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43화. 대수림으로
푸른 연기가 자욱하다. 품에서 하늘색 포션을 꺼내 던졌다. 축축한 안개가 퍼지더니 푸른 연기를 잡아먹었다.
블루스모그포션이라 이름 지은 안개 나비 포션의 약점은 물이었다. 자이어 가문에서는 새벽의 이슬을 가장 조심한다고 했었다. 수분을 공급하는 블루미스트 포션을 만들어서 제거용으로 썼다.
“마탑주와 부 마탑주가 죽었으니, 청탑도 이걸로 끝인가?”
시체를 한데 모아, 하이드로베이스를 뿌렸다.
청탑이 몰락했다는 소식은 곧 제나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 루시안이 자, 주의해야 합니다. 청탑 마탑주가 아무리 수련을 게을리하고, 우리 마탑주들 가장 약하다 하나 그래도 7서클 아니었습니까?”
“마법사가 수련을 게을리하는 순간, 이미 그자는 7서클이 아닌 게지요.”
“서클에 녹이끼고, 굳어버린 마법사가 무슨!”
“어차피, 잘되었지 않습니까? 각자 청탑의 사업으로 돈줄이 굳어가고 있었잖습니까?”
“수련은 하지 않고 사업만 펼쳐 돈에 욕심이 더 많았던 자라고, 마탑의 수치라 욕하질 않았습니까? 아주, 잘된 일입니다. 하하.”
다들 속으론 어떤 청탑의 사업을 가져다가 돈을 벌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앞에서는 점잖은 척하고 있었다. 이들이 제나르의 다른 세 마탑주였다.
루나는 청탑의 몰락을 지켜보았다. 그녀를 옭아매던 족쇄 하나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다음엔, 너희 집안의 일도 한번 알아보자! 일단, 할 일이 많아서 당장 알아보는 건 힘들지만. 라펠라 누나가, 정보상에게 의뢰해놓았대”
루시안이 루나를 보며 말했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루나를 발터가 달래며, 데려간다.
“형아! 고생했어!”
구리가 루시안의 어깨를 주물러 준다.
“고마워 구리야!”
청탑과 결전을 벌인 날 저녁, 제나르 왕국의 왕자 데온 제나르가 찾아왔다. 기사 한 명만 대동한 채 편한 차림으로 왔다.
“복구로 바쁘시던 거 아니었습니까? 데온 왕자님!”
“돌아가면 재상님께 눈치를 좀 받을 겁니다. 혼자 나온다 했는데, 제가 걱정된 기사가 기어코 따라오지 뭡니까?”
“찾아오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것저것 말해줄 것들이 있어서 말입니다.”
루시안이 내온 차를 마시며, 데온이 말을 이었다.
“청탑의 몰락으로 사업권을가져가기 위한 나머지 세 마탑의 물 밑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뭐, 뒤에서 재상님의 공작이 펼쳐지는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남은, 네 마탑주가 루시안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적이 될지 친구가 될지는, 제 하기 나름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복구로 바쁘신 탓에, 라이야 상단으로 보상을 보내신다는 걸 제가 대신 가져왔습니다. 키라의 일과 이번 몬스터 습격으로 루시안에게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데온이 묵직한 주머니와 연금재료, 광석 그리고 제나르 왕실의사람이라는브로치를 건넸다.
“다음에 다시 제나르에 방문한다면, 제가 근사한 저녁을 사겠습니다. 루시안. 혹,부탁할 일이 있다면, 도움을 주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루시안은 데온을 만난 김에 루나의 일을 부탁하기로 했다.
“세라스 가문이라! 한번 알아보지요. 제 기억 속에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왕자님.”
일행은 정기상선을 타고 소피아르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 발테리안 마을에 도착했다.
“역시 여긴 여전하네!”
“루시안, 벨가님께간다고 했지?”
“네, 우선 거길 들러보려고요. 돌아와서 연락드릴게요”
“그럼 나는 애들이랑 대수림으로 갈준비를 해둘게. 지도도 그렇고 길잡이도 필요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누나.”
마리엔에게는 안개 나비 장식이 달린 모자를 선물해주었다. 마리엔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형! 또 나간다고요?”
“어! 일이 생겨서 말이야.”
“이쯤 되면 연금술 공방을 넘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헥터가 웃으며 말했다.
“너한테 넘기느니 닫고 만다.”
농담을 받아친 루시안은 재고를 파악해나갔다.
“헥터, 야간에 사람들 불만은 없어? 몇 번 자리를 비우느라 물량이 충분하질 못했잖아!”
