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52화. 앙금, 미련, 섣부름
일행들이 마무리를 위해 달려들려는 찰나, 버둥거리던 골렘의 눈빛이 바뀐다.
허리 아래가 떨어져 나가고, 몸통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주변에서 바위들이 날아와 여러 개의 다리를 만든다. 흡사, 거미의 몸통에 골렘의 몸을 얹은 형태다. 기다란 망치를 고쳐 들고 일행을 노린다.
3쌍의 다리로 빠르게 움직이며, 망치를 사정없이 내리찍는다. 루시안이 권총을 교차해 막아 낸다. 총에 균열이 더 벌어진다.
라펠라가 방패를 들어서 막고, 마나베리어를 발동한다. 루시안이 점착 포션을 꺼내, 골렘에게 던졌다. 골렘의 몸이 끈적이는 점착액으로 느려지기 시작한다.
“야! 루시안, 포션 얼마나 남았냐?”
루시안이 비산폭발형 포션을 나눠주었다.
“루시안 형 나도!!”
모두 비산폭발형 포션을 하나씩 손에 쥐고 골렘에게 던졌다. 점착액에 포션들이 붙어 흡사, 골렘 나무에 포션이 열린 상태가 되었다.
“루나!”
루나가 불의 창 여러 개를 띄워 공중으로 쏘아냈다. 화살들이 내리꽂히며, 포션들이 폭발하면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매캐한 연기가 자욱이 일어나며, 시야를 가린다.
<현재 파손 정도 최상, 작동 불능 위험…….>
잠시 후, 매캐한 연기가 가시자, 골렘의 박살 난 잔해가 드러난다.
“야! 루시안, 다음엔, 망치라도 하나 들고 다니자!”
구리가 골렘의 잔해에서 금속 주괴 여러 개를 뽑아냈다.
♣ 강화된 테트라플래티늄
테라나이트에 기반한탈리나이트와 테로키나움의 합금체
오러 및 마나의 증폭률이 증가한다.
매우 단단하다.
마나를 전달하는 능력이 우수하다.
“이거 좋은 재료가 나왔는데요?”
“그래? 얼마나 좋은데?”
“일전에 테로키나움하고 비슷하거나 조금 위 정도 될 거에요.”
“이번 건, 네가 온전히 써먹어라! 무기가 금 간 것 같던데?”
루시안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그래! 네가 쓰고 남으면, 구리 무기나 만들어 주던가 해”
“그러는 게 좋겠어요. 오빠”
일행이 그렇게, 골렘이 막던 협곡을 통과하려던 순간, 그들 앞을 막아 세운 존재들이 있었다.
땅딸막한 키에, 덥수룩한 하얀 수염과 머리카락 그리고 커다란 망치나 곡괭이를 메고 있는 그들은 드워프였다.
“골렘이 경고를 보내서 달려왔더니만 완전히 박살을 내놨네?”
“족장님이 아시면 난리를 치실 거 같은데?”
“어이, 너희들은 뭐냐? 인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드워프족에게 긴급하게 전할 말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저희는 벨가님의 인정을 받은 자들입니다.”
루시안이 나서서 용건을 말하며, 벨가의 팔찌를 들어 보였다.
“흐흠? 알겠냐?”
“몰라! 나도, 쟤들 뭐라는 거야?”
뒤에 있던 드워프가 앞에 있던 두 드워프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야! 쿠드비온 족장님 수업 까먹은 거야? 벨가님을 잊어선 안 된다고 하셨잖아!”
“그랬나? 일단, 인간들을 끌고 가보자!”
일행은 드워프들의 비무장 요구에 응했다. 남은 골렘이었던 무언가의 잔해와 그들의 무기를 수레에 싣고, 선두와 후미 사이에 낀 채로 그들의 마을로 향했다.
그들의 마을은 하얀색 대리석을 조각해 기둥과 건물을 세우고, 건물의 외부에 은으로 된 세공품으로 장식을 해두었다. 일행들은 그런 건물 중 가장 크고, 은빛이 많이 나는 건물로 안내받았다.
“족장님! 인간들이 왔습니다. 벨가님을 말하는데 뭐 아는 게 있어야지 말입니다.”
“족장님, 길목에 세워둔 골렘, 이놈들이 망가뜨려 놨습니다.”
족장이라 불린 드워프는 다른 드워프들과 마찬가지로 하얀 수염을 가진 근육질의 드워프였다. 다만 턱수염을 한데 모아 끝에 은빛 브로치를 달아둔 점이 눈에 띄었다.
“뭣이라? 그 골렘에 얼마나 희귀한 광석이 들어갔는데! 그리고, 너! 벨가님에 대한 교육을 안 받은 거냐! 야, 이놈 데리고 쿠드비온 족장님한테 보내라”
“족장님! 이건 아니잖습니까?”
“뭐해? 어서 끌고 가!”
“족장니이이임!”
가면 무슨 일이 있길래, 저렇게 싫어하는 것인지 알 수가 궁금해진다.
