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36화. 다시 찾아온 봄(2)
얼어붙은 대지에 푸르른 싹이 고개를 내밀어 공기를 살핀다. 한결 따듯해진 바람이 여린 싹을 토닥인다.
“고생하셨습니다!”
“허허, 루시안이 공사비도 그렇고, 임금도 워낙에 잘 챙겨줬잖아? 이 정도는 해줘야지.”
수염이 덥수룩한, 털보 사내가 호탕하게 웃는다.
“다음에, 간단한 공사는 내가 그냥 해줄게! 겨울에 손 놀 때, 이런 목돈 만질 일 맡겨줘서 다들 고맙다고 난리야!”
새로 확장 공사한 공방은 총 3층으로 지하 1층까지 합치면 4층 규모의 건물이었다. 이번 말간테의 의뢰 보수가 워낙에 넉넉했던 탓이다.
지하 1층은 재료 보관 창고와 실험실로 쓰였다.보존 마법진을 깔아두어, 재료의 손상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실험실은 몬스터의 우리와 실험대, 시체를 처리할 소각로도 만들어졌다.
1층은 매장을 약간 넓히고, 대부분을 공방으로 채웠다. 대량화 기구와 일반 연금 기구로 분리해 놨다.
2층은 생활공간으로 응접실을 비롯한 침실과 식당을 두었다. 3층은 통으로 서재를 두고, 일부를 터서 넓은 테라스를 갖추었다.
1층부터 2층까지 화장실과 목욕탕도 만들어두었다.
“당분간은, 포션을 만들어서 재고를 만들어놔야겠어. 너무 자주 비우는 것도 좋지는 않으니까.”
구리를 데리고 방을 소개시켜줬다.
“구리야! 여기가 네 방이다!”
구리의 취향을 따라, 녹색으로 꾸며놓은 방이다.
“우왕! 그래도, 형 방에서 자도 돼?”
“물론!”
공방 공사가 끝나는 날, 일행들도 돌아와 각자 일을 하고 있었기에 모두를 모아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음식은 베티 아주머니의 도움도 받긴 했지만, 루나와 라펠라도 한몫 거들었다. 루시안도 거들려고 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타몬트는 술을 사 왔고, 발터는 사슴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이거 집주인이 불렀는데, 정작 저는 장소만 제공하는 건가요?”
제법 넓게 만든다고 한 식당이 북적거린다.
“어머! 물을 안 길어와도 그냥 물이 나오네!”
“엄마, 여긴 누르면 그냥 불이 켜져! 불 조절도 돼!”
“화장실 가봤어? 와!”
“목욕탕도 대박인데!”
“루시안의 노후가 걱정되네.”
루시안은 불편했던 시설들을 죄다 뜯어 고쳐놨기에 현대의 시설과 흡사해진 상태다.
“루시안, 나중에 여관 개보수하면 화장실이랑 목욕탕 시설 공사 좀 해주겠니?”
“베티 아줌마의 부탁이신데, 당연히 해드리죠, 그냥, 해드릴게요”
“엄마! 당장 공사하자!”
마리엔은 공사하자고 난리를 피우다 베티에게 등짝을 맞았다. 약간의 소란이 지나고, 다들 즐겁게 마시고 즐겁게 취했다.
헥터의 방이 아예 따로 생겼고, 글공부와 각종 책을 읽으라고 서재에 다양한 책들을 들여놓았다. 연금술책들만 있던 서재가 다양해졌다.
새로 만든 서재에 앉아, 여러 번 읽었던 하렌츠의 연금서를 꺼내 본다.
“이 책도 오랜만이네.”
추억을 곱씹으며, 한 장 두 장 천천히 읽어 나간다. 그러다가, 맨 뒷장이 이상하다는 걸 발견했다.
“이상하게 두껍다 했더니, 이거 그냥, 두 장이 겹친 거였잖아?”
사이가벌어지며, 툭 하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가 떨어진다.접착제의 흔적이 없는 걸 보니, 자연스레 달라붙은 것 같았다.
“이건 도대체 뭘까?”
봐도 알 수 없는 빈 종이였다. 책 사이에 다시 꽂아놓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책장에서 다른 책을꺼내 읽기 시작했다.
공방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열었다.
