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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해피 고문재단-199화 (199/209)

< 경비 업무 일지 : 외과 수술(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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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 말입니까?"

"예, 그건...틀림없는 혈관이었습니다!"

폰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집어들려다 실패해서 차를 쏟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바지가 차에 젖은 것도 모르고, 그저 평범하게 심약하고 늙은 노인네처럼 겁에 질려 있기만 했다.

"...이미 조각에 대해 알고 계시니...우리가 어떤 프로젝트를 시행했는지도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무언가에 조각을 심는 실험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 무언가라는 건...사실 TF에서도 명확히 구분지을 수 없었습니다. 특수 격리 구역에서만 존재하던 것이라......"

"B59~B60 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예, 매 시즌마다 특수 근무를 해야 하는 곳. 감찰대장님께서도 알고 계시다면야 얘기가 빠르겠지요."

이윽고 그는 부하로부터 스마트패드를 받아 잠금을 해제하곤, 책상 너머로 밀어서 넘겨주었다.

스마트패드에선 붉은 실로 만들어진 듯한 거대한 고치가 심장처럼 꿀럭꿀럭 움직이고 있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이게 '그것' 입니까?"

"정확히는 조각을 흡수하고 난 뒤의 형태입니다. 조각을 흡수하기 전에는 그저 비쩍 마른 미라에 불과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발굴된 쌍둥이 미라였습니다."

"쌍둥이? 그럼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는 거잖습니까."

"우린 복합 시설이니 2개의 조각을 가지고 있었고, 마침 '그것' 역시 쌍둥이 미라였기 때문에 한 번에 조각을 심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혈관이 시설 전역에 뻗어나가고, 그 중심부에서 심장이 맥동하게 되었다. 아닙니까?"

333번의 예리한 지적에 폰스는 구태여 부정하지 않았다.

연구 시설과 처리 시설이 합쳐진 복합 시설인 만큼 당연히 실험의 위험성도 클 거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설마 이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기에, 333번도 난처한 얼굴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여기라면 한 장소에서 하나씩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설마 둘이 하나가 되어버렸을 줄이야."

"저, 저흰 그저 상층부에서 시킨대로 했을 뿐입니다! 최고 수석 연구원님의 시행령이라 어쩔 수 없어......!"

"그만. 우리가 감찰관들이긴 하지만 여기에 개인의 잘잘못을 따지러 온 건 아닙니다. 따로 용무가 있어서 온 겁니다."

폰스의 변명을 단호하게 잘라낸 333번은 입에 과일을 우겨넣고 있는 호국에게 대뜸 물었다.

"이 시설 전역에 청소해야 할 게 산더미라는데, 어때? TF 최고의 경비라면 청소할 수 있겠어?"

"꿀꺽. 청소도구만 주면 해보죠."

"좋아. 이 애송이에게 청소도구만 주면 어떻게든 해결해줄 겁니다. 그 사이 당신들은 우리 감찰관들에게 모든 기밀 자료를 넘기고, 즉시 TF의 지정 쉘터로 피난하십시오."

"그, 그것도 상층부의 명령입니까?"

"FCD 최고 위원회의 주도하에 진행되는 비공식 작전입니다. 뭣하면 지금 여기서 싹 다 파묻어버리고 우리가 직접 가져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 아니! 결코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도 이미 상층부의 강압적인 명령에 억울하게 당한 전력이 있으니 확인을 하고자......"

"FCD에서 절대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던 가드-079가 이 자리에 온 것 만으로도 충분히 확인 된 겁니다. 알았으면 이제  피난하십시오."

333번이 재차 피난을 명령하자, 직급이 낮은 재단 직원들은 다들 기뻐하는 눈치였다.

상층부의 명령을 따른 탓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발목이 묶여있던 참인데, 감찰대장이 직접 파견을 나와 피난해도 좋다고 못 박았으니 드디어 살았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특히 TF에서 가장 사망률이 높은 경비들이 기뻐했다. 하마터면 연구원들을 지키기 위해 고기방패 신세로 전락할 뻔 했으니 기뻐하는 것도 당연했다.

"제 6 연구 시설에서 한 일과 기본적으로 다를 건 없다. 너와 네 부하는 청소, 우린 필요한 모든 자료를 빼내고 이 시설을 뜨는 거지."

"청소할 게 많으면 추가 수당도 줘야 하는데요."

