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6장. 보물과 혈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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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보물과 혈교 (2)
안휘성의 팔공산 근처에 있는 마을에 도착한 백강휘는 곧바로 객잔을 잡았다.
'과연 사람이 언제 올지.'
백강휘는 현재 하오문의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백강휘가 화란에게 팔공산에 대한 지도를 포함한 자료를 요청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오문이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 않을 줄이야.'
무림의 중요 정보가 아닌, 지역에 대한 정보였기에 호북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결국 화란은 하오문 안휘지부에 협력을 요청하였고, 안휘지부의 사람이 그가 있는 곳까지 찾아올 것이다.
'합비에 가는 것이 조금 더 빠르긴 하겠지만······.'
안휘 전체가 남궁세가의 영역이었지만, 남궁세가가 위치한 합비는 그야말로 남궁세가의 힘이 가장 강한 곳이었다.
그리 좋은 의도로 온 것이 아니었기에 남궁세가와 부딪치고 싶지 않았던 백강휘는 이곳으로 바로 올 수밖에 없었다.
'슬슬 오때가 된 것인가.'
팔공산에 무공이 잠들어있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한 위치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백강휘는 하루라도 빨리 하오문의 사람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만두와 청경채 볶음 하나."
"예, 알겠습니다."
객실에서 나온 백강휘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일 층으로 내려가 음식을 주문했다.
"흠?"
"오호?"
막 자리를 잡고 앉으려던 백강휘는 한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대략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은 흥미로운 눈으로 백강휘를 보다가, 이내 백강휘에게로 다가왔다.
"처음 뵙겠소. 남우기라고 하오."
남우기라고 밝힌 청년은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백강휘의 맞은편에 앉았다.
"미안한데 내가 먹던 것을 옮겨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점소이에게 부탁하고는 백강휘를 보았다.
물끄러미 백강휘를 보고 있는 것을 보니 어서 이름을 밝히라고 하는 듯 보였다.
"별로 합석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렇게 만난 것도 우연인데 너무 그러지 말고."
남우기는 여전히 시원스럽게 웃고는 점소이가 가져다준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형씨의 이름을 알려주시겠소?"
"왕평이라고 하오."
"흐음. 왕평이라. 굉장히 흔한 이름이로군. 앗, 실례했소."
백강휘는 정체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본명을 밝힐 정도로 어수룩하지도 않았다.
'왕평에게는 미안하군.'
그렇기에 왕평의 이름을 썼고,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지?'
백강휘는 점소이가 가져다준 소면을 입에 집어넣으며 남우기를 살폈다.
그의 이름이 본명이 아니라는 것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백강휘가 신경 쓰는 것은 남우기라는 이 사내가 엄청난 고수라는 점 때문이었다.
'정확한 무위는 알 수 없지만······.'
백강휘는 남우기의 무위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자와 싸워도 이길 수 없겠어.'
현재 백강휘의 수라파천공은 오 단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생에서 그가 무공을 막 배우고 나왔을 때가 삼 단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빠른 속도다.
'내가 죽기 전의 무위와 비슷해.'
백강휘는 죽기 전 오 단계에서도 끝자락, 즉 육 단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강휘가 파악한 남우기의 무위가 바로 그 정도였다.
"목적이 무엇이오?"
"목적 따위는 없소. 그저 왕 형에게 갑자기 관심이 생겨서 말이오."
그 정도로 강자가 갑자기 다가왔으니 백강휘로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우기란 이름은 들어본 적 없어.'
젊은 사내가 이렇게 강하다면, 이름쯤은 한 번 들어봤어야 했다.
하지만 전생에서도, 그리고 현생에서도 남우기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혈교의 발발 전에 죽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라면 이미 이름이 알려졌어야 해.'
남우기가 무슨 의도로 백강휘에게 다가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혈교 그 특유의 냄새는 나지 않는군.'
무림을 염탐하러 온 혈교의 고수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배제하였다.
혈교의 무공은 많은 피를 뒤집어쓸수록 성취가 빠르게 는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 정도의 고수가 혈교의 사람이라면 엄청난 혈향이 코를 괴롭혀야만 했는데, 남우기에게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그게 맛있소? 교자처럼 속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청경채와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 만 하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그저 쪄내기만 한 반죽 덩어리를 먹는 백강휘를 보며 남우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가 먹는 것 역시 그리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백강휘에 비하면 더 풍부해 보였다.
"같이 드시겠소?"
"괜찮소."
"그럼 술이라도 하시겠소?"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계속해서 백강휘가 거절하자 남우기는 아쉽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탁주 하나 주겠나?"
"예, 알겠습니다."
남우기는 싼값의 탁주를 시켜서는 혼자서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체 왜 접근한 것이오?"
"아직 어린 청년이 이 정도의 고수라면 관심이 가지 않겠소?"
"별로. 괜히 무림에서 정체를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것을 꺼려해서 말이오."
"하하. 신중한 분이었구려."
백강휘는 그런 남우기를 무시하며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는 것이오?"
"맛있게 드시오."
백강휘는 남우기에게 그리 말하고는 곧바로 객실로 향했다.
