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4장. 호북상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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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호북상회 (3)
"또 무한인가."
"아무래도 배를 타고 여기저기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니 상권이 발달할 수밖에 없지요."
백강휘는 호북상회가 있는 곳이 무한이란 말을 들었을 때, 우일향에게 쫓겼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네가 말을 걸었을 때, 조금 떨렸었지."
"······."
백강휘가 포구를 지나가며 우일향에게 말하자 그가 입을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백강휘를 놓치고, 다른 사람을 골라서 조광에게 얻어맞았던 기억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래도 그때 공자님을 제대로 고르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를 않았는데 무슨."
"그냥 조광에게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우일향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백강휘가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내가 아니었어도 넌 세가에서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조광이 널 계속 괴롭혔을 테고, 네가 버티지 못하게 되었을 테니까."
미래의 우일향에게 직접 들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일향 역시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수긍했다.
"그보다 계획은 있으신 겁니까?"
"아니, 없는데?"
"······."
객잔에 들어서자마자 질문을 던진 우일향은 계획이 없다는 백강휘의 대답에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을 좀 해봤는데."
"예."
그래도 생각을 해봤다는 백강휘의 말이 이어지자 우일향은 기대어린 눈으로 백강휘를 보았다.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백강휘는 예전부터 세가의 일에 나서지 않았다. 항상 숨죽여 살았으니 세가의 일을 알 리가 없었다.
게다가 쟁자수로 살다가 무공을 배우고 난 후에는 바로 낭인이 되었다.
세가를 이끌었던 경험이 전혀 없으니 이런 이권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니 호북상회가 나설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어쩌실 생각입니까?"
"무인이라면 무식하게 해야 하지 않겠어?"
"협박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음. 그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호북상회와 협상을 하려면 뭔가 그쪽에서 구미가 당기는 것을 가져와야만 했다.
하지만 백강휘는 전혀 그런 것도 없었으며, 세가에서 그에게 준비해준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백연호는 백강휘에게 맨몸으로 이 일을 해결하라고 한 것이다.
"그래도 하오문의 정보는 구해올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하오문에서 호북상회의 정보를 사 오겠습니다."
"아니, 같이 가자고."
백강휘는 우일향과 함께 객잔을 나섰다.
'공자께서는 하오문의 위치가 어디인지 아시는 건가?'
거침없이 발을 옮기는 백강휘를 보며 우일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오문은 중원 어디에나 있는 곳이지만, 보통은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정보를 사고파는 곳이니 몸을 숨기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백강휘는 우일향에게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혼자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정확히 무한에서 가장 큰 기루인 무한루(武漢樓)에 들어섰다.
"아직 열 시간이 아닌데, 무척이나 급하셨나 보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기에 문을 열지 않았음에도 백강휘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분 냄새가 진동하는 중년의 여인이 두 사람에게 다가오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어쩌죠? 좀 더 나중에 오셔야겠는데."
"여기 새로 들어온 란(蘭)이란 아이가 그리 아름답다고 하던데."
백강휘의 대답에 중년 여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백강휘가 말한 난은 하오문의 상징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하오문을 잡초 같은 놈들이라고 칭했기에, 아예 잡초보다는 보기 좋은 난을 상징물로 한 것이다.
"기다려야 하나?"
"방으로 안내해드리지요."
중년 여인은 백강휘를 데리고 기루의 가장 구석에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백강휘와 우일향이 자리에 앉자 곧 그들의 앞에 여러 음식과 술이 쌓였다.
"······."
하지만 백강휘와 우일향은 그 음식과 술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가만히 앉은 상태로 기다렸다.
"독 같은 것은 없으니 마음껏 드셔도 된답니다."
이내 문이 열리며 눈 밑으로 면사로 가린 여인이 웃으며 등장했고, 백강휘는 말없이 그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처음 뵙는군요. 하오문에서 호북지부를 담당하는 화란이라고 합니다."
화란의 눈이 초승달로 휘어지자, 백강휘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시오.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야 하오?"
"백씨세가의 일공자께서는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으시답니다."
화란은 백강휘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백강휘의 잔에 술을 따르고는, 자신의 앞에 있는 잔에도 술을 따랐다.
"역시 하오문의 정보력이로군. 더 아는 것도 있으시오?"
"공자께서 강서에서 무언가를 찾으셨다는 것도, 그 이후로 말도 안 되는 무위를 보이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죠."
"흐음."
거침없이 자신의 정보를 말하는 화란을 보며 백강휘의 입가에 감도는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급격하게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전혀 웃지 않고 있는 백강휘의 눈 때문이리라.
"그럼 우리가 왜 왔는지도 알겠군."
"무한에 온 것은 호북상회 때문일 것이고, 저희를 찾은 이유는 분명 그곳의 정보 때문이겠죠."
정확하게 맥을 짚는 화란을 보며 백강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일향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오문의 정보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그들의 정보까지 알고 있을 줄은 예상 못 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보니 더 대단하군.'
