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비 업무 일지 : 호르몬(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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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털렸네."
호국은 탄내를 풍기는 자신의 옷을 탁탁 털어내면서 중얼거렸다.
신입 역시 탄내가 피어오르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는데, 거대 개구리를 폭발시킬때 호국을 감싸느라 열기에 노출된 면적이 넓었다.
하지만 호국에겐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의 헌신 같은 것보다도, B70 아래의 구역들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는 것을 더 걱정했다.
개구리 알로 가득찬 공간은 나중에 관리봇에게 따로 요청해 화학약품으로 처리해버린다고 쳐도, 손상된 구역은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경비의 안전을 위해 각 구역의 특정 지점마다 설치되어 있는 체크포인트(방벽)는 개박살이 난지 오래다.
강제로 잡아뜯은 흔적이 있었는데, 이는 단순히 새로운 부품을 갈아끼울 게 아니라 전체적인 프레임을 들어낸다음 완전히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는 모양새였다.
맥가이버라고 불리우는 군대 중사, 상사들도 이 광경을 보면 혀를 내두를 만큼 심각한 사태였다.
까놓고 말해서 전문 수리업체를 불러도 웃돈을 주지 않으면 작업 못 하겠다고 어깃장을 놓을 것 같았다.
"썩을 놈들이 문을 부술 거면 곱게 부술 것이지......"
좀도둑도 양심이 있어서 문이 안 열리면 손잡이만 따고 침입하는 마당에, 시설 유지 비용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놈들이 돈을 뭉텅이로 하수구에 던져버렸다.
호국은 처량하게 박살이 나 끼익끼익 흔들리고 있는 철판을 발로 차서 깔끔하게 떼버렸다.
자고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겐 그 잘못의 결과를 눈앞에 들이밀면서 다그쳐야 효과가 있다.
괜히 애완견 주인이 다 뜯어진 신발을 들고 야단을 치겠는가?
"자, 이건 네가 들어."
뜯어낸 철판을 신입에게 떠넘긴 뒤, 호국은 음산한 기운이 새어나오는 엘리베이터 통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거대 개구리를 처리한 뒤에 어찌어찌 여기까지 내려오긴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사람이나 ES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위로 올라간 것은 아닐테니 다들 아래에 있겠지만, 바로 그 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왕 바깥으로 나왔으면 위로 올라갈 생각을 해야지 왜 아래에 처박혀있는 건지 모르겠네.'
어둠의 자식들이라 그런지 불빛 한점 없는 지하 깊숙한 곳에 꼭꼭 숨어들었다.
비상 발전기를 가동해서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고는 있지만, B80 아래까지 전력을 보내는 것은 역시 힘든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 통로 아래로 전등 몇 개가 반짝반짝 빛을 내다가 다시 꺼져버렸다.
어디까지나 호국의 직감이지만, 저 아래에 이번 사태의 원흉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당장 내려가서 멱살을 잡을 수는 있지만...역시 똑똑이 양반들이 해준 경고가 걸리는데.'
개구리 알을 조심하라는 경고는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은 것은 호르몬 뿐이다.
호르몬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도, 이 상황에서 그 키워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유일한 애로사항이었다.
혹시 공기중으로 뭔가 흡입하면 큰일나는 게 아닐까 싶어 무릎을 탁 쳤지만, 정작 자신의 전용 마스크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만 다시금 상기하게 될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신입이 지금까지 자신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녀석의 몸을 수색했다.
"이 새끼...뭐가 이리 많이 나와?"
등을 두들겨 보면 권총이 툭 떨어지고, 배를 두들겨 보면 수류탄이 데구르르 굴러나왔다. 바지 주머니에선 각종 간식거리나 총알이 한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는데, 조각상을 한 방에 깨부수는 것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가 무슨 4차원 주머니도 아니고.
"방독면도 있네?"
녀석의 몸을 여기저기 두들겨 보다가 바짓단 아래로 방독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득한 점액질이 붙어있었지만 물티슈로 잘 닦아내니 그럭저럭 쓸만해보였다.
화생방 훈련을 할 때처럼 확실하게 방독면을 착용한 호국은 먼저 엘리베이터 통로 아래로 몸을 던졌다.
엘리베이터 통로 중앙에 쭈욱 이어져 있는 강철 와이어를 잡아 레펠링을 하듯 미끄러져 내려갔다.
영화에서 보면 신체 골격이 통짜 금속인 터미네이터들이나 가능할 법한 무식한 낙하 방식이지만, 사실 발목을 걸쳐 속도를 조절하기만 하면 장갑만 착용하고도 충분히 실현 가능했다.
B80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부서진 잔해와 흙더미가 쌓여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호국과 신입은 B79의 좁아터진 입구로 기어들어갔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거대한 지진이라도 있었는지, 그 튼튼한 시설 구조물이 층째로 폭삭 내려앉아버렸던 것이다.
'방독면 쓰길 잘 했네.'
마치 안개가 시야를 뿌옇게 뒤덮고 있는 듯한 광경은 꼭 흙먼지 때문인 것 같지도 않았다.
