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41화. 싹트는 음모(2)
일대에 큰 소란을 일으킨 루시안 일행은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경비라도 오면 해명한다고 시간을 잡아먹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저기! 문을 연 음식점이 있어!”
음료를 시키고 각자 긴장이 풀린 듯 의자에 축 늘어졌다.
“이 나침반이 환수의 힘을 감지하는 거 같지? 파편이니 하는 것들도 구슬을 말하는 것일 테고.”
“발터, 말이 맞는 거 같아. 이 나침반이 구리만 가리키고 있는 거로 봐서는.”
“그런데, 구리만 가리키면 이건 쓸모가 없지 않니?”
그때, 구리가 나침반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그걸 들고는 이리저리 만졌다.
“형아! 이젠, 나 안 안 가리켜!”
“뭘 한 거야?”
“몰라!”
해맑은 구리의 표정에 더 물을 수도 없었다. 여전히 궁금한 얼굴로 앉아있는 루나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간략히 요약 정리해 알려주었다.
“아기아스를 풀어준다는 건 결국 카라함을 풀어준다는 거잖아요? 그럼 대륙이 다시…….”
“그러게, 도대체 저 교단의 목적이 이해가 안 가네”
“발터, 광신도에게 이해를 바라지 마! 그들은, 그냥 그렇게 믿을 뿐이니까.”
교단을 이해 못 하는 발터와 이해를 포기하라는 라펠라의 말이 엇갈린다.
“오빠, 그러면, 앞으로 그 구슬을 찾으러 다니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당연히, 저들이 구슬을 모으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야지!”
루나의 물음에 라펠라와 발터가 의견을 말했다.
“우리가 그걸 다 책임져야 할까? 난 일단 벨가 님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에게 이 일을 알릴까 해! 같이 행동하지는 않아도, 각자 알아서 움직일 테니까.”
루시안은 책임을 나눠야겠다 생각했다. 이걸, 다 안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흐음, 엘프와 드워프가 저희를 반갑게 맞아줄까요?”
“인간은 믿지 않아도, 구리는 믿어주지 않을까?”
“응? 나?”
루나는 우려를 표했지만, 루시안은 일이 잘 풀릴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나침반 한 개 가지고는 힘들지 않을까?”
“그건 그러네”
“나침반은 제가 만들어 볼 수 있을지 확인해볼게요. 일단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대수림을 가기로 하죠. 엘프에게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요.”
그렇게, 일을 일단락 지었다. 카페를 나와 라이야 상단에 들렀다. 루시안은 필요한 재료를 말했다.
“둘 다 희귀한 재료라서 수량이 많이는 없습니다.”
“일단, 있는 양은 다 주시고 제 정기납품 물품에 추가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라이야 상단의 일을 끝으로, 일행은 다시 자이어 가의 영지로 돌아왔다.
“전, 구리와 공방으로 갈게요. 일 생기면 알려주세요.”
공방에 도착한 루시안은 사 온 재료를 꺼내 놓았다.
♣ 혹한의 가지
-북부 설원지대 자생 식물 프라기리우스의 어린 순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가 느껴진다.
♣ 프리고나이트
-하얗고 차가운광물
-열을 흡수하고 냉기를 뿜는 광석
“구리야! 가지만 정수로 만들어줄래?”
“응!”
루시안은 프리고 나이트를 두꺼운 가죽장갑을 끼고, 잘게 부쉈다. 망치로 내리치니 얼음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루를 만든 다음, 연금강화제와 섞어 연금막자로 다시 한번 곱게 갈았다.
“형아! 여기!”
“고마워!”
♣ 혹한의 에센스
-극도의 한기가 서려 있다.
“재료준비는 끝났고, 서서히 만들어 볼까?”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 시약들을 꺼내 놓고 점검하는데, 구리가 구슬을 들어 보인다. 베카린이란 자에게서 뜯어낼 때 만해도 뜨거운 상태였는데, 구리와 놀더니 보통의 빨간색 구슬이 되어버린 그 구슬.
“형아! 이 구슬은 뭔가 다른 느낌이 들어!”
구리가 내민 구슬을 만져본다.
