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11장. 정의맹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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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정의맹 (4)
"잘 부탁하네."
"결국 원하시는 대로 되었군요."
백강휘와 남궁혁은 정의맹주 홍문의 개인 연무장에서 마주서고 있었다.
정의맹주의 개인 연무장인 만큼 지켜보는 이들은 매우 적었다.
"진인께서도 관심이 있나보오."
"맹주께서도 말이오."
지켜보는 사람들은 단 네 명. 정의맹주 홍문과 태허진인, 그리고 남궁설과 왕평이었다.
'그나저나 살막의 살수라.'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숨어든 왕평이 괘씸했지만, 그 덕분에 숨어들 수 있는 장소들도 알아낼 수 있었다.
조금 더 취조하고 싶었지만, 백강휘를 보고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서로 최대한 죽이지 않게 노력해보게."
홍문은 왕평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남궁혁과 백강휘를 향해 말했다.
"진검을 들어도 되겠지? 자네에겐 그것들이 있으니 말일세."
"괜찮습니다."
백강휘의 대답에 남궁혁은 씩 웃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확실히 위압감이 대단하군.'
검을 뽑자마자 남궁혁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에 백강휘는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고 느꼈다.
"시작하게!"
백강휘가 굳은 얼굴로 자세를 잡자 곧바로 홍문이 외쳤고, 동시에 백강휘가 남궁혁에게로 달려들었다.
-쾅!
백강휘가 일권을 내뻗자 남궁혁이 검면으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으음.'
땅이 움푹 패일 정도로 강하게 진각을 밟은 백강휘였기에 그 위력이 만만치 않았다.
검을 통하여 느껴지는 백강휘의 힘에 남궁혁은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더 대단하군.'
남궁혁 역시 제왕검형을 익히면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백강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강해진 백강휘 덕분에 남궁혁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후웅!
남궁혁이 곧바로 검을 펼치자 백강휘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남궁혁이 검을 회수하는 것을 보자마자 그에게 파고들었다.
남궁혁은 백강휘가 파고드는 것을 보며 손을 움직였고, 곧 회수되던 그의 검이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더니 백강휘를 향해 찔러졌다.
-깡!
백강휘는 갑작스러운 남궁혁의 공격에 결국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멈추고는 방어를 해야만 했다.
'무겁군.'
급격하게 방향을 바꿔 공격한 것임에도, 백강휘는 남궁혁의 검이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그의 무위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그 공격에 몸이 밀려났을 것이다.
"잘 막는군."
남궁혁 역시 전혀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전진하는 백강휘를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것도 막아보게."
남궁혁은 검을 치켜들고는, 곧바로 백강휘를 향해 내려쳤다.
일전에도 겪었던 남궁세가의 중검이었다.
"흐읍!"
천천히 내려쳐지는 남궁혁의 검이 마치 태산처럼 거대하게 보였다.
백강휘는 그의 몸을 묶고 있는 남궁혁의 기세를 떨쳐내려 했지만, 그것이 쉽지 않았다.
'이것이 제왕검형인가?'
일전에 안휘에서 경험했던 기세와는 달랐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그 기세를 풀어냈지만, 지금은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깡!
당장에라도 백강휘의 머리를 둘로 쪼갤 것만 같던 남궁혁의 검은 백강휘의 이마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으음!"
물론 백강휘를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의 의지로 검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무엇인가에 가로막힌 검을 보던 남궁혁은 곧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잘 다루는 군."
"생각보다 어렵지만 말이죠."
남궁혁의 검을 막아낸 실은 백강휘의 왼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백강휘가 왼손의 실을 풀고 내력으로 빳빳하게 만들어 남궁혁의 검을 막아낸 것이다.
'섬세하게 다루는 것은 역시 어려워.'
수라파천공은 무척이나 패도적인 기운이었기에, 지금처럼 섬세하게 다루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흑호오제와 싸웠을 때, 이 실이 상당히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다루는 법을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덕분에 더 빠르게 실을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일전에 일호의 공격을 막기 위해 그물을 만들었을 때는 꽤 오랜 시간을 준비했어야 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빠르게 그물을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번에는 그 실까지 같이 끊어주겠네."
남궁혁이 다시 한번 백강휘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백강휘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후웅!
제왕검형은 검을 휘두르기 시작할 때 상대의 몸을 묶는다.
'검이 휘둘러지기 전에, 검의 목표가 되기 전에 움직이면 된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남궁혁의 검술을 계속해서 봐왔던 백강휘였다.
그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그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소."
"제왕검을 상대로 엇비슷하게 싸울 정도였을 줄이야."
홍문과 태허 진인은 흥미로운 눈으로 둘의 비무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단순히 경지만 따지자면 백강휘보다 남궁혁이 더 높다.
하지만 백강휘는 전생의 기억이 있었기에 현재의 남궁혁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유리하게 싸움을 이끌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제왕검의 공격을 예측하고 있는 것 같소"
가장 중요한 것은 남궁혁의 작은 움직임을 보고 그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설마 그렇겠소? 단순히 몇 번 검을 부딪친 것으로 남궁세가의 검을 파악하기는 힘들 것이오."
홍문과 태허 진인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백강휘는 남궁혁과 계속 부딪치면서 남궁세가의 검을 머릿속에 새기고 있었다.
'오라버니와 저렇게 싸울 수 있다니.'
남궁설 역시 두 사람의 대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백강휘가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남궁혁과 엇비슷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것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피해?'
당황스러운 것은 남궁혁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보여주지 않았던 초식마저 머릿속으로 그려나가고 있으니, 그가 처음 펼치는 초식에도 곧바로 대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공격 방법을 바꿔야겠군.'