손전등 불빛을 비춰보면 청소중에 확 피어오른 먼지와 그리 다를 바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시력이 상승한 호국에겐 먼지와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로 보였다.
'털 달린 실뭉치들이 먼지 크기로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여.'
포자라고 하면 이해가 편할까?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이걸 들이마셨다면 썩 좋은 꼴은 보지 못 했으리라.
물론 신입은 괜찮은 것 같았다. 녀석은 원체 튼튼한 것이 장점이기도 했고, 애초에 프롯과 함께 먼지 투성이 공간을 돌아다니며 청소도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남의 기관지보단 자신의 기관지가 더 소중한 법.
다른 구역에 비해 유독 넓은 공동 구역을 자랑하는 B79는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쿵쿵 하고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쳤다.
포자 안개 너머에 뭔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뭔가가 잔뜩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터.
신입에게서 철판을 넘겨받은 호국은 투포환 선수마냥 빙글빙글 회전시키다가, 충분한 힘이 실렸을 때 힘껏 던져버렸다.
그러자 퍽! 하고 뭔가의 꼴통이 박살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스트라이크~"
포자 안개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냄새를 맡을 수 없어도 소리가 들리고, 뭔가가 움직일 때마다 포자 안개의 흐름이 변하는 걸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으니까.
조금 전 호국이 철판을 던져 꼴통을 깨버린 것은 인간의 뼈로 구성된 사족보행 거미였다. 부서진 뼈는 제멋대로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지만, 중요한 것은 호국의 의사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게 늬들이 하수구에 처박은 돈 덩어리다."
저 방탄 철판 하나를 제작하는데 자금이 얼마나 들어갔을지, 그걸 방벽에 설치해서 방위 시스템에 포함시키기까지 얼마나 들어갔을지 저 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호국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런 거대한 시설은 사소한 것이라도 돈 잡아먹는 하마 투성이였다. 저런 철판이라고 해도 쌀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콰직! 싸지 않은 철판을 짓이긴 뼈다귀 거미가 해골 바가지를 달그락 달그락 거리며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살점 하나 없는 흉물스러운 모습에 해골바가지에는 여덟개의 붉은 눈이 달려 있었다.
여덟 개의 눈이 모두 호국에게 집중된 순간, 그는 망설임없이 권총을 뽑아 눈에 8개의 탄환을 박아주었다.
"키이이이이이!"
눈을 적중당한 놈이 다시 한 번 데굴데굴 구르며 고통스러워 하는 사이, 호국은 신입과 함께 쿨하게 놈을 지나쳤다.
저 뼈다귀 거미 외에도 이 안개 너머에는 꽤 많은 숫자의 ES가 존재했다. 모두 하나같이 기형적인 외관이나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어 인간이 아니란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런 존재들이 제 방이 아니라 이런 기분나쁜 장소에 함께 모여있다는 점이 의아할 뿐이었다.
시설을 탈출하지 않았다는 점에선 다들 칭찬받아야 마땅하겠으나, 호국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주는 대신 시설 수리 비용을 청구하기로 했다.
비용 청구 대상은 그들의 중심에 쌓여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시체 위에서 홀로 담배를 태우는 한 사내였다.
놈이 태우고 있는 담배 끝에서 먼지보다도 작은 포자 알갱이가 연기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이제야 호국의 존재를 인식했는지, 사내는 꼴초마냥 담배를 태우다 말고 시선을 내리 깔았다.
찰랑거리는 금발을 한 손으로 쓸어넘기는 모습이 영락없는 헐리우드 배우 같았다. 물론 호국에겐 역겹기만 할 뿐이었다.
'사내 새끼가 머리가 저게 뭐야? 지가 히피야?'
저 찰랑거리는 금발을 볼 때마다 호국은 바리깡으로 1cm 까지 밀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게다가 옷도 입고 있지 않아서 역겨움이 2배 크리티컬로 작용하고 있었는데, 호국이 서있는 위치에선 아슬아슬하게 놈의 고간이 보이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이게 누구야! 혹시 내가 찾아가야 하나 싶어서 걱정했던 망나니잖아? 결국 내 호르몬 중독을 피하지 못 하고 제발로 걸어들어왔군."
필터만 남을 정도로 힘있게 담배를 흡입한 놈은 꽁초를 툭 던지며 말했다.
놈의 눈에는 호국이 착용하고 있는 방독면이 보이지 않는지, 벌거벗은 몸으로 시체의 산을 터벅터벅 걸어내려왔다.
'씨발.'
거의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이미 기억 속에는 흉물스러운 것이 저장되어버렸다.
휴지통에 버리기를 열심히 눌러도 삭제되지 않는 바이러스 같은 이 기억은 일정 주기로 꿈에 나타나 호국을 괴롭힐 게 분명했다.
제 6 처리 시설의 성인 남성과 맞먹는 크기의 바퀴벌레는 괜찮다. 산타걸 복장만 입지 않았다면 조금 혐오스럽더라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니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저건 사람마다 모양도, 크기도, 색도 다르기 때문에 결코 자연 그대로라고 할 수 없다.