“흠, 확실히 보통의 힘만 있는 구슬은 아닌 것 같아. 일전에 네가 잠들어 있던 그런, 구슬 같아!”
“그럼, 벨가님 만큼의 힘이 있어야 깨울 수 있어! 난 힘들어!”
“그러면, 다음에 벨가님 만나면 물어보자, 그런데 안 졸려?”
“조금!”
타몬트에게 통신 반지로 구리를 데려다 재울 사람 한 명을 부탁했다. 일단은, 구리를 간이침대에 눕혀 재웠다.
“혹한의 에센스와 연금강화제를 섞고, 차갑게 식힌 정제수를 넣어 잘 섞어준다. 그 다음에, 프리고 나이트 가루를 추가해주고, 이거랑 저거를 섞은 다음에…….”
특수 마법진 처리가 들어간 포션 병에 시약을 담아, 빙결 포션을 완성했다. 프리고 나이트를 넣어주면, 대상의 열을 뺏고, 냉기를 뿜는 특성으로 빙결 효과를 올릴 수 있다. 빙결탄은 빙결 포션에 프리고 나이트 금속과 가루를 이용해 만들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쉬려는 때에 타몬트와 샤이나가 찾아왔다.
“아, 오셨어요?”
샤이나가 잠든, 구리를 조심히 안아 들었다.
“일행들 다 모였어! 바로 출발하자!”
“샤이나님, 구리를 잘 부탁드립니다.”
샤이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구리가 깰까 봐 주의한다.
“출발하시죠!”
#
제나르 왕성이 있는 곳은 지형이 독특했다. 내륙에 있는 게 아니라 해안가를 끼고 있었다. 해안 쪽은 가파른 수직 절벽으로, 침입이 거의 불가능했다. 날아오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곳에 몬스터가 들어올 줄이야!”
해안가의 절벽 아래로 마그마가 굳어 길이 생겼다.멀지 않은 거리에 화염 거인과 마그마 골렘, 몬스터 군단이 보인다.
“마법사들을 동원해 수계마법으로 적들을 막으라고 해라!”
“예, 전하!”
그 시각, 루시안 일행도 성벽 위에 올라가 있었다.
“후, 후덥지근하네. 열기가 장난이 아닌데?“
”여기 정말 높네요!“
“여길 어떻게 들어오려는 걸까?”
거대한 마그마 골렘이 앞으로 걸어 나와 두 팔을 앞으로 쭉 내민 채로 앞으로 기운다. 손이 성벽에 걸쳐지자, 마그마가 골렘을 타고 퍼지면서 길이 연결되었다.
“저런 방법을 쓰네?”
“그러게 머리가 좋은데?”
병사들이 다리를 끊으려고 애를 써보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뜨거웠다. 왕국의 마법사들이 수계마법을 쓰자, 다리가 굳어가면서 더욱 단단해진다. 모두 당황했다. 국왕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루나! 저 가운데에 아이스 월을 깔아버릴 수 있어?”
“계속 유지해서 차단해야 하는 거죠?”
“가능해?”
“예!”
“발터, 루나를 지원해줘, 누나랑 형은 이거 가져가세요. 빙결 포션이에요”
“신작품이구나? 위력이 기대되네.”
“전, 미리 봐둔 장소가 있어서 가볼게요. 뒤를 잘 부탁드립니다.”
왕자에게 말해 자리를 봐둔 망루였다. 성벽에서 거리가 있어서 병력은 철수된 상태다.
“저격하기엔 딱 좋은 거리지”
빙결탄을 장전하고, 다리 위로 올라서는 마그마 슬라임을 겨냥해 발사했다. 발사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 정도였지만, 결과는 달랐다. 마그마 슬라임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이 쪼그라들었다. 그러다가 얼음꽃이 피면서 터져나갔다.
루나는 지속해서 아이스 월을 시전해 다리를 막아 세웠고, 마법사들도 이에 동조해 아이스 월을 겹겹이 세웠다. 다리가 막히자, 마그마 슬라임을 골렘들이 집어서 던지기 시작했다. 슬라임뿐만 아니라 작은 몬스터들을 모두 다 집어 던졌다.
“세상에 몬스터 대포라니!”
