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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투왕-5화 (5/43)

〈 5화 〉 1장. 회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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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회귀 (4)

"이곳은 어떻게 알았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왕평이 여기저기 손을 더듬으면서 무언가를 만지자 곧 단상이 다시 움직여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고, 이내 어둠이 그들의 시야를 차단했다.

"야명주까지 가지고 있다고?"

"비록 조각이지만요."

"그래도 가격이 만만치 않을 터인데."

겨우 몸종인 왕평이 이런 엄청난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백강휘마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설마 간자는 아니겠지?"

"겨우 백씨세가 정도 되는 곳에 간자가 있겠습니까? 정의맹도 아니고요."

왕평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말했다. 백씨세가를 무시하는 말이었건만, 백강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의 말처럼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가 아닌 백씨세가에 굳이 간자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백씨세가는 그 정도로 대단한 곳이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무시하는데도 공자님은 화를 내시지 않는군요."

"지금은 그보다 네 정체를 빨리 알아내고 싶어서 말이야."

"하하. 그건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왕평은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가 파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길게 굴이 이어져 있었다.

"이것도 네가 파놓은 것이냐?"

"그럴 리가요. 제가 공자님이 이렇게 될 줄 알고 파놨겠습니까? 그냥 얻어들은 것이라니까요."

"그나저나 여기가 끝이로군."

백강휘의 말대로 두 사람은 막다른 길에 도착했다. 그들은 곧바로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이 여길 알아차린다면 우린 꼼짝없이 죽겠어."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지요. 저 혼자서 저들을 모두 상대하기에는······."

왕평은 그렇게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바로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정말 여기 있겠습니까?"

"흔적을 발견하지 않았나?"

"물론 그 흔적이 이곳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바로 사조 조장인 우일향과 조원의 목소리였다.

우일향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조원을 노려보다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발자국. 공자하고 그 몸종 녀석과 비슷했다.'

우일향이 발견한 것은 흙 위에 새겨진 발자국이었다.

깊게 파인 발자국과 얕게 파인 발자국.

깊게 파인 것은 백강휘의 발자국일 것이고, 얕은 것은 그 몸종일 것이다.

"다른 곳으로 향했다는 흔적이라도 찾아라!"

"예!"

문제는 그 흔적이 이 관제묘에서 끊겼다는 것이다.

우일향은 이 관제묘에서 그들이 무엇인가 수를 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흐음. 관제묘라."

우일향은 관제의 위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칼을 든 무인이라면, 아니 중원인이라면 누구나 삼국시대의 영웅이자 무신이라 불리는 관우를 존경할 것이다.

그것은 우일향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이 관제묘가 더러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제발 다른 곳으로 갔기를 바라오, 공자.'

백강휘를 죽이더라도, 관제묘가 아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결국 우일향의 그런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후우. 제발 아니길 바랐건만."

위패가 올려져 있는 단상이 움직인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먼지가 쌓여있던 곳이니만큼 그 흔적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였다.

"다른 조원들을 불러라."

"예!"

우일향은 빠르게 모이는 백호대원들을 보며 단상을 가리켰다.

"이걸 치워라."

"예!"

곧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단상에 열 명의 사내들이 달라붙었다.

하지만 장정한 사내들이 얼굴까지 붉어지면서 힘을 썼지만, 단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데, 움직인 흔적이 있다. 그렇다면 분명 장치가 있을 것이다.'

우일향이 빠르게 명령을 내리자 곧 그의 조원들이 단상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장치를 찾아서 이곳에서 백강휘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 빨리 세가로 돌아가 쉴 수 있지 않겠는가.

-달칵!

"음?"

그 순간 한 조원이 단상에서 무엇인가를 건드렸다.

-그그그긍!

그와 동시에 단상이 옆으로 밀리기 시작했고, 백호대원들의 얼굴이 단숨에 밝아졌다.

"횃불을 가지고 들어가 보도록! 아마 함정은 없을 것이다. 있었다면 그들이 이곳으로 가지 않았을 테니까."

"예!"

우일향의 말에 횃불을 든 조원이 크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명의 조원들이 그 뒤를 따라서 같이 움직였다.

-저벅! 저벅!

그들은 길게 이어진 굴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제 곧 끝을 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들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볍게 느껴졌다.

"음?"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 보인 것은 그들을 가로막은 흙벽이었다.

마치 여기가 마지막이라는 듯, 더는 길이 없다는 듯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 보였다.

"길이 막혔다고?"

"그런데 없다는 것인가?"

그들은 서둘러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막다른 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없었다고? 다른 길은 없는 것이냐?"

"예. 길은 하나뿐입니다."

조원의 보고를 받은 우일향은 다시 단상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렸다. 그리고서는 남아있는 흔적을 바라보았다.

'단순히 우리의 시간을 뺏기 위해 이것을 움직인 것인가?'

그렇다면 이곳에서 소모한 시간만큼 더 멀리 도망쳤을 것이다.

"어서 주위를 찾아봐라! 어두운 만큼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예!"

우일향은 조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다시 단상을 이동시켰다.

그리고는 가만히 통로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횃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말 막혀있군.'

우일향은 그 벽면을 만지기 시작했다.

-후두둑!

그가 만졌던 부분에서 흙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혹여 이 벽을 새로 세운 것이 아닌가 벽을 밀어보았지만, 벽은 무척이나 단단했다.

'음?'

그러던 우일향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쪼그려 앉아서 손을 움직였다.

-후두두둑!