“루시안! 공방 자주, 열어라. 좀! 포션이 이만한 데가 없어!”
“루시안또, 공방 비우고 어디 가는 거 아니지?”
“공방, 폐업만 하지 마라”
어느새, 단골이 되어버린 손님들이 농담을 건넨다. 슬쩍, 서비스를 끼워주었다.
구리가 성장한 탓인지,개인적인 성장 탓인지 마나의 수발이 더 자유로워지고 한층더 마나가 정순해졌다.대용량 작업도 손에 익어서 속도가 빨라져서 재고가 하루하루 늘어갔다.
“이거 불안해! 루시안이 재고 잔뜩 쌓아두고, 또 어디 갈 것 같단 말이야!”
“공방의 주인은 마리엔 누나와 저 아니었나요? 큭큭”
헥터가 이젠 아예 공방에 가지려고 한다.
“아! 루시안 형! 라이야 상단에서 달마다 돈을 가지고 왔어요. 그것만 해도 상당하던데요. 장부에 적어놨어요!”
“판매가 잘 되나 보네, 상단에 한 번 들러봐야겠군.”
그날 오후, 여전히 지부장으로 남아 있는 알텐이 반갑게 루시안을 맞았다.
“오셨습니까? 멀리 나가셨다 들었습니다만!”
“아직, 실적이 모자란 것입니까?”
반갑게 인사를 한 루시안이 농담을 건넸다.
“그게, 말입니다. 저보고 아예 여기 전담으로 남으라고 하시더군요! 루시안님 전담 말입니다. 집도 지원해주시고, 임금도 올려주셔서 가족이 다 이곳으로 이사 왔습니다. 제가 아직 지부장이지만 영향력만큼은 상단본부 임원급은 됩니다. 하하하.”
종이는 없어서 못 팔 정도고, 그간 기술이 더 좋아져서 품질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빨랫비누는 싸고 세탁력이 우수해 귀족 가에서도 사 간다고 했다.
“매달 들어오는 돈이 꽤 되더군요! 이 돈으로 공방에서 계속 소모하는 재료들을 주기적으로 공급받고 싶습니다. 대신, 질은 늘 보장을 해주셔야 합니다.”
라이야상단과의 공급계약을 마치고 공방으로 돌아온 루시안은 재생의 정수를 활용한 포션의 개량에 나섰다.
“구리야! 졸리면 방에 들어가서 자!”
공방에서 연금술 준비를 하는데, 구리가 들어오더니 의자에 앉아 지켜본다고 했다. 잠시 뒤에 보니 꾸벅꾸벅 졸고 있다.
“아냥! 있을 거야!”
눈을 부릅뜨고, 졸음을 참아내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단, 기존 개량 포션에 이걸 첨가만 해보고, 하나는 네간트의 피를 빼고 해보고, 또 하나는 트롤의 피를 빼고…….”
확실히 정수로 만들어놓으니, 연금술에 조합하기가 매우 편했다. 농축된 정수라 쓰기에도 편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조합하던 루시안에게 구리가 말을 걸었다.
“형아! 저번에 형아랑 누나들 무기 강화해준다고 했자나! 그거 구경하고 싶어!”
“아, 그러네? 구리 아니면 깜빡할 뻔했다. 그러고 보니, 세이렌이랑 바포메트에서 추출한 정수도 확인 안 해 봤네.”
포션의 조합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우선, 세이렌의 정수부터.”
♣ 세이렌의 에센스
-세이렌이 가지고 있던 유혹과 매혹의 힘이 담겨있다.
“구리야 이거 봐라! 이거면 재밌는 포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타몬트 형이 좋아할, 포션!”
구리가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구리가 알지 않았으면 했던 걸알아버린느낌이 들었다.
“커흠, 다음 걸 볼까?”
♣ 바포메트의 정수
-탁월한 근력과 맷집의 힘이 담겨있다.
“타몬트 형한테 필요해 보이는 건가? 버프 포션을 만들어볼 수도 있겠네!”
“힘이 불끈불끈!”
“타몬트 형한테, 이상한 걸 배운 게 틀림없어!”
이 일을 라펠라에게 알려야겠다고, 다짐한 루시안은 다음 재료를 꺼냈다.
