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4장. 호북상회 (4) (수정)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4장. 호북상회 (4)
우일향은 호북상회의 회주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객잔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기다려 보자고. 연락이 오겠지."
하지만 백강휘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여유로운 모습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런 백강휘와 달리 우일향은 날이 갈수록 초조한 마음에 점점 초췌해지고 있었다.
"공자님! 드디어 호북상회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후, 드디어 호북상회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사람을 꽤 기다리게 했소."
"······죄송합니다."
설마 만나자마자 곧바로 그런 불만을 이야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기에, 호북상회의 소식을 가져온 하인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그대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니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소."
백강휘가 마시고 있던 차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 거라면 말을 하지를 말던가.'
하인은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백강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호북을 담당하는 상회의 주인이시니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말입니다."
하인은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슬쩍 백강휘의 눈치를 살폈다. 백강휘가 결국 무가의 사람이었기에 혹시라도 칼이라도 휘두르지 않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무인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칼로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하인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하인의 걱정과 달리 백강휘는 그저 웃으면서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을 뿐이었다.
'뭔 놈의 눈빛이······.'
하인은 그런 백강휘의 눈빛에 안심하면서도 그의 뒤에 있는 우일향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웃고 있는 백강휘와 달리 우일향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호북상회에 도착한 후, 두 사람을 객실로 안내한 하인은 아직도 자신의 목이 붙어있는 것에 감사를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무인들에게서 해방되었다는 마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북상회의 주인에게 두 사람이 왔다고 보고하기 위해 움직였다.
"역시 돈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확실히 다과의 질이 틀리군."
백강휘는 호북상회에서 준비해준 다과의 맛을 보고는 감탄했다.
백씨세가에서 남우혜, 백서희와 즐기던 다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맛이 좋았다.
"회주님께서 기다리십니다."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 이내 그들을 안내했던 하인이 아닌, 다른 시녀가 와서 두 사람을 접견실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들어가셔야 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접견실 앞을 지키고 있던 무인이 우일향을 막아섰다.
"혼자 들어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우일향이 무인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자 백강휘가 그를 말리고는 곧바로 접견실의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처음뵙는군요. 백강휘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공자께서는 기억하지 못하시나 보오."
안으로 들어서자 혼자 움직이기도 힘들 것 같은 거대한 풍채의 노인이 인자한 미소로 그를 반겼다.
'백씨세가를 말하지 않고 이름만 밝혔다는 것은 세가와 상관이 없다는 뜻인가? 머리 좀 썼군.'
하지만 인자한 미소와 달리 호북상회의 회주인 이정웅은 날카롭게 백강휘를 살펴보고 있었다.
"동생이 백씨세가에서는 꽤 폐를 끼쳤다 들었소."
백강휘는 백씨세가에서 보았던 부회주 이규를 떠올렸다.
동생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형제인 모양이었다.
"그럼 회주께서는 그 일이 부회주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으음."
백강휘의 질문에 이정웅은 입을 다물며 말을 아꼈다.
물론 이규가 이 일을 진행한 것은 맞았다. 하지만 한 세가와 거래를 끊는 것을 독단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정웅의 용인이 있었기에 일을 진행한 것이지만, 이정웅은 그 사실까지는 알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야.'
그것은 이정웅이 백강휘에 대한 판단을 바꿨기 때문이다.
'백씨세가에서 무능한 서자라고 들었는데.'
지금 눈앞에서 전혀 움츠러들지 않고 그와 당당히 마주하고 있는 이 젊은 청년을 누가 무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그대는 누가 잘잘못을 했는지 따지려고 온 것이오?"
"그렇다기보다는 누가 주도했는지 알려고 온 것이지요."
"이 일을 해결할 생각이 아니라?"
이정웅이 질문하자 백강휘가 고개를 저었다.
"그저 개인적으로 복수할 생각이라서요."
"지금 본인을 앞에 두고 동생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필요하다면."
이정웅이 생각했던 양상과는 전혀 다르다.
