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193화 (193/209)

< 경비 업무 일지 : 호르몬(2) >

"정말 그 놈을 혼자 보내도 괜찮은 겁니까?"

메인 서버룸에서 중요 자료들을 뒤지던 로니가 대뜸 입을 열었다.

"못 미더운 모양이지?"

"못 미덥다기보단 애초에 같은 편인지도 의심스러운 인간입니다."

로니는 약간 화가 난 것 같은 어조로 333번의 질문을 되받아쳤다. 다른 감찰관들에 비해 유독 그는 가드-079를 좋게 보지 않았다.

이는 이전 상관인 임지영의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가드-079라는 인간의 태도나 사고방식에도 깊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같은 재단의 직원인 것은 맞지만, 그 놈은 보면 볼수록 동료라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놈과 함께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불안해지는 제 심정을 아십니까?"

"알지, 잘 알지. 그래서 걔 앞에서 허튼짓 못하게 한 번 막아줬잖아."

"그건...애초에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감찰관을 공격할리가 없는데......"

"걔는 당연히 공격하지 않지. 상대가 먼저 공격하면 그제야 정당방위로 되받아치는 타입이니까. 하지만 걔랑 붙어있는 '것들'은 안 그렇더라고."

로니는 스마트패드를 조작하다말고 의아한 눈초리로 333번을 돌아보았다.

"붙어있다니, 뭘 말하시는 겁니까?"

"아, 표현이 좀 애매하긴 했네. 붙어있다기보단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들이지. 좌우지간 아주 독한 것들이니 걔 앞에선 입도 뻥긋하지 않는 게 좋아."

"그런 놈의 눈치를 보란 말입니까? 감찰관이?"

"뒈지기 싫으면 눈치를 봐야지."

333번이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로니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의 시시껄렁해보이는 금발 중년은 트렌치 코트를 휘날리며 담배나 태울 것 같은 한량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능력적으로 뛰어나다는 건 이미 내부 감찰을 통해 증명되었다.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초능력 비스무리한 것을 사용하고, ES는 아니지만 ES에 필적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인간이 진지하게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 시점에서 말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다들 그 놈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은데, 만약 이 아래의 참상을 보고나면 결국 울고불면서 돌아와 우리의 도움을 구할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지직, 지직. 절단기로 서버의 잠금 장치를 직접 해제한 또 다른 감찰관 본이 선뜻 나섰다.

"무슨 의미입니까?"

"다들 가드-079를 과대평가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로니 3급 감찰관은 개인적인 이유로 그에 대해 상당한 조사를 했을 텐데, 오히려 어떻게 그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건지 궁금하군."

대놓고 네 눈은 장식이냐는 듯한 그의 발언에 로니의 눈매가 살짝 비틀어졌지만, 333번에게 대들었던 것과 달리 본에게는 정중한 태도로 일관했다.

"우선 무엇 하나 정확한 기록들이 없었습니다. 그 놈이 수많은 임무에 투입되었다는 보고서는 존재하지만, 무엇을 했는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서술이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CCTV 자료를 요청해 직접 판독까지 해봤습니다만, 글쎄요. 적어도 제가 보기에 그 놈은 그리 대단한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럼 로니 3급 감찰관이 받았던 기록들이 하나같이 조작된 것들이거나, 아니면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았던 것이겠지."

"일을 그렇게 처리하는 인간이 감찰관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나도 궁금하군."

기계가 웅웅 돌아가는 어두운 서버룸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충돌했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여성 감찰관이 둘 사이에 나타나 중재했다.

"우린 감찰관이야. 감찰관이 감찰 대상을 상대로 토론을 벌이는 건 상관없지만, 양측이 서로 일방적인 주장만 펼치며 대립하는 건 보기 흉해. 안 그런가요 대장?"

"원래 애새끼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 아닌가?"

333번이 막 자료를 뽑아낸 따끈따끈한 USB를 입에 문 채 희희낙락하며 말했다.

저런 어처구니 없는 태도를 보이는 인간이 정말 자신들의 직속 상관인가 싶었지만, 세 사람은 이미 익숙해져 있는지라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사실 가드-079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건 TF의 높으신 분들이 할 일이다.

그를 중요한 인재인지, 아니면 ES처럼 감시하고 은폐해야 할 대상인지 분류하는 것도, 그 결과에 따른 명령을 내리는 것도 그들이니까.

"제 6 처리 시설에서 경비 노릇을 하던 것과 이곳에서 일처리를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겁니다. 최종적으로 이곳을 벗어나는 건 '4명'일수도 있습니다."

"아주 고사를 지내지 그러나."

"상황이 허락한다면 그랬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감찰관들은 모두 필요한 자료들을 빼냈다.

기술의 발달로 아주 작은 USB에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전송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덕분에 산업 스파이나 내통자들이 더욱 날뛰게 되었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에 가드-079를 혼자 내려보내도 괜찮겠냐고 물었었지."