♣ 테로키나움 주괴
-고대의 금속 순수 테로키나움 주괴
-오러나 마나에 반응하여 증폭시키고, 경도가 올라간다.
-쉽게 손상되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단단한 금속
“코팅을 해야 할까? 아예 이걸로 무기를 만들어야 할까?”
“형은 연금술로 그냥, 결합해버릴 수 있잖아!”
“뭐! 그건 그렇지.”
“나도 힘을 보탤게! 나 마~니 강해졌어!”
귀여움도 강해지긴 했다.
“그래 해보자! 구리가 도와준다는데 말이야!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씻고 자!”
“형은 저거 확인하러가게?”
“조금만 해볼까 하는데?”
“안돼! 형도 자!”
“알았다 알았어!”
루시안은 구리의 잔소리에 공방을 정리 해야만 했다. 다음날, 루시안은 일찍이 지하실로 내려가, 오크, 나가, 고블린과 놀고 있었다.
“확실히, 재생의 정수가 좋긴 하네. 구리가 추출을 잘해 준 덕이야.”
모든 포션을 하나씩 시험해보고 결과를 정리했다.
“재생의 정수만 써도 중급과 상급 정도까진 기대해볼 수 있겠어. 물론 트롤의 피를 섞은 게 더 낫긴 하고.”
트롤의 피를 섞으면 단가가 올라가지만, 성능은 올라간다. 재생의 정수만 쓰면 단가는 낮은데 트롤의 피를 섞은 것과 비슷해진다.
“둘 다 팔지 뭐! 이참에 이름도 재정리하고.”
남은 건 농도를 조율해 성능과 가격을 잡는 것이다.
“나가가 핼쑥해 보이네? 고기나 사다 줘야겠다.”
나가의 피를 병에 모아 회수하고는 실험실을 벗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대에는 새로운 치유 포션이 들어갔다. 이름을 재정리했다. 에피엔의 이름을 넣고,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누어 이름을 붙였다.
“가격은 일반 포션들보다는 싸지만, 성능은 더 좋은 그런 포션!”
손님들의 만족도도 월등히 높았다.
“이젠 이 포션 없이는 못사는 몸이 되었어!”
“포션은 에피엔이 최고인 것 같아!”
루시안이 마리엔과 헥터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재고는 꽤 많이 쌓아두었으니까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거야. 그리고, 라이야 상단에서 주기적으로 재료를 가지고 올 거야. 창고로 옮겨 정리하는 걸 맡아줘! 일도 늘었으니까 임금도 올라갈 거야!”
“네! 루시안 형.”
마리엔은 루시안이 준 루비 목걸이를 매만지며 발그레했다.
“응, 열심히 할게!”
볼의 홍조가 더 짙어진다.
그날 점심, 루시안은 일행을 불러모았다. 최근엔 계속 마을에서 쉬는 모양인지 답도 빠르고, 모이는 것도 빠르다.
“발터! 집 공사는 끝났어?”
“어! 엄청, 좋아졌어. 헥터 녀석이 여기에 사니까 집안이 좀 휑하긴 하더라. 헥터는 일 잘하지?”
“믿고 맡길 수 있을 정도야!”
“다행이다.”
“누나랑 루나는 집 좁지 않아요?”
“발터도 새로 집을 지었고, 루시안 너도 공사하니까. 나도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 그래서, 누나도 질렀어!”
“언니랑 지금 집 지을 땅 보러 다녀요!”
루나가 밝게 웃어보인다. 그뒤로 이땅은 어떻고, 저땅은 어떻다며 한참 수다를 풀어놓았다.
“타몬트 형은요?”
“어? 나? 난 뭐 그냥 혼자 사니까 지금 집이 딱 좋아! 주점 차리다가, 술 주정뱅이 되면 너희들 다 나를 버릴 거 아냐! 포기했어.”
“에이! 형 주정뱅이 되면, 저희가 힘 모아서갱생시켜드릴게요! 술 생각 안 나시도록.”
발터가 주먹을 들어 보인다.
“그래, 누나가 타몬트 많이 이뻐해 줄게!”
라펠라도 그에 동조하며, 주먹을 들어 보인다.
“다! 나만 미워해!”