“진짜, 별일을 다 보네.”
타몬트는 날아드는 슬라임을 대검의 옆면으로 맞춰 되돌려 보냈다. 발터는 공중에 날아오르는 몬스터를 하나하나 화살로 쏘아대어 떨어뜨렸다. 슬라임에 맞은 병사는 그대로 녹아내렸고, 성벽은 여기저기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구멍은 뒤에 오는 몬스터들을 위한 전진기지가 되었다.
“병사들은 방패를 들어서 막아 내고, 마법사는 쉴드를 전개하라!”
궁수들도 화살을 날려서 날아오는 슬라임과 몬스터를 모두 쏘아 떨어뜨렸다. 하지만, 워낙에 몬스터의 숫자가 많아 그 화살비를 뚫고 성벽에 올라서는 몬스터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몬스터 군단의 뒤에서 플레임 라이노가 달려든다. 단단히 가로막던, 아이스 월이 무참히 깨져나가고 길이 훤히 뚫려 버린다. 몬스터들이 뒤를 이어 성벽으로 밀려든다.
성벽 위는 난장판이었다. 성벽으로 달려든 몬스터로 인해 병사들의 피해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기사들이 나서서 몬스터를 몰아서 베어내고, 창병들이 몬스터를 성벽으로 떨어뜨렸다.
몬스터들이 성벽 위를 점거하며, 전황이 몬스터로 기울기 시작하자, 화염 거인이 기고만장해져서 외쳤다.
“인간들을 모두 태워버릴 것이다. 화산섬을 침범한, 너희들에게 불의징벌을 내리겠다. 불의 수호자의 이름으로너희를 정화하겠다!”
몬스터들의 화염이 더욱 짙어지며, 거세게 공격해왔다.
루시안은, 품에서, 차갑게 식힌, 마나 정제수를 꺼냈다. 가죽 골무를 낀 손으로 그 안에 들어있던 냉기가 폴폴 흐르는 커다란 총알을 꺼내, 장전했다. 화염 거인을 겨냥했다. 겉을 프리고 나이트로 감싼 탄이었다. 탄에 마나를 주입해 탄의 위력을 증가시켰다.
탄환이 총구의 나선에 꽉 맞물리며 마찰을 일으키며 튀어 나간다. 발사 시의 열도, 대기 중의 열도 흡수하면서, 주변에 막대한 냉기를 뿌리기 시작했다.
경로에있던 화염 몬스터들의 열기마저 흡수해가며, 화염 거인에게 달려든다. 수호자가 급히 화염으로 방패를 만들어 막아 세운다.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도 거인의 앞을 막아선다.
탄이 거인의 방패의 화염마저 흡수한 채 거대한 얼음 파편을 사방에 흩뿌렸다.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화염을 극한의 한기로 토해냈다. 수호자의 왼쪽 팔이 얼어붙어 산산이 부서져 내린다. 주변에 거대한 빙결지대가 형성되어있다. 거인의 다리도 얼어붙어 있다.
“크아아아아! 네놈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불의 거인이 큰 소리로 울부짖는다.
병사들도 왕국군도 웅성거린다. 그만큼 위력이 워낙에 강했기 때문이다.
“휘유, 루시안 저놈 힘좀 쓰는데?”
“루시안 오빠의 공격이었어요?”
“저런 걸 터트릴 놈이 누가 있겠냐?.”
불의 거인이 분노를 토해내며, 최후의 진격을 명했다. 성벽과 연결된 다리가 다섯 개가 되었고, 플레임 라이노가 길을 열었다. 몬스터가 끝도 없이 다리로 올라섰다. 화염의 행렬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이어진다.
루나가 모두의 무기에 빙계 속성 인챈트를 걸어준다. 그리고는 마나를 모아 대기 중의 수분을얼리고 흩뿌려 눈보라를 일으켰다. 일행들이 무기를 들고 몬스터들을 선두에서 나서서 처리해 나갔다.
불의 거인은 화염을 크게 일으키며, 다리에 달라붙은 얼음을 제거했다. 오른손에 불의 도끼를 만들어 던져대며, 가장 큰 중앙 다리로 돌진해 들어왔다. 성벽 여기저기로 날아든 불의 도끼로, 성벽이 무너지고 불바다가 되었다.