333번은 서버에 연결된 스마트패드로 내부 자료를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혼자 내려보내진 않았으니까 쓸데없이 걱정할 필요 없어, 애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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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떨어뜨리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거야."

신입에게 목말을 태워지고 있는 호국은 평소보다도 조금 더 진지한 어조로 경고했다.

이유인즉슨 B41부터 B58까지 순회공연(청소)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구역들이 매우 특이한 성질을 지닌 무색무취의 액체에 침수되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B60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한 연구원은 심장발작을 일으키기 전, 호국에게 이 액체에 닿으면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남겼다.

호르몬도 그렇고, 액체도 그렇고. 다들 조심하라는 경고만 남긴 채 황천길을 떠나버렸으니 호국도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다.

'하다못해 락스랑 세제 위치는 알려주고 갔어야지!'

자신을 목말 태우고 있는 신입조차 무릎까지 잠기는 액체를 느릿느릿 헤쳐나가고 있었으니, 매우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액체인 것은 틀림없었다.

이런 건 작정하고 솔로 박박 긁어내지 않는 한 치우기가 너무 힘들었다. 특히 청소할 타이밍을 놓쳐 늘러붙기라도 하는 순간, 주변의 먼지와 땟국물이 뒤섞여 탁한 얼룩을 남기기까지 한다.

마음 같아선 시설 전체에 홍수를 일으켜 물청소를 해버리고 싶었지만, 호국은 연구원이 해준 경고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만약 이 액체가 감도를 3천배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액체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감도 3천배는 나도 못 버텨.'

인내심과 맷집 모두 훌륭하다고 자부하는 그였으나, 아무리 그래도 감도 3천배를 이겨낼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신입을 제물삼아 목말을 타고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액체에 침수되어 있는 구역들은 하나같이 천장이나 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었지. 바깥에서 새어들어왔다기보단, 내부에서 뭔가가 돌아다니며 액체를 쏟아낸 것 같은데......'

이것들을 다 치우려면 원흉을 찾아내서 그쪽부터 처리해야 한다. 이만한 양의 액체가 그냥 흘러들어왔을리는 없으니, 필시 배출구가 존재할 터.

B61은 침수 규모가 특히 대단했기 때문에, 호국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 원흉이 이곳에 자리잡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니나다를까, 신입이 걸음을 멈춰서자마자 호국의 눈앞으로 아슬아슬하게 긴 채찍같은 것이 훑고 지나갔다.

만약 신입이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갔거나, 반대로 호국이 고개를 젖히는 게 느렸다면 강렬한 채찍 한 방에 머리부터 터져나갔으리라.

두꺼운 채찍 같은 것이 탄성에 힘입어 본래 있던 장소를 향해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어둠 속으로 돌아갔지만, 호국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아, 제발."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 호국은 인상을 찡그렸다.

동시에 구역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끈적끈적한 액체가 무엇인지도 이해했다. 그리고 감도 3천배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개구리 진짜 싫어하는데......"

구우우우욱.

저 안에서부터 들려온 울음소리에 호국은 등골부터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목말 태우고 있는 신입이 지금 무엇을 밟고 있는 건지 이해했을때부터 이미 속이 메스꺼운 상태였다.

"설마 이게 전부 다 개구리 알이었을 줄이야."

지금껏 눈여겨 보지 않았던 투명한 액체 속 내용물이 이제야 시야에 들어왔다.

투명함 속에 먼지나 쓰레기와 함께 뒤섞여있는 거무튀튀한 반점들. 그것들은 먼지나 쓰레기가 아니라 저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거대 개구리의 알이었다.

촤악!

한 번 더 날아든 채찍 같은 혓바닥에 호국은 매트릭스 영화처럼 허리를 뒤로 젖혔다.

그럼에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은 신입은 갑자기 한 손을 치켜들어 두꺼운 혀를 잡아챘다.

그리고 혀가 되돌아가지 못 하도록 강한 힘으로 끌어당겼다.

"미친 놈아, 저걸 끌어당기면 안 되지! 빨리 놔줘!"

호국이 거대 개구리를 통째로 끌어당기려던 신입의 뒤통수를 날렵하게 후려쳤다. 신입은 어쩔 수 없이 움켜쥐고 있던 혀를 도로 놔주었다.

저 덩치를 자신들에게 끌어당겼다간 이 개구리알 수영장에 빠질 게 뻔했다.

'차라리 하수구에 빠지는 게 낫지.'

하수구야 그냥 깨끗이 씻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개구리알 수영장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씻어도 씻어도 기분 나쁜 감촉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특히 압박감 때문에 옷 안에서 개구리 알이 펑펑 터지기라도 했다간, 최소한 일주일은 밥을 못 먹을 것 같았다.

"놈은 저대로 제자리에서 가만히 있게 내버려둬야 해.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 건 우리라고."

정확히는 신입만 움직이는 것이지만, 호국은 굳이 그 부분을 정정하지 않았다.