"당연히 주겠지. 설마 높으신 분들이 그런 것도 모를까?"

호국은 미묘한 눈초리로 333번을 바라보았다.

높으신 분들이 아랫 것들의 심경을 제대로 헤아린 사례는 거의 없었다. 특히 뜨겁게 불타오르는 헬조선에선 더더욱.

"정 안되면 내 사비를 털어서라도 줄테니 수당은 걱정하지마. 일 잘 하는 놈은 항상 보답을 받게 되어 있어."

"그것도 그렇죠."

선임이 호국에게 작업을 짬처리 시키고 나중에 PX에서 간식을 사줬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바탕 힘쓰고 먹는 슈렐치킨과 공하춘 짜장이 참 맛있었다.

"좋아, 장비 챙겨!"

호국은 은근슬쩍 껍질도 까지 않은 두리안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던 신입을 잡아 끌었다.

대피하기 시작한 경비들은 더이상 장비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국은 그들로부터 이 시설에서만 사용하는 전용 장비를 넘겨받을 수 있었다.

"이건 액체 질소 분사기입니다. ES가 날뛰거나 할때 순간적으로 다량 분사해서 얼려버리고, 다시 격리하는 용도로 사용했던 거죠."

"노즐을 조절할 수 있나요?"

"어휴, 당연하지요. 우리 5 시설 경비팀도 어떻게 하면 ES의 탈주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 고민 많이 했었습니다. 이 노즐을 열면 액체 질소 분사량이 배 이상 증가합니다."

"액체 질소 분사기도 있는데, 화염 방사기는 없나요?"

"물론 있습니다. 제 6 처리 시설 경비팀도 이런 걸 많이 쓴 모양입니다?"

"아뇨, 그냥 제 취향이예요."

호국이 다른 시설 가드와 잡담을 나누며 받아낸 것은 두터운 오염 방호복과 고압축 탱크, 그리고 청소에 적합한 각종 도구들이었다.

"처음 이 사태가 벌어졌을 땐 우리도 최대한 막아보려고 노력했었는데...거기에 뛰어들었다 살아남은 경비팀이 반의 반도 안 됩니다."

"오래 묵은 때는 잘 안지워지는 법이죠. 락스는 써보셨나요?"

"생화학 오염 물질을 뒤엎어봤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치약은요?"

"치약이요? 그 끔찍한 것들이 강한 칫솔질에 연약해보이긴 했지만, 아직 치약을 사용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 제가 사용해보죠."

호국은 대피를 위해 짐을 싸고 있던 한 경비로부터 세면도구 세트를 건네받았다.

치약과 칫솔 하나면 이 세상의 그 어떤 더러움이라도 정화할 수 있다. 군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호국은 청소 작업에 치약과 칫솔을 빠뜨릴 수 없었다.

기밀 자료를 넘겨주기 위해 남은 직원들을 제외하고, 연구원들은 이미 시설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경비들은 안에 남아 호국과 신입이 두터운 방호복을 껴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신들과 같은 경비직이면서도 타 시설의 위기에 기꺼이 구하러 와준 호국에게 고마움을 느낀 것이다.

"폐쇄격리실 개방 준비됐습니다!"

"Level4 방호복 착용 완료!"

"바이오 스캔(Bio Scan)!"

격벽 앞으로 두 사람을 데려간 경비들은 혹시 방호복에 미세한 구멍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바이오 스캔을 실시했다.

만약 방호복 안으로 공기중의 미생물이 스며들고 있다면, 그 방호복은 못 쓰는 물건이니까.

잠시 후 호국과 신입의 방호복을 훑고 지나가던 스캐너가 초록빛으로 빛나면서 문제가 없음을 알렸다.

"바이오 스캔 클리어!"

"폐쇄 격벽 개방!"

"산소통 확인!"

"산소통 확인!"

최종 절차 확인까지 모두 끝나고, 드디어 굳게 닫혀있던 폐쇄 격벽이 개방되었다. 저 너머와 이어주는 또 다른 격벽은 여전히 닫혀있었지만, 오염 확산에 대비하기 위해 격벽은 반드시 하나씩만 열어야 했다.

"건투를 빕니다. 가드-079."

"고압축 산소통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최대 5시간입니다. 휴대성을 위해 크기를 줄였기 때문에 활동시간이 짧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오염원을 제거하시고 나오셔야 합니다."