루시안이 모두를 진정시키고는 본래의 목적을 말했다.
“자자, 제가 여러분을 부른 이유는 구리와 함께 여러분들의 무기를 강화해보려고 합니다.”
“구리가 힘을 보태기로 했어요!”
“일단, 제가 쓰던 무기는 부담이 없는데, 다른 분들이 그것도 동료분들이 쓰실 무기를 건드려야 하니 긴장이 되네요.”
말이 끝나자마자, 라펠라가 칼과 방패를 건넸다. 발터도 활과 단검을, 루나도 완드를 내놓았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턱 내놓았다.
“근데! 나랑 루나는 손해 아니냐? 루나랑 나는 무기 하나인데?”
“와! 형, 여기서 그걸따진다고요?”
“루나는 방패나 아티펙트를 하나 해줄까 하는데, 형은 대검이라 무기 3개분이거든요?”
타몬트가 멋쩍어하며 대검을 급히 풀어 내놓았다.
“잘 부탁해! 내 카트리나를 잘 보살펴 줘야 해!”
“타몬트 형, 저번엔 레베카라면서요?”
“신경 꺼, 술 먹으면 이름 바뀌더라. 주점에서 만난 여자 이름 같아!”
“타몬트 오빠 난봉꾼이었나요?”
“아니라고!”
구리가 무기를 하나하나 살폈다.
“루시안형, 이참에몇 개는 새로 만드는 게 나아 보영!여기 라펠라 누나 껀 살짝 금이 가 있어! 새 무기로 바꿀 때야. 그리고, 발터 형아꺼 활도 형아의 힘이 강해졌으니까 더 단단한 활이 있어야 할 거 같아. 루나 누나 꺼는 상점제라 너무 무난해!”
구리가 무기를 살피며, 상태를 파악하고 나서자, 타몬트가 무엇을 기대한거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구리에게 물어본다.
“우리 구리! 이 타몬트 형님의 것은 어떠냐!”
“어…. 무식하게 쓴 거 말곤 멀쩡해!”
“크크크큭”
“하하하하”
“풉”
루시안이 환기를 시키며, 모두에게 알렸다.
“큼, 일단, 무기 재료를 몇 개 구해야겠네요. 각자 평소에 쓰고 싶던 재료나 원하는 재료를 구해다 주세요. 주재료는 일전에 바포메트의 금속을 이용할 거예요.”
일행들은 각자 재료를 모아 다시 모이기로 했다.
“구리야! 시작해볼까?”
“응!”
“먼저, 타몬트 형의 대검부터 가보자”
루시안은 연성 마법진을 그렸다. 조화와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 마법진을 보강하고, 마나석을 깔아 배치했다. 가운데 대검을 내려놓고, 테로키나움 주괴를 내려놓았다.
“형아! 내가 정수를 뽑으면 그걸 섞으면 돼!”
마나석이 진동하며, 푸른 빛이 대검으로 향한다. 구리의 녹색 기운이 섞여 들어간다. 묵빛의 대검에 테로키나움의 정수가 합쳐진다.
♣ 강화된 타알크의 날개
- 고대 몬스터 타알크의 날개로 만들어진 대검
오러와 마나의 증폭률이 높아졌다.
오러나 마나의 주입 양에 따라 더욱 단단해진다.
무게증가 인챈트 마법이 각인되어있다.
“묵직한 걸 좋아하는 타몬트 형의 취향에 잘 맞겠어!”
이어서, 방패와 단검도 강화했다. 각자의 성향에 맞추어 강화의 방향을 결정했다. 또한, 인챈트도손을 봤다.
♣ 강화된 라칸의 신념
- 고대 기사 라칸의 방패
- 인간의 수호자로 명성이 드높던 이를 위해 환수가 선물한 방패
오러와 마나의 증폭률이 높아졌다.
오러나 마나의 주입 양에 따라 더욱 단단해진다.
인챈트 : 마나베리어
♣ 배신한 나무의 독
- 멸절을 바란 인간의 피를 주인으로 삼아 다시 태어난 단검
- 이 단검을 든 자는 엘프의 미움을 사게 된다.
오러와 마나의 증폭률이 높아지고, 절삭력이 향상됐다.
인챈트: 리턴
“구리야,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