"개구리, 나방, 고라니의 공통점이 뭔 줄 알아?"

스르릉.

정글도에 필적하는 군용 대검을 꺼내든 호국이 거대 개구리의 혓바닥이 다시 튀어나오길 기다리면서 말했다.

"사회에 있을 때 보면 그냥 신기하기만 한 놈들인데, 군대에서 보면 아주 좆같은 놈들이란 거야."

특히 위의 3인방이 한꺼번에 출몰하는 여름철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지옥.

낮엔 덥지, 밤엔 습하지, 그런데 저것들은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지. 자연이라는 보호 아래 편하게 번식한 놈들이 아주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VR 기기로 군용 안드로이드를 조종하던 다른 부대원들은 그리 대단치 않게 여겼지만, 홀로 직접 근무를 서야 했던 호국에겐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개구리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건 딱 생태조사를 다니던 초등학생 시절까지만이다.

구우우우욱!

힘차게 숨을 들이쉬고, 퍼엉! 하는 충격파와 함께 굵직한 혀가 다시 한 번 쏘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혀를 직선으로 쏘아보낸 것이 아닌, 살짝 옆으로 휘두르듯이 쏘아보낸 것으로 보아 작정하고 호국을 집어삼키려는 듯 했다.

"내가 우리 부대 제초 에이스였어 이 새끼야!"

거기에 더해서 대민지원에서도 어르신들에게 낫질 잘 한다며 칭찬을 한몸에 받았던 것이 바로 김호국이란 남자였다.

호국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힘껏 내려찍은 군용 대검이 깔끔하게 혀를 베어냈다. 흡사 마장동 정육점 사장의 칼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솜씨였다.

하지만 칼솜씨가 훌륭했을지언정, 칼날의 내구력은 생각만큼 훌륭하지 않았다.

저릿저릿 저려오는 손에서 칼을 떨군 호국은 하마터면 힘에 밀려 그대로 꺾일 뻔 했던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쯧."

예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호국의 몸은 특정 상황에서 종종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미친듯이 움직이려면 엄청난 양의 폐활량이 필요하지만, 자신의 '폐'에는 명백하게 한계가 있었다.

눈은 제아무리 날렵하고 영악한 상대의 움직임일지라도 놓치는 법이 없었지만, 몸의 '근육'은 쉽사리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 할 때도 있었다.

귀는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미리 포착할 수 있었지만, '코'는 공기중에 섞인 희미한 냄새를 맡으려면 반드시 가까이 다가가야만 했다.

그밖에도 부족한 것이 많다.

튼튼한 맷집에 걸맞게 강인해야 하는 '피부', 그 피부를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곧바로 반응해야하는 '촉각', 기억 속에 존재하는 지식을 제대로 응용해야 하는 '뇌', 뇌가 생각한 것을 용이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입'. 도구를 용이하게 다뤄야 하는 '손'.

그리고 지금쯤이라면 아드레날린이 펑펑 쏟아져 나와야 정상이지만 항상 반응이 느린 '호르몬'과 펄떡펄떡 뛰어야 하는 '심장', 그런 심장으로부터 전신에 피를 공급해줘야 하는 튼튼한 '혈관'까지.

자그마치 11개나 부족하다! 자신의 멍청한 머리로도 11개의 단점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이니, 호국은 객관적으로 봐도 자신의 육체가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지간한 운동선수보다도 열심히 단련하긴 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게 너무 많아.'

만약 할인마트에서 저 단점들을 보완해줄 것들을 세트로 팔고 있다면, 통장 잔고를 탈탈 털어서라도 구입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반인에 비하면 월등하게 뛰어난 신체 능력인 것은 틀림없으나, 저러한 단점들 때문에 항상 2% 부족한 느낌이었다.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가 자신이 뜻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어 울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호국도 속으로 분을 삭혔다.

사실 호국이 작정한다면 신입과 함께 저 기분 나쁜 거대 개구리를 칼로 회칠 수 있겠지만, 그러려면 체력과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소모할 것 같았다.

그럴 바에야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의 힘을 빌리는 게 나았다.

"노벨 선생님 제게 힘을 주세요......!"

역사 다큐멘터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위인.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인류 최고의 발명가!

"개구리는 구우면 닭고기 맛이 난다고 하는데, 난 딱히 먹어볼 생각은 없어."

신입이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으나 호국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의 손에 들려있는 C4와 네이팜 수류탄은 인류가 노벨의 의지를 성실하게 이어나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들이다.

"달려!"

신입이 젤리 같은 개구리 알을 박차고 튀어오른 순간, 거대 개구리 또한 순식간에 재생시킨 혀를 투사했다.

하지만 허공에서 신입의 어깨를 밟고 한 번 더 뛰어오른 호국이 놈의 쩍 벌어진 입속에 폭발물을 던져넣었을때, 이 추잡한 전투는 이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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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호르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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