“그걸 제가 하루 판매량을 확 줄여서 팔았어요. 형 돌아오면 나아질 거라고 했죠.”
“그랬어? 많이 시달렸을 텐데, 고생했다.”
루시안은, 채워 넣을 물품을 정리해 보았다.
“흠, 채울 게 많네.”
릴리스, 발모제와 치유 포션과 마나 회복제를 채워 넣고, 기능성 포션들은 수를 줄였다. 팔기보단, 직접 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전투가 한두 번이야 말이지!”
일련의 공방 정비를 마친 루시안은 구리와 함께 벨가가 있는 마녀의 숲으로 향했다.
벨가는 루시안이 내민 쿠키를 환한 미소로 반겼다.
“그런일이 있었다니! 숲의 결계를 더욱 강화해야겠구나! 설마, 봉인을 풀려고 하는 자들이 나타나 줄은…….”
“그자들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벨가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고대 전쟁 당시, 아기아스의 편에 선 인간들이 있었느니라. 그들은 아기아스의 사상에 동조하며, 아기아스를 신으로 삼았느니라. 봉인 후 그들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했거늘….”
루시안이 자신의 계획을 알렸다.
“엘프와 드워프에게도 이 일을 알리려고 합니다. 혼자보단 여럿이 막는 게 나을 테니까요.”
“내가 그 아이들을 만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면 하겠구나? 허나, 나는 나고 너는 너니라. 증표는 팔찌로충분할 것이니, 따로 무엇을 주지는않을 것이니라. 그들의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는 건 오롯이 너의 능력이니 잘 생각해 보거라.”
“알겠습니다. 벨가님!”
루시안의 표정을 보더니 벨가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얼굴에 실망이 가득하구나!”
벨가가 무엇인가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성인 검지만 한 크기의 하얀색의 광물 같은 거였다.
“이건 길잡이 돌이라는 것이니라. 특정, 대상의 힘을 불어넣으면, 그 힘에 이끌리는 성질이 있느니라. 그들이 사용한다던 나침반을 꺼내 보아라”
루시안이 품에서 나침반을 꺼내 놓는다. 벨가가 나침반의침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 나침이 바로 길잡이 돌이니라. 고대 전쟁 당시 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애용했던 것이니라.”
“단순히 힘만 불어넣으면 됩니까?”
“상대방의 피도, 무형의 기운도 가능하니라. 이 나침반에는 환수의 힘을 심어두었구나.”
문득, 일전의 일이 생각난 루시안이 물어본다.
“구리를 가리키던 나침반이 멈춘 것도 관계가 있겠습니까?”
“나침반이 계속 같은 방향만 바라고 있으면, 길잡이가 될 수 없지 않겠느냐? 길잡이 돌의 각인은 단 한 번이니라. 목표를 찾은 후 대상의 기운으로 잠시간 뒤덮으면 멈추게 되어있느니라.”
벨가가 내민 길잡이 돌을 소중히 받아 들었다.
“가공엔 상관이 없습니까? 망치로 두드린다거나”
“상관이 없느니라. 기운은 형태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으니. 복수의 기운을 추적할 때엔 공통된 기운을 각인시켜야 하느니라. 이번의 경우엔 순수한 환수의 힘이 되겠구나!”
골똘히 생각에 잠긴 루시안을 두고 이번엔 구리가 나섰다.
“벨가님! 저 이거 봐주세요!”
구리가 내민 건, 베카린이 가지고 있던 구슬이었다.
“흠, 환수의 아이구나!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나타나다니, 좋은 일은 아니니 걱정이되는구나. 허나, 이것이 이 아이의 운명인게지!”
벨가의 힘을 받아 깨어난 환수는 불이 일렁이는 공작새였다.
“삐르르르!”
공작새는 한껏 울어대고는 그대로 루시안의 어깨에 앉았다.
“드워프 아이들에게 그 아이를 보내주면 좋아할 것 같구나!”
차를 마신 벨가가 말을 이었다.
“환수들이 남긴 편린들은 가능한 아기아스 교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부탁하느니라. 이곳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이라, 이렇게 걱정만 부탁만 하는 신세이니 미안하구나. 힘을 이용하려는 자들로 또 한 번 대륙이 어지러워질 것이니, 너의 어깨가 무거워질 것이니라.”
벨가가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 힘든 일이 많아질 것이니라. 잘 이겨내길 바라니라. 전생이든 현생이든 너는 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니라. 자책은 하지 말거라. 과거에도 묶이지 말고. 그리고, 아이들을 잘 부탁하느니라.”
