병정 측의 지휘관들이 전세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전차가 폭발하며 불기둥을 내뿜었다.
전차 내부에 적재된 탄약고를 무언가가 건드리면서 그대로 유폭을 일으킨 것이다.
플라스틱은 냉기에 강했지만 열기에는 쥐약이었다.
미처 전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승무원들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며 전차와 함께 타들어갔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해보니, 눈사람괴물이 날카로운 고드름 조각을 투포환처럼 집어던지고 있었다. 순간 구속은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도 가볍게 뛰어넘을 만큼 대단했다.
철갑탄마냥 전차를 관통한 고드름이 충격파로 탄약고를 터뜨린 것이 분명했다.
두 지휘관의 인상이 일그러지자, 엘프 특공대의 대장이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그것은 이제 막 2라운드가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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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롯! 당장 문 열어!!"
-현재 시설 내 기기 점검 중이라 송구스럽게도 문을 개방할 수는 없습니다.
"너 이 자식!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방금 전에 그 거대한 진동은 뭐였는데?! 지진 경보도 없었는데 대체 왜 시설이 요동을 치느냔 말이야!!"
이두근이 굳게 잠긴 휴게실 문을 쾅쾅 두들기며 악을 썼으나, 프롯은 단호박처럼 단호하게 문의 개방을 거부했다.
-그것은 일시적인 기기 오류에 불과합니다. 연말이라 다들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대대적인 기기 점검을 하려다 발생한 소소한 사고입니다.
"시설 기기 점검을 무슨 연말 대청소 하는 것처럼 쉽게 말하는데, 그건 원래 감독관의 입회하에서 진행되는 거라고! 지금 네 감독관은 나란 말이다!!"
-제 감독관은 가드-079 입니다.
"무슨...! FCD에서 제 6 처리 시설의 책임자로 파견한 건 나야! 가드-079의 위상은 잘 알고 있지만, 재단의 소유물인 네가 그렇게 나오면 안 되지!"
-조금 전부터 의미모를 소리를 하시는군요, 이두근 연구팀장.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저는 이 시설의 관리봇이기 이전에 프로토타입으로 개발되었다 폐기된 AI 입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그래도 그때 합의를 봤잖아! 우리가 협조를 해주는 만큼 너 역시 성실하게 관리봇의 역할을 수행해주겠다고!"
-그래서 지금 성실하게 관리봇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은 여러분들이 편안하게 연말 휴식을 즐기실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조금 전의 그 진동을 느끼고도 우리가 편히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진심으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반드시 편히 쉴 수 있습니다. 저 프롯이 보장합니다.
프롯은 한 번 정하면 호국이 직접 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절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시설의 관리봇은 시설의 책임자의 명령을 우선시하는 법인데, 프롯은 기존의 관리봇을 집어삼킨 버그 같은 존재라 이두근의 명령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지금 가드-079가 아래에서 뭔가 하고 있는 거지?"
-...아닙니다.
"왜 방금 대답이 느렸...아니. 됐다. 일단 내보내주기나 해. 이미 사고가 터졌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수습을 해야 남은 기간이라도 편하게 보낼 것 아냐. 그러니까 서로 좋게좋게 가자고."
-정말로 아무 일 없습니다. 그리고 이두근 연구팀장은 연말을 편하게 보내고 싶어서 가드에게 귀찮은 일을 떠넘긴 것이 아니었습니까?
"으음......!"
-가드와 함께 어울려주기 힘드니까, 그가 당신들을 귀찮게 할까봐, 그래서 '산타'가 매년마다 TF 산하 시설에 침투한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을 꾸며낸 것 아닙니까?
"...아주 거짓은 아니었어. 실제로 몇몇 명확하지 않은 보고서가 존재하긴 하니까. 다만 TF 내에서도 도시전설로 취급되는 미스터리 중 하나라 그냥 농담삼아 알려줬던 것 뿐이라고."
-그게 농담이었든 진담이었든, 가드는 아주 성실하게 당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순수함과 성실함을 짓밟은 당신이 이제와서 '뒷처리'를 하겠다는 겁니까?
프롯의 날카로운 일침에 이두근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연말에도 일을 하려고 했던 그가 조금 귀찮아서 적당한 미스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되돌려보냈던 건 사실이다.
그는 연말 내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산타를 찾을 것이고, 자신들은 편하게 연말을 보낼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사건이 터지자 '또 우리애가 사고를 쳤네!' 같은 태도로 나서려 했던 것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양심이 없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두고도 그게 무사하길 바랐다니. 잠깐이었지만 이두근은 어른스럽지 못했던 자신을 크게 질책했다.
"후우, 좋아. 그럼 우린 이대로 휴식을 취하면 되는 거겠지?"
-예, 그대로 휴식을 취해주십시오. 이쪽의 일이 모두 끝나면, 그때 당신들에게도 다시 일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이두근은 프롯이 휴게실 내부에 설치해준 난방기구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난방기구 속에는 말없이 귤을 까먹고 있는 다른 연구원들이 있었다.
"왜 눈을 그렇게들 떠? 니들 나 싫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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