“큼큼, 벨가님의 지인이라고? 그런데 골렘을 왜 부순 거야? 그게 얼마나 공들인 건데!”
족장이라 불린 드워프가 골렘에 들인 정성이 많은지 툴툴거린다..
“그럼, 공격을 해오는데 맞고 있으란 겁니까?”
타몬트가 껄렁하게 대답한다.
“에잇, 그럼! 그 잔해라도 내놔라. 다시, 만들어 둬야 할 거 아니야!”
“아니, 우리가 잡은 건데 당연히 우리 것이지! 더 강한 거로 세워놓던가!”
귀까지 후비적거리며 대답하는 타몬트였다.
얼굴이 벌게진, 드워프의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에잇!, 못된 인간들! 그래서 무슨 일로 왔냐!”
“저는 모든 드워프를 대표하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혹, 드워프를 대표하십니까?”
“아, 나는 아니고, 대족장님이 따로 계시지. 아! 내 소개도 안 했네, 네놈들 소개도 안 했고?”
족장이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손뼉을 친다. 곧, 그들의 앞에 커다란 맥주잔이 놓인다. 그가 그걸 벌컥벌컥 들이킨다.
“크으으! 나는 은빛 모루 일족의 족장 베리겐 아이언이다. 너희가 찾는 건, 나스팔라벨 워해머님이겠군? 그래서 네놈들은?”
“전 연금술사 루시안이고, 여기는 라펠라, 타몬트, 발터, 루나 그리고 구리와 피닉스입니다.”
“이제 보니, 환수님까지 계셨군! 환수님을 이렇게 보기는 또 처음이네. 쿠드비온 할배의 이야기만 들었지. 진짜로 만나게 될 줄은!”
베리겐이 벌떡 일어나 구리와 피닉스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피닉스가 잠시 고민을 했다. 곧, 피닉스가 날개 한쪽을 내밀었다.
“뭐, 일단 여기서 머물고 있어라! 드워프 일족 회의를 걸어야 할 것같으니까. 환수님이 오신 거로만 해도 사유는 충분해!”
일행은 베리겐이 붙여준 드워프를 따라 숙소로 들어섰다. 내부는 단순했다. 목재 대신 금속으로 된 가구들이 많이 보였다는 점이 특이했을 뿐이다.
“역시, 내놓는 건 맥주네? 이건 뭔 열매야?”
아까도 맥주, 이번에도 맥주 이놈의 맥주 중독자들.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루시안, 루나 발터는 고개를내저었지만, 타몬트는 표정이 너무 밝다.
“야! 드워프 맥주는 여기서만 맛볼 수 있다니까!”
그들이 내놓은 비스킷과 맥주, 열매 볶은 것들을 먹으며 얼마간의 시간을 보냈다. 잠시 후, 일행을 데리려 드워프 하나가 찾아왔다.
“벨가님의 손님이라고 했나? 따라와라!”
그들은 은빛 마차에 일행을 태우고, 어디론 가로 향했다. 마차의 창밖으로 네모반듯한 붉은 벽의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화산이 보인다.
수많은 건물 중에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큰 건물이 그들의 목적지였다. 미로같이 복잡한 건물 안에서 안내자를 따라,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상석에 갈색의 수염을 땋아 멋을 낸 덩치가 큰 드워프가 앉아있었다. 갑옷에 워해머가 음각되어있었다. 그 오른쪽에는 적발의 근육질의 드워프가, 왼쪽에는 금발의 드워프가 있었는데 딱 보기에도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다.
금발의 드워프 옆으로는 일행과 처음 만났던 은발의 드워프가그 맞은편엔 흑발의 드워프가 앉아있었다.
상석에 앉아있던 드워프가 인사를 해온다.
“드워프 일족 연합의 연합장이자, 워해머 일족의 족장 나스팔라벨 워해머일세! 벨가님의 인정을 받은 인간들을 환영하네!”
그가 손짓하자, 그들의 자리가 상석의 맞은편에 마련되었고, 그들이 자리에 앉자 각자 앞에 맥주잔이 놓였다.
그 뒤로, 족장이 한 명 한 명 소개를 해주었다. 적발은 붉은 일족의 가니스터 레단이고, 금발은 용광로 일족의 쿠드비온 비어드, 흑발은 검은 모루 일족의 바하프 쿠모겐이라 했다.
“그래, 들어오면서 베리겐에게 골탕을 먹였다지? 하하”
“아주, 골렘을 작살을 내놓았습니다. 아예 다시 만들어야 할 판입니다.”
“큭큭, 자네가 그리도 자신해 하던 작품이 아니던가?”
그들은 일행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맥주잔을 비워가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말도 못 꺼내고 며칠이 지날 것 같았다.
“나스팔라벨님께 긴급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흠,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가?”
“아기아스를 아십니까? 그를 추종하는 교단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환수의 구슬을 찾아,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다닙니다.”
“아기아스라니! 그게 정말인가?”
