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화 〉38화. 돌아온 방랑자(2) (39/95)



〈 39화 〉38화. 돌아온 방랑자(2)

자이어 가문의 응접실은, 화려하지 않지만 고고한 멋이 넘치는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모두 편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지만,타몬트만은 목이 타는지 연신 차를 부어대고 있었다.

“방랑자 형아! 안개 나비 볼 수 있어?”
“어? 그게, 그….”

구리의 해맑은 물음에 타격을 받은 타몬트는 말을 버벅거렸다. 그때, 응접실 문이 열리며, 이안 백작이 들어왔다. 샤이나도 함께였다.

“물론이지, 내 말 해둘 테니 구경시켜주마. 샤이나? 로이드 자작에게 말해둘 터이니, 자네가 안내를 해주게나.”
“예, 백작님”

샤이나가 수첩을 꺼내 일정을 적었다.

“오랜만이구나 타몬트! 12년 만에 봐서 그런 것인지,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다들 만나서 반갑네, 이안 자이어라고 하네. 이 못난 타몬트의 아비라네.”
“안녕하십니까. 라펠라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라펠라가 나서서 인사를 하고, 일행의 소개를 했다.

“안 사람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네! 재미없겠지만, 나와 여기서 시간을 보내주겠나?”
“보내주신, 안개 나비 인편은 정말 요긴하게 썼습니다.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릴  있어서 영광입니다.”
“하하! 급히, 보낸다고는 했는데. 너무 늦은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네.”
“아닙니다. 시기에맞게 잘 도착했습니다.”
“안 그래도, 그 인편 덕에 타몬트가  자리에 오지 않았던가?  일 아니면 집에 연락도 안 했을 녀석이니.”

타몬트는 애꿎은 빈 찻잔만 만지작거렸다.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자, 하인이 들어와 식사 준비가 되었음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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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반가워요. 모니카 자이어입니다. 타몬트 오랜만이구나?”
“어머니, 잘 계셨습니까?”
“걱정되었으면 연락을 자주 하지 그랬니?”

타몬트가 딱딱히 얼어서 버벅거린다.

“형이 완전히 얼었어!”
“그러게 구리야. 꼼짝을 못 한다.”

식사자리는 한 명을 빼고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타몬트가, 민폐를 끼치지는 않던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타몬트 형아 술꾼!”

라펠라가 황급히, 구리의 입을 막아보지만 늦었다.

“하하, 구리가 장난을 좋아해서요.”

얼어붙은. 분위기는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도련님, 나중에 잠시 저와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식사를 총괄하던, 집사장 샤이나가 매서운 눈빛으로 타몬트를 노려보았다.

“딸꾹!”
“샤이나! 내일은 숙취에 좋은 음식들로 준비해주게나. 오랜만에 돌아온 아들이 객지에서 술병으로 죽는  보기 싫으니 말일세.”
“네, 알겠습니다.”
“저, 아버지. 오델리아는 어디 갔습니까?”
“그걸 이제야 묻니?”

모니카가 타몬트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오델리아는 기사학교에 들어가 있다. 이번, 해에 졸업한다.”

이안이 담담히 대답했고, 모니카는 이왕 만난 거 불만을 다 털어놓자 작심했는지, 타몬트의 흑역사를 발굴해댔다.

“집에서 보낸 서신에 답신도 없고, 본인 연락도 없고 얼마나 걱정이 많았는지 아니? 어느 날, ‘나비가 싫어 자유를 찾아 떠난다.’라는 편지 하나 남기고 사라지다니. 에휴!”

일행들의 눈이 일제히 타몬트를 향했다.

“..........”

할 말이 없는 타몬트는 애꿎은 스테이크만 잘게 잘라댔다.

식사의 끝, 디저트가 나오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일, 샤이나가 영지를 안내해줄 것이네. 어떻게 왔건 간에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네. 못난, 아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이후, 일행은 각자 묵을 방으로 안내되었다. 방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데다 정갈했다.

남자들은 다인실이, 여자들은 2인실이 준비되었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 어때요. 형?”
“모르겠다! 솔직히.”
“그런데, 연락을 왜  한 거예요?”
“자신만만하게 집을 나왔는데, 밖은 내가 상상하던 곳이 아니더라고. 초라한 모습 보이기 싫었다랄까? 자존심 때문이었지 뭐.”
“루시안 형! 나 졸려!”

아까부터 꾸벅꾸벅 졸던 구리였다. 침대에 눕혀주고는, 다시 이야기에 참여했다.

“내일, 형은 부모님과 밖에 나가서 식사라도 하세요. 선물도 사드리고요.”
“그럴까?”
“이젠, 잘나가는 용병이잖아요?”
“술을 좋아하긴 해도! 큭큭”

발터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웃는다.

“진짜, 아까 구리가 말했을  식겁했다니까요!”
“그 숱한 싸움을 거쳤어도 못 느꼈던, 싸늘함을 그때 느꼈다.”

