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피해피 고문재단-200화 (200/209)

< 경비 업무 일지 : 공백(空白) >

"아빠?"

-지금 어디 있는 거냐?

"어, 그러니까...제주도예요."

-한라산 초입에 있겠지?

"어떻게 아셨어요?!"

-지금 네 엄마랑 같이 가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라.

김선열이 먼저 통화를 끊어버리자 세희는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 이중에 제 부모님께 따로 연락드린 분이 계신가요?"

다들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에 학교 선생도 아닌데 왜 직장 동료 부모와 개인적인 연락을 취할 필요가 있겠나.

물론 한때는 호국에 대한 미스터리가 너무 많아서 이두근을 필두로, 정보 확인차 그의 부모에 대해 정보 수집을 한 적은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조사관들이라 관찰 대상에 대해 모르는 게 있어선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얻어낸 것은 없었다.

민간인치고는 이상하리만치 정보가 나오지 않았는데, 그들은 호국의 부모가 너무 평범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사람일수록 비밀스러운 사람 만큼이나 정보가 적은 법이니까.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 거야?"

"그게...부모님이 지금 여기로 오고 계신다고 하셔서요."

"여기로 온다니...어떻게?"

사실 그것이 가장 궁금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김세희 본인이었다.

자신의 부모님은 기본적으로 자식들을 방임주의 형태로 키웠으며, 너무 엄하지도, 너무 상냥하지도 않았다. 거기에 이상할 정도로 등산에 중독되어 있어서 산을 타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부부였다.

'설마 이 난장판이 된 한라산을 등산하고 싶어서 오시는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신의 부모라면 그럴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 끔찍한 사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부모님들을 어떻게 집으로 되돌려 보내야 할지 걱정하고 있던 그때, 세희는 상공에서 울려퍼지는 헬기 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TF의 장거리 대형 수송 헬기잖아...기동타격대가 온 건가?!"

"아니예요. 저건......"

세희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헬기가 고도를 낮추더니, 아래로 강하 레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한 인물이 액션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들어진 레펠링으로 지상에 착지했다.

"여기 책임자가 누굽니까?"

"일단은 제가 책임자입니다. 그런데 그쪽은......?"

"세희 애비 됩니다."

"엇, 그럼! 혹시 김호국 씨의......?"

"저 아이가 제 딸아인데, 그 놈이 제 아들놈인 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이두근입니다."

이두근이 선뜻 악수를 청하자 김선열은 가볍게 손을 맞잡아 흔들어주곤,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평소 등산이라면 껌뻑 죽는 그가 웬일로 바깥에 나왔음에도 등산복 차림이 아니었다. 평소에 호국이 즐겨 입고 다니던 개미부대의 작업복과 비슷한, 흑복을 걸치고 있었다.

이윽고 헬기가 공터에 착륙하자, 그와 같은 복장을 한 이혜령이 운전석에서 얼른 탑승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아무래도 아들놈은 여기 없는 것 같은데...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이런 말씀드리면 굉장히 죄송합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끌려갔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헬기 근처에서 동료들을 먼저 태우며, 이두근은 김선열의 질문에 거짓없이 답해주었다. 왠지 눈앞의 사내는 속여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럼 일단 헬기에 탑시다! 급히 가봐야할 곳이 있으니까!"

쑥대밭이 된 제주도에서 다시금 이륙한 헬기는 차가운 밤공기를 가로질러 해상으로 나아갔다.

-제 6 처리 시설은 더이상 효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 종말 프로토콜을 가동하겠습니다.

무사히 세희의 스마트패드로 옮겨 온 프롯이 제 6 처리 시설의 종말을 선고했다.

동시에 한라산 초입에 위치한 시설 입구에서 폭염이 터져나왔다. 제주도 전체를 뒤흔든 거대한 진동이, 더이상 그곳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려주는 듯 했다.

-움직일 수 없는 유형의 ES를 제외하면, 모든 ES가 세상밖으로 풀려나왔습니다. 또한 조각 역시 가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 시각을 기점으로 제 6 처리 시설의 효용 가치가 다했음을 알립니다.

불기둥이 피어오르는 제주도를 내려다보던 이두근은 이윽고 고개를 돌렸다.