금발의 드워프 쿠드비온이 놀라서 되묻는다.
“맞습니다. 저희도 몇 번 그들과 마주쳐 전투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나스팔라벨 족장! 이건 정말 큰 일이라네!. 자칫하다간 고대의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흐음, 쿠드비온 족장, 지금이 그때입니까?”
나스팔라벨이 쿠드비온에게 무언가를 확인하자, 쿠드비온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또한,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차원문이 불안정하니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입니다.”
“…차원문이라, 차원문….”
쿠드비온의 미간이 좁혀진다. 모든 드워프의 눈이 쿠드비온에게 향한다.
“그것의 방법은 단, 하나일세. 봉인지에서 차원문을떨어뜨릴 것!”
쿠드비온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선대의 드워프 연합은 급하게 봉인을 하느라, 카라함의 봉인과 가까이 있던 차원문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놔둔 채 봉인을 했다고 했지. 그게 결국 문제를 일으킨걸세!”
“쿠드비온 족장님, 그걸 옮길 수 있습니까?”
“당시, 드워프 연합이 만들어낸 차원문 이동장치가 있다네. 결국, 써먹지 못하고 그대로 지하에 보관되어있다는 게 문제일세.”
보관만 잘되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인데, 무엇이 문제란 것인지 드워프들이 나서서 물어보았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부품들이 다 맛이 가버렸거든! 내가 최근에 확인했을 때, 주요 부품이 완전히 나가버린 걸 확인했다네. 중요 부품을 갈아야 해!”
다들, 표정이 밝지 못하다. 그중 한 드워프가 물어온다.
“쿠드비온 족장님, 그걸 이용한다 한들, 어디에 연단 말입니까?”
“드워프의 원한을 갚아야 하지 않겠나?”
족장들이 웅성거린다. 루시안 일행은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사실 끼어들 틈도 없었다.
쿠드비온이 입을 열었다.
“자네이름이 루시안이라고 했나? 은빛 모루 일족이 자네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주었네.”
“예, 맞습니다.”
“제국에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나라, 그 정도만 압니다.”
쿠드비온이 맥주잔을 비워내고, 새로 가져달라고 말했다. 수염을 훔치며 말을 이어갔다.
“그들은 말일세, 고대 전쟁 당시, 카라함의 1차 봉인을 해제한 놈들의 후손일세! 그들로 인해 희생되지 않았어야 할 환수 님들과 엘프, 드워프가 많이 희생되었다네. 2차 봉인은 그만큼 힘들었다 이 말일세!”
새로 가져온 맥주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제국은 우리 드워프의 적인 셈이야! 우리가 이렇게 협곡 안에 숨어 지내며, 엘프들의 손가락질받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모여 힘을 키워왔다네. 저들의 파멸을 바라면서!”
모두의 표정이 좋지 않다.
“우리는 차원문을 제국의 수도로 옮겨버리고 싶다네. 그들도 벌을 받아야 해. 그들의 탐욕의 대가를 치러야 한단 말일세!”
라펠라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봉인은 계속 유지되는 겁니까?”
“아니, 이미 불안정해진 차원문은 수를 쓸 방법이 없어, 없애던지, 옮겨버리든지 아니면 다시,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 봉인을 해야 하네.”
루시안도 걱정이 되어 물어본다.
“봉인이 풀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른다네.”
라펠라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그럼, 수도의 사람들은요? 무고한 사람들은요?”
라펠라가 화가 나 소리쳤다.
“그들이 왜 무고하지? 그간, 제국의 비호 아래 잘 먹고 잘살아오지 않았나? 같은 인간이라 편을 드는 것인가? 인간은 탐욕을 부리고, 다른 종족에게 상처를 입히면서도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어! 그때 그들로 다치고 죽어 나간 이들은 무슨 죄를 지었지?”
쿠드비온의 눈빛이 매섭게 라펠라를 쏘아본다.
“탐욕에 찌들어, 자신을 정당화하고, 우리 이종족을 핍박하고 노예로 삼으러 들었지. 인간이 왜 무고하지?”
“그렇다고 해도, 그래도…….”
“쿠드비온의 족장님의 말이 옳아! 자네의 말은 인간의 위선에 불과해! 이상과 현실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어!”
붉은 수염의 드워프 가니스터가 라펠라를 비난했다.
“맞아, 자기들의 잘못을 감춘다고 모든 사실을 다 없애버렸더군? 그게 인간들이야! 자네들이 벨가님의 증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곳에 발을 들일 수도 없었을 테지. 우리는 벨가님의 손님으로 너희를 대한 것이지, 인간으로 대한 게 아니란 말이다. 착각하지 마라!”
검은 수염의 바하프도 비난에 동참했다.
라펠라가 얼굴을 푹 숙이고, 입술을 짓씹는다. 다른 일행들도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는 터라 나서기도 힘들었다.
나스팔라벨이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했다.
“자자, 그만, 이 자리는 인간을 비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닐세, 대책을 세워야 하네! 진정들 하시게!”