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14화. 수도 소피아로! (3)
“형! 아직도 삐져있어요?”
“아니! 어떻게 날 잊고 그렇게 늦을 수가 있어?”
그날, 뒤늦게서야 타몬트에게 도착한 일행들, 타몬트는 계속, 섭섭하다고 저 상태였다.
“릴리스를 빨리 완성해서 조금 더 챙겨드릴게요!”
“역시! 루시안이야.”
루시안이 릴리스로 협상을 시도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그 모습을본 라펠라는 어이가 없었다.
“야! 우리가 잠깐 너를 잊긴 했지만 사람 구하느라 바빴다고!”
“와! 잊었다는 말을 정말 대놓고! 자연스럽게!”
“형의 도발 실력이 그만큼일 줄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예상 밖의 실력입니다.”
몬스터가 미워하는 남자 타몬트를 발터가 치켜세웠다.
“에헴, 내가 이런 남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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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기, 오크들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뒤늦게, 달려온 주둔군 병력들이 오크 집결지로 몰려든다.
“자네들인가? 여기 오크를 처리한 이들이?”
주둔군 병력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말을 걸어온다. 일전에 왔던 칼이란 남자가 아니다.
“소란이 생겨 나왔다가, 그리되었습니다.”
“이거 참! 도움 고맙네. 안 그래도 성 밖이 뒤숭숭한데, 성안이 이리 잘 마무리되었다니!”
허리춤에 두 개의 검을 찬, 날렵한 인상의 사내가 고맙다고 말을 해왔다.
“하하! 이거 참, 내 소개가 늦었군? 난 주둔군 부대장 테오 라카르라고 한다네”
루시안이 타몬트에게 눈짓을 했다. 금패 용병이 나서는 게 급이 맞아 보였기 때문이다.
“저는 금패 용병 타몬트 자이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일행들입니다.”
“그렇군. 다시 한번 자네들의 활약에 감사를 표하네. 성 밖이 소란스러워 급히 자리를 떠야 하니 이해 바라네!”
테오는 대장 오크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박살 난 머리를 잘라, 병사에게 넘겼다. 병사는 그것을 대충, 창에다가 꽂았다. 그리고는 병력을 돌려 성문으로 향했다.
“우리도 가봐야 할까요?”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 성안 오크가 정리되어 병력 분산도 없을 테고.”
“혹시, 모르니까 제가 정찰을 다녀올게요.”
발터가 지치지도 않는지 씩씩하게 대답한다.
“살짝, 둘러만 보고 돌아와 발터! 애쓰지 말고.”
루시안이 걱정되는지 발터를 쳐다본다.
“야! 별일 있겠냐? 네 말대로 살짝 보고만 올거야!”
“우리는 공방으로 가 있자. 지금 여관도 정신없을 테니까. 조용한 곳은 공방뿐일 거야!”
“누나 말대로 하자. 발터는 둘러보고 공방으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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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를 제외한 일행이 공방 여기저기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발터가 생각 보다 늦는데? 하아아암!”
발터가 생각보다 늦어지자 타몬트가 걱정하기 시작했다. 루시안도 걱정이 되는지, 보던 책을 덮고는 창문을 바라본다.
그때, 공방 문을 두드리며, 예상밖의 인물이 찾아왔다.
“하하! 이거 다시 보는군?”
네칸 항구 주둔군 참모 이르 자라함이었다.
“여기는 어떻게 찾아오셨는지?”
루시안이 의문을 표했고 이를 풀어준 것은 다름 아닌 발터였다.
“루시안! 내가 설명할게.”
뒤에서 발터가 걸어 들어온다. 귀족이랑 같이 움직여서 그런지, 위축된 모습이다. 발터의 말에 의하면 성문 밖의 상황을 살피러 갔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찍혀 실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만난 게 이르였고. 구해준 게 테오 부대장이었다고 한다.
테오 부대장의 합류로 수월히 성 밖의 오크를 몰아냈다. 주둔군의 대장 칼은, 성안에서활약했다는 이들을 보고자 했고, 그렇게 현재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발터! 많이 피곤했나 보다?”
루시안이 슬쩍 발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이긴 하다. 병사한테 들켜서 실랑이가 있었다니.
“하하하! 그러게?”
발터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는다.
“크흠! 내가 온게 영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네만?”
자신을 그리 반기지 않는 다는 걸 눈치챈 이르가 물어온다. 살짝, 빈정 상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루시안이 나서서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오신 게 뜻밖이라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크는 완전히 정리된 것입니까?”
“큼큼. 테오 부대장님의 이야기와 오크의 움직임을 보아하니, 지휘하던 오크가 성문 안쪽에서 시간을 끌면서 시선을 돌리고 성문을 열려고 했었나 보더군. 성안에서 정리가 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지. 다 자네들 덕분일세!”