그렇게, 밤이 깊도록 남자들의 수다는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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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방안, 루나가 잠시 라펠라를 쳐다본다.

“오늘따라, 제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네요.”
“루나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는데?”
“흠, 가정적이시고 친절하신 분들이요. 그땐 정말 행복했는데….”
“지금은, 어때?”
“지금은,  번째로 행복한 때에요. 정말, 다들 너무나도 감사해서. 흑흑”
“또, 울어? 으이구!”

라펠라가 루나를  안아 다독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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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의 거대한 신전 건물. 그 안의기다란 복도를 지나, 벽화 앞에 선 한 인물이 보인다. 검은 로브를 둘러쓴 그는 이내 벽화를 조작해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베카린 사도님 오셨습니까?”

검은 로브를 쓴 인물이, 지도를 펼쳐 놓은 채로 반갑게 맞는다.

“다음, 신의 파편의 위치는?”
“예! 평신도들의 조사에 의하면, 제나르 근처 화산섬입니다.”
“준비는?”
“베카린 사도님이 편히 회수하실 수 있도록, 배편과 교단의 검이 준비되어있습니다.”
“만족스럽군! 아기아스님을 위하여!”
“아기아스님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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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전하! 공주님의 상태가 심각합니다.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합니다. 신관도 마법사도 방법이 없다 합니다.”
“그럼, 방법이 아예 없다는 것인가?”

국왕이 화가 나는지 주먹을 꽉 말아 쥔다.

“전하,신관도 마법사도 하지 못했다면, 하나 남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약초로 치료하는 치료사들 말하는겐가? 그들은 초반에 떨어져 나가지 않았는가?”
“연금술사입니다. 전하! 뛰어난, 연금술사라면 무언가 다른 방법을 제시하지 않겠습니까?”

국왕은 영,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포션이나 제조하는 그들에게 방법이 있다 보는가?”
“그래도, 현재 걸어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흐음…. 그렇다면, 이제 와서 연금술사를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왕국 내에 연금술사를 찾는 의뢰를 내리는 한편, 따로 수소문을 해보겠습니다.”
“주의해야 할  공주의 상태가 외부로 나가지 않게 하는 걸세! 알겠나?”
“예, 국왕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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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 일행은 백작가의 근처에 있는 로이드 자이어의 자작가로 향했다.

“이곳, 자이어 영지는 이안 백작가와 로이드 자작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영지입니다. 로이드 자작님의 안개 나비 사업을 중심으로 영지의 자본이 움직입니다. 자작님은 안개 나비의 사육과 인편 생산을, 영지의 관리와 사업의 회계 및 자금관리는 백작님께서 담당하십니다.”

저택을 지나, 거대한 유리 건물로 된 정원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에는 처음 보는 나무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농밀한 마나가 느껴졌다. 나비들이 나무마다 달라붙어 수액을 먹는 데 한창이었다.

“우왕! 나비다!”

구리가 신기한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린다. 그때, 작업복 차림의 사내가 다가온다.

“자네들인가? 백작님이 말씀하신 자들이? 오!타몬트?타몬트 맞느냐?”
“하하! 자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그리, 힘들었더냐?”
“어? 누구 왔어요?”
“응?”

자작의 뒤로 똑같이 생긴 남녀가 나타났다.

“루디하고 세레나야? 너희들도 많이 컸구나!”
“설마! 타몬트 형?”
“뭐! 타몬트 오빠라고?”
“자자, 손님들도 계시는데, 차분히 소개하자꾸나. 일단 장소를 옮기자.”

정원 안에 작업자들의 휴식을 위한 장소가 있었다. 하인이 차와 과자를 내온다.

“난 로이드 자이어라고 하고, 여기는 쌍둥이라네, 첫째, 아들인 루디이고, 여기는 둘째인 세레나라고 하네.”

“안녕하세요. 세레나라고 합니다. 그렌더, 오빠 진짜, 많이 변했다! 얼마나 고생을 한 거야?”
“그러게, 예전엔 그래도 우리 또래였는데….”

타몬트가 휘청거린다.

“아버지!안내는 저희가 할게요!”

두 쌍둥이는 엘가 나무와 안개 나비에 관해 설명을 해주며, 정원의 곳곳을 안내해주었다.

“저는 안개 나비의 품종 개량을, 세레나는 엘가 나무의 품종 개량을 연구하고 있어요.”
“혹시, 다들 새벽에 시간이 되나요? 나비가 달빛을 받아 날아가는 게 진짜 아름답거든요.”

그날새벽, 일행은 안개 나비의 날갯짓을 보러 모였다. 달빛이 내리비추고, 안개 나비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날개에서 떨어져 내리는 인편이, 달빛에 부서지듯 반짝거린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광경이었다.

“우와!”
“제나르에 오길 잘한  같아!”

그렇게, 모두 좋은 추억 하나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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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침, 백작가로 누군가 찾아왔다.