전 세계에 수많은 표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기억에 추가되면 추가될수록 더러운 기분밖에 들지 않는다.
호국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고통에 신음하는 사이,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놈은 흥미로운 얼굴로 호국을 구석구석 살폈다.
"흐흐, 횡재했군. 눈과 귀에 다리라...정말 유언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가? 그 유언이 확실한지 아닌지 나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 하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천운이 넝쿨째 굴러들어올 줄이야."
마치 시장 좌판에 떡하니 놓여있는 물건을 품평하기라도 하듯, 놈은 호국의 몸을 살피다 자연스럽게 손을 내뻗었다.
그것이 선을 넘는 행위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이제 이 몸은 내가...으으읍?!"
"여자는 여자끼리 손도 잡고 다니지만, 남자들은 안 그래. 왜 그런 줄 알아?"
놈의 뺀질뺀질한 면상을 우악스러운 손길로 움켜쥔 호국은 그대로 힘을 주며 내뱉었다.
"그냥 그래!"
"아니, 잠......!"
VR에 접속할 수 없어 옛 문화 컨텐츠만 즐겨야 했던 호국이 하루종일 시청했던 것들 중 레슬매니아도 있었다.
남자들의 땀내나는 폭풍간지와 치열하고도 잔혹한 폭력, 끝내주는 기획력과 스토리가 일품인 WWE 방송은 웹드라마와는 다른 묘미가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명장 레슬러들의 피니쉬 기술중 하나가 바로 원 핸드 초크 슬램.
일반적으로 거구에 근육질인 레슬러들이나 사용하는 단순하면서도 고난이도인 기술이었으나, 호국은 삐걱거리는 팔 근육에 억지로 힘을 끌어다 쓰면서 어떻게든 기술을 실현했다.
"내 호르몬에서 어떻게 벗어난......!"
"아가리 닥쳐. 입에서 똥내나잖아 이 흡연충 새끼야. 네 눈깔은 장식이냐?"
호국은 놈을 바닥에 메다꽂기 전, 벽면에 떡하니 박혀있는 경고문을 가리켜주었다.
ES에 대한 경고문과 함께 반드시 따라붙는 TF의 또다른 경고문인 흡연 금지였다.
-NO SMOKING
"NO MERCY."
호국의 원 핸드 초크 슬램이 놈을 허공에서 단단한 지면으로 추락시켰다.
콰앙! 우드드드득!
고작 지면에 뒤통수부터 처박혔을 뿐인데 교통 사고를 당한 것 처럼 엄청난 후폭풍이 터져나왔다.
놈의 창백한 피부가 입에서 터져나온 각혈 때문에 붉게 물들고, 비릿한 조소를 흘리고 있던 면상은 똥이라도 씹은 양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다.
저층 구역을 담배 연기로 싹 채울 만큼 심각한 흡연충이었으니 호국은 조금도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만약 방독면을 착용하지 않았다면 간접 흡연으로 자신의 수명도 줄어들뻔 했으니까.
'공익광고협회에선 간접 흡연이 곧 살인이라고 했어.'
간접 흡연은 음주 운전과 더불어 남에게 가장 큰 피해를 주는 행위로 꼽힌다.
술, 담배를 할 거라면 지정된 장소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해야 한다.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난 호국은 꿈틀꿈틀 경련하는 놈의 가슴팍을 발로 짓밟았다.
"내가 아무리 못 배워먹었어도 남한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아. 지금 시설의 공기 순환 시스템도 고장난 마당에 이 연기를 다 어떻게 뺄 거야? 냄새는 또 어떻고? 청소는?"
보면 볼수록 한숨이 나오는 광경이라 호국은 울컥울컥 피를 토해내고 있는 놈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널 어떻게 처리해야 잘 처리했다고 소문이 날까? 콘크리트로 공구리쳐서 소각로에 던져버려? 아니면......"
또 어떤 기괴한 고문 방법을 내뱉을까 고민하던 찰나, 호국은 놈의 허공에서 뻗어나온 굵직한 전선이 놈의 목을 휘감은 것을 보고 손뼉을 쳤다.
"그래, 비밀 친구들한테 맡기면 되겠네."
"자, 잠...그르르르, 이럴 리가 없......!"
꽈아아아악.
놈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굵직한 전선이 더욱 강하게 목을 졸라 허공에 매달아버렸다.
이윽고 추하게 발버둥치던 금발 양아치 흡연충이 모두의 폐 건강을 위해 뒤탈없이 이승을 하직했다.
호국은 자신이 끔찍한 기억을 주입받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신입의 머리통을 후려친 뒤, 이곳에 멍하니 서있던 ES들에게 '복귀'를 명령했다.
호국에게 득달같이 달려들기 위해 뼈를 갈고 있던 뼈다귀 거미도, 생선 대가리를 달고 있는 인어도, 약 한 평 정도의 범위에만 비를 쏟아붓고 있는 소형 먹구름도.
그 외의 모든 ES들 역시 '복귀' 명령을 제대로 이해했다.
왜냐하면 호국이 착용한 방독면 틈새로 놈과 똑같은 똥내가 새어나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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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호르몬(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