“다, 주둔군이 잘 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덕분이라는 건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그나저나, 낮에 보았던 자네와 확실히 다르군! 금패 용병 옆에서 위축되지도, 내 앞에서도 위축되지도 않아! 무언가 비밀이 많은 친구로 보이는군? 아무튼, 어서들 가세나, 하인을 보낼까 하다가 내가 직접 온 걸세. 칼 대장님이 기다리고 계실걸세!”
그렇게, 자기 할 말만 늘어놓고는 몸을 돌려 공방을 나가버린다. 일행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따라나선다.
타몬트가 루시안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네가 대장이라는 게 티가 많이 났나 봐?”
“너무 나섰어요. 귀찮아지겠는데요. 이거.”
루시안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눈에 훤한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라펠라는 발터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라고 해주었다.
“네가 끌고 오지 않았어도, 타몬트가 이름을 부대장에게 밝혔잖아?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어. 너 그렇게 축 처져 있으면 루시안한테 혼날걸?”
지휘소는 꽤 컸다. 주둔군들은 경비대들과 힘을 합쳐 성안의 시체를 한데 모으고, 성문을 보수하고 오크의 시체를 치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장님! 이르입니다. 그들을 데려왔습니다.”
“하하 자네들이었군? 금패 용병의 이름을 말하길래 자네들을 떠올리긴 했지만, 그런 활약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네. 어서들 앉게나!”
일행이 자리에 앉자 곧장 차가 내어진다. 뒤이어, 테오 부대장도 자리에 함께했다.
“테오도 불렀다네. 자네들의 활약에 생생히 증언할 증인이 아닌가?”
“대장! 증언하고 말고 할 게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보니, 끝나있었습니다. 제가 들고 온 오크의 목도 성문에 걸려 있지 않습니까? 제가 한 일은 목이나 잘라 가져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머리를 보고 오크들이 기가 확 죽질 않았나? 덕분에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었지. 자네의 공이야! 크하하. 왕도에 보낼 승전보에자네의 공도 적을 걸세!”
“여기 있는 용병의 일행들의 공이 크니 잘 챙겨주셔야 합니다. 주민들의 감사 인사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래그래. 이거 원 우리끼리 너무 떠들었군?”
한참 동안, 테오 부대장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루시안 일행은 뒷전이었다. 칼은 멋쩍어하며 말을 이어갔다.
“자네들의 활약이 궁금하네. 들려주겠나?”
루시안이 타몬트의 허리를 찔렀다. 타몬트가 당황하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게 그러니까, 어, 저희가 그, 여관에서 있다가 말입니다. 그….”
“허허, 금패 용병이나 되는 자가 이리도 떨다니! 실력은 뛰어나나 말재주는 부족한 친구로군?”
이르의 눈이 타몬트를 째려본다. 말 좀 더듬었다고 죽일 기세다.
“그렇지, 옆에 자네! 자네가 이야기해 보게나. 아까 말을 그렇게 잘하더군? 그러고 보니, 용병 일행의 이름도 모르고 있네만?”
“저는 은패 용병 라펠라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요.”
라펠라가 찻잔을 내려놓고는,타몬트를 째려본 다음 이르의 말을 받았다. 타몬트는 찔끔했다.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는 연금술사인 루시안이고, 이쪽은 사냥꾼 발터라고 합니다. 둘 다 발테리안 마을 출신입니다.”
“호오? 오크에게 구애받았던 사람이 은패 용병이었군? 이거, 놀랍군!”
이르의 눈매가 무언가 수상하다는 듯이 좁혀진다.
“사람마다 각자 사정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르님!”
라펠라가 지긋이 이르를 바라본다.
“허허. 이보게 이르! 낮에도 그러더니 또 그러는 건가? 활약을 한 자들을 불러다 이야기를 들어 공을 논하고자 하는 자리이지. 그들을 취조하는 자리가 아닐세!”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자 칼이 나서 이르를 제지한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사실 가장 수상한 자와는 말을 섞기가 힘듭니다. 하하”
이르가 루시안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인다. 루시안은 모른 척, 조용히 차를 음미할 뿐이었다. 라펠라는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이거, 자네들의 실력이 굉장히 뛰어났었군? 그래서, 힘을 보태니 그런 이야기를 한 거였어! 그래, 네칸에는 얼마나 머무는가?”
“계획상 5일가량 머물며 쉬다가, 수도를 거쳐 마을로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수도로 간다라. 그렇다면 어찌 갈 계획인지 물어도 되겠는가?”
“이동 마법진을 이용할 계획입니다.”
칼이 이동마법진이란 소리에 표정이 싹 바뀐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보이는 얼굴이다.
“그래? 하긴, 그게 가장 편한 길이지. 내 자네들의 활약에 감사를 표하는 마음으로 하나 부탁을 함세.”
