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2장. 다시 마주한 기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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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다시 마주한 기연 (1)
삼청산(三清山)은 강서성 북동쪽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무척이나 험하지만 뛰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산이었다.
그리고 백강휘는 그 산에서 생활하며 매일같이 절벽을 오르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여기도 아닌가.'
회귀 전에 그가 익혔던 수라파천공(修羅破天功)이란 이름의 무공이 잠들어있는 동굴을 찾는 것이다.
그는 이곳 삼청산에서 기연을 얻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늦은 나이였다.
'확실히 그대로 갔으면 무당에 도착할 수 있었겠지.'
처음 눈을 떴을 때, 계속 무당으로 향했어도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당산에서 왕평이 그를 지키다 조광에게 죽었을 것이고, 그 역시 죽기 직전에 갑자기 나타난 무당파 사람들에게 목숨을 건지게 된다.
'세가에서는 물러났지만, 무당에서도 오래 머물 수 없었지.'
그는 도사가 아니었고, 무당에 식객으로 있을 그런 입장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무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무당에서 표국을 소개해준 덕분에 그곳에서 쟁자수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표물을 옮기던 도중, 바로 이 산에서 표물을 노린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에게 습격을 당했다.
공격을 당해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우연히 비급이 잠들어 있는 그 동굴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이미 무공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과거와 같이 진행할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그는 무당산으로 향했던 이전의 생과 다르게 바로 이곳 강서성으로 이동한 것이다.
'문제라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지.'
삼청산은 결코 작은 산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습격자들로부터 도망가고 있었기에 그가 떨어졌던 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계절도 다르고, 여기 온 시기도 다르니까.'
만약 삼청산에서 가장 유명한 삼봉(三峰)인 옥경봉(玉京峰), 옥화봉(玉華峰), 옥허봉(玉虛峰) 중 한 곳이었다면 찾기 쉬웠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면, 내 인생이 그렇게 우여곡절이 많지는 않았겠지.'
하늘은 그에게 기연이란 것을 주었지만, 그가 쉽게 살아가길 원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이곳에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동굴을 찾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 이곳도 비슷한 것 같은데.'
백강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높게 솟아오른 절벽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가 떨어졌던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공을 익히고 나왔을 때 봤던 풍경을 찾고 있었다.
주변을 볼 수 없을 정도의 긴박한 상황을 떠올리는 것보다 감회에 젖어 주변을 보고 있을 때가 더 기억에 남는 법이었으니까.
'언제 추격이 올지 알 수 없으니.'
가장 큰 문제는 백호대가 하오문에서 정보를 얻어 이곳으로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세가의 가주가 조용히 처리하길 원하니 그것을 허락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신할 수 없으니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여기서 시간을 많이 보냈어. 만약 여기가 아니라면 또 시간을 허비하게 돼.'
결국 절벽을 올랐다가 아니라면 다른 곳을 또 찾아봐야 한다. 이 절벽을 오르는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백강휘는 그가 무공을 익히고 나왔던 풍경과 이곳이 계속해서 겹쳐 보였기에 쉽게 다른 곳으로 향할 수가 없었다.
시간의 차이가 있으니 기억 속의 모습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비슷한 곳은 현재 그가 서 있는 이 위치인 것 같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동굴은 원래 저기 있어야만 해.'
하지만 동굴이 있어야 했던 자리에 보이는 것은 단순한 절벽일 뿐이었다.
'올라가 볼까?'
상당히 높다. 차라리 위에서 줄을 묶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더 안전할 만큼.
하지만 백강휘는 맨몸으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힘들지는 않군.'
그는 동굴을 찾기 위해 이곳에서 절벽을 꽤 많이 올랐다. 이제는 익숙해진 것인지 처음처럼 힘든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그의 육체가 그 짧은 시간에 단련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끄응!"
하지만 처음보다 덜 힘들다는 것일 뿐, 내공 없이 육체의 힘만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땀을 뻘뻘 흘렸다.
다만, 회귀 전 무공을 처음 익힐 때 그는 절벽을 타며 육체를 단련한 덕분인지 미끄러지는 일 없이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분명 이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상당히 높은 지점까지 올라간 백강휘는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하고는 이내 그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위로 갔다가, 다시 아래로 가기도 하고 좌우로 움직였다.
'이건?'
그렇게 마구잡이로 움직이던 백강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분명 막혀있음에도 그의 손이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선 적당히 표시를 해야겠어.'
진법이나 사술 같은 것으로 입구를 가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백강휘는 입구 근처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하고는 곧바로 절벽을 내려왔다.
올라갈 때보다 더 위험하고 힘들었지만, 백강휘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짐만 가지고 바로 들어간다.'
현재 그는 산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지만, 짐 역시 그가 노숙을 하는 장소에 있었다.
바로 그가 근처 마을에서 샀던 몇 개의 옷가지와 식량들이었다.
'얼마나 오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마을에 가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사서 다시 오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백강휘는 남은 음식으로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생각으로 곧바로 짐을 챙기러 움직였다.