이쪽이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저쪽이 화난 상태인 것이 그가 생각하던 모습이었다.
'저쪽의 의도대로 넘어가면 안 된다.'
이정웅은 결국 무인이란 무식한 놈들일 뿐이라고 속으로 욕하면서 어떻게든 화를 가라앉혔다.
"그럴 것이라면 이곳으로 올 필요가 없었겠지.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어서 본인을 만나고자 한 것이오?"
백강휘가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있자, 이정웅의 입술이 씰룩였다.
"정말 본인의 동생을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오?"
같은 질문이었지만, 이번에는 차분한 목소리였다.
"설마 호위들을 믿고 그런 질문을 하신 것은 아니겠죠? 회주께서는 무인이란 존재를 너무 얕보는 것 같군요."
"본인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무인들을 얕본 적 없소."
"그런가요? 그럼 백씨세가는 무가(武家)가 아닌 모양이군요."
"끄응!"
무인을 얕본 적은 없지만 백씨세가에는 장난을 쳤다. 그렇다면 이정웅은 백씨세가를 무인들의 세가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 되었다.
"자꾸 말꼬리만 잡는 것 같구려. 계속 이렇게 대화할 필요가 있겠소?"
결국 이정웅이 말을 끊었다.
그 역시 백강휘처럼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말할 자신이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상인으로 몇 년을 살아왔고, 몇 명이나 만나봤는데 그런 것도 못 하겠는가.
다만 아직 어린 백강휘와 설전을 하면 자신 역시 유치해진다는 생각에 이대로 대화를 끝낼 생각이었다.
"그만 나가시오."
"그럼 잠시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이정웅의 축객령에도 백강휘는 하나의 죽지를 꺼내 그에게 건넸고, 이정웅은 잠시 망설이다가 곧 죽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으음!"
만약 이 죽지에 무슨 장난을 쳤을 거로 생각하고 다른 이에게 맡겼다면 큰일이 났을 것이다.
그만큼 죽지에 적힌 내용은 그만이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었다.
"이걸 어떻게······."
"아주 착한 협력자가 주더군요."
"······."
죽지의 안에는 이정웅의 동생인 이규가 무당과 제갈세가와의 거래에서 장난을 쳤다는 내용과 증거가 적혀 있었다.
이것이 만약 무당과 제갈세가에 넘어간다면 호북상회는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무당과 제갈세가는 백씨세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호북상회따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없앨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하오문인가.'
이런 정보력이라면 당연히 하오문과 개방이었다.
하지만 개방에서 굳이 흑사궁과 연관이 없는 호북상회의 일까지 조사할 리는 없었으니, 아마 하오문이 가졌던 정보였을 것이다.
"흑사궁과 연관이 있었다면 더 확실했을 텐데, 아쉽더군요."
"크흠!"
만약 흑사궁과 연관이 있었으면 당연히 개방은 호북상회를 조사했을 것이다.
돈을 더 벌기 위해 흑사궁과의 거래까지 손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멍청한 녀석.'
이정웅은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욕을 삼켰다.
'할 것이면 들키지나 말던가.'
그 역시도 올바른 상인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등골을 빼먹었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거래를 하도록 유도하기도 했었다.
그렇기에 이정웅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할 것이면 완벽하게, 누구도 알지 못하게 했어야만 했다.
"내가 여기서 공자를 죽이면 이 비밀이 무당에 갈 일은 없지 않겠소?"
이정웅은 하오문이 구태여 무당파나 제갈세가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당이나 제갈세가에서 이 정보를 요청하면 비싸게 팔 수 있는데, 먼저 가서 정보를 제공할 필요는 없었다.
'하오문에게 그런 의협심 같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그런 생각에 백강휘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보고 있었다.
"겨우 숨어있는 열 명을 믿고 그러는 겁니까?"
"윽!"
분위기가 변했다.
여전히 백강휘는 웃고 있는데,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마음만 먹었으면 내가 들어오는 순간 당신은 죽었습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정웅은 숨을 쉬기 위해 헐떡였지만, 그것조차 힘들었다.
