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10장. 흑호오제(黑虎五弟)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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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흑호오제(黑虎五弟) (2)
사중일은 사람들을 화산의 절경이 보이는 정자로 안내했다.
"그런데 어째서 흑호문과 싸우게 된 것입니까?"
"그건, 단순한 시비였소."
남궁혁의 질문에 사중일은 어물쩍거리며 대답했다.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중일을 보며 남궁혁은 화산파의 제자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흑호문의 사람이 화산의 영역에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비를 걸었고, 그로 인하여 몇 죽었겠어.'
백강휘의 생각처럼 화산파 제자들은 그들의 영역에 들어온 흑호문에게 시비를 걸었고, 그것이 점점 커져 이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서 싸우냐는 것이오."
사중일은 그것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그의 의도대로 누가 먼저 잘못한 것인지에 관해 더는 묻지 않았다.
지금 그들은 화산파와 흑호문의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화산의 험준한 산맥을 이용하여 이곳에서 적들과 싸울 것인지, 아니면 흑호문이 있는 곳에서 싸울 것인지 정해야만 했다.
"장문인께서는 이미 정하신 것 같소."
"그렇소. 이미 흑호문 대부분의 무인들이 이곳을 향해 움직이고 있으니, 그들을 맞이할 생각이오."
흑호문은 섬서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지금 움직인다고 해봤자 결국 비어있는 곳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겠소. 흑호문의 문도들은 무섭지 않소."
하지만 흑호오제와 싸울 고수가 화산파에는 부족했다.
그렇기에 사중일은 태허 진인과 남궁혁의 지원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종남파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이리 걱정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같은 구파 중 하나인 종남파 역시 섬서에 있었기에 화산파를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다.
하지만 종남파가 움직이면 흑사궁에서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되면 결국 정사대전이 벌어지겠지.'
백강휘의 생각처럼 큰 문파들이 계속 부딪친다면 최후에는 정의맹과 흑사궁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태허 진인과 남궁혁이 왔다면 흑사궁에서도 고수를 보냈을 텐데.'
비록 그 수가 많지 않지만, 검왕과 제왕검이 움직였다.
흑사궁이 이들의 움직임을 주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분명 이들이 화산에 당도한 것을 알았으리라.
"어떻게든 이쪽이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야 하오."
사중일의 말에 태허 진인과 남궁혁도 고민에 잠겼다.
셋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들의 귀로 파고든 것은 백강휘의 목소리였다.
"가장 간단한 것은 함정이지요."
"으음. 함정이라."
함정이라는 말에 셋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파의 사람들답게 함정은 무조건 비겁하다고 생각하여 거부감이 든 것이다.
하지만 백강휘는 정파 출신이지만, 낭인으로 오랫동안 활동했기 때문인지 함정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이쪽에는 당가의 독이 있죠."
"으음."
남궁혁도 이런 전투에서 독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군이 휘말리지 않게 잘 써야 했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함정이라면 아군이 휘말릴 일도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화산파의 안위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비겁한 짓도 서슴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의 놀이가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일이었기에 어떤 비겁한 수를 쓰더라도 피해를 줄여야만 했다.
"백 소협의 말대로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소."
사중일이 백강휘의 말에 수긍했다.
"하지만 당 소저가 가지고 있는 독이 무한한 것은 아닐세.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길 역시 하나가 아니지."
"그렇다면 여러 곳에 함정을 준비해야겠죠. 독 같은 경우는 누구를 노리냐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흑호오제가 한 곳으로 온다면 그곳에 독을 풀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잘 골라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흑호오제 중 한 명을 확실히 죽일 것인지, 아니면 무인들이 많은 곳을 노릴 것인지 준비해야겠군."
남궁혁이 그리 말하며 사중일을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바로 정자에서 내려가며 제자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흑호문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확실히 정파의 생각과는 달라.'
남궁혁은 화산의 절경을 보는 백강휘의 뒷모습을 보았다.
백강휘는 분명 정파의 사람이기에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생각 자체가 정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사파와도 달라.'
그렇다고 사파의 사람들처럼 비겁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낭인처럼.'
최대한 조심하면서도 이기적이고, 어떻게든 이기기 위한 방법을 생각한다. 마치 낭인들과 같은 모습이다.
'그런 성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정파의 사람이라면 좀 더 올곧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남궁혁은 백강휘를 자신이 잘 이끌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 * *
흑호문이 회음현 근처에 당도했다는 소식이 도착한 것은 백강휘 일행이 화산에 도착하고 칠 주야가 지난 후였다.
"그들이 곧바로 화산에 오르고 있소."
"그렇다면 슬슬 준비해야겠군요."
"현재 그들은 이곳으로······."
사중일은 화산이 그려진 지도를 펼쳐 흑호문이 움직이는 방향들을 표시했다.
"그래서 본인은 이곳에 독을 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오."
사중일의 말에 다른 이들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흑호오제는 다섯이 각자 비슷한 수의 무인들을 이끌고 다섯 방향에서 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디에 독을 풀어도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가장 문제라면 그곳에서도 오왕이 움직였다는 것이겠죠."
"으음. 설마 혈로도왕(血路刀王)이 왔을 줄이야."
혈로도왕(血路刀王).
피로 물든 길을 만든다는, 태허 진인과 같은 오왕으로 꼽히는 흑사궁의 고수다.
태허 진인이 움직였다는 것 때문인지 결국 흑사궁에서도 오왕 중 한 명을 흑호문에 보낸 것이다.
"남궁 소협과 백 소협이 한 명씩 맡아야겠소."
