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6장. 보물과 혈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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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보물과 혈교 (5)
"꽤나 시간이 많이 지났군. 너무 많은 보물을 구경하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던 모양이야."
밖으로 나오자 동이 트는 새벽녘이었다.
"여기를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괜찮겠나?"
"그러시죠."
안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영약이나 병기, 금은보화가 있었지만, 남궁혁은 미련이 없어보였다.
'그렇게 된 것이었나?'
분명 전생에서도 남궁혁은 이곳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비급만 챙겼으리라.
'그렇기에 보물들 중에 비급이 적은 것이었지.'
분명 남궁혁은 정, 사 구분 없이 비급을 대부분 챙겼지만, 모두 뛰어난 무공들 뿐이었다.
'즉, 그리 쓸만하지 않은 무공들은 여기에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생에서 비급이 몇 번 발견되긴 했지만,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곳에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오히려 그들은 병기나 영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미 실전된 무공을 되찾았으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겠지.'
게다가 발견된 무공들 중 마공은 없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이미 혈교에서 챙겼을 것이다.
-콰과광!
남궁혁이 검을 휘두르자 곧 그들이 이용했던 입구가 무너지는 것이 보였다.
'남궁혁은 전생에서도 이렇게 무너뜨렸고, 다시는 나올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혈교는 이곳을 다시 파냈고, 그것들을 중원 각지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보물에 대한 소문을 흘려서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 것이다.
'재미있군.'
남궁혁은 보물에 욕심이 없었기에 동굴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게다가 정체는 몰랐지만, 혈교의 계획까지 방해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혈교는 이곳을 다시 파내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럼 굳이 귀주에 갈 필요가 없어졌어.'
백강휘가 귀주로 가려고 한 이유는 바로 그곳에서 신병이라고 할 수 있는 병기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병기가 바로 남궁혁이 무너뜨린 이 동굴 속에 있는 것들이었다.
'권갑을 얻으려고 했는데, 천잠보의를 얻었어.'
백강휘는 슬쩍 천잠보의와 함께 챙긴 실을 꺼내들었다.
'이건 천잠사가 아닌 것 같은데.'
백강휘는 무의식적으로 그 실로 양손을 감았다.
'엄청나군.'
분명 실을 감았는데,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햇빛에 약간 반짝이는 정도였지만, 그 외에는 마치 맨손인 것처럼 보였다.
"엄청난 보물인가 보군."
남궁혁 역시 백강휘의 손을 보며 흥미로운 시선을 감추지 못했다.
천잠사와 재질은 다른 것 같았지만, 마치 천잠사처럼 도검을 막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로 감쌌음에도 그 느낌이 없고 마치 맨손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런 보물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도 안 된다.
이건 천잠보의와 함께 있었기에 분명 발견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말을 하지 않았겠지.'
이런 보물을 괜히 밝혔다가는 다른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백강휘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보물로 느껴졌다.
'그보다 이건 어쩔까?'
분명 아직 혈교가 이용할 보물들이 남아있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시선에는 미흡하지만, 무림인은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분명 혈교는 남아있는 보물을 이용하여 같은 작전을 펼칠 것이다.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백강휘가 다시 한 번 손을 써봤자 안에 있는 내용물까지는 어쩌지 못 할 것이다.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나오기전에 다른 것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왔어야 했지만, 혈교에 대해 생각하느라 그것을 잊고 있었다.
'내가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그는 무황성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무림의 혼란까지는 그가 신경쓸 필요 없으리라.
"아마 혈교 놈들은 이것을 이용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백서희를 무당으로 보낼 생각이었고, 그것을 남궁혁이 도와준다고 했기에 경고는 해주기로 했다.
'서희가 괜히 무당에 뼈를 묻겠다고 할까 걱정이로군.'
적당히 무공을 배우고 함께 무황성으로 가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 보물들을 중원 각지에 숨긴 후 소문을 내면 어찌되겠습니까?"
"그야 별 일이······."
"그건 구파일방 같은 대문파게만 통용되는 말이지요."
"으음."
일반 낭인들이나 백씨세가 같은 작은 세가나 문파들은 이 보물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단번에 세가의 힘이 강해질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입구를 무너뜨렸네."
"다시 파낼 수도 있고, 귀영신투 정도의 도둑이라면 다른 곳이 있을 수도 있지요."
실제로 전생에서는 이곳에 없는 보물에 대한 소문도 많았다.
그제야 남궁혁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아우의 말대로 될 가능성이 있겠어.'
남궁세가에게 필요없는 보물이라고 다른 사람도 그러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 우형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군."
"괜찮습니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정의맹과 남궁세가가 잘 대비할 것이다.
"개방에게 부탁해서 다른 곳이 있나 알아봐야겠어."
과연 개방이 알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번 창고는 사실 운이 좋아서 얻어걸린 것이지, 백강휘도 전혀 몰랐던 곳이었으니까.
'개방이나 하오문이 알아낼 수 있었으면 이미 발견되었겠지.'
백오십 년이나 발견되지 않던 곳을 곧바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가서 술 한 잔 하겠나?"
"저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요."
"그래도 이 우형과 의형제를 맺은 날인데 술이 빠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대체 언제 의형제를 맺었단 말인가.
백강휘는 어이가 없어졌지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마시면 되겠지.'