“누님! 저 갔다 오겠습니다!”
루나가 걸어준 인챈트와 루시안이 준 빙결 포션을 굳게 믿으며, 불의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빙결 포션을던져대며 다리의 중앙에서 거인을 막아 세웠다. 라펠라와 발터, 루나도 각자 다리 하나씩을 맡아 몬스터를 막아나가고 있었다.
루시안은마지막 남은 특제 프리고 나이트 탄을 꺼내 장전했다. 마나 회복제를 입에 털어놓고는 마나를 최대한으로 불어 넣었다.
일전과 마찬가지로, 피부가 에이는 냉기를 뿜으며 거인을 잡아먹을 듯 달려든다. 하필, 그 경로에 있던 타몬트가 기겁하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이 녀석 몇 번 놀렸다고, 나까지 얼려 먹으려 하네?”
느껴지는 한기가 심상치 않았다. 경로에 있던 화염 몬스터들의 불이 금세 사그라들어 버린 채로 병사들에게 유린당한다.
“네놈들은 반드시 파멸하리라! 반드시!”
죽음을 느낀 것인지, 저주를 퍼붓는다.
이내,거인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얼음 폭풍이 터졌다. 거인의 불꽃을 집어삼킨, 극한의 냉기가 주변의 온도를 급감시켰다. 살이 떨어져 나갈듯한 한기가 주변을 잠식해 들어간다. 성벽에 하얗게 서리가 끼어든다.
중앙의 다리가, 폭발을 이기지 못해 가운데부터 바스러져 내린다. 거인은 얼어붙고, 폭발에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바다로 빠져든다.
빠르게 성벽으로 내달리는 타몬트의등 뒤로 다리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떨어지면 절벽이다. 식겁한 채로 빠르게 달린다.
“으아악, 루시안 이놈! 말로 하자, 말로!”
발터가 밧줄을 묶은 화살을 타몬트에게 쏘았다. 타몬트가 바로 화살을 낚아채 몸에 둘렀다. 라펠라와 루나, 발터가 힘을 합쳐 밧줄을 당겼다.
“휴, 죽을 뻔했네. 누님 이거 루시안이 나 죽이려고 한 거 맞죠?”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그랬니?”
일행의 시선이 불의 거인이 있던 곳을 바라본다. 거인은 얼은 채로 바다에 수장되고 있었다. 바다에 유빙들이 떠다닌다. 5개의 다리 중 가운데 다리는 완전히 부서져 내렸고, 그 좌우의 다리는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병사들이 성벽 위의 몬스터를 서서히 몰아내며, 가장 바깥의 두 다리를 정리해 나갔다.
“와! 이겼다!”
“모두 피해를 확인하고, 부상자를 옮겨라! 시체를 모아 기록하고 성벽의 복구를 시작하라!”
라펠라는 일행을 모아 루시안을 찾아 나섰다.
“얘는 어디까지 간 거야?”
발터가 망루 하나를 짚었다.
“저곳이었어요.”
일행이올라가 보니, 루시안이 라이플을 품에 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와! 날 죽이려도 해놓고는 맘 편히 자고 있네! 포션이나 만들 것이지 왜 이렇게 나대는 거야!”
타몬트가 툴툴거리며, 루시안을 들쳐멨다. 발터가 라이플을 들다가 무게에 깜짝 놀란다.
“이거, 엄청 무거운데요?”
타몬트가 혀를 차며, 루시안을 발터에게 넘겼다. 그리고는 턱 하니 라이플을 어깨에 메고는 앞장섰다.
“가자! 그런데, 무겁긴 더럽게 무겁네, 젠장!”
일행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전장.
“누구인지 알아보았나?”
“일전에 그 연금술사 일행입니다. 전하!”
“키라의 일도, 이번 몬스터의 습격도 제대로 빚을 지는군!”
“왕국의 수습이 가장 우선입니다. 전하.”
“그래, 그렇지, 왕국의 숨통이 트이면, 저들을 불러다 사과하고 큰 보상을 주어야겠어! 하루빨리 마무리 짓고 저들을 만나고 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