아리송한 듯한 말을 남기는 벨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저택을 나섰다.
그리고, 루시안은 구리와 그리고 태어난공작새를 데리고 곧장, 공방으로 돌아왔다. 일행들을 모아두고, 새로 태어난 공작새와 갔었던 일을 말했다.
“대수림은 어떤가요?”
“길잡이도 구해 놨고, 준비도 해놨어! 출발만 하면 돼.”
“그런데, 이름은 정했어?”
“피닉스?”
“삐르르”
“너무 평범하지 않아?”
“일단, 우리가 계속 데리고 다닐지도 모르는 일이라서.”
“삐르르루”
라펠라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하긴, 벨가 님의 말대로면 드워프족에게 보내줘야 할 수도 있겠네!”
“누나, 말이 맞아요.”
“그래! 피닉스 이 오빠랑 놀지 않으련?”
“삐르르르”
타몬트가 피닉스에게 애정을 갈구했다.
“성별도 모르는데 오빠라니요?”
“난,딱 보면 알아!”
다들, 어이가 없어서 말문을 잃어버렸다.
“드워프한테 간다고 했잖아? 거기가. 동쪽의 끝이니까 육로로 가면, 제피르칸 제국을 가로질러가야 하는 거지?”
“그렇죠. 다시, 제나르로 갔다가 올라가는 방법도 있긴 한데.”
“우선은 대수림 먼저라는 거네?”
“그렇죠.”
“문제가 하나 더 있어요. 이 단검, 저 괜찮을까요?”
발터가, 단검을 들어 보이며 불안해했다.
“벨가님의 증표도 있는데 설마하니 다짜고짜 죽이겠냐!”
타몬트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발터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타몬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했다.
“그러면, 남은 문젠 이 공방인가?”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매번, 공방 비우는 게 마음이 그러네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밖에서도 매일 연금술 하잖아! 돌아다니는 곳마다, 공방 알아보고, 솔직히 이렇게 돌아다니는 기분도 좋지 않냐?”
“그건 그런데, 그냥 공방에 소홀해지는 느낌이 들어서요.”
“야! 임마, 나중에 힘 다 빠지고, 움직일 힘 없을 땐 있기 싫어도 공방에 있어야 하잖냐! 팔팔할 때 돌아다니는 거야! 이게 배가 불러 가지고!”
타몬트가 루시안에게 초크를 걸어온다.
“켁, 숨 막힌다고요!”
그날 저녁, 루시안은 공방에서 길잡이 돌을 꺼냈다.
“순수한 기운이라, 편린의 공통된 기운이자 환수의 기운이라는 건데.”
“형아! 그건 내가 해줄 수 있어!”
“삐르르르!”
“피닉스도 도와준 대!”
“어떻게?”
구리가 피니스와 눈을 마주치더니, 각자 기운을 방출했다. 그리고 기운을 하나로 뭉쳐 구슬 형태로 만들었다.
구리가 바로 그 에너지 덩어리를 기반으로 정수를 추출했다,
밝은 빛이 요란히 터지고, 무엇인가 모습을 드러냈다.
♣ 환수의 힘의 에센스
-환수의 순수한 힘이 담겨있다.
황금빛을 띤 극소량의 액체였다.
“형! 나 피곤해!”
피닉스도 힘이들었는지 비틀거린다. 둘을 침대로 옮겨 재워주고는 다시 공방으로 돌아왔다.
“구리와 피닉스가 힘을 내어주었으니, 이젠 내 차례지!”
연성진을 그리고, 은 주괴를 꺼내 올려둔다.
그리고는 길잡이 돌을 꺼내, 정수를 떨어뜨렸다. 길잡이 돌에 황금빛 액체가 빠르게 스며들고, 광채가 터진다. 길잡이 돌이 부르르 떨린다.
연성진 위에 각인시킨 길잡이 돌까지 올려두고 연성할 물품의 구조와 형태를 떠올리며, 연성진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은으로 된 뚜껑 달린 목걸이 형태의 나침반이 5개 만들어졌다.
“후, 최대한 얇게 만드느라 혼났네.”
루시안은 재료를 알뜰하게 전부 소모해서, 예비용 나침반까지 확보했다.
“준비는 이렇게 끝났네.”
공방을 한번 쭉 둘러본다. 일전에 만든 물품과 재고를 확인하고 부족한 물품을 다시 확인했다.
“이번 여행에서 에고 아티펙트 구하면, 호문클로스라도 만들어야겠다.”
내일이면, 다시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다. 설렘 반 기대 반 그렇게 새벽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