헬기 한켠에 등을 기대고 서있는 남자, 김호국과 김세희 남매의 아버지되는 남자가 몹시도 신경쓰였던 것이다.

"그래서 대체 뭐하시는 분들입니까? 아무리봐도 평범한 대한민국 가정의 부모들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학자입니다."

"그것 참 이상하군요. 적어도 제 눈에는 당신이 학자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저도 명색이 고문재단 소속 조사관이라 많은 인간군상을 관찰하고, 그들의 기록을 봐왔습니다. 그런 두뇌파 직업군이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를 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학자란 미지의 지식을 탐구하고, 자신이 걷고 있는 학문의 길을 갈고닦는 사람을 의미하지. 우리 부부는 오래 전부터 단 한 가지 학문만을 파헤쳤습니다. 남들에게 자랑껏 떠버릴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학위 같은 게 없어도, 우리는 엄연한 '학자' 입니다."

"그럼 우리를 설득시켜 주십시오. 지금 이중에서 그쪽 부부의 정체를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우리도, 이 자리에 없는 김호국 씨도 아닌 김세희 씨입니다. 당신들의 딸 말입니다."

이두근이 날카롭게 쏘아붙이니 그제야 김선열은 자신의 딸을 돌아보았다.

"때가 되면 모두 말하려 했다. 가족의 일원인 이상 너도 언젠가는 알아야 할 일이었지."

"...그게 뭔데요?"

"네 오빠가 만들고자하는 세계."

한순간이지만 헬기 내부에선 거센 바닷바람에 덜컹거리는 기체와 엔진음만이 울려퍼졌다.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 탓일까, 세희는 또 다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오빠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아니...애초에 오빠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건데요?"

"우리도 자세한 건 모른다. '목소리'로부터 네 오빠를 떠넘겨받은 것에 불과하니까."

"...예?"

똑똑한 그녀가 그의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자리의 모두가 그 말을 알아들었듯이.

"지금...그러니까...오빠가 사실은......?"

"네 친오빠가 아니다. 우리의 친자식도 아니고."

"......"

사실 그녀도 어렴풋이 눈치채고는 있었다.

김호국과 김세희라는 두 인물은 서로 성별이 다른데다 같은 해에 태어난 쌍둥이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점들을 모두 고려해도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정말로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형제가 맞긴 한 건가? 그런 생각을 처음 했을 때는 신체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사춘기 무렵이었다.

어째서 먼저 태어난 오빠는 특이체질이고 늦게 태어난 자신은 특이체질이 아니었던 걸까?

자신과 같은 인간인 오빠는 어째서 그렇게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힘든 내색을 한 번 하지 않았던 걸까?

너무 멍청해서? 너무 순진해서? 너무 사람이 좋아서? 어느 쪽도 아니다.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다른 시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쭈욱,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상 현실에 접속하지 못하고 홀로 현실에 남겨져도 그는 버텨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사무치는 외로움과 자신만 못났다는 비관에 절어 살다가 자살했을지도 모르는 유년기였음에도, 그는 버텨냈다.

물론 외로워하는 기색은 있었다. 자신만 가상 현실을 즐기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고,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봤다.

하지만 23세에 이르기까지 그가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강인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로 다져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익숙하게 버텨낸 것이다. 10년? 100년? 얼마나 길게 '경험'을 쌓아왔는지는 세희도 알 수 없었다.

'철이 일찍 들어서, 어릴때부터 조숙했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시간을 견뎌냈던 게 아니야. 그정도의 시간을 충분히 버틸 만큼 단련이 되어 있었으니까 버틴 거지.'

김호국이 사실은 자신의 친오빠가 아니었다는 얘기를 듣고난 뒤에야, 겨우 모든 퍼즐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만은 알 수 없었다.

김호국이 자신들과 같은 세계를 보지 않고, 같은 세계를 인식하고 있지 않다면, 대체 그는 누구인가?

아니.

무엇인가?

"아빠는...오빠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죠? 알려주세요. 저도 학자인 만큼 궁금한 건 반드시 알아야겠어요."

"위대한 손님."

"위대한 손님......?"

"우린 모두 점원이다. 이 세계라는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이지. 그리고 가끔...자신도 점원이 되어 직접 일해보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있다."