우일향의 손이 닿은 곳 중 일부분이 급격히 무너졌다.

우일향은 얼굴을 구긴 채 흙을 걷어내기 시작했고, 이내 사람 한 명이 기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굴이 보였다.

"망할!"

그의 수하들은 이곳에 백강휘가 없다는 사실에, 그리고 길이 막혔다는 사실에 당황하여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설마 백씨세가의 일공자가 바닥을 기어가리라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백강휘가 처음 눈을 떴을 때 산에서 바닥을 기어 굴에 들어간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

"사람 귀찮게 하는군."

우일향은 구겨진 얼굴로 그 굴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 * *

왕평은 계속해서 흙을 파내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백강휘가 입을 다문 채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제 검이 다 망가질 것 같군요."

"말 많이 하지 마라. 점점 숨쉬기 힘들어지니까."

"공자님이 더 말이 많습니다."

왕평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검을 들고 있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당장 흙을 파낼 도구가 없었기에 그의 검으로 파낼 수밖에 없었다.

흙을 파낼수록 검이 상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왕평은 멈추지 않았다.

'망할, 정말 개 같군.'

진한 흙냄새까지는 어떻게든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누의(螻蟻 : 개미)들이 그의 몸을 스멀스멀 기어가는 느낌은 참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깨무는 녀석들 때문에 온몸이 간지럽게 느껴졌고,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놈들이 언제 쫓아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 것이리라.

"괜찮습니까?"

"아직은. 하지만 조금 어지럽군."

"젠장!"

왕평은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빠른 속도로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아직은 괜찮지만, 그 역시도 조금씩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무인인 그조차 이럴진대 내공이 없는 백강휘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공자님?"

"······."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백강휘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왕평은 마른세수를 하고는 다시 전력을 다해 흙을 파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백강휘를 죽일 수는 없었다. 이렇게 죽을 것이면 그가 왜 이 고생하며 그를 지키고 있냔 말이다.

"제길! 제길! 망할! 씨펄! 왜 나한테 이런 것을 부탁해서!"

손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왕평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

그렇게 미친 듯이 흙을 파내던 왕평은 이내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이 아니라 손을 앞으로 뻗으니 그를 막고 있는 흙이 굉장히 얇게 느껴졌다.

'밖이다!'

튀어나오려는 말을 어떻게든 목구멍으로 삼켰다.

왕평은 앞을 가로막는 흙을 손으로 허물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청량하게 느껴졌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나?'

대략 그가 구멍을 파고 이동한 것은 대략 반 시진에서 한 시진(1시간~2시) 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흙을 파고 이동했기에 많이 이동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백호대가 주변을 수색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바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뒤에서 쫓아오지는 않겠지?'

왕평은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리다가 계속해서 벌레 소리만 들려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사람이 나갈 정도의 구멍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얼굴을 살짝 내밀어 주변을 살펴본 후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 쓰러져있는 백강휘를 질질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온몸이 다 까지겠군."

"살아계셨습니까?"

"어떻게든."

백강휘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왕평이 히죽 웃으며 밖으로 나갔고, 백강휘 역시 그를 뒤따라 밖으로 나섰다.

"후우. 살겠군."

"얼마나 온 것인지 모르겠군요. 위치도 모르겠고요."

"다행히 빠르게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로군."

우일향이 단상에 대해 알아냈을 때는 왕평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식은땀이 절로 나고 당장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흙을 파고 움직일 생각을 하신 겁니까?"

"그땐 그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만약 백강휘가 빠르게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았으면 그곳에서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왕평과 백강휘가 백호대 한 개조와 싸우기에는 무리였으니까.

"우선 움직이지."

"이대로 단풍으로 갈 것입니까?"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 관제묘가 있던 숲 근처이리라.

"여기 있나?"

"글쎄. 이렇게까지 왔을까?"

그리고 그 말은 이 근처에 백호대 사조의 수색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나마 횃불의 불빛이 보이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기에, 그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자신의 입을 막고, 혹여나 풀을 밟는 소리가 들릴세라 움직이는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웠다.

그들은 무작정 백호대로부터 떨어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날이 어두웠기에 현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찌르르! 찌르르! 후두두!

옆에서 울던 벌레가 그들의 움직임에 놀라 빠르게 날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서둘러 몸을 숙인 채 숨을 죽였다. 혹여 이 소리를 듣고 백호대가 쫓아오지 않을까 싶어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저벅! 저벅!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귀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백강휘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어쩔 수 없나?'

왕평은 들고 있는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들이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단숨에 목을 찔러야만 했다.

그들이 그 어떤 소리를 내어서도 안 된다. 소란을 듣고 백호대가 몰려올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왕평은 긴장한 표정으로 백호대 무인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이봐! 조장이 다 모이라고 한다!"

막 왕평이 앞으로 뛰쳐나가려고 할 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서 그들이 흙을 파고 갔다나 봐. 조장이 조금 들어가다가 다시 나왔다는데?"

"그럼 결국 우리가 가야 하는 거잖아. 어휴, 힘든 건 다 우리지."

이내 그들의 코앞까지 다가온 인기척이 다시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왕평과 백강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숨을 멈추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왕평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으려고 할 때였다.

"정말 없나?"

갑작스럽게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왕평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어이, 너도 슬슬 오라고!"

혹여라도 근처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인을 한 명 배치해 놓은 것이다.

만약 왕평이 조금만 더 빠르게 숨을 내쉬었다면 분명 들켰을 것이다.

백강휘와 왕평은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정말 천천히, 마치 기어가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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