'대체 왜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이냐?'
이 정도라면 그를 지키는 호위들이 나서야만 했다. 하지만 몸을 숨기고 있는 그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못 하는 것이다.
이정웅은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백강휘는 지금 이정웅을 포함하여 이 접견실 내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그의 호위들까지 압박하고 있었다.
"후우!"
이정웅은 이내 백강휘가 압박을 풀어주자 재빠르게 숨을 들이켰다.
백강휘를 보는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 자를 상대하려면 대문파의 장로급 고수가 필요하다.'
비록 그는 무공을 익히지 못했지만, 상인으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을 보는 눈을 키워왔다.
백강휘가 가만히 있을 때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오히려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백씨세가와의 거래를 바로 취소할 수는 없소."
"흠. 오래 살아서 그런가? 목숨이 그리 아깝지 않은 모양이군요."
"아무리 그래도 곧바로 이 거래를 재개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걸세."
"아무 이유도 없이 거래를 중지한 것에 대해 손가락질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두려워할 호북상회가 아니었다. 이정웅은 단지 어떻게든 이대로 백강휘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싫었을 뿐이다.
'이대로 어린 녀석에게 지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
하오문이 아니었으면 아마 백강휘는 밤에 그에게 몰래 숨어들어와서 협박했을 것이다.
하오문에게 정보를 요청한 것도 바로 그런 것이었고.
다만 화란이란 존재가 백강휘를 너무 좋게 보았기에 이런 변수가 생겨버린 것이다.
'지금의 무위를 보니 그것도 어렵지 않았겠어.'
이정웅의 계획대로였다면 백강휘가 밤에 쳐들어와서 그의 호위무사들에게 잡히고, 무당과 제갈세가의 힘을 빌려 백씨세가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이건 어떻소? 명분을 세우게 도와주시는 것이오."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이용하는 산이 있었는데, 최근 녹림의 산채 중 한 곳이 나타나 그곳을 차지했소."
"그곳을 처리해달라는 거군요. 어렵지는 않겠지만, 어째서 무당이나 제갈세가에 요청하지 않는 것입니까?"
녹림이라면 무당과 제갈세가에 요청해도 기꺼이 힘을 빌려줄 것이다.
"아시지 않소? 최근 흑사궁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흠."
녹림이 흑사궁에 속한 문파는 아니었기에 그들을 친다고 흑사궁과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흑사궁과 정의맹에 속한 작은 문파끼리의 잦은 전쟁에 신경이 쏠려있어서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제가 왜 그래야 하는 겁니까? 제게 이득이 전혀 없습니다만."
백강휘는 이미 호북상회의 약점을 잡은 상태이고, 무력으로도 호북상회를 압도하고 있었다.
굳이 그를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진실을 밝히시오. 하지만 호북상회의 모든 힘을 이용하여 백씨세가를 공격할 것이오. 설령 그대가 여기서 본인을 죽인다 하더라도."
이정웅은 그렇게 말하며 더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백강휘가 기세를 풀어 그를 압박하였음에도 이정웅은 말을 번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백씨세가라.'
백강휘가 세가에서 참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백씨세가가 클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가장 빠르게 추락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지.'
그 일에 호북상회가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의 산채가 있는 정보를 제가 머무는 객잔으로 보내주십시오."
"알겠소."
백강휘의 말에 이정웅의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녹림을 치는 것으로 호북상회는 빠른 길을 확보하게 되고, 그 도움을 이유로 백씨세가와의 거래를 재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명분도, 실리도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으음.'
하지만 그리 나쁜 거래가 아니었음에도 이정웅의 얼굴을 여전히 굳어있는 상태였다.
조금 전 백강휘가 보였던 기세를 떠올리자 그의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백씨세가, 과연 어찌해야 할지.'
이정웅은 백강휘가 나간 집무실의 문을 보면서 앞으로 백씨세가와 어떤 관계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