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재단을 위한 산타는 없다(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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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처리 시설 B55 구역에는 세 명의 자매가 은폐되어 있다.
과거에 기록된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소녀,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소녀, 그리고 일정한 생명의 희생을 대가로 미래에 반드시 일어나게 될 일을 알려주는 소녀.
그녀들은 DNA상으로 인간임이 틀림없다고 증명된지 오래지만, 그 기이한 능력이나,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스터리한 기원으로 인해 준 ES로 분류되었다.
재단 측에선 가능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고 싶어했으나, 그녀들을 시설에 은폐하기 전까지 '소모'한 인력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모든 프로젝트는 중지되었다.
대화를 통해 과거로부터 정보를 얻으려 했던 연구원은 사망,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알아내려다 자살, 미래를 알아내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요구.
그녀들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질 나쁜 조직에게 악용당하지 않도록 영구히 은폐시켜두는 것이 인류에게 있어서 도움되는 일이다.
적어도 재단의 상층부는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그녀들 또한 한창 때의 나이임에도 갑갑한 지하 시설 속에 갇혀 지내야 했다.
지난 날 동안 제 6 처리 시설의 연구원들은 감히 그녀들에게서 정보를 캐낼 엄두조차 내지 못 했다. 경비들은 B55의 접근 자체를 꺼려했다.
단지 인간이 알지 못 하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자신들과 같지만, 너무나도 동떨어진 영역에 있기 때문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차라리 괴상망측하고 척봐도 '위험해보이는' 형태의 ES였다면 다들 한결 편한 마음으로 접근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겼으니 그런 짓을 할 법 하다, 라고 예상이 되니까.
하지만 그녀들에게 그런 것은 없다. 단지 그 입이 열리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게 되어 끔찍한 결말을 맞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미래'라고 칭하지 않는 삼자매의 장녀가 감고 있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그녀의 굳게 닫힌 입과 가녀린 양손에 쥐여져 있는 로자리오는 그녀가 혹시 묵언 수행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실제로 그녀는 보기드문 옛날 수도원에서나 입었을 법한 수녀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과 손을 제외하면 그 어떤 피부도 드러내지 않았다.
만약 가톨릭 신자가 이 광경을 봤더라면 그녀야말로 참된 주님의 어린양이다, 라고 찬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녀는 신앙심 깊은 수녀의 교과서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1만의 희생양을 대가로 1개의 미래를 알려주는 마녀.
신성한 외형을 갖춘 것 치고 그녀가 재단내에서 받고 있는 악명은 실로 살벌했다.
정작 본인은 악독한 마녀로 불리든, 예언을 방패삼아 세상에 파멸을 불러오는 존재라고 불리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신에게 제공된 방에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지금은 그녀의 앞에 손님이 도착했기 때문에, 꽤 오랜만에 기도를 그만둘 수 있었다.
눈앞의 상대는 건장한 체격에 하얀 털이 달린 붉은 재킷을 착용하고 있는 남자였다. 얼굴은 눈처럼 새하얀 턱수염과 뽀송뽀송한 털이 달린 붉은 모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등 뒤에는 축 늘어진 보따리 하나가 전부.
그는 검은 장갑을 착용한 손으로 보따리 속을 뒤져 적당한 크기의 선물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 예쁜 리본과 함께 달려있는 한 장의 쪽지 속에는 'Merry Christmas' 라는 멋들어진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녀는 잠시 선물 상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헛숨을 들이키며 말했다.
"놀랍도록 큰 대가로군요. '누군가'의 거대한 원망과 소망, 절망, 희망, 그리고 꿈이 깃들어 있는 집합체예요."
오랫동안 말하지 않아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나왔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본인조차도 가능하면 영원히 이 입을 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가지고 온 것은 너무나도 큰 대가였다.
1개의 미래를 듣기 위해 요구되는 1만의 희생 같은 것이 우스울 정도로 분에 넘치는 것.
그녀 자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가지 소원만을 빌었지만, 그녀가 본 그 어떤 미래에서도 이러한 형태로 소원이 이루어지는 광경은 없었다.
그렇기에 분에 넘치다고 판단했다. 상대가 대가로 내놓은 것은 감히 자신의 지식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물건이니까.