“혹시, 이곳에 루시안님이 계십니까?”
“저희 백작가의 손님으로 머물고 계십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왕실과 관련된 일로 찾아왔는데, 만날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샤이나의 안내를 받은 자가 루시안과 만나게 되었다. 샤이나와 함께  남자는 자신을 미겔이라했고, 둘은 독대를 했다.

“저는 재상님의 명을 받아 온 미겔이라 합니다. 왕실과 관련된 일로 연금술사를 수소문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저를 왜 찾아오신 겁니까?”
“이건 비밀을 지키셔야 합니다. 약조해주시겠습니까?”
“저와 일행까지 포함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미겔은 준비해온 계약서를 꺼냈다. 샤이나를 통해 일행들도 계약서를 전달받아, 이번 일에 대해서 함구할 것을 약속했다.

“실은, 공주님이 심각한 병을 앓고 계십니다. 가셔서 증상이라도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왕국 내 연금술사를 동원 해보고 있지만, 소득이 없습니다.”
“저는 왕국의 연금술사도 아니고, 뛰어난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라이야 상단의 두터운 신뢰를 얻고 계신 거로 압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점심 전까진 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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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입니다.”

루시안이 일행에게현재, 상황을 알렸다.

“넌, 진짜 가는 곳마다 사건을 몰고 다니는구나!”
“내 직감은, 이게 끝이 아니라고 알려오고 있어!”
“라펠라 누나가 저렇게 말하면, 다 실제로 일어났잖아! 갑자기, 무언가 불길해졌어!”
“루시안 오빠한테 다들 짓궂으시네요. 왕실 일인데 가보시는 게 맞겠죠. 왕실이랑은 친하게 지내는 게 나아요.”
“맞아, 잘 갔다 와라! 올 때 왕실에서  주면 잘 챙겨오고!”
“형아! 나도 같이가! 이상하게 같이 가야 할 것 같아!”

갑자기, 구리가 루시안을 붙잡고 칭얼거렸다.

“그래, 알았어! 같이 가자. 대신, 조용히 있어야 한다.!”

구리가 작은 개구리로 변해, 루시안의 머리 위에 앉았다.

“응! 이러면 되지?”
“갑자기, 구리가 부러워지는데?”

결정을 내린 루시안이, 미겔에게 왕실로 가겠다알렸다.

“한번 뵙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불가능하다 싶으면 바로 포기하겠습니다.”
“작은, 실마리라도 필요한 상황입니다.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미겔을 따라 왕성에 들어서니, 여러 명의 연금술사가 오가고 있었다.

“저런 증상은 난생처음일세!”
“그러게나 말일세. 난, 손도 못 대겠네!”

순차적으로 대기하던 연금술사들을 지나, 루시안의 차례가 되었다.

“허!”

공주의 모습을 본 루시안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

상체만 살짝 드러나 있을 뿐, 하체는 완전히 나무와 일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팔을 따라, 가지가 자라나 있었고, 공주의 상체가 파묻힌 줄기에서 뻗어난 나뭇가지가 방안에 가득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다.

바닥에 박힌 뿌리는 그저고정용이었고, 공주의 몸에 박혀  뿌리가 실제였다. 피부는 나무껍질 같이 갈라져 있었으며, 비쩍 말라 있었다.

“이…. 번…. 엔 그…. 자….?”
“공주님을 치료하기 위해, 전하께서 모든 것들을 다 찾고 계십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십시오.”

공주는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목소리도 힘이 없어, 금방 사그라들 것 같았다.

루시안이 유심히 살펴보니, 오른손의 작은 녹색 구슬이 달린 반지로부터 뻗어 나간 줄기가 여기저기 뿌리를 내리고 몸을 휘감은 게 보였다.

“공주님의 몸에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을 때, 검으로 나무를 베어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공주님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셔서 더는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잘려나간 나무도 금세 자라나 버렸습니다.”
“그간, 어떻게 해오셨습니까?”

살피던 것을 잠시 멈추고, 루시안이 물었다.

“신관과 마법사가 말하길, 나무가 공주님의 몸을 양분으로 삼아 자라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로서도 딱히 방법이 없어, 신력이나 마나의 힘을 불어넣어 공주님의 상태를 미루는 게 다였습니다.”
“양분을 대신 준 셈이군요.”

구리가 루시안의 머리를 앞발로 톡톡 치며 신호를 보낸다.

“일단, 오늘은 돌아가겠습니다. 방법이 생긴다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미겔은 서신을 보낼 곳을 알려 주었다.

“저…자. 나…. 를 고….쳐….줄”
“나이는 어리나, 실력만큼은 확실하다 들었습니다. 희망이 있을 겁니다. 공주님.”

공주의흐리멍덩한 눈에, 일말의 기대를 품은 빛이 반짝거렸다.

‘제발, 저분이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미겔은 속으로 간절히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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