'괜히 따라온다고 하지는 않겠지?'
침상에 걸터앉은 백강휘는 남우기가 그를 따라 팔공산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떨쳐내기도 쉽지 않은 상대이니. 저 정도의 고수를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을 만났기 때문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음날부터 백강휘는 최대한 객실에서 두문불출하며 최대한 남우기가 그에게 관심을 끊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요청하셨던 팔공산에 대한 자료입니다."
그런 백강휘에게 하오문의 사람이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혹시 남우기란 자에 대해 알고 있소?"
"남우기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초절정 고수인데 하오문의 사람이 처음 듣는 이름이다.
백강휘는 그가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조사해 볼까요?"
"그럴 필요 없소."
아무리 하오문이라고 하더라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를 조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곁에서 감시하기도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나마 한동안 마주치지 않았으니 다행일지도.'
식사도 대부분 객실로 부탁했기에 계속해서 객실 안에서만 있었다. 괜히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의 관심을 끊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선은 지도부터.'
하오문도를 돌려보낸 백강휘는 곧바로 지도를 펼쳤다.
사실 다른 자료들은 백강휘에게 필요 없었다.
'어차피 이런 역사 같은 것은 필요가 없어.'
자료에는 과거 팔공산에서 일어났던 일이나, 유명 시인들이 팔공산에 대해 남긴 문구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즉, 지금의 백강휘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자료라는 말이었다.
'흠. 당시 어디서 시체가 많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으니.'
안휘에서 이 보물이 발견되었을 당시, 백강휘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있었다.
분명 무림에 큰 혼란을 가져올 보물이었지만, 그런 곳이 여럿 등장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쨌든 지도를 보면서 사람들이 자주 안 다니는 곳을 찾아볼 수밖에.'
백강휘는 지도를 보며 산의 깊숙한 곳, 그리고 인적이 없을 수밖에 없는 곳들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쉽게 알 수밖에 없어.'
그런 곳이 그렇게 오랫동안 들키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산세가 험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 아닌 곳들을 위주로 찾아야만 했다.
'아직 객잔에 있는 건가?'
객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백강휘는 멈칫하고는 창으로 다가갔다.
밖은 벌써 어두워진 상태였지만, 왠지 일 층에서 남우기가 대기하고 있을 것 같았다.
'쯧. 도주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몰래 움직여야 한다니.'
하지만 정체를 알지 못하는 남우기의 접근을 허용하고 싶지 않은 백강휘였기에 창을 열고 몸을 훌쩍 날렸다.
'제발 빨리 발견되면 좋겠군.'
잠시 객잔을 바라보던 백강휘는 곧바로 팔공산을 향해 움직였다.
경공까지 펼쳐 빠른 속도로 마을을 벗어난 백강휘는 지체하지 않고 지도에서 보았던 첫 번째 장소로 향했다.
'무슨 굴 같은 것으로 되어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수라파천공이 있던 곳처럼 절벽을 타고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입구가 무척이나 좁아 한 사람도 겨우 기어서 들어갈 정도였다고 들었다.
'음. 여기에는 없는 건가?'
아쉽게도 첫 번째 장소에서는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정보집단인 하오문이 위치를 알면 좋았으련만.'
두 번째 장소에서도 허탕을 쳤을 때는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하오문이 알고 있다면 이미 이곳은 빈 곳이 되어있었을 것이다.
하오문에서 가져갔을 수도 있고,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팔았을 수도 있었다.
"후우."
지정한 위치를 반 정도 돌았음에도 백강휘는 입구를 찾지 못했다.
'내일 다시 찾아봐야 하나?'
결국 포기하고 산에서 내려가려고 생각했을 때였다.
-스스스!
옷자락이 풀에 스치며 나는 소리가 그의 귀로 들려왔다.
백강휘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아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경공?'
무척이나 빠른 속도다. 약초를 구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무척이나 조심하게 움직이고 있어.'
누구에게 들킬세라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쪽인가?'
백강휘는 은밀하게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여긴······.'
그렇게 한참이나 이동한 백강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와봤던 장소도 아니었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만 움직였기에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아마 이곳도 포함되어 있었겠지.'
하지만 백강휘는 지도에 이곳을 표시했었을 거로 생각했다.
그만큼 이곳은 무척이나 외진 곳이었고,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저놈은······.'
그리고 백강휘에게 들켰던 사람의 옷차림을 본 백강휘가 얼굴을 구겼다.
너무나 익숙하고, 절대 잊지 못할 붉은 옷을 입고 있는 무인들이 보였다.
'혈교가 여기 있다고?'
혈교가 등장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사 년 후인 건무(建武) 십 년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설마 바뀐 것인가?'
어쩌면 백강휘의 미래가 달라진 만큼 혈교의 움직임도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잠시 했지만, 백강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혈교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정도로 그가 행동했던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혈교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일지도.'
누구도 모르게, 무척이나 은밀하게 혈교는 물밑에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준비가 오래 걸려서 등장이 늦어지는 것이다.
"흐음. 드디어 찾았나?"
그 순간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백강휘가 놀라며 고개를 돌렸고, 그를 노려보고 있는 한 쌍의 눈과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