"...이만한 것을 준비하기 위해 누군가가 크게 희생되었겠군요."
"자그마치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상대가 내뱉은 15년이라는 말에 그녀가 흠칫 몸을 떨었다.
쇠를 못으로 끼익끼익 긁어대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였지만, 그런 목소리보다도 더 섬뜩한 내용이 그녀의 등골을 타고 내달렸던 것이다.
"그것은 필시 단순한 15년이 아니었겠지요."
"누군가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어야 할 15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듦으로써 '이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제게 떠넘기려 하는군요. 저는 지금껏 합당한 대가에 걸맞는 미래의 편린을 제공해왔지만, 그것은 제게도 분이 넘치는 것이예요."
"나는 그저 단 하나의 정보를 원한다. 너희 삼자매라면 불가능하지 않을 터."
"대체 무엇을......?"
그녀가 조심스럽게 되묻자 상대는 선물 상자를 발로 툭 밀어 넘겨주며 대답했다.
"상속자들중 누구도 듣지 못한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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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안구 손상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으으...아닌 것 같은데.......!"
-엄살 부리셔도 가드의 눈은 멀쩡합니다. 피가 흐르고 있는 것만 빼면 말입니다.
"어으으으......!"
호국은 프롯이 조종하는 기계팔의 도움을 받아 눈가에서 흘러내린 피눈물의 흔적을 닦아냈다.
끔찍한 것. 너무나도 끔찍한 것을 보고 말았다. 처음 '그것'을 봤을때 호국이 느낀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통을 망치로 쾅쾅 내려치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과 공포다 그지깽깽이들아!' 하는 외침에 정신이 나가버릴 듯 했고, 두눈 뜨고 못볼 광경에 안구의 미세혈관이 먼저 터져버리고 말았다.
상상해본 적 있는가? 상상할 수는 있겠는가? 하지 마라. 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니까!
간신히 앞을 볼 수 있게 된 호국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복도에 널부러진 루돌프를 바라보았다.
"...불쌍한 놈."
놈은 그저 선물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하필 선물을 주려던 대상이 이 세상의 모든 추악함과 더러움을 응집시킨 듯한 존재라서, 그만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게거품을 물고 혀를 길게 내뺀 채 싸늘하게 식어있는 루돌프를 바라보며, 호국을 비롯한 경비팀 79기는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신입 2호는 처음부터 눈이라는 게 없어서 비교적 피해가 덜한 듯 했고, 해피는 미적 기준이 인간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호국과 신입은 복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고통을 호소했으니, 만약 프롯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 또한 루돌프와 같은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따지고보면 이게 다 산타 때문이야."
-왜 또 얘기가 그렇게 흘러갑니까?
"산타가 저 바퀴벌레한테 선물을 주려고 했잖아! 원인 제공을 했으니까 원흉이지!!"
호국은 기계팔을 투입해 긴급 수리한 6-55의 은폐실 문을 가리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그 놈은 제 부하가 이런 꼴을 당할 거란 걸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걸 강행했어. 아이고, 루돌프가 썰매를 얼마나 열심히 끌어줬는데 그 배은망덕한 놈이 은혜도 모르고!!"
호국이 루돌프의 시신을 껴안고 대성통곡하자 해피가 다가와 호국을 핥아주었다.
"크흡! 해피, 다른 건 다 좋은데 날 선명하게 핥지마."
까끌까끌한 혓바닥이 상처를 건드려서 좀 쓰라렸다.
-이제 끝났습니까?
"어."
마지막으로 X키를 눌러 Joy 까지 표한 호국은 루돌프의 시체를 미련없이 기계팔에게 넘겨주었다.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작전 시작 전에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어두는건데."
-인간들 사이에선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더군요. 이번에 그 매를 미리 맞았다고 생각하시면 어떻습니까?
"특수폭력죄로 신고하고 싶어."
만약 호국이 미성년자였다면 아동 학대죄까지 추가되었을 만큼 인정사정없는 안구 폭력이었다.
호국은 뒷처리를 프롯에게 맡긴 뒤, 기진맥진한 팀원들을 이끌고 B55로 향했다.