감사를 표한다면서 부탁이라니. 일행들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의아해할 거 없다네! 전령과 같이 수도로가는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게 해주겠네. 대신! 수도로 가서 여왕 폐하를 알현하게나. 자네들의 공은 여왕 폐하께 자세히 보고드릴걸세. 겸사겸사, 전령도 보호해주고 말일세! 크하하”
귀찮은 일에 루시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예상했던, 그 귀찮은 일이 생겨버렸다. 라펠라는 불편해하는 루시안을 보고는 급히 말을 했다.
“저희의 공을 높이 사주신 점에는 감사를 드리나, 굳이 드러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칼 대장님.”
“이거, 겸손한 사람들이군? 범죄자도 아니고 뭐, 걸릴 것이 있겠는가? 수도로 가서, 공을 널리 알리고 명수도 높이게나. 용병은 명성으로 먹고살지 않는가?”
호탕하게 웃는 칼은,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라펠라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일행이 돌아간 막사 안.
“이르! 표정 좀 풀게나, 그리도 수상해 보이던가?”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데 알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 루시안이란 자가 가장 수상합니다. 흠”
“자네의 그 의심하는 성격 탓에 내가 늘 편하다지만, 오늘은 참게나. 네칸 항구를 위해 활약한 이들이 아닌가 말일세!”
“알겠습니다, 대장님”
이르의 입은 알았다고 하였으나, 눈은 여전히 루시안이 앉아있던 자리에 꽂혀 있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는 것인가? 무엇이!’
이르는 불안함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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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을 배웅하며 따라나선 테오는 연신 싱글벙글하였다.
“자네들 덕분에 항구의 피해도 적었고, 오크도 쉽게 물리쳤다네. 전령은 내일 아침 서신을가지고 떠날 것이니. 오늘 밤은 나와 술 한잔하지 않겠나?”
타몬트는 좋다고 따라나섰다.다른 일행들은 피곤하다며 쉬겠다고 했지만.
“역시, 금패 용병이라는 거군! 흐흐. 일행들의 체력이 말이 아니야! 하하!”
테오는 타몬트의 목에 팔을 걸고는, 크게 떠들며 주점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둘의 뒷모습을 보던 루시안이 한숨을 내쉰다.
“하! 타몬트 형 말 좀 잘할 것이지. 괜히 내 의심만 키웠잖아! 에이.”
루시안이 투덜거리며 땅을 걷어찬다.
“이르님은 도대체 네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발터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딱 봐도 대장 격인 인물인데 뒤로 빼고만 있잖니? 신분상은 금패 용병인 타몬트가 높다고 하지만. 그리고 연금술사의 분위기랄까, 그런 묘한 게 좀 느껴지나 봐.”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건지 에잇”
발터는 뒤로 감추는 루시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귀족눈에 들면 좋은거 아닌가라는게 그의 생각이었으니까.
“그런데, 루시안 넌 왜 그렇게 감추고 뒤에서 있는 거야?”
루시안이 그런것도 모르냐는 듯이 대꾸했다.
“발터 귀족과 엮이면,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 같지? 절대, 그렇지 않아. 귀족과 엮이면 귀찮아진다니까? 봐봐! 우리의 지금 이 일도 결국 귀족이 달라붙어서 의뢰를 강요해서 생긴 거잖아? 편하게 공방 일을 하던 나를 말이야! 오크의 구렁텅이로 내밀었다고.”
루시안이 순간 욱해서 언성이 높아진다.
“의뢰내용은 오크한테 가라는 게 아니었….”
루시안이 발터를 쏘아본다. 발터가 움찔해입을 다물었다.
“에휴. 싸우지들 말고 빨리 돌아가서 씻고 밥 먹자! 내일 수도로 갈려면 짐도 정리해야 해!”
라펠라가 둘을 끌고는여관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좀비 하나가 식당으로 어그적거리며 내려온다.
“으어어어!”
“누나, 짐 다 챙긴거예요? 저기 큰 짐 하나가 남아있는데?”
루시안이 좀비 타몬트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걸, 그냥 술통에 넣어서 굴려버릴까?”
“음, 잘 굴러가긴 하겠네요.”
“크큭, 타몬트 형 어제 얼마나 마셨길래 저런 꼴이야! 크킄.”
“으어어, 물 좀 줘!”
발터가 건넨 물을 시원하게 들이켠다. 타몬트가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듯이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테오 형! 그 사람 와 피가 술로 되어있더라고 오크통 두 개에서 정신을 잃었어!”
그새 형이라니, 친화력하나는 정말 대단하다.
“뭐! 오크통 두 개? 형! 돈 없지? 솔직히 말해봐!”
저정도면 돈도 상당히 많이 쓸거같자, 발터가 추궁한다.
“벌었으면, 써야지! 술은 내 인생이야! 친해지는데 이만큼 좋은 게 없다니까?하하하!”
일행의 표정이 한심한 생물을 보는 듯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