"······."
백강휘는 그의 짐이 놓여 있는 곳에 도착했지만,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누가 이곳을 발견한 흔적 같은 것은 없었다.
혹여 백호대가 이곳을 발견하여 주위에 숨어있지 않을까 확인하는 것은 그가 이곳에 돌아올 때마다 하는 일이었다.
'이제 이 생활도 끝이로군.'
동굴을 찾는 것은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운이 나쁜 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배에서 내려 이곳으로 올 동안 산적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이곳에서도 늑대 같은 야생동물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까.
'우선 최대한 간단하게.'
정말 필요한 것들. 즉 음식과 옷, 그리고 약간의 돈만을 챙기고 백강휘는 움직였다.
누군가 남은 흔적을 발견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백강휘의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고.'
백강휘는 이제 남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곧바로 동굴을 발견했던 절벽으로 향했다.
"후우."
절벽을 올려다보며 숨을 길게 내쉰 백강휘는 짐들을 묶고 있는 천을 등에 동여맸다.
그러고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역시 힘들군.'
쉬지도 않고 곧바로 절벽을 오르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지만, 백강휘는 계속해서 움직였다.
"크윽!"
땀 때문에 미끄러지는 경우도 있었고, 조급한 마음 때문에 발을 헛디디기도 했지만, 그는 남겨놓았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해.'
동굴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백강휘는 숨을 고르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이곳이 맞았다. 그가 이전 생에서 무공을 얻었던 바로 그 동굴.
'하필이면 이런 진법을 해놓다니.'
당시에는 이 동굴 안에서 깨어났었기에 진법이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입구가 막혀있었을 터인데.'
절벽에서 떨어진 그가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었고, 당시 눈을 떴을 때는 입구가 완전히 막혀 있었다.
-쿠구구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입구에서 커다란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이 천장에서 내려오며 입구를 막았다.
'이렇게 된 것이로군.'
이 돌은 수라파천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람이 나가지 못하게 하는 용도였다.
수라파천공을 최소 삼 단계까지 익히면 부술 수 있는 돌이었는데, 수라파천공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것이 그가 동굴을 발견하였지만, 안을 확인하지 않고 바로 내려온 이유였다.
'이 돌을 부술 수 있는 정도의 고수가 들어와서 비급만 챙기고 나갈 수도 있는 허술한 방법이지만.'
어쨌든 이곳에 비급을 남겨둔 사람은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급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뭐가 이유라도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지금까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백강휘가 비급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걸까?'
절벽을 오르면서 보니 위에서 떨어졌을 때, 이 굴로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쩌면 절벽에 있는 나무에 옷이 걸려서 이리저리 구르다가 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것은 좋아.'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이내 넓은 공간 하나가 나왔다.
그 한 가운데에 앉아있는 해골 하나와 그 옆에 있는 비급 하나.
그리고 동굴의 벽에는 엄청난 양의 야명주가 박혀 있었고,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저것이 바로 그가 익혔던 수라파천공의 무공이었다.
'초식이라기보다는 박투술 자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굴 벽 한편에 짐을 내려놓은 백강휘는 해골 옆에 있는 비급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수라파천공은 역천(逆天)의 묘리가 담긴 무공이었다.
그 어떤 무공보다 패도적이기에 하늘마저 부순다는 이름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 무공을 처음 만든 사람이 얼마나 무공에 자부심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확실한 것은 대단한 무공이 맞다는 것이니까.'
그가 다른 무공을 익히지 않고 이것을 익힐 가치가 있는 그런 무공이었다.
'대성하지 못했음에도 혈교의 장로와 엇비슷하게 싸울 수 있는 무공이니까.'
그 정도로 강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패도적이기만 해서는 역천의 묘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없지.'
역천의 묘리를 담고 있다고 하는 이유는 이 무공이 보통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만 익히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거스른다고 하니 혹시 시간마저 거스른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가 회귀한 것이 이 무공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혈교의 보물과 무슨 작용을 했다던가.'
죽기 직전 그가 삼킨 혈교의 보물이 그의 무공과 만나면서 무슨 작용을 하여 그를 과거로 되돌린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무공에 집중.'
회귀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운 백강휘는 다시 비급을 천천히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미 머릿속에 있는 구결이다. 가족의 얼굴은 잊었을지언정, 이 구결은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흐음. 확실히 기억과 일치하는 구결이야.'
머릿속과 다른 것이 전혀 없는 구결이었지만, 그는 정성스럽게 비급을 읽으며 책장을 넘겼다.
알고 있는 내용이건만, 다시 읽으니 뜻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나중에 태워야겠지.'
책을 다시 내려놓은 백강휘는 해골의 정면에 섰다.
앉아있는 해골의 앞에 있는 바닥에는 구배지례를 하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백강휘는 시키는 대로 천천히, 그리고 정성스럽게 구배지례를 했다.
-툭!
아홉 번째의 절이 끝나자, 천장에서 두 개의 목함이 떨어졌다.
목함을 열어보지 않더라도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백강휘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