새삼 그들의 정보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화란이 고개를 들어 백강휘의 옆에 서 있는 우일향을 보았다.
"우 무인께서는 놀란 모양이시군요."
"······."
우일향은 빠르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화란을 노려보았다. 누군가 그의 뒷조사를 했다는 것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런데 호북에서는 지부장이 이렇게 직접 찾아오시오?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보통은 그렇지 않지요. 하지만 백강휘 공자라면 직접 만날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무엇 때문이오?"
화란의 눈은 여전히 초승달을 그리고 있었지만, 면사로 가린 그의 입술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태연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등은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서 대답을 잘 해야 해.'
화란은 솔직하게 대답할 것인지, 아니면 거짓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절정 고수를 일격에 쓰러뜨린 백강휘 공자니까요."
"흐음. 그리고?"
그리고 화란은 여기서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괜한 거짓을 섞어보았자 백강휘가 꿰뚫어 볼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공자께서 강서에서 잠시 사라졌던 그 순간에 무공을 익힌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백강휘는 아무런 반응 없이 화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무공의 이름은 모릅니다. 단순한 일권으로 백호대주를 혼절시켰으니까요. 하지만 그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초절정의 경지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죠."
"백호대주가 그 정도로 강하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개인적으로라고 한 거예요. 하오문에서는 절정의 무인으로 판단했으니까요."
아직 약관도 안 된 백강휘가 절정의 무인이란 것도 무림이 시끄러울 일이다.
오대세가나 구파일방에서 엄청난 지원을 받은 후기지수들이 절정의 고수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지부장께서는 나를 초절정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오?"
"그냥 느낌 같은 것이죠."
화란의 애매한 대답에도 백강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직은 하오문과 개방 정도만 공자를 주목하고 있지만, 아마 곧 공자의 무명이 중원으로 퍼지겠죠. 그러니 먼저 인연을 쌓고자 만난 거고요."
상당히 그럴듯한 이유라고 생각되었다.
아직 유명하지 않지만, 강자라고 생각되는 자와 인연의 끈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니까.
"실제로 만나보니 어떻소?"
"제가 참 판단을 잘했다고 생각되네요."
화란은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죽지(竹紙 : 대나무로 만든 종이)를 꺼내 백강휘에게 건넸다.
"필요하신 것입니다. 이급(二級)이기에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니, 그냥 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이급 정보라 하더라도, 그리고 화란이 지부장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마음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백강휘는 우일향을 보았고, 그는 품속에서 가지고 있던 돈을 꺼내 화란에게 건네주었다.
"이급이라면 이 정도는 될 것 같은데."
"그럼 반만 받겠습니다."
화란은 우일향에게서 받은 돈을 정확히 반으로 나눈 뒤, 다시 돌려주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공자께 빚을 지게 하려고 한다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공자께 좋은 모습으로 남으려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죠."
어쨌든 백강휘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분명 아직 유명하지 않은 백강휘와 먼저 좋은 관계를 만들고, 독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선하는 관계가 되고 싶은 것이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오문과 굳이 척을 질 필요는 없으니까."
"후후. 감사합니다."
하오문은 보통 하오배라 불릴 정도로 시정잡배들이 모인 곳이다. 점소이들은 물론이고 배수(掱手 : 소매치기), 기녀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런 곳이기에 명문정파에서는 하오문을 무시하는 곳이 많았는데, 백강휘는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럼 다른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라도 찾아와주세요."
화란은 그렇게 말하며 하나의 패를 백강휘에게 건넸다.
"그 패는 이곳에서는 많은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지부에서는 여기만큼 많은 협력을 받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를 우선시 할 것이다.
"고맙게 받지."
백강휘는 패와 호북상회의 정보를 품속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가시려고요? 요리도 드시지 않고. 아니면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아이라도 불러드릴까요?"
"놀러 온 것이 아니라서."
백강휘는 고개를 젓고는 우일향과 함께 무한루를 나섰다.
"아쉽나?"
"예?"
"제일 유명한 아이를 부른다는 것을 거절해서 아쉽냐고."
"아닙니다."
우일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지만, 백강휘는 그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무한루에서 그가 화란의 말을 거절했을 때도 아쉬운 표정이 된 것을 보았다.
"일 끝나면 오라고. 그것까지는 막지 않을 테니까."
"······."
우일향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백강휘는 그의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흐음. 이거 꽤 괜찮은 정보가 있네."
객잔으로 돌아오자마자 백강휘는 화란이 건네준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이게 이급 정보라고? 좀 더 넣은 것 같은데.'
중간중간 일급에 가까운 정보가 섞여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비밀스러운 정보도 있었다.
"그럼 회주를 만나야겠네. 호북상회의 회주에게 내가 만나보고 싶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우일향이 호북상회로 가기 위해 객실을 나서는 것을 본 백강휘는 다시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아무래도 정말 그렇게 될 것 같군.'
면사를 쓰고 있던 화란의 모습을 떠올리는 백강휘의 눈은 정보가 적혀있는 죽지로부터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