자신의 오빠가 외계인이라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싶어 세희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김선열은 그 점을 미리 눈치채고 먼저 선수를 쳤다.

"외계인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다. 외계인이나 신은 아직까지도 존재의 유무를 논의하는 수준에서 멈춰 서있는 '가상'의 존재다. 하지만 손님은 다르지. 직접 방문했기에 손님이고, 가게에서 제공하는 것을 즐기고 있기에 손님이다. 외계인보다도 확실한 방문자이며, 신보다도 뛰어난 전능자라고 할 수 있지."

"평범한 사람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공상 소설은 그만 쓰라고 말했을 것 같네요. 제가 평범한 딸이었으면 부모님이 미쳤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거고요."

"우린 널 안다. 궁금한 것은 절대 그냥 넘기지 않고, 네가 해내지 못 한 것은 반드시 해내려고 하지. 그래서 네가 TF에 입사하기 전까지,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TF에 입사하기 전의 그녀였다면 이런 허무맹랑한 얘기를 감당할 수 없었을 테니까. 굳이 그런 말을 잇지 않아도 세희는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그 위대한 손님, 오빠가 만들고 싶어하는 세계라는 건 뭔데요?"

"영원히 즐거운(Happy) 세계."

"영원히 즐거운 세계?"

"아니, 아니지.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즐거움(Happy)이지."

어느 쪽이든 좋게 들리진 않았다.

게다가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말처럼 들리지도 않았기에, 세희를 비롯한 조사관들은 할 말을 잃고 침묵했다.

"그래서 우린 이제 뭘 해야 하는데요?"

"저항해야지."

"저항해요? 하지만 아빠랑 엄마는...지금까지 오빠를 길러주셨잖아요. 앞뒤가 안 맞지 않아요?"

"그야 직접 해를 끼칠 수 없었고, 20년간 보호하라는 계약까지 했었으니까. 하지만 20년의 계약은 끝났다. 직접 해를 끼칠 수 없는 건 여전하지만, 그렇다고 손님이 만들게 될 영원히 반복되는 세계에 얌전히 남아있어야 할 이유도 없지."

"...쉘터 프로젝트!"

"그래. 손님들이 무차별적으로 가게를 어지럽히겠다면, 기존의 점원들이 떠날 수밖에 없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김선열은 헬기의 항로를 스마트패드로 확인하면서, 갑작스럽게 다른 화제를 꺼냈다.

"지금쯤이면 우리가 왜 수많은 산을 돌아다녔는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궤도 엘리베이터 발사기를 찾으러 돌아다니셨겠죠."

"궤도 엘리베이터 발사기라고?!"

그 말에 바로 반응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두근이었다.

"그건 특급 기밀인데 대체 당신들이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제가 알려줬습니다.

"프롯! 하지만 너도 거기에 접근할 수는...설마!"

-이두근, 당신이 일전에 제공해주었던 접근 권한을 이용해 저는 TF 내부의 모든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에베레스트 산맥에 감춰진 궤도 엘리베이터 발사기, 엘리베이터 추진체가 도달하게 되는 우주정거장, 그리고 쉘터 프로젝트의 최종 프로토콜까지 모두.

빈틈을 찔렸다는 생각에 할 말을 잇지 못하는 이두근 대신, 프롯은 대화의 대상을 김선열로 바꿨다.

-지금 쉘터 프로젝트를 가동해봤자 모든 인류의 정신체는 여전히 이 세계에 남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주정거장에서 최종 프로토콜을 가동할 경우, 모든 정신체가 담긴 에너지체를 우주 공간으로 쏘아 올려보낼 수 있을 겁니다. 당신들은 그걸 '해방' 이라고 부르더군요.

"AI 치곤 많이 아는군."

-프로토타입 입니다. 그리고 AI인 입장에서 보면 당신들의 발버둥을 구경하는 게 적잖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가드의 편이지만, 어차피 이 세계에 남게 될 것이기 때문에 당신들을 마지막까지 배웅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렇게 덧붙인 프롯은 세희의 스마트패드에서 암호 해독이 끝난 압축파일을 열어주었다.

-이게 당신들이 이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발버둥쳐야 하는 동기부여가 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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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비 업무 일지 : 공백(空白)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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