전생에서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 그래야만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되도록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는데, 남궁혁 때문에 또 술을 마시게 되었다.
"자, 가세!"
남궁혁은 호쾌하게 웃으며 백강휘에게 어깨동무를 하고는 그를 끌고가기 시작했다.
'이 창고는 분명 대단한 곳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겠지.'
남궁혁에게 끌려가면서 백강휘는 슬쩍 뒤를 보았다.
'피독주가 없었어.'
무림인들이 가장 원하는 보물은 바로 피독주다.
만독불침이란 것이 결국 전설상의 경지이고, 실제로 이룬 사람이 없다고 알려진만큼 무림인들은 독을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피독주는 그 어떠한 신병보다도 더 대단한 보물로 평가되고 있었다.
'아쉽군.'
천잠보의에 손을 감싸고 있는 실까지 얻었음에도 백강휘는 피독주를 구하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단순히 백서희의 검술을 원했고, 더 큰 보물을 얻었음에도 욕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갖고 싶던 것이 있었나?"
"아무것도요."
그의 시선을 눈치 챈 남궁혁이 묻자 백강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서 가세!"
어느새 백강휘의 어깨에서 손을 뺀 남궁혁이 경공을 펼쳤다.
'분명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 남궁혁의 뒤를 따라가며 백강휘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기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남궁혁과 친분을 쌓은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 힘들군.'
백강휘는 의협심으로 똘똘 뭉친 남궁혁이 불편했다.
그와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 들게!"
처음 만났던 객잔에 도착한 남궁혁은 곧바로 여러 요리와 값비싼 술을 시켰다.
얼마 전에 싸구려 탁주를 마시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을 보면, 백강휘와 의형제가 된 것이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그렇게 백강휘는 남궁혁 때문에 아침부터 밤이 될 때까지 술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걸세."
다음 날, 떠나려는 백강휘에게 남궁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그럼 후에 뵙겠습니다."
백강휘는 오른 주먹을 왼손으로 감싸는 공수례를 보이고는 남궁혁과 헤어졌다.
"오라버니!"
세가로 돌아온 백강휘는 곧바로 남우혜의 거처로 향했다.
"잘 있었느냐? 선물을 가져왔단다."
백강휘는 안휘에서 얻은 검과 오면서 산 장신구를 백서희에게 건네주었다.
"와, 엄청 예뻐요."
"굳이 제 것까지······."
남우혜는 자신의 것까지 사온 백강휘를 보며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확실히 무가의 딸이긴 한가봅니다."
백강휘의 말에 남우혜는 쓴웃음을 지으며 백서희를 보았다.
화려한 장신구보다 검을 보며 더 좋아하는 딸을 보니 복잡한 심경이 된 것이다.
"그저 좋은 집의 사람과 혼인을 해서 편안히 살기를 바랐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네요."
"······."
설마 남우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백강휘는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그건 단순히 제 욕심이지요."
"죄송합니다."
"공자께서 죄송할 것은 없습니다. 무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이것 또한 운명이겠지요."
남우혜는 백강휘를 향해 웃어보였다. 하지만 백강휘는 그녀의 미소가 무척이나 처연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내 방으로 오거라.]
백강휘의 전음에 검을 보며 기뻐하던 백서희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랜만에 왔는데 차라도 들지 않고요."
"아직 가주께 보고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
백강휘의 말에 남우혜가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세가에 복귀하자마자 그녀의 거처로 올지 몰랐던 탓이다.
"어서 가보세요."
"예. 나중에 뵙겠습니다."
남우혜의 거처를 나온 백강휘가 향한 곳은 가주전이 아니라 그의 거처였다.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거처 뒤 공터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우일향과 해령이 그를 발견하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먹어라."
"예?"
우일향은 다짜고짜 백강휘가 내미는 목함을 받아들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 제가 먹어도 됩니까?"
슬쩍 목함을 열었더니, 청량한 향이 그의 코를 간질였다.
"이 귀한 것을 어찌 저같은 놈에게······."
"더 있으니 신경 쓰지 말고 먹어. 네 것도 있으니 그런 표정 안 지어도 된다."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일향과, 그런 그를 부럽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해령.
해령은 백강휘의 이어지는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 글은 읽을 수 있겠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럼 이걸 익혀라."
백강휘는 염화마공의 비급을 해령에게 건넸다.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어.'
이지를 상실하지 않는 마공이었지만, 혹시나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으니 백강휘가 먼저 비급을 살펴보았다.
'정말 마교의 사람이 만들었거나 익혔기에 마공이라 불리는 것 같다.'
안휘로 왔다갔다 하며 그는 염화마공을 계속해서 살펴보았고,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는 무공이란 것을 깨달았다.
마공이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그런 무공이었다.
"이제 슬슬 내공심법을 익혀도 되겠지."
그리고 해령의 신체가 어느정도 단련이 되었다고 깨달았기에 백강휘는 염화마공을 그에게 건네준 것이다.
"모르는 글자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말고 우일향에게 물어보도록."
"알겠습니다!"
기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백강휘는 그제야 가주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연 녹가장은 어찌 되었으려나.'
가주인 백연호와 소가주인 백자후의 능력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했을지 기대가 되었기 때문인지, 가주전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워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