사중일은 그렇게 말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화산파 장로중에도 고수들은 있었지만, 그들 역시 제자들을 이끌어야만 했다.
고수의 수가 충분한 것이 아니었기에 흑호오제 중 두 명을 남궁혁과 백강휘가 맡아줘야만 했다.
"괜찮겠나?"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백강휘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그럼 슬슬 움직이도록 하세. 도왕이 움직이는 곳은 이곳이니 빈도가 장문인과 함께 이곳으로 가겠네."
"그럼 제가 이곳으로 가고, 아우가 이곳을 맡아야겠군요."
태허 진인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하자, 남궁혁 역시 두 개의 장소를 턱턱 짚으며 대답했다.
"잘 부탁하오."
사중일은 남궁혁과 백강휘에게 그리 말하고는 곧바로 태허 진인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화산의 무인들을 향해 외쳤다.
"자, 가자! 너희들의 손으로 화산파를 지켜라!"
"와아아아!"
그리 길지 않은, 짧은 말이었지만 화산파 제자들의 사기는 높았다.
그것은 분명 태극검왕과 제왕검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백소협, 슬슬 준비해야 하오."
"종 소협이 함께 가는 것이오?"
"아무래도 제자들을 통솔할 사람이 있어야 하니 말이오."
백강휘와 함께 갈 사람은 바로 화산파의 장문제자이자 십이신룡 중 한 명인 종일원이었다.
백강휘와 함께 하는 화산파 제자들을 통솔할 사람으로 종일원이 선택된 것이다.
두 사람은 화산의 제자들을 이끌고 그들이 맡기로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우선 이 근처에서 몸을 숨기시오. 그리고 그들이 함정에 당황한 순간에 기습할 것이오."
백강휘는 준비한 함정 근처에 도착하자 곧바로 종일원에게 말했고, 종일원과 화산파 제자들은 서둘러 몸을 숨겼다.
그리고 백강휘 역시 몸을 숨기고는 가만히 올라오는 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는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지겨워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을 때쯤, 백강휘는 이곳으로 오는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백강휘가 곧바로 종일원에게 신호를 주자, 종일원과 화산파 제자들이 바짝 긴장하며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터벅, 터벅!
그리고 잠시 후, 백 명이 넘는 무인들이 산길을 따라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대장로님, 이곳에서 슬슬 정찰을 해야 합니다."
흑호문의 대장로는 부하의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껏 계속하면서 오지 않았더냐? 이미 네놈 때문에 지체된 시간이 길 거늘."
산세가 조금만 험해지면 부하는 계속 이렇게 무인을 보내 적의 함정이나 기습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한두 번 정도야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그것이 계속되니 대장로도 슬슬 그것이 지겨워졌다.
"하지만······."
"흥.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겁쟁이들이다. 조금만 더 가면 그놈들의 소굴에 당도하니 이번에는 넘어가도록 하지."
대장로는 그리 말하며 앞장서서 걷다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네놈 말대로 이곳에 쥐새끼들이 있구나."
대장로는 옆에서 걷고 있는 부하의 검을 뽑아 들고는 곧바로 화산파의 제자들이 숨어있는 곳을 향해 던졌다.
-쉬이익!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검을 보며 그 대상이 된 화산파의 제자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챙!
"쯧! 감이 좋군."
백강휘가 화산파 제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 검을 쳐내고는 말했다.
"움직이시오!"
"쳐라!"
백강휘의 말을 들은 종일원이 외쳤고, 화산파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내 흑호문의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이 함정이 걸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습격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대장로가 그들의 기척을 느끼며 계획이 무산되었다.
"호오."
갑작스럽게 무인들이 엉키며 싸우기 시작했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이 있었다.
대장로는 자신의 검을 가볍게 막아낸 백강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놈, 이름이 무엇이냐?"
"먼저 말하는 것이 어때?"
"어린놈이 건방지구나. 이몸이 바로 흑호오제의 셋째, 삼호(三虎)시다."
비록 흑호오제는 피를 나눈 친형제가 아니었지만, 더욱 돈독해지자며 모두 이름을 버렸다.
그들은 일호(一虎)부터 오호(五虎)라며 서로를 칭했으며, 삼호라면 그들의 셋째라는 말이었다.
"백강휘다."
"네놈이 바로 그놈이었구나."
삼호는 상대가 제왕검 남궁혁이나 자하검군 사중일이 아니란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백강휘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에 혀로 입술을 적시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어중이떠중이들이 오는 것보단 낫겠지."
삼호는 히죽 웃으며 두 개의 도끼[斧]를 양손으로 꺼내 들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삼호와 백강휘는 곧바로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쾅!
삼호의 도끼와 백강휘의 일권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서로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꽤 하는구나."
서로 밀려났지만, 삼호는 백강휘가 좀 더 밀려났다는 사실에 만족한 듯 웃었다.
'무식한 힘이군.'
거력패도만큼 덩치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삼호의 힘은 그보다 더했다.
'저 녀석, 맨손이 아니로구나.'
삼호는 백강휘의 손이 햇빛에 비치며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단숨에 녀석을 쪼갤 생각이었기에 강기까지 머금은 그의 도끼를 막아냈다.
맨손이었다면 아무리 강기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었는데, 백강휘의 손은 멀쩡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한 번 볼까?'
삼호는 백강휘를 향해 달려들어 도끼를 휘둘렀다.
백강휘는 그런 삼호의 저돌적인 공격을 몸을 틀며 피해냈다.
-후웅!
아래로 내려쳐 지던 삼호의 도끼는 도중에 급작스럽게 방향을 틀어 횡으로 그어졌다.
시퍼런 강기를 머금은 도끼의 날이 백강휘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