백강휘가 빠르게 움직이며 중검을 파훼했다면, 그에 맞춰서 검의 속도도 바꿔야만 했다.
'이 상황에서 천풍검법을?'
세가의 가장 기본적인 검법인 천풍검법은 쾌검에 속했다.
남궁세가 검술의 오의인 제왕검형이 아니라 천풍검법을 사용하는 남궁혁을 보는 남궁설의 눈이 반짝였다.
"으음."
갑작스럽게 중검이 아니라 쾌검을 사용하는 남궁혁을 보며 백강휘가 눈쌀을 찌푸렸다.
-쉬익!
중검을 사용할 때와 달리 남궁혁의 반격이 매섭게 느껴졌다.
백강휘는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남궁혁의 검을 보지도 않고 곧바로 남궁혁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쉭!
하지만 남궁혁은 그 움직임에 반응하였고, 그의 검이 하나의 섬광이 되어 백강휘를 향해 움직였다.
-깡!
백강휘는 남궁혁의 검을 위로 쳐내고는 곧바로 자세가 무너진 그를 향해 일장을 내지르려고 했다.
"읏!"
하지만 자세가 무너졌음에도 웃고 있는 남궁혁이 보였고, 그제야 백강휘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걸렸군."
백강휘가 검을 위로 쳐냈기에 남궁혁의 검은 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백강휘를 향해 남궁혁은 강한 힘으로 검을 내려친 것이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전환이 빨랐어.'
쾌검을 사용하다가 순식간에 중검으로 바꾸었다.
"중검에 익숙해지면 쾌검을 잊기 마련이거늘."
남궁혁은 중검도 잘 다루었지만, 홍문과 태허 진인마저 놀랄 정도로 쾌검도 잘 다루었다.
그리고 쾌검에서 중검으로의 전환은 백강휘마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후웅!
제왕검형의 기세에 다시 묶인 백강휘를 향해 남궁혁의 검이 내려쳐졌다.
"끝난 것 같소."
"저 녀석도 대단했지만, 역시 제왕검을 이기긴 부족했나 보오."
태허 진인과 홍문은 남궁혁의 승리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은 안 될 걸세."
실제로 남궁혁이 휘두른 검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기에, 실로는 막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응이 늦은 것도 있었지만, 아직 실을 제대로 다룰 정도로 그가 수라파천공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패도적인 기운으로······.'
섬세하게 다루지 못 한다면, 패도적으로 다루면 된다.
-우웅!
백강휘가 수라파천공의 기운을 맹렬히 회전시켰다.
곧 그의 몸 안에서부터 발출되는 수라파천공의 기운이 거대한 태풍이 되어 그의 몸을 묶고 있는 남궁혁의 기운을 깨뜨려버렸다.
"크윽!"
남궁혁은 제왕검형이 깨진 것을 느꼈지만, 검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태풍과도 같은 기세가 백강휘로부터 흘러나오자 홍문과 태허 진인의 눈이 커졌다.
강한 두 기운이 부딪친다면 두 사람이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다.
-쾅!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고, 남궁혁과 백강휘의 공격은 어느새 끼어든 홍문과 태허 진인에게 막혀버렸다.
"이제 그만하는 것이 좋겠네. 두 사람 다 너무 흥분했네."
자신의 공격을 부드럽게 받아낸 태허 진인이 말하자, 남궁혁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아직 그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 같군."
홍문은 백강휘의 기세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백강휘는 현재 풀려버린 수라파천공의 기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흐읍!"
홍문이 기세를 억눌러준 덕분에, 백강휘는 그제야 수라파천공을 다시 잠재울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닐세."
백강휘는 폭주해버린 수라파천공의 기운을 억눌러버린 홍문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엄청나군.'
홍문 역시 백강휘의 기운에 놀란 상태였다.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폭주하는 그 기운들을 억누르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큰 도움이 되었어.'
남궁혁의 억지 때문에 시작한 비무였지만, 백강휘는 얻은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방금 백강휘가 펼치려고 한 것이 바로 수라파천공 육 단계로 넘어가야 익힐 수 있는 기공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조금 더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백강휘는 이 비무 덕분에 수라파천공의 육 단계에 오르기 위한 길이 보인 기분이었다.
"자, 그럼 이제 본인과 싸워보겠나?"
객실로 돌아가서 좀 더 생각하고 싶었는데, 홍문이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백강휘에게 말했다.
"맹주, 아무리 그래도······."
"하하, 농담이라네!"
태허 진인의 만류에 홍문이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의 눈에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자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만, 먼저 좀 가보겠습니다."
백강휘는 조급한 마음이었다. 육 단계에 오를 수 있는 길이 보였으니 지금 당장 이것에 대해서 정리하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백 소협이 급한가 보군. 어서 가보게."
그나마 태허 진인이 백강휘의 현재 상태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백강휘가 곧바로 거처로 돌아가버리자 홍문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재밌었나?"
"예. 재밌었습니다."
"그거 다행이로군."
또래에서 그와 비슷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 없었기에 남궁혁은 그동안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 백강휘란 존재에게 이렇게 매달리는 것이다.
"나도 그 재미를 좀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맹주, 자꾸 그러면 추해진다오. 그리고 맹주가 하면 비무가 아니라 괴롭힘이 되는 것이오."
"후우. 알겠소."
태허 진인의 잔소리가 심해질 것처럼 보이자 홍문이 손을 들며 그의 입을 막았다.
"그래서, 자네들 언제 돌아갈 것인가? 오늘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데, 한 번 본인과 점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전혀 수긍하지 않은 듯, 홍문은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나도 아우에게 이러했던 건가.'
그런 홍문을 보며 남궁혁은 왠지 자신이 지금까지 백강휘에게 무척이나 못할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