"저희는 먼저 탈출하겠지만, 격벽 너머에서 ID 카드로 인증하시면 가드-079가 직접 격벽을 개방할 수 있을 겁니다."

호국은 자신과 신입을 걱정하면서 배웅해주는 경비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걱정말고 먼저 퇴근들 하세요."

이윽고 두 사람이 들어왔던 격벽이 도로 닫혔다.

그리고 너머의 공간으로 이어주는 전방의 격벽이 아주 조금씩, 격벽에 얽혀있는 살덩어리를 찢으면서 힘겹게 개방되었다.

격벽 너머로 보이는 것은 평범하게 삭막한 지하 시설 내부가 아닌, 형광등이나 건축자재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 만큼 드글거리는 살덩어리였다.

특히나 그 살덩어리 속에서 실타래처럼 뻗어나와 사방팔방을 덩쿨처럼 침식한 혈관은 규칙적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아마 심장이 펌프질을 하면, 신선한 혈액을 시설 곳곳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리라.

레벨4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는 덕분에 호국과 신입은 완전히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었다.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작은 미생물조차 지금은 호국의 신체에 닿을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호국의 체내에서 들끓기 시작한 호르몬도 그저 체내를 맴돌기만을 반복했다.

"이렇게 만져보면 꼭 손질 안된 곱창 같네."

꽤 두꺼운 혈관을 직접 만져본 호국은 실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런데 곱창은 보통 이렇게 엉키진 않지."

호국의 손과 맞닿은 순간, 무언가를 감지하고 뱀처럼 팔을 기어오르려던 혈관다발이 중간에 가로막혔다.

호국이 작은 혈관다발과 연결된 커다란 혈관을 고무호스처럼 짓밟고 비틀어버린 탓이다.

"미리 말하는데, 이건 못 먹는 거다. 괜히 몰래 주워먹고 배탈나서 화장실 들락날락하면 그 날은 너 죽고 나 죽는 거다."

혈관다발을 손으로 북북 찢어서 몰래 챙기고 있던 신입에게 경고를 준 뒤, 호국은 다른 경비에게 양도받은 경비용 스마트패드에 접속했다.

현재 자신들의 위치는 처리동 B5.

이곳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거나, 경비들이 재빠르게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특별하게 설치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

"오염원은...B60에 있을 거라고 했지. 더럽게 깊네."

전에 만난 건방진 놈도 B79에 처박혀 있었는데, 문제를 일으키는 놈들은 하나같이 땅속 깊숙한 곳에 숨어드는 병이라도 걸렸나 싶었다.

'나도 어릴때 사고치면 종종 침대 아래나 옷장 속에 기어들어가곤 했으니까, 그거랑 비슷한 건가?'

혼날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의 심리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어버린 호국은 두꺼운 절삭톱을 뽑아들었다.

"일단 썰수 있는 만큼 썰어보자. 그럼 저쪽에서도 반응하겠지."

공교롭게도 전문 의학 지식 같은 건 없었지만, '긴급 사태였어요' 라는 말 한마디면 대부분 이해해준다.

스걱스걱스걱. 절삭톱을 좌우로 흔들어가며 두툼한 혈관을 썰어내자, 붉은 피 대신 걸쭉한 점액질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마치 파전집에서 1차, 치킨 호프집에서 2차, 노래방에서 3차까지 달린 술꾼이 전봇대에 머리를 들이박고 게워낸 듯한 점액질이었다.

방호복을 입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딸랑 마스크 하나만 쓰고 있었다면 분명 지독하리만치 시큼하고 구리구리한 냄새에 코가 비틀렸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거 하나만으로는 반응이 없는 것 같아, 벽을 부수는 용도로 사용하는 해머로 힘껏 내려찍었다.

콰직!

톱날에 썰려 기분나쁜 내용물을 쏟아낸 혈관이 해머에 찍혀 박살이 나버렸다.

쾅!

부족하다 싶으면 한 번 더 찍고.

쾅! 쾅!

뭔가 좀 아쉽다 싶으면 두 번 더 찍었다.

모든 혈관이 이어져 있다면 이걸로 열좀 받았을 터. 책상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찧으면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호국은 상대의 전신을 새끼발가락처럼 만들어버릴 작정으로 톱과 해머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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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외과 수술(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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