본래 과거, 현재, 미래의 탈출을 막기 위해 B55의 저위험군에 형성된 키즈존은, 벽을 뚫고 난입한 착굴기에 의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검은 재킷에 검은 산타모자를 두른 다수의 사내들로부터 둘러싸여있는, 유일하게 붉은색의 산타복을 입은 남성이 착굴기에 막 탑승하려 하고 있었다.
호국은 신입 2호에게 손짓을 해 곡괭이를 넘겨받았다.
"내 16번째 크리스마스는 선물도 안 주고 튀겠다고? 어림도 없지."
휘잉!
호국이 집어던진 곡괭이는 그대로 표창처럼 날아가 착굴기의 기체 일부를 파손시켰다.
TF 산하 시설의 벽도 마구 박살내는 특이한 물건이라 그런지, 착굴기 하나 망가뜨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착굴기로 왔던 길을 되짚어 올라갈 수 없게 되자, 붉은 산타는 선물 보따리 속에서 소형 로켓을 하나 꺼내들었다.
인간을 매달고 충분히 수백미터 위로 솟구칠 수 있을 법한 로켓이었다.
그 광경을 본 경비팀 79기가 달려들자, 검은 산타들이 재킷을 벗어던지고 폭탄 조끼를 내보였다. 그이상 다가오면 자폭해버리겠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산타를 보낼 수 없었던 호국은 지난 15년간 억눌러두었던 분노를 터뜨렸다.
"난 지난 15년간 항상 착한 아이였어 이 양심없는 가짜 산타 새끼야!!"
로켓이 붉은 산타를 데리고 구멍 위로 솟구치기 직전, 그는 코웃음 치며 기분 나쁜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넌 벌써 '3번'이나 나쁜 아이였어."
그 말을 끝으로 붉은 산타가 먼저 구멍 위로 모습을 감추고, 이내 검은 산타들 역시 벌레처럼 벽을 기어올라가버렸다.
2050년, 호국의 산타 포획 작전은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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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 소속 감찰본부에서 날아오른 장거리용 헬기 한 대가 제주도 상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제 6 처리 시설 초입까지 앞으로 3분!
헬기 조종수가 전해준 보고에 큼지막한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던 금발의 남자가 쩌억 입을 벌렸다.
그가 하품을 하자 근처에 앉아있던 다른 요원들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누구 하나 그에게 뭐라고 하지 못 했다.
특히나 과거, 자신의 직속 상관이었던 임지영을 허무하게 잃어버린 로니 웨슬러 3급 감찰관은 아무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 미스터리한 사건으로부터 반년 가까이 흘렀지만, 임지영을 비롯한 감찰대 인원 모두가 사망, 실종당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 했다.
상층부에선 어떻게든 없던 일로 만드려 했지만, 당시 유일하게 신입이라 작전에 참가하지 않았던 로니 웨슬러만은 집요하게 해당 사건을 파고들었다.
그가 지목한 원흉은 가드-079.
하지만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어, 로니가 해당 사건을 어디서부터 조사해야 할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감찰본부에서 FCD의 낙하산으로 하늘에서부터 꽂혀 내려온 인물이 한 명 있었으니, 본인을 333번으로 불러주길 원하는 정체불명의 사내였다.
그는 타고난 재능과 일솜씨를 지닌 임지영조차 도달하지 못 했던 감찰대장(2급)이라는 감투를 쓰고 순식간에 팀을 휘어잡았다.
항상 임지영을 롤모델로 삼고 있었던 로니는 그가 몹시 마음에 안 들었지만, 중요한 임무차 요원들과 함께 제 6 처리 시설로 향한다는 것을 듣고 냉큼 작전에 지원했다.
이번에야말로 임지영 상관의 원한을 갚아주겠다며, 저 혼자 잔뜩 벼르고 있던 로니는 문득 헬기의 창밖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어두컴컴한 하늘 위로 유유히 날아가고 있는 썰매가 보였다.
"...산타?"
"산타는 이미 죽었어. '우리'가 예전에 죽여버렸지. 저건 산타의 도우미중 한 놈이었던 놈이구만."
로니는 자신의 옆자리에서 시큰둥한 어조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333번을 바라보았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이 미친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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